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Chapter 27. 파리의 장인 - 3 >
-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로 행운 증가 버프를 얻었습니다! 만으로 48시간 동안 모든 일의 성공확률이 높아집니다! 미약하게 기적이 발생할 확률이 추가됩니다!
“행운?”
다음날 아침, 시아라 베르트랑의 집의 2층에 있는 손님용 침실에서 눈을 뜬 강신혁은 처음 받아보는 로그인 보너스에 고개를 갸웃했다. 스테이터스에 이런 항목은 없는 것이다.
“관리자님, 혹시 특수능력으로 행운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나요? 그럼 이건 헛발질?”
- 행운은 특수능력이 아닙니다, 회원님. 단지 측정되지 않는 스테이터스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걸 증폭시켜주는 거예요?”
- 그것이 바로 히어로 유니버스의 VIP만이 받을 수 있는 로그인 보너스의 혜택입니다.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마음에 안 들지만 로그인 보너스를 받아 손해를 본 적도 없으니 가만 놔두기로 했다. 그래도 운이 오른다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
“잘 잤어요?”
방문을 열고 나가자 옆방 문이 마침 같은 타이밍에 열리며 안에서 잠옷을 입은 이나희가 나왔다.
“흐...... 헛!”
그녀는 강신혁을 보자 눈을 몇 번 깜박이곤, 이내 얼굴에 느낌표를 띄우며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그에겐 아무 말도 없이 안으로 다시 들어가며 문을 쾅 닫았다.
“뭐하자는 걸까요 저거.”
- 저렇게 당황한 척 실은 회원님께 잠옷차림을 노출해 두근거리게 만들려는 불여우의 술수입니다.
“아침바람부터 그런 고도의 술수를 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게다가 크툴루 신화에 나올 것 같은 목소리 탓에 분위기 다 깼잖아.”
강신혁은 한숨을 쉬며 샤워실로 직행, 몸을 씻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시아라 베르트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완벽히 갈아입은 이나희의 모습도 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강신혁 학생.”
“침대가 별로였으면 납치범이라고 신고했을 거예요.”
“침실을 마음에 들어해주었다니 기쁘군요.”
어제, 강신혁과 이나희는 시아라 베르트랑에게 휘둘려 데이트와 한없이 유사한 체험을 당한 끝에 급기야는 같은 침실에 넣어질 뻔했다. 그나마 해프닝으로 끝나 다행이었다.
“교사가 학생한테 그래도 되는 거예요 진짜?”
"초인에게는 적용되는 법률이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험난한 초인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강신혁 학생도 미리 국제초인법을 공부해두도록 하세요.”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강신혁의 비꼬는 말에도 시아라 베르트랑은 만족스럽게 웃을 따름이었다. 이유는 명료했다. 반대쪽 소파에 앉은 이나희가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아라 베르트랑은 어제 자신이 한 짓이 모종의 성과를 거두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그 전에 겪은 일이 트리거가 되었다지만 결과적으로는 영 틀린 것도 아니긴 했다.
“이만우 선생님께 만족스러운 보고가 가능하겠군요.”
“쌤 이제부터 제 적이에요.”
이나희가 퉁명스레 말했다. 시아라 베르트랑은 상냥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런, 미안합니다. 한 번만 봐줬으면 좋겠네요. 전 당신이 내는 가게의 단골이 되고 싶거든요.”
"......."
이나희는 명백히 실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둘만 있을 때 그녀가 무심코 어제 상젤리제 거리에서 있었던 일을 흘린 모양이었다. 머쓱해하는 그녀에게 시아라 베르트랑이 이어 말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나희 학생.”
“뭐, 뭐어…… 누구한테든 실망은 안 시킬 생각이긴 한데요.”
어제오늘 이나희의 드문 모습을 많이 보는구나. 강신혁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이나희를 보다가, 그녀가 자신을 째려보자 스윽 시선을 피했다.
“자, 이제 슬슬 나서죠. 실은 두 분을 위해 제가 오페라 관람권을 준비했습니다. 박스석에서 오페라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공간에는 분명 특별한 멋과 맛이 있답니다.”
“박스석은 커녕 오페라를 본 역사가 없는데요.”
혹시 벌써 행운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걸까. 어제 같은 수법에 당했다는 것도 잊고 강신혁이 멍하니 손을 내밀어 관람권을 받는데, 그 옆에서 이나희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오늘은 사양할게요.”
“혹시 다른 분과 데이트 약속이?”
“그런 거 없어! 그, 그런 게 아니라 엘리한테 미안해서.”
이나희는 우물쭈물 이상한 말을 늘어놓으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러니까 그건 엘리랑 보러 가. 난 오늘은 혼자 박물관이라도 갈 테니까.”
“앗, 오페라는 저녁…… 나가버렸군요.”
이나희는 다짜고짜 그 말을 하더니 부리나케 나가버렸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그녀이니 딱히 길을 헤멜 걱정은 없겠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혹스러워하던 시아라 베르트랑은 이내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요.”
“혼자만 알지 말고 저한테도 가르쳐주세요.”
“임계점에 이른 모양입니다. 제가 너무 몰아붙였네요.”
“임계점?”
그러나 강신혁의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옆을 보니 그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상상 이상의 결과입니다. 강신혁 학생, 대단해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저 욕 듣고 있는 거 맞죠.”
“칭찬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은 그녀가 말한 대로 알제 양을 초대하시죠. 아, 복장은 멋을 부려도 좋지만 가능하면 교복을 입고 가주셨으면 좋겠네요.”
“나희 선배랑 갈 거였으면?”
“오늘 오전은 내내 옷을 고르고 있었겠죠."
좋아, 이 여자랑은 더 못 어울려주겠다. 강신혁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시아라 베르트랑이 빙긋 웃으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부디 절도 있는 교제를.”
“어젯밤 남녀 학생을 한 방에 밀어 넣으려 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네요. 그럼 나중에 뵙죠.”
강신혁은 퉁명스레 대꾸해주며 시아라 베르트랑의 집을 나왔다. 나와서 보니 새삼 놀랄 만큼 큰 집이었다. 그는 에휴, 한숨을 쉬며 엘레노어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엘레노어 선배 : 미안, 약속이 생겨서…….]
[나 : 그렇구나. 어쩔 수 없죠.]
[엘레노어 선배 : 정말 미안, 나희한테는 이래저래 신세 진 게 많아서 거절할 수가 없어서…….]
[나 : 네? 나희 선배랑 약속이라고요?]
[엘레노어 선배 : 응. 나희만 아니었으면 나도 기꺼이 가고 싶은데…….]
강신혁은 스틱 화면을 보며 잠시 굳어있었다. 혹시나 이나희는 강신혁에게 엿을 먹이고 싶었던 걸까? 엘레노어랑 가라고 부추겨놓고 정작 자신이 엘레노어랑 선약을 잡다니?
- 이쪽의 선택지를 제한해놓고 그 선택지마저 없애다니,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적이로군요.
“마음 같아선 저도 그 선배를 적으로 취급하고 싶지만 일단 생각 좀 해볼게요. 가만, 이렇게 되면 남는 게.”
백인하 아니면 카렌 정도. 백인하는 사내자식끼리 이런 데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바로 머릿속에서 지웠고, 카렌은 괜히 데리고 갔다가 또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것 같았기에 권하지 않기로 했다.
“뭐야 이거.”
어제 자신이 이나희에게 무슨 잘못을 했던가? 어째서 자신이 이런 굴욕을 겪어야 하는가! 이나희에게 단문으로 따지는 문자를 보내자 그녀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나희 선배 : ㅗㅗ카렌도 내가 불러냈지롱 넌 남자랑 오페라 보러가라ㅋㅋㅋ]
[나 : …….]
[나희 선배 : 연상을 갖고 놀려고 한 벌이다 후배야]
살의가 들끓었다. 어제 그래도 제법 그녀와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강신혁이 언제 이나희를 가지고 놀았단 말인가. 가지고 놀았다면 시아라 베르트랑이 강신혁과 이나희를 가지고 놀았지!
강신혁은 결심했다. 동업? 어딜 분수에도 안 맞는 소리를, 절대 그녀와의 동업은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파리의 미녀를 꼬셔서.”
- 회원님, 진정하세요.
언제나 침착한 관리자의 한 마디가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던 강신혁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하긴 그렇죠. 신영을 대표해서 나와 있는 건데 추문을 만들 수는 없지.”
- 훌륭한 이성을 발휘하는 회원님께 8,000HP 보너스!
[바텐더 누나 : 파리 도착!]
그때였다. 관리자로부터 언제나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보너스를 받아 쓴웃음을 짓는 바로 그 타이밍에 스틱이 진동하더니 클레어로 부터 메시지가 날아든 것이다.
[바텐더 누나 : 혹시 한가해?]
[바텐더 누나 : 한가하면 만나서 놀래?]
강신혁은 클레어의 메시지를 보며 이 여자는 천사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천사가 강신혁을 위해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확실했다.
[나 : 공항으로 마중 나갈게요.]
[바텐더 누나 : 응, 나 배고파 빨리 와!]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이 메시지를 작성하며 클레어가 지었을 표정이 떠올랐다. 화면을 보고 있기만 해도 웃음이 실실 흘러나와, 그는 스스로를 단속하려 뺨을 몇 번 두드리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나 : 날아갈게요.]
@@@
“안녕, 너 이거 써.”
공항 대합실, 바퀴가 달린 캐리어 위에 걸터앉아 강신혁을 기다리고 있던 클레어는 그를 보자마자 그의 얼굴에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씌웠다. 클레어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와 모양이 비슷했다.
“위장?”
“응, 이 정도만 가려도 생각보다 못 알아보거든. 게다가 미국이나 한국이 아닌 프랑스니까 괜찮을 거야. 아마. 음…… 어느 정도는?”
평소였다면 별 문제없었겠지만 지금은 내일 열릴 세계초인회의 때문에 전 세계의 이목이 파리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린 클레어가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게다가 어차피 선전포고도 했겠다, 들켜도 곤란할 거 없지 뭐.”
“선전포고?”
“이쪽 얘기.”
강신혁에게 선글라스를 씌우고 그의 앞머리와 옆머리를 다듬어주던 클레어가 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제일로 잘생겼다.”
“누나도 세계제일로 예뻐요. 아, 그런데 혹시 누나가 오늘 파리 온 거 나희 선배가 알아요?”
“아니, 너한테밖에 얘기 안 했는데? 왜?”
“오케이. 누나, 이쪽이쪽.”
“적극적이네, 헛.”
강신혁은 클레어와 얼굴을 딱 붙이고 셀카를 찍었다. 그녀와 얼굴이 가까워지자 감촉이나 향기를 포함해 오감으로 그녀가 느껴져 사실 사진이고 자시고 찍을 여유가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여유를 가장했다.
“됐다, 이제 보낼게요.”
“나희한테 보내는 거야 그걸?”
“안 돼요?”
“아냐, 보내. 보내버려.”
강신혁은 망설임 없이 사진을 전송했다. 그 직후 그의 스틱이 끊임없이 진동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아예 스틱을 꺼버리며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밥 먹으러가죠!”
“아, 나 벌써 즐거워졌어.”
“실은 우연히 오페라 박스석 티켓을 얻었거든요. 저녁에 보러가요.”
그 말을 듣곤 클레어가 짓궂게 웃으며 강신혁의 뺨을 쿡쿡 찔렀다.
“지금 다 파악했어. 원래 나희랑 갈 예정이었지 너.”
“제게 티켓을 준 사람은 제가 그러길 바랐죠.”
“네가 제안했던 건 아니라는 거지? 아무튼 재밌는 얘기네. 밥 먹으면서 자세히 설명해줘.”
클레어가 킥킥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강신혁은 행운 버프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느끼며 그녀와 연결된 팔에서 힘을 뺐다.
이번엔 그녀의 폰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곤 흐흥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도 폰을 껐다.
“오페라 기대되네.”
“저도요.”
“어떻게 치장하고 갈까.”
“……오늘은 일반인 범주에서 부탁해요.”
두 사람은 정답게 속닥이며 공항을 떠났다. 비록 선글라스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다고 해도 미남미녀라는 것을 감출 수가 없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지만, 다행히도 둘의 정체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세계초인회의까지는 하루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