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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 Chapter 26. 신영의 중심 - 3 >

“와아…… 엄청 멋져……!”

강신혁은 클레어가 그렇게 순수한 감탄사를 내는 것을 그녀와 만나고 처음으로 보았다.

……어쩌면 강신혁이 처음 죽음의 인형사 코스프레(코스프레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를 했을 때도 그 비슷한 감탄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때요.”

“최고야.”

클레어가 망설임 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강신혁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꺼내놓은 푸른 광택의 바이크를 매만졌다.

족히 두 사람은 탈 수 있을 만큼 큰 크기,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는 날렵한 동체.

프론트 펜더는 끝부분이 위협적으로 갈려 있어 그대로 들이받으면 뭐가 됐든 뚫어버릴 수 있을 듯이 날카로웠고, 헤일로의 수액을 직접 받아 만든 고무로 제작한 두 개의 바퀴는 신비로운 빛을 발했다. 공중을 나는 중에도 바퀴를 조작해 세심한 방향전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 쿠우.

“조용.”

- 쿠우우…….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강신혁이 바이크를 두들기자, 동체가 미묘하게 진동하며 핸들 중앙부에 박힌 찬란한 구슬을 반짝였다. 클레어가 보기엔 결코 마력구동 바이크 따위에 박혀있어선 안 될 귀중한 물건으로 보였다. 그 시선을 눈치챈 강신혁이 씩 웃으며 해설했다.

“신풍의 보주는 언제든 회수할 수 있어요. 뭐하면 나중엔 바이크를 트랜스폼시켜서 신풍의 보주를 핵으로 삼는 무기로 변화시킬 생각도 하고 있어요.”

“대장장이는 거기까지 할 수 있는 거야!? 나도 연금술이 아니라 야금술 배울걸!”

“그냥 대장장이가 아니라 히어로 유니버스가 인정할 정도의 대장장이니까요.”

“나도 히어로 유니버스 등록되어 있는데…… 좋아, 나도 분발할 거야.”

아무래도 이번에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 클레어의 영감을 강하게 자극한 모양이었다. 말만 그렇게 했지 아직 변신기능 같은 건 안 달려 있는데 말이지……. 강신혁은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역작의 스테이터스를 눈앞에 불러냈다.

[푸른 소 - 바이크 타입]

[SS+랭크]

[특수능력 - 낙뢰, 섬전, 뇌신, 신풍]

*낙뢰 - 적에게 번개를 떨어트린다. 하늘 아래에서 시전할 경우 위력이 배가되며, 우천 시에는 또한 배가된다.

*섬전 - 벼락과 같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영력을 소모해 그 속도를 더할 수 있다.

*뇌신 - 벼락으로 벼린 몸. 매우 단단해지며, 뇌전에 대한 완전내성을 획득한다. 외부의 기운을 흡수해 스스로를 회복한다. 뇌전을 받아들일 경우 특히 단단해지고, 강화된다.

*신풍 - 끊임없이 동력을 생산하며, 바람을 능숙하게 받아들여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바람의 마력으로 인해 번개의 성능이 배가된다.

[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벼락폭풍에 내던진 신수가 새로 거듭난 모습. 오랜 세월이 흐르며 여러 세상을 방랑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이들의 손에서 구른 탓에 능력이 대폭 감소했다. 영력을 다루는 대장장이가 획기적인 방식으로 개조하고 부족한 것을 덧대어, 본래의 능력과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자아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황소의 외피에서 멋들어진 바이크 형태로 성장한 것치고는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강신혁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애초에 귀물에 손을 대어 성능을 깎지 않은 것만으로도 칭찬해줘야 할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 원래 SS-랭크였던 것을 SS+랭크로 끌어올리기까지 했으니, 여기에 대해서만은 순수하게 자신이 잘해냈다고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신풍의 보주가 있었던 덕분이긴 하지만.’

제아무리 강신혁이 끝내주는 내장을 설계했어도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이 어정쩡해서야 본래 푸른 소가 지닌 성능의 발목을 붙잡을

뿐.

하지만 신풍의 보주라는, 푸른 소의 번개 속성을 보조할 수 있는 동력원을 거기에 박아 넣음으로 해서 비로소 아티팩트와 기계의 조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신풍의 보주도 푸른 소도 기나긴 세월동안 손상되어 제 능력을 잃고 있던 귀물. 그 둘을 안정적으로 다듬어 조화를 이루었으니, 아마 앞으로의 능력 복원에도 가속이 붙을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바이크의 능력도 상승할 것이다. 모루가 아니고선 만들어낼 수 없는 기가 막힌 작품이었다.

“등록은 끝냈어?”

“네. 초인 운전 면허가 따로 있더라고요.”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어도 마력구동 바이크는 일반 모터바이크와는 구동방식 자체가 다르다보니 배기량으로 측정할 수가 없다.

해서 초인 면허를 따로 따야 했는데(마력구동 바이크는 일반인이 운전할 수 없다.) 강신혁 본인은 나이 제한에 걸렸으므로 신은아의 도움을 받아 신은혁의 명의로 면허를 땄다.

“즉 바이크를 탈 때는 신은혁 모습이어야 한다는 거네.”

“안 걸리기만 하면 되죠.”

“하긴 마력구동 바이크를 모는 사람을 일일이 붙잡아 심문할 리도 없고.”

“애초에 마력구동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을 일일이 관찰하는 사람도 없을 테죠.”

둘 다 그 발언이 굉장한 복선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럼 타시죠.”

오늘의 데이트는 바이크 드라이브. 그것도 상공의 드라이브다. 강신혁이 자신의 뒷자리를 두드리며 말하자 클레어는 입 꼬리를 끌어 올려 웃으며 대꾸했다.

“어지간한 속도감으로는 만족시켜줄 수 없을 텐데.”

“오케이, 누나 방금 분명히 말했어요. 꽉 붙잡으시고요.”

“어딜?”

“잡고 싶은 데.”

초인들의 감각은 일반인의 감각과 다르다. 육체가 다르니 균형감각도, 동체시력도, 반사신경도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제작이 전문이라 해도 클레어 역시 하이랭커에 속하는 최상위 초인. 그녀에게 시속 200킬로미터 정도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정도로밖엔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 역시 마력구동 바이크를 타는 것을 즐기는 라이더가 아니던가!

“꺄아아아아아아앙아!”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으하아아아아! 말했어, 그래!”

하지만 그런 그녀도 푸른 소에게는 이길 수 없었다.

“너무 밟는 거 아냐!? 이거 너무 빠른 것 같은데!”

“누나, 아직 푸른 소의 능력은 꺼내지도 않았어요.”

“뭐!?”

순수하게 신풍의 보주의 동력만으로 달리는데 시속 500킬로미터가 넘게 나오는 수준. 심지어 이것도 동력의 한계까지 끌어낸 것조차 아니라니. 클레어는 아연해져 그 의미를 곰곰이 살피다…… 다시 비명을 지르며 강신혁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만족했어요?”

“했어! 했어!”

강신혁은 그 말을 듣고 속도를 안정권으로 떨어트렸다. 간신히 호흡을 되찾은 클레어가 주먹으로 그의 등을 퍽퍽 두들겼다. 아프기는 커녕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 무서운 정도였죠?”

“넌 멀쩡해? 이런 속도로 이동하면서 주위 경계는 할 수 있겠어?”

“당연하죠.”

바이크 운전은 전신이 외부로 노출된 만큼 지극히 위험하다. 물론 일반인들과 달리 초인의 몸뚱이는 지극히 튼튼하지만, 그런 그들도 최대속도로 달리는 마력구동 바이크를 타다 사고가 나면 심하게 다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빠른 바이크를 타고 전투를 치러야 할 때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속도로 달리는 것은 초인들에게 있어서도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제 민첩도 이제 S랭크인데요.”

거기에 더해 강신혁에게는 신체성능을 극한으로 끌어내 다루게 해주는 황룡투(SS+)가 있다. 오감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육감까지 더해주는 이 고유스킬이 있다면 굳이 황룡투기까지 가지 않아도 바이크를 조종하는 것 정도는 껌이었다. 원한다면 온갖 묘기도 선보일 수 있다.

처음 강신혁이 바이크를 만드는 것을 보고 불만스러워했던 헤일로도, 그가 전속력으로 바이크를 내달려 나무 꼭대기까지 거슬러 오르는 것을 보며 만족스러워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영력으로 바이크와 소통할 수도 있으니까 사실 제 몸을 움직이는 거나 마찬가지죠.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요.”

“네 몸을 움직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으으, 영력은 여전히 어려워……."

“누나도 잘 하고 있는걸요.”

영력을 수련하기 위해 본격적인 바텐더로 나선 클레어의 판단은, 적어도 그녀의 능력 향상을 위해선 지극히 옳은 일이었다.

실제로 지금 그녀는 칵테일을 만들 때에 한한다면 거의 100% 확률로 영력을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 실감이 나한테 별로 없단 말이지……. 신혁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어때?”

“어, 음……."

둘이 같은 바이크를 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새삼 그녀의 몸이 그와 맞닿아있다는 실감이 더해졌다. 아마도 그녀가 그의 등에 체중을 실어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째설까, 강신혁은 오늘 클레어가 이전에 비해 조금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태까지도 그녀와의 관계는 좋은 편이었지만 오늘은…… 방향성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한 게, 없는 건 아닌데.”

“그래?”

“영력은 근원의 소통이라고 말한 적이 있잖아요?”

“응.”

“그러니까 제 영력으로 누나의 근원과 접촉해서 자극하는 거죠. 누나의 영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있잖아.”

“네."

클레어가 강신혁의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거 좀 야하게 들리는데.”

“사실 저도 말하면서 좀 야하다고 생각했어요.”

“야하다고 생각했으면서 하자고 한 거야?”

“누나가 물어봤으니까. ……죄송해요, 솔직하게 말하면 무척 흥미가 있습니다.”

“정말 감추질 못하네.”

클레어는 키득키득 웃으며 그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리는 게 등에 그대로 전해져 강신혁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다.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그녀가 등에서 얼굴을 떼어내며 말했다.

“오늘은 안 돼, 다음에. 다음에 꼭. 알았지?”

“……넵."

“배고프다, 우리 치킨 먹으러 가자.”

“오우케이.”

결국 둘은 제주도에서 맛있다고 소문이 난 치킨집에서 치킨 다섯 마리를 사다가 백록담 근처에 자리를 잡고 그것을 깨끗이 먹어치운 후에야 돌아왔다.

@@@

“그게 또 찍혀서 소문이 난단 말이지……."

다음날. 강신혁과 클레어의 야밤의 데이트가 카메라에 포착되는 바람에 인터넷 뉴스가 쫙 퍼졌고,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싶을 만큼 난리가 났다.

단순 합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부터 저 사람이야말로 죽음의 인형사 신은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클레어의 지명도가 높은 탓에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미디어까지 점령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강신혁의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는 점. 그는 앞으로 바이크를 탈 때는 반드시 얼굴을 가리자고 다짐했다.

"어제 안 된다고 했던 게 데이트 때문이었구나. 그치?”

“뭐 그렇죠…… 혹시 선배 기분 안 좋아요?”

“아니."

방과 후, 동아리실. 이나희는 스틱의 화상에 나타나는 두 사람의 투샷을 지그시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냥 언니가 주책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두 사람 사이좋은 거 아니었어?”

“있잖아, 사이가 제법 좋아졌으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이전 대역류 때 함께 행동한 이래 이나희는 클레어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엘레노어도 마찬가지인 모양.

강신혁은 세 사람의 단톡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날 같이 움직였던 자신은 왜 끼워주지 않는 것인가. 소외감이 장난 아니었다.

“너 언니가 운영하는 초인상가 바에서 바텐더 알바한다며.”

“그거 비밀인데.”

“나중에 가면 한 잔 주냐?”

이나희가 던지듯이 물었다. 강신혁은 단호히 대꾸했다.

"미성년자 출입금지 인데요.”

"넌 아예 거기서 일하잖아.”

"좋아요, 그럼 선배도 가면 쓰고 와요."

“내가 못 쓸 줄 알고?”

“그리고 제가 출근하는 날은 거의 100% 확률로 은아 선배가 오니까 안 물리게 조심하시고요.”

“……그 사람 사람은 맞지? 가만.”

이나희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다시 사진을 띄우며 말했다.

“이거 들키면 너 어떻게 되는 거야? 너 죽어?”

“그럴지도 몰라서 지금부터 준비해두려고요. 도와줘요.”

“아, 응.”

강신혁의 목소리가 상당히 진지했기 때문에, 이나희도 무심코 진지하게 대답해주고 말았다.

하지만 그 날 저녁, 단단히 준비해갔음에도 불구하고 신은아는 강신혁을 추궁하지 않았다. 강신혁은 그녀의 성장에 감격했으나 어째선지 클레어와, 덤으로 정말 가면을 쓰고 찾아온 이나희는 더욱 경계하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강신혁은 재차 소외감을 느꼈으나 끼워달라고 하는 순간 목숨이 날아갈 것 같았기에 얌전히 손님이 주문한 칵테일이나 말기로 했다. 블러디 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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