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Chapter 24. 되돌릴 수 없어요. - 3 >
-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로 상급 힘 포션을 얻었습니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강신혁은 기분 좋은 예감을 느꼈다. 로그인 보너스로 상급의 포션을 얻은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일시적이라고는 하나 힘을 무려 세 단계나 증폭시켜주는 포션은, 위기상황을 타파하기에는 충분한 물건이다.
로그인 보너스가 후한 것은 역시 VIP 2차 해방의 영향이겠지. 이렇게 되면 역시 3차 해방을 꿈꾸게 된다. 아직 동화율은 30%를 밑돌고 있지만 말이다.
- 인터넷에 접속해보세요, 회원님.
“인터넷?”
-TV도 좋습니다.
그러나 상급 힘 포션을 꺼내어 살펴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던 강신혁의 안면을 관리자의 언제나처럼 딱딱한 메시지가 강타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방에 있는 벽걸이 TV의 전원을 켰다.
그러자 신은아가 가면을 쓴 강신혁을 꼭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 방송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론 카메라가 점차로 줌 아웃하며 주위 상황도 드러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중심에는 그 둘의 모습이 있었다.
"......."
[4차 대역류는 유례없이 완벽한 대처성공사례로 역사에 남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초인 전력이 강해졌음을 확고하게 증명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정부는 피해를 정확히 집계해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모든 국민에게 적절한 지원을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놀랍게도 금천구를 통째로 뒤덮었던 이번 대역류에서 사망자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기분 좋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 지식인들은 대역류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언젠가 아프리카 대륙과 같은 크나큰 실패를 하게 될 것이라고 국제초인사회에 경종을…….]
밤을 새가며 꼬박 전투를 벌였던 보람이 있었다. 듣는 이쪽의 어깨가 으쓱해지게 만드는 뉴스가 연달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강신혁은 사망자가 없다는 뉴스에 무심코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말았다. 3차 대역류도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무의미한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떨쳐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번 생에서도, 모루의 생에서도 실컷 경험했다.
중요한 것은 3차 대역류 때와는 달리 자신이 강해졌으며, 후회가 남지 않게끔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것이면 충분했다. 아니 사실 전혀 충분하지 않지만,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 왜 전부 다른 뉴스를 내보내고 있는데 영상은 이걸로 통일인 거죠?”
- 그쪽이 보기 좋기 때문이겠죠. 까득.
이를 가는 소리를 메시지로 보낼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지만 납득은 갔다. 게이트가 붕괴되고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온 전장, 그곳에서 부둥켜안고 있는 남녀의 모습은 확실히 그림이 되었으니까.
한쪽에선 ‘숨겨진 남매? 혹은 연인?’ 같은 찌라시에나 적혀있을 법한 자극적인 문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신혁은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때마침 스틱이 진동하며 메시지 수신을 알렸다.
[바텐더 누나 : 있잖아, 그래도 데이트 날이었는데 마지막에 다른 여자랑 껴안는 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정작 어제는 아무런 말도 없이 현장에서 해산했으면서 갑자기 이런 연락이 오다니. 강신혁은 아주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답장 자체는 진지하게 했다.
[나 : 제가 지금부터 누나 껴안으러 갈게요. 24시간 정도면 괜찮을까요?]
[바텐더 누나 : 그 반응으로 만족했으니까 됐어.]
강신혁은 상당히 진심이었는데 클레어가 그것을 단호하게 잘라냈다.
아마 그녀도 이해는 하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얼음공주로 보이는 신은아가 실은 제법 내면에 불안한 구석이 있는 어린애이며, 그녀의 행동의 결과를 놓고 강신혁에게 따지는 것은 이치에 옳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신은아가 아닌 강신혁에게 따졌다. 강신혁은 그것이 괜히 기뻤다.
[바텐더 누나 : 고생했어. 오늘은 쉬어.]
[나 : 누나도요.]
강신혁은 그렇게 심심한 답장을 보냈다가, 사랑해요라고 한 마디를 더 붙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니 역시 집요하다고 짜증내지 않을까. 보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아껴두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그래도 신은아와 부둥켜안는 모습이 국제적으로 방송을 타는 지금, 자신의 마음을 확고하게 한 번 더 밝혀두는 쪽이 그녀에게 불안감을…… 아니, 그녀가 불안해하고 있다고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바텐더 누나 : 그런데 총 쏘는 바텐더라고 하면 좀 멋있지 않아?]
[나 : 네, 누나 엄청 멋있었어요.]
[바텐더 누나 :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너도 어제 진짜 멋있었어.]
뭐, 오늘은 이 정도면 됐겠지. 강신혁은 흐뭇하게 웃으며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곤 늦은 아침을 방에서 대충 해결했다. 그럴 때쯤 이번엔 이나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나희 : 일어남?]
[나: ㅇㅇ]
[이나희 : 와 빠르네. 난 너 오늘 하루 종일 누워있을 줄 알았는데.]
[나 : 저랑 선배랑 같나요.]
강신혁의 자연스러운 비꼼에 이나희의 잔뜩 뿔이 난 문자가 날아왔다.
[이나희 : 클레어 언니한테 하는 반만이라도 나한테 예의바르게 해봐.]
[나 : 클레어 누나가 하는 반만이라도 저한테 해줘봐요.]
[이나희 : 이 얘기 그만하자.]
[나 : 그러죠.]
[이나희 : 그래서 너 뇌제랑 사귐?]
[나 : 아니라고.]
[이나희 : 근데 네 생각이 어떻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듯.]
마침 방송에선 화면이 바뀌어 뇌제의 단독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초인협회에서도 특무부 1조장이라는 직위를 맡고 있는 만큼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낼 일이 많았다. 무력적인 활동 부분에서 초인협회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친동생이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후배입니다.]
[예, 그는 최소 S랭크의 능력을 공인받았지만 공개적인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특무부에 정식으로 배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제 개인적인 활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 남녀관계? 그런 저질스러운 관계가 아닙니다!]
과연 누가 얼음공주 아니랄까봐 침착하게 인터뷰를 하는 신은아였으나, 둘이 어떤 관계냐는 질문에는 이상하게도 쭈뼛거리며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본인이 어떤 생각인지는 강신혁도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아마도 조손관계라고 말하려다 말았겠지.) 저 모습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게 사랑에 빠진 여자 그 자체다.
[나 : 과연, 어제 얼굴을 감춰서 정말 다행이었네요.]
[이나희 : 그냥 사귀어버리지. 실력이 빠지냐 얼굴이 빠지냐 돈이 빠지냐, 완전 개이득이잖아.]
[나 :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이나희 : 그래? 진짜 별론가 봐. 그럼 됐네.]
그 말을 끝으로 당분간 답이 없는가 싶더니 갑자기 채널을 돌리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그녀가 말하는 대로 채널을 바꾸니 그곳엔 클레어의 바이크 뒷안장에 앉은 채 공중 몬스터를 향해 총탄을 뿌리는 이나희의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
[이나희 : 나 멋지지.]
[나 : 확인하는 문자만 안 보냈으면 멋지다고 생각했을 텐데.]
클레어를 존경한다더니 센스까지 닮아가려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저 정도는 일반적인 감성으로 봐도 멋지다고 할 수 있었으니 아직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엘레노어 선배 : 신혁, 정말로 뇌제와는 아무 관계도 아닌 거야……?]
[나 : 당신들 미리 짰지?]
이나희와 했던 얘기를 대충 비슷하게 엘레노어와도 나누고 일과인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엘레노어가 뒤늦게 메시지를 추가로 보내왔다.
[엘레노어 선배 : 아직 창도 못 돌려줬고, 만나서 직접 감사도 하고 싶어. 그래서 말인데, 만나는 김에 방학 마지막 주에 다시 같이 던전에 가지 않을래?]
[나 : 저도 저지만 선배도 어지간히 싸우는 거 좋아하네요.]
강신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나 : 우선 창에 대해서 말인데, 우리 마지막에 잡은 놈 있잖아요.]
[엘레노어 선배 : 그건 신혁이 아니었으면 못 잡았을 거야.]
[나 : 저도 선배 없었으면 결정타 넣기 힘들었을걸요. 아무튼 그건 같이 잡은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놈한테서 얻은 거…… 그거랑 이번 전투에서 제가 회수한 전리품들, 전부 제가 받는 조건으로 그 창은 그냥 드릴게요.]
[엘레노어 선배 : 뭐!?]
[나 : 어때요?]
[엘레노어 선배 : S-랭크의 아티팩트를 그렇게 쉽게 주겠다는 말을 하면 안 돼!]
그렇다. 사실 이번에 만들어 엘레노어가 쓰도록 했던 그 랜스는 무려 강신혁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S-랭크의 아티팩트였다.
그저 아티팩트에 거대화를 적용화시켜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만들어냈던 것인지라 뜻밖의 결과에 강신혁도 깜짝 놀랐었다. 역시나 재료가 좋았던 탓이겠지.
[나 : 이번에 얻은 재료들을 독점하는 대가라면 얼추 맞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엘레노어 선배 : 그래도 안 돼. 내가 너무 많은 걸 받았어. 항상.]
[나 : 항상?]
[엘레노어 선배 : 그러니까 대여할게. 대여하는 조건으로 이번 전리품은 전부 넘길게.]
[나 : 응?]
[엘레노어 선배 : 그래도 내가 이득이니까. 남은 건 앞으로 갚을게.]
[나 : 어떻게?]
[엘레노어 선배 : 우리 팀이잖아.]
[나 : ……팀?]
그녀의 말에서 불안한 울림을 감지한 강신혁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TV를 돌리자, 이번엔 클레어가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누구나가 그녀의 모습을 빤히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굳이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안쓰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팀을 만들었어요. 마스크드 바커스, 그렇게 불러줘요.]
“이 누나가 기어이!”
기어이 팀을 선언한 것도 모자라 궁리한 티가 나는 그럴싸한 이름을 대다니! 강신혁은 그 장면을 보고 곧장 클레어에게 따지려던 것을 꾹 눌러 참았다.
한편 클레어는 인터뷰를 이어나가며 팀은 협회에서 정식으로 구성한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두고 있었다. 그야 명성이 높은 연금술사가 어느새 한국 초인협회에 가입하고 있었더라면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을 리 없다.
이것을 두고 일각에선 뇌제와 연금술사가 한 남자에게 휘둘리고 있다느니, 반대로 두 사람이 남자 한 명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엘레노어 선배 : 마스크드 바커스…… 제법 멋진 것 같아.]
[나 : 돌아와요, 선배.]
넷이서 비슷한 복장으로 출발했을 때부터 사태가 복잡해질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강신혁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며 이 사태에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봤지만,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신은아와 클레어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엘레노어 선배 : 그러니까 마지막 주, 같이 가자. 팀이 된 기념으로.]
[나 : 네? 아, 던전. 죄송한데 그건 못 가요.]
[엘레노어 선배 : 선약이 있어?]
[나 : 선약은 없는데…… 방학이 끝나기 전에 찾아가야 할 곳이 있거든요. 고아원이요.]
물론 부모님을 잃은 강신혁을 거두어준 고아원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고아원에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 같다고 여겨 죽어도 돌아가지 않으려 했지만, 대역류를 정면에서 이겨낸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수녀님의 얼굴도, 다른 애들 얼굴도 당당하게 마주볼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붙은 것이다.
[엘레노어 선배 : 그렇구나…… 같이 갈까?]
[나 : 수녀님이 쓸데없는 오해를 하실 것 같으니까 그만둬요.]
그래도 같이 가겠다는 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다.
그는 엘레노어와 대화를 적당히 나눈 후 이번에야말로 운동을 시작했다. 슬슬 신은아에게서 연락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그 날이 다 지나가도록 그녀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날뿐만이 아니라 다음날까지도. 의아한 마음에 연락을 넣었지만, 씹혔다.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강신혁은 신은아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