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Chapter 24. 되돌릴 수 없어요. - 5 >
[분명 처음 자네에게 의뢰한 물건이었지. 땅이 좋지 않다면 농기구를 바꾸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이걸, 제가 헤일로한테?”
사실 나가 제사장과 맞붙는 순간부터 이 대낫이 자신, 그러니까 전생의 모루가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영력의 바람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를 그렇게 쉽게 부수는 것을 보면 영력이 깃든 무구라는 점을 알 수 있었으며…… 뭣보다 놈에게서 무기를 빼앗았을 때, 너무나 쉽게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주인이 따로 있는 물건은 멋대로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다. 그런 사기가 가능했더라면 강신혁은 적어도 무기를 들고 있는 적을 상대로는 가히 무쌍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가 제사장을 상대로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처음부터 강신혁이 낫의 소유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 즉 그가 낫을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폴링 사이드(Falling Scythe)]
[SS-랭크]
[특수능력 - 수확, 추수, 대지의 소통]
*수확 - 대상을 수확할 때에 한해 치명타 확률이 극도로 높아진다. 반복 작업을 할 때마다 무기의 성능과 효과가 영구적으로 증폭된다.
*추수 - 무기를 잡고 있을 때에 한해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30% 증폭된다. 가을이 되면 그 효과가 두 배가 된다.
*대지의 소통 - 땅에 기운을 나눠주거나 나눠받는 것이 가능하다. 땅을 밟고 있을 때 힘이 강화된다.
[본래는 단순한 농기구였으나, 작물 대신 사람의 목을 수확하는 작업이 반복되며 성능이 변질되고 말았다. 불안전하며 불완전하다.]
“진짜다......."
특수능력들의 이름만 놓고 보면 완전히 농기구가 아닌가! 하지만 솔직히 말해 특수능력의 설명을 보면 누구든지 오해할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이걸 어쩌다 잃어버린 거죠?”
[모루 영감도 잘 알지 않나. 요르문간드라는 것들은 항상 영감이 만든 물건을 탐내곤 했지. 그때도 내 눈이 닿지 않는 틈에 아이들에게서 이것을 빼앗아갔던 모양이야.]
“흠.”
[아마 이것 외에도 이런 식으로 우주를 떠돌고 있는 영감의 작품이 꽤 될 거야.]
“알고 있어요. 저번에도…… 도끼를 하나 회수한 적이 있거든요.”
[그러면 얘기가 빠르겠군.]
헤일로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영감이 만든 작품들 중 많은 것이 요르문간드의 손에 넘어갔어. 그 녀석들은 모두 영감에게 돌아가고 싶어 해. 그 낫이 지금 영감의 손에 들려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거라는 얘기지.]
“아니……."
그건 너무나 민폐스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그가 전생에 만든 물건들이 그런 짜증나는 집단에게 확보당한 것도 미안한 일인데 심지어는 그것들이 강신혁에게 되돌아오고 싶어한다는 것은, 즉 지구에 요르문간드와 연결되는 게이트가 열리게 된다는 얘기!
“관리자님, 분명 저번에는 우연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 관리자도 회원님의 작품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쁠 것도 없는 일입니다. 안 그래도 그들은 지구를 노리고 있는데, 회원님의 작품을 가지고 와준다면 외려 고마울 따름이지요.
“정말……."
[신경 쓰지 마시게, 영감. 어차피 싸워야 할 것들이야. 오히려 영감이 직접 싸우지 않았던 이전보다 지금이 낫지 않은가.]
헤일로의 말도 맞았다. 뭣보다 강신혁이 지금 와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그가 뾰족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특급 아티팩트로 무장한 요르문간드 세력이 지구에 쳐들어오게 되었으니 책임을 지고 자결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때마다 자신이 나서서 확실하게 물건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단련하는 것, 그뿐이다.
‘이전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던 강신혁은 이내 스스로의 뺨을 두들겨 제정신을 차리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서 이걸로 뭘 어떻게 하면 돼요? 저한테 원하는 건 이걸로 농사를 도와달라는 건가요?”
[그게 아니야, 영감. 영감 같은 고급인력을 어찌 그런 일에 써먹을 수 있겠나.]
분명 바로 얼마 전에 엘프들과 함께 밭을 갈았던 것 같은데. 그때 있었던 일은 한참 땀을 흘린 후 그를 씻겨주겠다며 엘프들이 욕실까지 난입했던 건까지 무엇 하나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낫 말일세, 하나가 다가 아니야.]
"응?"
[두 개가 한 쌍이라네. 내가 분명 그렇게 주문했고, 자네가 확실히 그렇게 만들어줬지.]
"......."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신혁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상상하고 말았다. 두 개의 대낫을 들고 있는 검은 코트 차림의 자신의 모습을.
역시 클레어와 너무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탓일까? 그는 다급히 고개를 저어 망상을 털어내며 재차 그에게 확인했다.
“그러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나요? 그것도 요르문간드가…… 아니, 가만.”
[그렇지. 용케 알아차렸구만.]
헤일로가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아직 이 세상에 있네. 다만 멀쩡한 상태가 아냐. 낫을 하나 탈취당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낫은 봉인되고 말았어.]
요르문간드의 손아귀에 낫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투쟁한 결과 피치못해 나머지 하나의 낫을 봉인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모양이다.
그 봉인은 요르문간드도, 심지어 헤일로도 풀 수 없었고, 결국 요르문간드 세력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철수했다는 것이다. 멸망한 세계와, 그 세계를 떠도는 거인만을 남겨둔 채.
[사실 자네에게 부탁하려 했던 것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낫을 회수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봉인된 낫을 가져와달라는 것이었네. 그 봉인은 모루 자네만이 풀 수 있도록 설정했기 때문이지.]
“과연.”
점점 퀘스트 같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퀘스트가 맞았다.
[원래는 자네의 준비가 되면 부탁하려고 했는데, 그 낫을 되찾은 것을 보면 자네의 실력을 내가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이쯤 되면 더 준비할 것도 없으니 바로 출발하시게.]
“정말 사람을 험하게 부려먹는구만……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헤일로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살랑, 그 자리에서 떠올랐다. 강신혁의 시선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잎사귀를 따라 점점 높아져갔다.
이윽고 그것은 아득히 높은 단말(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 원래 잎사귀가 매달려있던 곳까지 상승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1, 2킬로 미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높이였다.
“……설마 헤일로의 단말 속에 있나요?”
[정확히는 내 단말의 맨 꼭대기에 봉인해놓았네.]
“솔직히 말해봐요, 헤일로 당신 게임 좋아하지?”
봉인된 전설의 무구(농기구), 그것을 얻기 위해 드높은 나무(단말)를 뿌리부터 꼭대기까지 타고 오르는 남자(대장장이)…… 완전히 옛 이야기의 표본이 아닌가. 그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나무를 타고 있다간 여름방학이 끝나고 말 것이다.
“본인이 내려줄 생각은 없어요?”
[봉인되었다니까.]
“그럼 어쩔 수 없지.”
강신혁은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설마 모루가 이렇게 근성이 없을 줄이야, 하고 헤일로가 뭐라 말하려던 그때, 그는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꺼냈다.
“이건 마지막으로 미뤄두려고 했었는데…… 지금 만들 수밖에 없겠네요.”
[음?]
그것은 강신혁의 몸통보다도 거대한 갑옷…… 정확히는 소의 형태를 한 갑옷이었다. 이름은 푸른 소, 연원을 알 수 없는 고대 이계의 아티팩트다.
[푸른소]
[SS-랭크]
[특수능력 - 낙뢰, 섬전, 뇌신]
*낙뢰 - 적에게 번개를 떨어트린다. 하늘 아래에서 시전할 경우 위력이 배가되며, 우천 시에는 또한 배가된다.
*섬전 - 벼락과 같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영력을 소모해 그 속도를 더할 수 있다.
*뇌신 -벼락으로 벼린 몸. 매우 단단해지며, 뇌전에 대한 완전내성을 획득한다. 외부의 기운을 흡수해 스스로를 회복한다. 뇌전을 받아들일 경우 특히 단단해지고, 강화된다.
[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벼락폭풍에 내던진 신수가 새로 거듭난 모습. 오랜 세월이 흐르며 여러 세상을 방랑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이들의 손에서 구른 탓에 능력이 대폭 감소했다. 영력을 다루는 대장장이가 제법 많은 기운을 불어넣어가며 돌보고 있지만 아직 제 능력을 되찾기는 요원하다.]
[또 특이한 물건을.]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강신혁은 여태까지도 틈이 날 때마다 푸른 소에 영력을 불어넣고 있었지만 이 녀석을 이 모습 그대로 써먹기는 아직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개조. 어차피 특이한 외형 탓에 그대로 부리기는 어려우니 겉모습을 조금 고치는 김에 새로운 성능을 추가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순간 떠오른 것이 평소 클레어가 타고 다니는 마력구동 바이크였다.
“결국은 이 녀석도 쇠니까, 겉부분을 적당히 두드려 바이크처럼 만들고 내장을 채워 넣으면 겉보기로는 감쪽같겠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마력구동 바이크(마력구동 바이크인 시점에서 사실 평범하지는 않았다.)이지만 그 실체는 SS-랭크의 아티팩트! 그야말로 클레어가 환장할만한 설정이 아닌가!
[정말로 감쪽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루 영감의 뇌가 의심스럽구만.]
- 관리자의 심경을 대신해주는 헤일로 회원님께 보너스로 1HP.
터무니없이 짠 보너스였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회원에게 보너스가 들어가는 것은 처음 봤다. 강신혁은 둘의 태클을 무시하며 푸른소를 자신 쪽으로 불러들였다.
-쿠우…….
미미하지만 자아가 있는 그것은 빠르게 허공을 유영해 강신혁에게로 다가오며 울음소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는 녀석에게 영력을 불어넣으며 역시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방학 마지막에는 이 녀석을 완성시키려고 벼르고 있었단 말이죠.”
그리고 몰래 완성시켜 클레어에게 보여주며 그녀의 중2병적인 욕구를 자극할 생각이었다. 관리자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지만 헤일로는 그 시점에서 그에게 태클을 걸 생각을 했다.
[그냥 그걸 타고 올라오면 되지 않겠나, 영감?]
“솔직히 지금은 탈 만한 것이 못 돼요. 어떻게든 고칠 필요가 있어요.”
-쿠우우…….
원래부터 탈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푸른 소의 미약한 변명은 무시했다. 강신혁은 인벤토리에서 여러 가지 서적과 도면, 잡다한 금속과 재료들을 꺼내어놓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앙에 놓인 것은 이번에 초인전용무구 브랜드 미스틱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3천만 달러짜리 마력구동 바이크 [썬더 드래곤]의 설계도면이었다.
[허어, 영감의 세계는 대단하군. 그런 고급 지식을 아무렇지 않게 내어놓다니.]
“사실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았어요. 초인상가에서 그걸 보고 영력으로 샅샅이 훑어서 설계도로 옮겼을 뿐이거든요.”
[.......]
영력님 만만세였다. 대장기술을 지닌 데다 영력으로 모든 사물의 근본적인 구조를 꿰뚫어볼 수 있는 강신혁의 앞에서는 어떤 복잡한 기술도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조금 미안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대로 옮길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참조하려는 것뿐이니까.”
까놓고 말해 푸른 소 본체에 비하면 내장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강신혁은 어디까지나 푸른 소의 기동력을 보조해줄 수 있는 내장을 설계하려는 것뿐이었다. 마력구동 엔진으로 스피드와 부양력을 얻는 다른 마력구동 바이크와는 원리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차량과 기구의 설계도를 확보했죠. 차라리 지금 날 잡고 만들게 된 게 다행이에요.”
[……영감, 아무래도 내가 말을 잘못한 모양이야. 봉인이 까다롭긴 하지만 내가 영감을 가지로 옮겨준다면…….]
“그럼 지금부터 만들 테니까 방해하지 마요.”
헤일로는 그저 강신혁이 전설 속 등장인물처럼 자신의 가지를 붙들고 나무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아무래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어느덧 여러 개의 설계도를 펼쳐놓고 집중하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헤일로는 침묵했다.
-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회원님께 3,000HP 보너스!
언제나처럼 관리자만 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