154화. < Chapter 28. 당신은 알고 있어요 - 7 >
“스킬 스톤이잖아……."
- 바로 그렇습니다.
강신혁은 포이즌 미스트가 남긴 전리품의 정체를 깨닫고 전율했다.
스킬 스톤, 설령 등급이 낮은 몬스터가 떨어트려도 최소 억 단위에서 거래되는 물건인데, 그게 설마 자신이 최초로 사냥한 SS+등급의 보스몬스터에게서 떨어지다니. 사실상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희귀한 전리품을 얻어버린 것이다.
더욱이 보스몬스터는 대개 자신의 등급보다 높은 스킬을 다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어쩌면…….
- 아마 회원님의 예상이 맞을 겁니다. SS+랭크 이상이겠지요. 더욱이 상성 면에서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꿀꺽 하시지요.
“전 모든 스킬과 특성의 현존하는 최대 랭크는 SS라고 알고 있는데요.”
- 이전 관리자가 현계한도에 대해 설명을 드린 적이 있죠. 필멸자가 도달할 수 있는 일반적인 한계 랭크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드물게 현계한도를 뛰어넘어 SS+랭크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강신혁의 스킬 황룡투와 레지스트 포이즌이 그렇고, 그는 모르고 있지만 SS+급의 특성을 갖고 있는 오주영이 그렇다.
하이랭커가 되기 위한 조건이 SS랭크라면, 탑 랭커가 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전제조건 중 하나가 바로 특성에서든 스테이터스에서든, 혹은 주력 스킬에서든 ‘SS랭크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갖추고 있을 것’이었다. SS랭크를 초월하는 순간 그것에는 특별한 가능성이 깃들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SSS급의 특성을 갖고 있는 신은아는 논외로 한다.
“확실히…… 어쩌면 이 스킬이 무엇인지에 따라 제가 저 게이트 안에서 활약하고 말고가 정해지겠어요.”
- 자, 어서.
관리자가 강신혁을 재촉했다. 그가 SSS급 게이트에 돌진하겠다는 만용을 부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이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영력을 발해, 단숨에 스킬 스톤을 집어삼켰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은 영력과 호응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의 전신에 흡수되어, 찬란한 빛으로 태어났다.
그의 특성이 자연적으로 발동하여 내부에서 그 빛을 감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뿐인가, 그의 영력이 더더욱 강화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본래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스킬이 지니고 있던 가능성이 영력의 새로운 면을 개화시키고 있었다!
- 스킬스톤의 정수를 흡수합니다. 고유스킬 [영혼독(SSS)]을 각성했습니다! [레지스트 포이즌(SS+)] 스킬을 흡수하여 스킬의 효과가 증폭되며 숙련도가 S+랭크로 성장합니다.
- 영력이 큰 자극을 받아 SS-랭크로 성장합니다!
강신혁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었다. 황룡투기를 각성할 때에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아마도 이 스킬이 강신혁의 영력, 즉 영혼이며 근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스킬이기 때문이 아닐까.
육신이 아니라 순수하게 영혼에 닥쳐온 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을 받아 신체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하는 경련이었다.
어쩌면 머지않은 언젠가 또 스테이터스가 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하이랭커급의 전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영혼독……."
- 관리자도 놀랐습니다. 본래라면 [포이즌 마스터(SSS-)]를 획득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역시 그 끝이 밝혀지지 않은 영력의 주인인 회원님께선 히어로 유니버스의 데이터조차 초월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시는군요. 새로운 기적을 마주한 관리자의 10,000HP 보너스!
관리자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지만 강신혁은 어째 그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자연스럽게 보너스를 안겨주는 부분이 가장 수상하다.
[영혼독(SSS) - 영력을 통해 근원을 파먹는 독을 살포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오직 영혼의 힘을 다루는 이들만이 이에 저항할 수 있다. 모든 계열의 독에 대한 강력한 내성을 얻으며, 다른 근원을 파먹을 때마다 스스로의 근원은 강화된다.]
여태껏 강신혁이 얻은 어떤 특성과 스킬보다도 음산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스킬의 근원이 근원이다보니 능력도 수상쩍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굳이 가이아 시스템이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강신혁은 이미 스킬의 모든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영력을 통해 직접적으로 발현되는 스킬이니까.
- 이것이라면 굳이 히어로 유니버스의 상품을 쓰지 않더라도 게이트 진입이 가능하겠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단순한 독이 아니다. 영혼독이란 스킬은 그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자체적인 특성은 갖고 있지 않았던 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스킬이었다. 맨손으로 드래곤을 때려잡던 기사가, 드래곤의 척추를 뽑아내 만든 검과 창으로 무장한 것이다.
“되겠어.”
강신혁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이랭커에 달하는 힘을 얻었다고 확신했다. 낫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신살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어쩌면 이 스킬을 얻기 위해 자신이 프랑스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다만 사용에 있어서는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회원님이시라면 물론 확실하게 통제하실 수 있으리라 믿지만요.
근원, 영혼을 해하는 힘. 그 무서움을 강신혁이 어찌 모르겠는가. 그 손으로 무수한 영혼의 무구를 만들어온 모루가 어찌.
“하지만 지금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을 상처 입혀야 할 순간이에요.”
강신혁은 느슨해진 가면을 고쳐 쓰고, 천장을 향해 다섯 가닥의 독 거미줄을 쏘아냈다.
베놈 프린세스 소울을 통해 실에 담긴 영력이 천장에 도달하는 순간, 놀랍게도 그 부분만 쥐가 파먹은 치즈처럼 구멍이 뚫렸다.
그 너머로 드러나는 희미한 풍경을 보며 강신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되네요.”
- 보조하겠습니다.
“부탁해요.”
강신혁이 쏘아낸 실들이 천장에 박혀 빙글빙글 수십 겹의 원을 그렸다. 천장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비명을 내질렀다.
실을 움직여 맨홀 뚜껑을 뜯어내듯 잘린 천장을 뜯어내자 이젠 보다 확실하게 내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신혁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 SSS급 게이트 [열셋의 통로]에 강제로 진입합니다.
제법 공격적인 문구와 함께 게이트 안에 들어선 강신혁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무수한 마력의 덩어리였다.
강신혁은 망설임 없이 열 개의 거미줄을 쏘아냈다. 허공에서 교차하며 격자모양의 방패를 형성한 실 가닥 위로 쏟아진 마력포가 놀랍게도 그대로 녹아 사라졌다.
물론 원래 거미줄의 능력만으론 불가능한 일. 그 위를 흐르는 영력이 칼날을 세워, 마력포의 근원을 해체해버린 것이다. 영력을 다루지 못하는 이는 방금 마력포가 어떻게 무산되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
“어떻게!?”
어린 소녀의 깜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검고 노란 쫄쫄이를 입은 포니테일 소녀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게 물든 피부의 오우거의 어깨에 걸터앉아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정체를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캐릭터가 너무 강렬한데……. 아마 저게 이 일을 일으킨 범인이겠죠.”
- 마력변질이라는 특성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회원님이라면…… 정면으로 붙어도 3초면 떡을 치겠군요.
“말투!”
하지만 적과 자신의 상성이 무척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저 마력변질이란 상대의 능력을 무효화하는 데 특화된 능력일 텐데, 일단 강신혁에게는 마력이 없으니까.
더욱이 마력의 변질이란 엄밀히 말해 근원을 조작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그로 인해 공격성은 강화될지 몰라도 근원 자체의 내구성은 취약해지게 된다.
따라서 그 부분을 파고드는 강신혁의 영혼독에는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녹아내릴 수밖에 없는 것.
‘문제는 몬스터들 틈에 있다는 거야. 저들을 뚫고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 당장 죽일 수도 없어. 혹시 모르니 실을 날려봐? 윈드 마스터리가 있으니…… 아니, 그래도 역시 무린가.’
“죽음의 인형사!?”
“어떻게 들어온 거지?”
장내는 개판이었다. TV에서 몇 번이고 봤던 UN의 높으신 분이 목이 날아간 채 죽어 있었고, 그 외에도 내전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인간들끼리 치고 박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방에 넘쳐나는 SSS급의 몬스터들. 놈들이 뿜어내는 마력의 잔향만으로도 어지간한 초인은 쓰러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강신혁이 강화되었다고 해도 저들을 1대1로 꺾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단 저들과 정면으로 대치하면서도 살아남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점이었다. 지금도 SSS랭크의 몬스터들이 강신혁에게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누나는? 찾았다.’
지금 당장 봄버걸을 죽이는 것을 단념한 강신혁은 클레어가 있는 곳을 찾아 빠르게 몸을 날렸다.
한쪽 벽면에 기대고 포위망을 좁혀오는 몬스터들과 대치하고 있는 클레어. 그녀의 근처에 쌍권총을 들고 있는 주노 발렌타인이 보였다. 혹시 저놈이 클레어에게 위해를 끼치려 했단 말인가!
그는 실을 쏘아내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일순간 막아내며 생겨난 틈으로 몸을 던져, 빠르게 그녀의 옆에 착지했다.
“아!"
강신혁을 발견한 클레어가 짓고 있는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반가워하는 듯한, 살짝 안타까워하는 듯한 표정. 아마 괜히 그를 불러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왔어요, 누나.”
강신혁은 잽싸게 클레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주노 발렌타인과 대치했다.
“괜찮아요?”
주노 발렌타인과 몬스터를 동시에 의식하며 실을 쏘아낼 자세를 취하는 강신혁. 주노 발렌타인 역시 강신혁이 게이트에 마음대로 들어올 뿐만 아니라 봄버걸의 변질된 마력포를 가뿐하게 흩어버리는 광경을 보았기에 그에게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하고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의 대치는 클레어가 강신혁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으로 해소되었다.
“그 남자는 무척 짜증나지만 적은 아니야. 그럴 깜냥이 없거든.”
“그렇다면 다행인데. 배신자는 한 명?”
“아니, 더 있는 것 같아.”
강신혁의 어깨 위를 덮는 그녀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신은아가 곁에 있었다면 그녀가 이렇게 긴장할 일은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강신혁이 슬쩍 시선을 돌리니 게이트 중앙부에서 거대한 마력이 폭발하는 것이 보였다.
“보스 몬스터와 싸우고 있어.”
"......."
강신혁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탑 랭커 안에서 배신자가 튀어나와 민간인 중 중요인물을 죽이고 게이트의 몬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상황, 하지만 그대로 요르문간드 측으로 승기가 기우나 싶은 시점에 예기치 못했던 실력자인 신은아가 나타나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게 된 것이리라.
신은아를 비롯한 탑 랭커들은 봄버걸을 견제하면서도 몬스터들과 전투를 개시했고, 살아남은 하이랭커들은 몬스터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도 힘든 상황에 혹시나 더 있을지 모르는 배신자를 찾느라 신경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 강신혁이 난입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렇다면.”
강신혁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제가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보낼게요.”
“뭐?”
“배신자든 뭐든 게이트 밖으로 내보내면 쉽게 행동할 수 없게 되겠죠. 적어도 이 안에 같이 갇혀있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그리고 짐이 되는 사람들을 내보내면 아마 신은아도 지금보다 더 폭발적인 위력의 마법을 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전 그로마스에서 그녀가 발했던 힘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녀는 주위에 피해가 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 자제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게이트 밖으로? 나 혼자라면 아마 어떻게든 가능하겠지만, 신혁아. 그건.”
“괜찮아요.”
강신혁은 손을 가볍게 휘둘러 자신의 손을 무수한 실가닥으로 감싸 큰 글러브 형태로 만들었다. 자연스럽고 빠른 실 조작에 그런 상황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클레어는 순간적으로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강신혁이 보인 행동에는 더욱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냅다 바닥을 후려쳐 게이트에 구멍을 뚫어버렸으니까.
“누나, 먼저 나가요.”
“너, 그거……."
“차례차례로 내보낼 테니까, 준비해주고요.”
강신혁은 씩 웃으며 클레어를 구멍에 밀어 넣었다. 클레어는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구멍에 빠져, 다음 순간에는 게이트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어, 어어……."
“당신은 나랑 같이 사람들 좀 구합시다.”
주노 발렌타인은 어물쩍 클레어를 따라 구멍에 몸을 던지려다, 강신혁이 구멍을 발로 쓱쓱 비벼 지우는 것을 보며 동작을 멈추었다.
“이봐, 나도 별 도움은 안 될 텐데.”
“방패는 되겠지.”
“헤이, 영어 제대로 한 거 맞아?”
“맞아. 시작하지.”
“빌어먹을, 난 한국에 가기 싫어졌어.”
“영영 오지 마.”
강신혁은 실로 만든 글러브를 위협적으로 흔들어보이며 그를 잡아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이트 대탈주 작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