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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 Chapter 26. 신영의 중심 - 2 >

개학한 주의 금요일, 빠르게도 강신혁의 부단장 취임이 결정되었다. 백인하와 있었던 일이 신영 전체에 퍼져, 그를 평단원으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마침 강신혁도 비룡기사단을 나갈 마음이 없어져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수업이 끝나고 비룡기사단 전원이 모여 그의 부단장 취임식을 거행한 것이다.

그래봤자 단장으로부터 배지 하나와 부단장용 망토를 건네 받는 정도였지만.

“부단장 취임 축하해, 신혁아!”

“축하해!”

“축하해!”

“축하해.”

“축하해!”

“선배님들, 죄송한데 저를 둥글게 포위하고 박수치는 거 그만둬주실래요?”

강신혁은 오랜 염원이 달성되었다며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선배들을 헤치고 원을 빠져나갔다. 우연히도 그곳엔 오늘 강신혁이 부단장이 되기 전까지 부단장이었던 남자가 버티고 서 있었다.

“너라면 비룡기사단을 믿고 맡길 수 있다. 아, 부단장으로는 인정하겠지만 그녀를 네게 넘기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니 저도 알고 있거든요. 받을 생각도 없고 애초에 선배님 것도 아니잖아요.”

3학년 졸업반으로 민첩은 B-랭크지만 힘과 체력이 무려 S-랭크로 랭커 예비군으로 꼽히는 남자, 더글러스 페인.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강신혁의 부단장 취임을 축하해주었다.

“고작 몇 달 사이에 많이 건방져졌군.”

“그야 이제 부단장이니까요. 하하.”

새삼 그의 스테이터스를 읊어보니 이젠 얼마든지 더글러스 페인을 이길 자신이 생겼기 때문에, 그를 대하는 강신혁의 태도도 많이 편해져 있었다. 더글러스 페인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그의 변화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나도 그 이후로 많이 고뇌하고 많이 단련했다.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지.”

“선배는 제가 아니라 단장님한테 어필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건 조금 부끄럽다.”

역시 이전 그대로인 것 같은데? 아니,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강압적으로 대했던 때와는 달리 적어도 지금 자신을 인정할 수는 있게 되었으니 성장했다고 표현해줘야 할까.

“이제부턴 학교에 내가 없다. 그녀가 졸업하기까지 잠시, 네가 그녀를 지켜라.”

뭐지 이 사람, 쓸데없이 친근하게 구는 느낌이 드는데. 강신혁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궁리하다가 일단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디 가세요?”

“3학년들은 2학기부터 실질적인 초인으로서 활동한다. 실기 100%라고 보면 편하겠군.”

“그러고 보면 이번 대역류도.”

“그건 예외적인 일이었지만.”

강신혁은 중심부에 파고들어 날뛰고 있어서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신영을 비롯한 초인양성학교의 졸업반 학생들이 외곽지역에서 지원으로 참가했다는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랭커 예비군으로 손꼽히는 더글러스 페인 같은 경우엔 어지간한 길드의 에이스보다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고.

그런 식으로 외부에서 쌓은 이미지가 졸업 후의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더글러스 페인은 가문이 제법 큰 모양이고,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길드가 있겠지만.

“그러니 내부에서만이라도 그녀를 지켜라. 그녀가 졸업한 후에는 내가 책임지겠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가문으로 데려온다. 설령 영국 왕실이라 해도 그녀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을 거다.”

자세한 사정을 설명해준 기억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는 가문의 힘을 이용해 독자적인 조사를 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태클을 걸 부분이 너무 많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런 애들이 나중에 커서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자신이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하지만 이런 거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쪽이 엘레노어의 안전에 도움이 될 터였다.

“음…… 당부하겠습니다만, 사전에 본인의 허가는 확실히 얻으시고요.”

“물론이지. 어설픈 실수는 하지 않아.”

완벽한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강신혁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 일단 나중에 엘레노어에게 주의하라고 일러두기로 했다.

“신혁이 이쪽으로 와! 건배사해 건배!”

“건배사는 무슨 건배사야. 다녀올게요.”

"흠."

하지만 마침 적절한 타이밍이다. 강신혁은 더글러스 페인이 진정할 때까지 카렌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과 수다를 떨기로 했다.

이것이 아마도 기사왕과 만나는 마지막이 되겠지, 생각하니 놀랍게도 아주 조금은 서운해서, 오늘은 그와 조금쯤 얘기를 더 나눠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그러고 보면 마도왕도 3학년일 테니 그 녀석도 이젠 볼 일이 없겠지. 그건 아주 좋다.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기가 강신혁에게도 있었다.

“나탄 보댕이 자퇴를 했다고?”

“현 마도왕이 탈주를 한 경우는 역대 최초라는데.”

“미친, 앞으로 반년만 있으면 졸업인데 탈주 개쩌네……."

“아니 탈주라고 하지 말라고. 그냥 자퇴라고 하라고.”

강신혁의 비룡기사단 부단장 취임을 축하하는 파티가 한창이던 중 선배 몇 명이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글러스 페인이 순순히 강신혁을 인정해준 덕분에 기존의 단장파와 부단장파는 극적인 화해를 이룰 수 있었는데, 그렇게 친해진 3학년 선배들 중 한 명이 꺼낸 얘기였다.

“나탄 보댕? 그 사람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전도유망했던 청년이 길에서 벗어나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 길을 따라 걸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선배들의 얘기를 들은 더글러스 페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어째선지 강신혁을 향하고 있었다.

“너한테 무참하게 깨졌다지. 너와 백인하의 소문을 듣고, 이대로 그냥 졸업하고 초인이 되어봤자 네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 사람이 저를 뭐하러 이겨요? 게다가 초인이 안 되면 성장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게 될 텐데……."

“네 연적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신혁의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연적이라니! 요즘 세상에 그런 단어를 쓰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마법학과에 있는 녀석에게 들었다. 이나희라는 여자를 사이에 둔 연적 사이라고.”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학교에 소문이 파다하다. 네가 나탄 보댕을 걷어차고 이나희를 차지했다고.”

사실은 그 외에도 비룡기사단에 와이번이 늘어난 것을 근거로 강신혁이 엘레노어와 이미 짝짜꿍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제법 유력하게 퍼져 있었지만, 더글러스 페인은 그쪽 소문은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이대로 사귀어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넌 크흠, 엘레노어에게는 욕심을 부리지 마라.”

“글쎄 둘 다 아니라고.”

지켜보겠다, 하고 묵직하게 말하며 헛기침을 한 더글러스 페인은 엘레노어가 둘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넌 모르고 있었겠지만 마도왕의 주도로 뒤에서 네 욕이나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녀석들이 많이 있었다. 마법학과 녀석들에게 기사학과와의 경쟁 분위기를 과도하게 조성한 것도 그 놈이고. 신인왕 자리를 기사학과에 빼앗긴 녀석들의 화를 부추기는 건 쉬운 일이었겠지.”

“그래서 선배는 그 마도왕에 어떻게 대응하셨는데요?”

“우리 기사학과는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강신혁은 눈앞의 거인에게 싸움을 걸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구쳤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놈을 잡아봤자 마법학과와 기사학과 사이에 형성된 험악한 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체육대회 때는 사실상 우리 기사학과의 독무대나 다름없었고, 시비가 걸린다면 학교축제가 되겠지. 좌우지간 그때 우위를 굳힐 준비를 여러모로 해두고 있었는데…… 설마 중간에 그 녀석이 빠져나갈 줄은 몰랐어.”

"으으음......."

"녀석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 정도다. 자국인 프랑스에서 힘을 써서 그쪽의 초인양성학교로 편입, 졸업시험을 받아 초인이 되거나…… 혹은 험한 길을 걷거나.”

“험한 길……."

능력자가 초인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험한 길…… 강신혁은 순간적으로 장인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투적인 특성을 지닌 나탄 보댕에게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다. 더글러스 페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을 내놓았다.

“용병이다. 그것도 불법 용병.”

“불법 용병……."

합법적으로 용병을 할 거라면 차라리 정식 초인이 되어 활동하는 것이 낫다. 그렇기에 남는 선택지는 불법 용병밖에 없다는 모양이었다.

불법 용병이란 즉 범법자들의 집단을 말하는 것으로, 게이트의 무단 점거나 초인의 사냥, 혹은 민간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악질이었다.

개중에는 요르문간드와 연결되어 있는 세력도 있다는 얘기를 이전 신은아에게 들었다.

“분명히 네게 적의를 품고 있을 거다.”

"......."

강신혁은 어째선지 이 말이 복선이 되어 나중에 나탄 보댕과 연관된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질색하고 있자니 더글러스 페인이 슬며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러니…… 나중에 귀찮게 되면, 너도 우리 가문으로 와라.”

“네?”

“엘레노어는 줄 수 없지만, 적어도 다른 길드보단 훨씬 나은 대우를 보장하지.”

“선배……."

그냥 바보인 줄만 알았는데 제법 거대기업의 주인에 어울리는 말을 하잖아.

물론 이 생각은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대신.

“글쎄 엘레노어 선배는 선배 물건이 아니라니까요.”

"......흥."

"큭......!"

불행히도 이 대화를 바로 옆에서 엘레노어가 듣고 있던 탓에, 기껏 아주 조금 좁아졌던 둘 사이의 마음의 거리가 안드로메다 은하 너머로 멀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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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난 후 동아리실을 찾으니 놀랍게도 이나희는 그곳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파티에서 얻어온 음식이나 케이크 따위를 건네자 그녀는 혼자서만 놀고 왔냐며 툴툴대면서도 기꺼이 그것을 받았다.

“나탄 보댕 얘기 들으셨어요?”

“당연하지.”

강신혁의 질문에 이나희는 케잌 생크림을 입가에 묻힌 채 인상을 팍 찌푸렸다.

“오늘 하루 그것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선배한테는 무슨 일 없었어요?”

“있었어. 내가 아마 그 인간하고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일걸? 오늘 점심에 갑자기 반으로 찾아오더니 나한테 계속 짜증나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사라지는 거야. 아 진짜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인데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니. 강신혁이 그저 기막혀하고 있자니 이나희가 짜증을 내며 말을 이었다.

“같이 가자느니, 다음에 만났을 땐 이렇게 부드럽지 않을 거라느니…… 아우, 방학동안 방에 틀어박혀 만화만 보다 왔는지.”

"제법 용감한 발언들을 하고 갔네요.”

지금 멋지게 생각되는 발언들은 10년 후 다시 떠올렸을 때 그 멋짐의 강도에 따라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게 될 것이다. 강신혁이 미리 나탄 보댕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자니 이나희가 포크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후배랑은 상관없이 너한테는 죽어도 안 갈 거라고 딱 잘라 말했어.”

“후배?”

"너. 아니 자꾸 그 남자가 널 언급하면서 나한테 ‘그 남자 때문이냐? 지금은 그 남자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같이 짜증나는 말을 하니까!”

“오오오.”

죄다 어디서 들어본 말 같아!

"아무튼 안심해. 내가 나탄 보댕을 좋아하지 않는 건 너랑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확실하게 말해줬으니까…… 음…… 그래도 불똥이 어느 정도 튈지도 모르지만……."

“뭐하러 말을 번거롭게 해요, 그냥 절 안 좋아한다고 하면 되잖아요.”

"......."

강신혁 입장에선 제법 타당한 말을 한 셈인데 어째설까, 그 말을 듣고 이나희가 살짝 볼을 부풀렸다.

“너, 싫어.”

“그 얘길 나탄 보댕한테 했으면 됐잖아.”

“너 진짜 싫어.”

이나희는 접시에 놓여있던 케잌을 와구와구 먹어치우곤 흥, 콧소리를 냈다.

“내일 시간 비워, 나랑 작업해.”

“내일은 안 되고 내일모레라면.”

“지이이인짜 싫어!”

2학기의 동아리 활동도 그렇게 해서 순조로이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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