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Chapter 26. 신영의 중심 - 4 >
2학기가 되어 3학년들의 현장실습이 주가 된 것처럼, 1학년들도 수업의 내용이 제법 많이 바뀌었다.
1학기는 실기보다는 필기가 많았고 뭣보다 실기 또한 몸을 단련하거나 기껏해야 대련을 하는 정도가 최대였는데, 2학기에 들어서게 되자 당장 실기과목이 필기과목보다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대처 훈련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상황 C, 상황 C다! 민간인의 위치를 전송한다, 그들이 타겟이 되지 않게 보호하며 전투를 실시하도록!”
“으아, 게이트 코앞인데!”
체육관 전체에 홀로그램과 훈련용 타겟을 발생시켜 실시하는 실전적인 훈련.
학생들이 장차 정식 초인이 되어 겪게 될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 움직이는 훈련으로, 사실 강신혁은 이런 연습을 백날 해도 막상 실제 상황이 되면 자신을 포함해 누구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초인 라이센스를 위해 묵묵히 시스템에 복종했다.
그리고 대충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같은 조로 묶여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와, 쟤네 우리랑 기록의 단위가 다른데.”
“쟤넨 스페셜 포스잖아. 어쩔 수 없어.”
“방금 스페셜 포스라고 한 놈 나와.”
그렇다. 이전 특별 실습 당시 신은아 아래 한 팀으로 뭉쳤던 네 명이 다시 묶이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강신혁과 백인하는 다른 팀과 섞는 순간 팀원들의 존재의미가 없어지고, 그나마 그들의 수준에 맞출 수 있는 이는 카렌과 도우진 정도였으니까. 아예 이들을 따로 묶어 기준이 다른 과제를 출시하고 가산점을 주는 것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일 터.
모르긴 몰라도 1학년이 끝날 때까진 계속 이 구성으로 묶일 터였다.
“쟤네 다다음주에 프랑스 가는 멤버 아니냐?”
“아, 세계초인회의.”
“도우진만 빼고 셋이 다 가잖아.”
“도우진만 빼고.”
"씁......."
한 차례 훈련을 마치고 이마의 땀을 닦고 있던 도우진이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놈들을 돌아보며 험하게 인상을 썼다. 백인하가 킬킬대며 웃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도우진. 내가 선물로 에펠탑 열쇠고리 사올게.”
“난 엽서 보낼게, 그림엽서. 홀로 서울에 남은 네게, 본 죠르노……."
“니들 진짜 죽여 버린다.”
“대련 좋지.”
결국 실습을 최고득점으로 마친 후에는 개인적인 대련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강신혁은 이때 정말로 놀랐다. 방학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티팩트의 도움 없이는 거대화하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던 그가, 지금은 무려 2초도 걸리지 않아 거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습을 하면서는 굳이 거대화까지 쓸 일이 없었기에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실습 도중에 도우진이 부분적으로 거대화 능력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이전의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 이전 회원님과의 대화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고 하더니 정말로 크게 성장했군요.
‘아니 이건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돈데요…….'
강신혁은 순식간에 거대화해 달려드는 도우진을 보며 감탄했다. 그의 손에 들린 거검에는 단순히 크기 때문만이 아닌 무언가 특별한 힘이 담겨있기까지 했다. 어쩌면 거대화라는 특성의 진가가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다.
“죽어!”
“하지만 고함의 수준은 변하지 않았구나.”
강신혁은 그 부분에 약간의 애석함을 느끼며 도우진을 제압했다. 들고 있는 나무창을 가볍게 내질러 거검의 궤도를 빗나가게 만든 후, 놈의 신체균형이 가볍게 비틀리는 틈을 타 다리를 건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도우진은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분명 예기치 못한 일격이었을 텐데도 강신혁의 다리 걸기를 그 자리에서 꼿꼿이 버틴 것이다. 오히려 공격을 가하는 강신혁이 그에게서 흔들리지 않는 거목과 같은 느낌을 받고 당황했다.
“이건 몬스터의 힘인가?”
“아마도 거인의 힘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싸우다 말고 순진하게 대꾸해주던 도우진이 핫, 하고 정신을 차리곤 반격했다. 그러나 그의 분투도 거기까지였다.
대충 상대를 파악한 강신혁이 힘을 더한 숄더 차징으로 그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이어서 목창을 단호히 내질러 명치를 가격해 무너트린 것이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깔끔한 연격이었다.
문제는 그 그림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이 같은 반 사람들 중에선 카렌과 백인하밖에 없었다는 것 정도.
“쓰, 겁나 아파……!”
“너만 성장한 줄 아냐.”
강신혁은 패배를 인정하는 도우진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경악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방학 동안 특성을 진화시키는 등 깜짝 놀랄 만한 성장을 거두었지만, 성장폭만 놓고 보면 도우진이 더했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겠네.’
- 물론 회원님처럼 진화를 거듭하는 특성을 지닌 이는 별로 없겠습니다만, 확실히 놀라운 변화이긴 합니다. 이래서 인간은 재미있다니까요.
‘사신이라도 된 듯한 말투는 그만뒀으면 하는데요, 관리자님…….'
강신혁과의 대련에서 상대적인 선전을 하면서 도우진은 어떻게든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1학년 C클래스 7조…… 스페셜 포스는 그 후로도 순조로이 모든 조별 실습 과정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선전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세계초인회의가 열리는 날짜가 다가와, 강신혁과 백인하, 카렌은 모든 수업을 면제받고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되었다.
선배 중에서도 올해 투왕인 엘레노어, 마도왕전 4강 진출자인 이나희, 실습 도중 시간을 내어 참가한 기사왕 더글러스 페인이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들을 통솔하는 교사로는 프랑스 출신 랭커이기도 한 1학년 C클래스의 담임 시아라 베르트랑을 포함한 세 명의 교사와 교장 신윤학이 함께했다.
……물론 하이랭커인 클레어와 신은아가 세계초인회의에 참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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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라.]
프랑스로 떠나는 전 날, 미로토즈에 들러 헤일로에게 세계초인회의에 대한 얘기를 하자 그가 감탄사를 발했다.
[그러고 보면 인간들에게는 그런 개념도 있었던가.]
“설마 거기서부터 인식이 차이 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요.”
[이 멸망한 대지를 굽어보시게, 영감. 이 세상에선 나라의 구분이 사라진지도 오래야.]
“하지만 헤일로의 본체는 다른 세상에 있는 거죠?”
[음. 그러하나…….]
헤일로는 말을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면 알 거야, 영감. 인간들이 멋대로 선을 그어놓고 대지를 분류하는 등의 작업을 애초에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네. 구분하기 시작하면 곧 분쟁이 일어나. 그리고 분쟁이 일어나면 이 땅에 붉은 피가 흐르지. 살아남기 위해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만도 벅찬데, 어째서 같은 종이 서로를 해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오우......."
설마 거기까지 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강신혁이 말을 고르고 있는 동안 헤일로의 말이 더 이어졌다.
[하지만 아마 그것이 이 세상 대부분 생명의 운명이겠지……. 그래, 갈리고 마는 거야.]
“뭐가?”
[무엇이 됐든. 모루 영감에게 있어선 그것이 창조와 파괴가 되겠지.]
“너무 철학적인 얘기가 됐네요.”
[조만간 영감도 깨닫게 될 거야. 자, 그보다 지금은 족쇄야, 족쇄.]
그렇다. 강신혁이 지구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건 이 세상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인 것이다. 바로 헤일로의 나무뿌리를 두들겨 거인의 발을 묶을 족쇄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모루 니이이이임! 곧 시작됩니다!”
그때 밑에서 엘프 중 한 명이 소리 높여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신혁은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는 헤일로의 가지 하나를 붙들었다.
직후, 쿠우우우우우우웅! 하고 둔중하게 대지가 진동하며 헤일로의 가지 꼭대기 위에 앉아있는 강신혁에게까지 그 진동이 전달되었다.
“역시 여기 있으면 충격이 별로 안 느껴져서 좋네요.”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곳은 아니라네, 친우인 내게 감사하시게.]
“이것도 헤일로의 작업을 하기 위해선데 말이죠.”
강신혁은 지금 그 거대한 헤일로의 나무 꼭대기 위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전 그가 푸른 소를 바이크로 개조해 도달했던 바로 그 꼭대기였다
이미 그곳에 봉인되어 있던 낫은 수거한 후. 지금은 푸른 잎사귀들이 마치 초원이라도 되는 양 공간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어 제법 신비로운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밭에도 가봐야 하는데. 조금만 더 손보고......."
[영감, 작업이 빨라졌어.]
그야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족쇄를 만드는 작업에 헤일로의 나무뿌리를 제외한 재료는 일절 들어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뿌리가 아닌 다른 재료로는 거인을 속박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뿌리를 묶어 고리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제작을 마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강신혁은 여태까지 자신이 다뤄온 재료들의 특성을 영력으로 분석하여 이 뿌리에 재현한다는 굉장히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모루의 전생의 기억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이번 작업이 처음이었다.
족쇄. 적을 포착해 구속하고, 달라붙고, 고통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도구. 강신혁이 망치와 정을 들고 뿌리를 깎아내고 두들길 때마다 그의 영력이 뿌리로 스며들며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거기에 살짝 더할 것이 있다면 바로 도우진을 통해 분석한 바 있는 거대화 능력. 이미 틀은 완벽하게 잡혔다. 랜스 제작을 통해 제법 능숙해지기도 했다. 이젠 그것을 안 그래도 거대한 나무뿌리를 통해 재현하는 일만이 남았다.
“끝! 오늘은 이 정도만 하죠!”
[이젠 거의 3할 정도는 마무리된 것 같구만. 역시 영감이야.]
“전생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니까요…… 읏차!”
헤일로가 가지를 뻗어 작업물을 회수하는 것을 멍하니 보며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직후 나무 아래로 몸을 날렸다.
족히 수 킬로미터 이상은 되는 아득한 높이, 그러나 A랭크의 윈드 마스터리를 구사하면 어떻게든 그 속도를 조절하며 안정적으로 대지에 착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는 이것도 하나의 수련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모루 님!”
“내려오셨군요!”
“네네. 약속했으니까요.”
“멋져……!”
그를 기다리고 있던 엘프들이 반색하며 다가와 그의 팔짱을 끼려 들었지만 이젠 이것도 익숙해진 만큼 쉽게 그들을 피해냈다.
“밭으로 가죠.”
“네!”
생명이 자라나지 않는 대지, 하지만 헤일로의 능력으로 인해 지극히 좁은 영역에 한해 별의 운명을 거스르는 작업이 시행되고 있다. 전생의 자신이 만들었던 낫을 두 개 모두 수거하는 것으로 인해, 강신혁에게도 그것을 도울 자격과 능력이 생겼다.
“그냥 소유권을 넘겨줄 수 있으면 좋았는데.”
“모루 님 말고는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밭에 이른 강신혁은 엘프들이 보는 가운데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대낫을 꺼내들었다. 하나는 시커멓고 하나는 놀랍도록 새하얗다는 점을 제외하면 완전히 동일하게 생긴 낫이었다.
[폴링 사이드(Falling Scythe)]
[SS랭크]
[특수능력 - 수확, 추수, 대지의 소통]
*수확 - 대상을 수확할 때에 한해 치명타 확률이 극도로 높아진다. 반복 작업을 할 때마다 무기의 성능과 효과가 영구적으로 증폭된다.
*추수 - 무기를 잡고 있을 때에 한해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30% 증폭된다. 가을이 되면 그 효과가 두 배가 된다.
*대지의 소통 - 땅에 기운을 나눠주거나 나눠받는 것이 가능하다. 땅을 밟고 있을 때 힘이 강화된다.
[본래는 단순한 농기구였으나, 작물 대신 사람의 목을 수확하는 작업이 반복되며 성능이 변질되고 말았다. 주인의 손으로 돌아와 영력을 보충한 덕에 조금 안정되었다.]
날이 검은 쪽은 이전 나가 제사장을 해치우고 얻은 낫이었다. 이 아티팩트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바로 세 번째 특수능력인 대지의 소통. 땅에 기운을 나눠주는 것으로 인해 땅의 생명력을 북돋워 수확물이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날이 하얀 쪽은 헤일로의 가지 꼭대기 위에 봉인되어 있던 것으로…….
[그로잉 사이드(Growing Scythe)]
[SS+랭크]
[특수능력 - 성장, 증폭, 포착, 분열]
*성장 - 대상을 강화한다. 모든 능력이 30% 상승한다.
*증폭 - 대상을 거대화한다. 모든 능력이 30% 상승한다.
*포착 - 목표물을 정하면 결코 놓치지 않게 된다.
*분열 - 여럿으로 나뉘어 작업 능률을 더한다.
[오래도록 봉인되어 있던 농기구. 농기구로서 지녀야 할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주인을 심하게 가리는 특성이 있다.]
여러모로 태클을 걸 여지가 많은 물건이었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낫으로 인해 밭의 농작물의 성장 속도가 빨라질 뿐만 아니라 수확물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농기구보다는 전투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듯했으나 애석하게도 당시의 모루의 기억까지는 읽어낼 수가 없었다.
“모루 님이 두 개의 낫을 모두 드셨어!”
“시작한다!”
이 날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구 모여드는 엘프들. 강신혁은 엘프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눈을 돌리려 했지만 무리였다. 결국 그는 체념하고 낫을 동시에 들어올렸다.
“오오오오오!”
“조용히 해, 곧 낫을 휘두르실 거야!”
클레어가 없는 것만이 구원이다. 강신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밭 위에서 자세를 잡고 두 개의 낫을 마음껏 휘둘러가며 특수능력을 발동시켰다.
“밭에 생명의 기운이!”
“모루 님께서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계셔!”
“……미안한데 다들 입은 다물어줄 수 없을까요?”
프랑스 파리로의 여행을 하루 앞둔 그날, 두 개의 대낫을 다루는 능력자 황혼의 수확자의 데뷔 무대가 지구가 아닌 미로토즈에서 펼쳐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