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Chapter 28. 당신은 알고 있어요 - 4 >
“뭐야 이거!?”
“중심 잡아!”
게이트 내의 모든 기운이 땅이라는 매개를 통해 폴링 사이드로 흡수되고 있었다. 그 덕에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나 단련이 부족한 초인들은 실시간으로 꿈틀거리며 변화하는 대지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 저걸 뽑아내!
- 죽여!
난쟁이들이 일제히 강신혁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100여개의 칼날이 교차하며 회전하고 있는 방어막을 앞두고도 놈들은 아무 망설임 없이 몸을 내던졌다.
놈들의 몸을 베어내느라 날의 회전이 무뎌지고, 그 너머로 폴링 사이드를 붙들고 있는 강신혁의 모습이 드러나자 놈들은 기성을 높이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하."
강신혁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버티며 오직 정신력만으로 바람을 일으켜, 칼날들에 힘을 더했다. 무색투명하던 바람에 황금빛이 입혀졌다. 황룡투기가 그의 바람을 보다 강하고 날카로운 무언가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과 동시에 폴링 사이드로 게이트의 기운을 뽑아내는 작업도 수행해야 했다. 동시에 두 가지 작업을 실시하느라 머리가 빠개질 듯했다. 전투와 관련된 모든 행동을 보조해주는 황룡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
- 황룡투(SS+) 스킬의 숙련도가 A+로 성장했습니다. 황룡투기가 S+랭크로 성장합니다.
그런 생각을 한 덕분일까, 기가 막힌 타이밍에 황룡투 스킬의 숙련도가 성장하며 황룡투기까지도 증폭되었다. 조금이나마 느슨해졌던 칼날의 회전이 다시 빨라지고, 난쟁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동댕이쳐졌다.
“신은혁이 뭔가 하고 있어.”
“그를 지켜줘야 해!”
“아니, 이쪽에 거인이 또 나타났는데?”
“막아, 아니…… 이런, 젠장!”
장내는 혼란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기어이 사달이 났다. 독지기의 복부에서 나온 독물을 막지 못해 그것이 기어이 장내 한 중간에서 터져버린 것!
“독이다.”
“아티팩트로도 막지 못하는…… 컥."
“오, 하느님……."
아마도 그것은 14층에서 터져 나온 독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독한 수준의 독이리라. 레지스트 포이즌을 A+랭크까지 수련한 강신혁도 그것이 터지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나마 강신혁은 양반이었다. 독지기의 독은 저항력을 갖춘 초인들을 단숨에 절명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으니까.
‘젠장, 순식간에 셋이 당했어.’
대부분의 하이랭커는 독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지만 장내에 퍼진 독은 그것조차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물론 폴링 사이드로 인해 게이트 내부의 모든 기운을 실시간으로 빨아들이는 중이었지만, 독만을 골라서 빨아들일 수도 없다 보니 확산을 완전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작업을 중간에 멈추면 더 큰 난리가 날 거야. 젠장…… 백인하는?’
괜한 걱정이었다. 과연 세계 10위권 길드 백양의 후계자답게 백인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제법 씩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력화된 다른 랭커들을 잽싸게 구해내 한 편에 쌓아놓고, 어떻게든 거인의 복부를 공격하며 추가적인 독 살포를 막고자 애쓰는 녀석의 투지며 능력은 이미 어지간한 랭커를 뛰어넘는 수준.
‘그야 지 할아버지한테 많이 챙겨 받은 덕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단한데. 여태까지 신영 애들 수준에 맞춰주느라 피곤했겠어.’
저게 열일곱 살이라니 대체 누가 믿을까, 한순간 그런 생각을 했던 강신혁은 지금 자신은 그보다 더하다는 것을 자각하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 속에서 울컥, 뭔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 회원님, 해독제를 복용하세요! 회원님의 스킬만으로는 완벽한 저항을 할 수 없습니다.
“……네.”
강신혁은 다급히 상급 해독제를 구입, 그것을 입에 물었다. 그를 덮쳐왔던 현기증이 어느 정도 물러가며 정신이 맑아졌다.
그러자 비로소 눈앞까지 들이닥친 난쟁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딜.”
- 꾸아아에에에엑!
칼날 방어막의 회전을 가속시켜 그에게 육박한 적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하지만 낫을 복제하고, 바람으로 그것을 조종하는 것도 무한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당장 지금의 급한 움직임으로 적잖은 양의 영력이 날아갔다.
‘아직은 괜찮아. 그렇지만 이 게이트의 보스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장내에 퍼진 독은 지금도 확실하게 한 명씩 전투원들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일반인 중의 생존자? 아마 한 손으로 세는 게 가장 빠를 터였다.
그는 이를 빠득 갈며 폴링 사이드를 굳게 쥐었다. 여차하면 그 혼자서 보스를 처리해야만 했다.
SS-급의 게이트의 보스를 혼자서? 스스로 생각해도 웃겼다. 아무리 게이트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해도 그것으로 보스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때가 오면 아무리 싫어도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초인의 의무다.
- 안 돼!
- 우리의 땅…… 되찾아야!
눈을 시뻘겋게 뜨고 덤벼드는 난쟁이들을 칼날의 방어막으로 갈아버리며, 그 자리에서 폴링 사이드를 붙잡고 버티길 몇 분. 드디어 게이트가 모든 힘을 잃고 침식이 멈추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를 절규가 사방에 메아리치고, 난쟁이들은 괴로워하며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독지기들은 끝까지 독을 퍼트리기 위해 발악했으나 그 전에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회원님, 잘하셨습니다. 게이트가 붕괴됩니다!
“큭…… 하앗!”
관리자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강신혁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서 폴링 사이드를 뽑아냈다. 비로소 동조를 멈춘 극천신주를 들어 일대의 독기만을 골라 모조리 빨아들였다!
그와 비슷한 타이밍에 게이트에 침식되었던 환경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본래 프랑스 초인협회 본부 13층의 대리석 바닥이 드러났다. 강신혁은 그것을 보며 아차했다.
‘이렇게 되면 대지에 발을 딛고 있을 때 주어지는 보너스는 못 받게 되는데……!’
- 게이트 안에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회원님.
그것도 그렇긴 했다. 관리자의 말에 납득한 강신혁은 폴링 사이드 안에 내재된 어마어마한 양의 기운을 예리하게 다듬으며 그 총량을 측정해보려 애썼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거센 기운이 대낫 바깥으로 조금씩 삐져나오며 아지랑이처럼 일렁였지만, 그 겉을 황금의 투기가 감싸 폭주하지 않게끔 실시간으로 정제하고 있었다.
그 소름끼치게 섬세한 기의 컨트롤은 전생의 대장장이의 경험과 현생의 검사로서의 경험이 섞인 강신혁 고유의 능력이라 해도 좋았다.
그러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돌아왔어!”
"사,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단 다 안전한 곳으로! 아직 여기엔 독 기운이 남아있어…… 쿨럭!"
사람들이 게이트에 빨려 들어갔다 풀려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그 짧은 시간 동안 7할에 이르는 숫자가 죽음, 혹은 전투불능에 처해졌다.
이것으로 끝났더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럴 리가. 침식이 완성되었든 게이트가 붕괴되었든, 그 끝에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있었다.
- 우오오오오오.......
“뭐......."
“도망쳐, 깔린다! 피해!”
“꺄아아아아악!”
마치 처음 독지기가 나타났던 것처럼 그렇게 갑작스럽게, 게이트가 있던 곳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서서히 몸을 드러내는 거대한, 아주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 모든 이의 사고를 정지시켰다.
- 제41병영의 네임드 보스 몬스터, ‘포이즌 미스트(SS+)’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의하세요! 월등히 높은 수준의 적입니다!
메시지를 본 순간, 강신혁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SS+랭크......."
SS+랭크의 일반 몬스터도, 엘리트 몬스터도 아닌 보스 몬스터.
몸통의 경계가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는 부정형의 거인은 마치 독지기의 복부가 그러했듯 전신에 삐죽삐죽한 이가 달린 입술을 매달고 있었으며, 양손 끝은 각각 일곱 개의 손가락이 길게 뻗어나 촉수처럼 흔들거렸다.
머리는 어디에 달렸는지 알 수 없다. 사실은 놈의 모습을 고스란히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마도 놈은 적에게 자신을 인식하기 힘들게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리라. 만약 강신혁이 영력을 활성화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도 그것을 정확히 인식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 우오오오옹……!
그런 놈이 천장을 부수며 대략 10미터에 달하는 거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전신에 달린 입이 진동하며 기기묘묘한 소리를 토해내고, 그와 함께 옅은 안개를 뿜어내 놈의 전신을 가렸다.
그나마 다행한 점이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강신혁이 게이트의 기운을 빨아들여 붕괴시킨 덕에 보스가 약화되어 나타났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위층인 14층에 공간을 비트는 침식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탓에 보스 몬스터가 운신에 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 12층에도 현재 게이트가 형성되어 무너지지 않게끔 버티고 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만약 위아래로 게이트가 없었다면 저 괴물로 인해 건물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두 게이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단 얘기네요. 살다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경험도 겪네.”
- 우오오오오오오오.......
그 거대한 괴물이 엉거주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과 천장 사이에 끼어 괴로워하는 모습은 무척 우스웠으나 그것을 보고 있자니 어째설까 그의 몸에 한기가 돌았다.
저것이, 몸을 추스르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 직감이 뇌리를 지배했다.
“빈틈이다, 공격해!”
모두가 놈에게 압도되어 있던 그때. 강신혁은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러 그 기묘한 정적을 깨며 한 손에 들린 대낫- 폴링 사이드가 아닌 그로잉 사이드를 휘둘렀다.
힘을 잃지 않고 아직까지 그의 주위를 회전하던 100여개의 날이 일제히 쇄도, 거인의 잿빛 몸체에 모조리 꽂혔다. 특수능력, 포착의 힘이었다.
- 구오오오오!
그 순간 희뿌연 안개가 터져 나왔다. 그것을 그저 안개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력을 통해 공기 중으로 확산된 그것은 초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인 분위기를 두르고 있는 마력독이었던 것이다.
마력을 통해 전염되며 상대의 마력과 체력을 갉아먹고 마력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독이다.
“뭣!?”
“공격하는 것만으로 독이 터진다, 저항이 없는 사람들은 뒤로 빠져!”
“요르문간드, 빌어먹을 자식들 같으니!”
이제 사람들은 독이라고 하면 이를 갈았다. 하지만 포이즌 미스트의 마력독은 그들에게 한가로이 욕설을 내뱉을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치명적이고, 확산이 빠르다.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마력을 끌어올려야만 간신히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미 장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인식하려는 노력조차 의미를 잃었다.
하이랭커 두 명이 추가로 무릎을 꿇었다. 독에 대한 방비를 누구보다도 단단히 갖추고 있던 자들이 리타이어한 것이다.
"카흑, 독이 무슨, 젠장……!”
“이건 안 돼…… 요르문간드 놈들, 이전과는 격이 달라……!”
하이랭커들이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며 강신혁뿐만이 아닌 누구나가 직감했다.
여태까지의 몬스터들과의 격돌은 그저 전초전에 불과했으며…… 바로 오늘, 이곳 프랑스 파리에서 비로소 인간과 몬스터의 ‘진짜’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피해, 저놈은 우리가 대적할 수 없어!”
“그렇다고 파리의 중심에 저 괴물을 그냥 풀어놓고 도망치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14층의 게이트가 클리어되기만 한다면…… 젠장, 탑 랭커들이 한데 모여 있을 텐데 왜 이렇게 공략이 늦춰지는 거야!”
죽은 이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감히 놈과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하이랭커 서너 명 정도가 간신히 버티고 서있을 뿐, 백인하도 더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입술을 깨물고 물러나고 있었다.
“빌어먹을, 독만 아니었어도.”
절망적으로 치명적인 독.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을수록 더욱 큰 고통을 받는 그 독은 히어로 유니버스가 아니라면 해독제도 찾을 수 없는 지독한 독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괴로워하는 와중에.
마력이 없는 강신혁만이 독안개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