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 Chapter 24. 되돌릴 수 없어요. - 2 >
소용돌이는 실로 장관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몬스터를 죽일 수는 없었다.
강신혁은 게이트를 휘감고 매섭게 회전하는 소용돌이가 힘을 잃지 않도록 집중하는 한편으로 번개거미줄 다섯 가닥을 모조리 소용돌이 안으로 쏘아 날렸다.
다섯 줄기의 날카로운 실이 자연스레 날아들어 그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나가들의 목을 갈랐다.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서 번개거미줄이 스파크를 튀기며 난무하니, 밖에서 보기엔 인간이 아닌 신이 만들어낸 재앙처럼 여겨졌다.
“단순한 폭풍조차 아냐. 대체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터무니없는 속성력까지 품고 있잖아. 혹시 하이랭커……?”
“아직 그 정돈 아닌 것 같지만, 마나 구조를 해석할 수 없어서 파훼하기도 힘든 능력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상성에 따라선 잘하면 하이랭커를 상대로도……."
마나로 구성된 모든 능력은 마나로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강신혁이 만들어낸 폭풍은 순수하게 영력으로 이루어진 것. 무작정 마나가 많다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가들이 맥없이 휩쓸린 것도 그 이유가 컸다.
“뇌제의 뒤를 잇는 젊은 초인의 신성이군. 역시 그 둘은……."
“실제론 몇 살이지? 누구 아는 사람 없나?”
“저 사람의 정보는 신은아 특무부 1조장이 단독으로 관리하고 있어서……."
강신혁이 만들어낸 소용돌이를 두고 감히 진입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사람들은 뒤에서 쑥덕거리기만 했다.
그러나 강신혁의 평소 능력이 저 정도까지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엘레노어만은 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은혁 , 괜찮아?”
“아직 괜찮아요. 그것보다 선배, 게이트가 곧 터져요. 보스 몬스터가 나올 거예요.”
“응, 해보자.”
강신혁이 하려는 말을 알아들은 엘레노어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S랭크 이레귤러 게이트의 보스를 잡아버리자는 얘기가 오간 것이다.
만용은 아니었다. 클레어의 포션을 마시고 충분히 쉬어 기력도 완전히 회복했고, 단기결전 능력만은 원래부터 누구에게도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부터 영국 왕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했더라면 신영의 투왕이라는 칭호조차 그녀를 장식하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그럼 찬스는 만들어줄 테니까 돌격해요. 이제 곧 나와요.”
“응.”
둘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소용돌이와 그 안의 번개거미줄이 나가를 참살하고 있었다. 강신혁은 눈앞에 연거푸 떠오르는 HP 획득 알림을 관리자에게 부탁해 꺼버렸다.
- 게이트가 완성되지 못하고 붕괴됩니다! 네임드 보스 [나가 제사장 우즈람(S+)]이 약화된 채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그 순간 게이트가 산산 조각으로 깨지고, 그 안에서 거대한 몸집의 나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잡이만 4미터, 날의 길이는 3미터 가까이 이르는 사신의 낫(Death scythe)을 들고 나타난 놈의 위용은 시스템 메시지와는 달리 전혀 위축되거나 약화된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는, 실로 S급 게이트 보스의 이름에 걸맞은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놈의 모습을 보자마자 강신혁이 윈드 마스터리를 극성으로 끌어올려 소용돌이를 압축시켰다! 순식간에 줄어드는 소용돌이 속에서 아직까지 살아있던 나가들은 처참하게 갈려나가며 바깥으로 튕겨졌다.
간혹 가다 살아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초인들이 처리했다.
- [윈드 마스터리(S)] 스킬의 숙련도가 A랭크로 성장합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제어가 풀리는 상황, 초월적인 집중으로 바람을 컨트롤하던 그때 비로소 강신혁의 윈드 마스터리가 A랭크로 성장했다.
고작 마이너스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지만 변화는 극적이었다. 미처 그의 의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날뛰던 바람이 일순간에 얌전해졌다. 여태까지 바깥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면, 그것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날을 세우며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크핫!?]
우즈람도 밖에 적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했겠지만, 설마 게이트가 통째로 날아갈 법한 폭풍이 그들을 감싸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놈 한 명을 노리고 실시간으로 압축되고 있었으니!
[이깟 바람으로 날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우즈람은 광분하며 대낫을 휘둘렀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검은 마나를 머금고 휘둘러진 낫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직경 수 미터에 달하던 굵은 폭풍의 허리줄기를 그대로 끊어놓았으니까!
‘저 낫, 혹시……?’
- 역시 눈치 채셨군요.
폭풍이 터져 나오며 일대를 뒤집어엎었다. 사실 강신혁도 단숨에 폭풍이 무력화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경악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하려는 일에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아니, 차라리 잘 됐지.’
SS+급으로 성장하며 이미 스킬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강화된 그의 고유스킬, 황룡투가 바닥이 뒤집어지고 주위 건물이 마구 무너져 내리는 이 순간에도 그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움직일 수 있도록 보조해주고 있었다.
공격을 한 당사자인 나가 제사장조차 강한 힘을 토해낸 반동으로 주춤하고 있었다. 강신혁이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지금!”
[헛!?]
그는 있는 힘껏 번개거미줄을 쏘아냈다. 거대한 힘이 폭발하고, 천지가 흔들리며 놈의 낫을 쥔 손잡이에서 힘이 살짝 빠지는 순간을 정확히 파고든 황금의 실이 낫에 세 가닥, 놈의 손에 두 가닥이 얽혔다.
짜릿한 방전으로 놈의 손목에서 힘이 완벽하게 풀린 그때, 그는 거미줄과 함께 대낫을 회수했다. 그것은 일순 검은 스파크를 튀기며 저항하는 듯했으나, 이윽고 잠잠해져서는 급기야 강신혁의 인벤토리에 저항 없이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을 본 나가 제사장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을 보고 있다는 듯이.
[네놈, 그 낫을 어떻게……!]
“흐아아아아압!”
그러나 놈에게 강신혁을 추궁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신혁에게서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엘레노어가 그의 입에서 ‘지금’이라는 말이 나온 그 순간 행동을 개시했으니까!
그녀는 작은 몸에서 기합을 힘껏 짜내며 돌격했다. 그녀의 특성…… [게 볼그(SS)]가 발동하며 창에 미증유의 기운을 담아냈다. 그가 준 부츠의 힘까지 더해 자신의 민첩의 한계를 넘어 돌격하는 엘레노어.
삽시간에 거대화한 돌격 랜스의 창끝이 무기를 잃고 허우적거리던 나가 제사장의 복부를 강타했다!
[크악!]
많은 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게이트가 붕괴된 탓에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체력이 약화되어 있던 나가 제사장은 엘레노어의 전력을 담아낸 찌르기를 버텨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튕겨나갔다.
강신혁은 놈이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영력 회복 포션을 입에 하나 물고, 회복한 영력을 닥닥 긁어 베놈 프린세스 소울에 밀어 넣었다.
“흡!”
다섯 가닥의 독거미줄을 꼬아 한 줄기로 합치고는 영력의 바람으로 그 위를 덮어 즉석에서 길다란 검신을 만들어냈다. 품 안의 신풍의 보주가 비명을 토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것이 보주를 활용한 마지막 공격이 될 터였다.
“죽어!”
[감히!]
끈적한 살기를 담은 강신혁의 외침에 제사장이 본능적으로 양팔을 들어 올려 가슴과 목을 보호했다. 강신혁이 쏘아낸 실 가닥의 검신은 처음부터 노린 대로 놈의 두 다리를 매끄럽게 베어냈다!
[크아아아악! 날 속였구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적의 무기를 빼앗고 기동력을 제압했으니 전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강신혁은 섣불리 놈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놈에게서 흘러나오던 피가 한순간 역류하며 허공으로 또르르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 나가 족의 고유마법입니다. 하나같이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으며 주위에 동족이 있을 경우 그 힘을 증폭시킵니다.
하지만 놈의 동족은 이미 강신혁을 비롯한 초인들이 다 잡아버린 후. 강신혁은 놈을 노려보며 자신도 마지막 수단을 준비했다.
“선배, 다시 한 번 가능하겠어요?”
"응."
전력을 다한 찌르기 후 숨을 헐떡이고 있던 엘레노어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굳게 대꾸했다.
만약 그녀 혼자였더라면 이렇게 뒤를 돌아보지 않는 돌격을 감행할 수 없었겠지만, 강신혁이 뒤에서 적을 완벽하게 통제하니 그녀의 힘을 극한 이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방금과 같은 돌격을 한 번 더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력이 남았다. 공격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들어 신체의 피로도도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럼 갑니다.”
강신혁이 독 거미줄을 쏘아냈다. 그러나 그것에서 아까와 같은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풍의 보주와 극천신주는 이미 역할을 마치고 그의 품 안에서 조용히 인벤토리로 회수된 후.
오히려 여태까지 활약한 것이 기적적일 정도다. 그의 특성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으리라.
[너희를 먹어치워 내 새로운 피와 살로 삼으리라. 우리의 신께 네가 방금 감춘 그 보석을 공물로 바칠 것이다!]
역시나 그가 쏘아낸 거미줄은 중간에 가로막혀 힘없이 끊어졌다. 마법진이 점차로 견고해짐에 따라 붉은 피의 방어막이 나가 제사장의 전신을 둘러쌌다. 양 다리를 잃은 놈의 몸이 스르륵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직까지 멀쩡했던 놈의 두 팔이 우드득, 까득, 섬뜩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변형되었다. 아까 놈이 들고 있던 낫과 비슷한 형태로.
“무기에 홀렸네.”
- 바로 빼앗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놈이 그것을 계속 든 채였더라면 지금의 회원님의 힘으로는 신살검을 들어도 아슬아슬했겠지요.
“뭐가 됐든 바로 제압할 생각이긴 했는데…… 역시 운이 좋았어요.”
[크아아아아아아악!]
거친 변형을 견디지 못해 놈의 팔뚝 이곳저곳에서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마저 마법진으로 흡수되며 팔의 변형을 가속화시켰다. 보다 길고, 보다 날카롭게 갈리는 그것은 마법진으로 비롯된 무기의 제련으로도 보였다.
정말로 뜬금없는 일이지만, 강신혁은 그것을 보며 야금술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쇠가 두드리고 싶어졌다. 여태까지 신나게 날뛰던 강신혁이 자리를 조금 비키고 그 대신 모루가 들어간 것이다.
“그럼 끝낼까.”
강신혁은 엘레노어에게 신호를 주었다
적이 빈사상태에서 힘을 폭주시켜 신체를 변형시키는, 소설이나 만화였으면 먼저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100% 죽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강신혁을 철석같이 믿고 곧장 돌격을 개시했다.
- 그냥 죽이죠!
“아 좀.”
[우선 한 명이다!]
임무를 마친 마법진이 나가 제사장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놈은 몸을 둥둥 띄우며 엘레노어를 마주보며 두 팔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그것을 앞으로 내밀며 교차시켜 그녀의 목을 베어내고자 했다.
강신혁은 그 직전의 순간에 수호황룡을 발동했다. 아군의 힘은 강화시키고, 적을 약화시키는 황금의 힘.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까 그가 쏘아냈다가 놈에게 막혀 힘없이 끊어졌던 독 거미줄이 돌연 생기를 얻은 것처럼 놈의 양팔로 달려들더니, 팔을 칭칭 묶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윽!?]
강화되지 않은 거미줄 따위는 폭주 상태라면 쉬이 끊어낼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수호황룡으로 인해 약화된 것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가볍게 힘을 준 제사장은 거미줄을 끊는데 실패하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를 했는지 그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미가시!”
그 한 순간의 틈이면, 엘레노어가 방어막 째로 놈의 목을 꿰뚫기에 충분했다.
-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3,00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4,500,000HP를 얻었습니다!
일시의 정적이 있은 직후, 창이 꿰뚫은 자리에서 화려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붉은 장미가 만개하듯 허공을 수놓은 핏방울들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잡았어.”
“정말로 해치워버렸잖아.”
그것이 신호였으리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 여자는 누구지? 신은혁과 같은 팀인가?”
“특성이야. 그것도 터무니없이 강력한 찌르기. 고유마법으로 형성된 방어막을 우습게 꿰뚫고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분명히 놈이 약화됐었다고. 디버퍼? 창술을 쓰면서 동시에 디버프까지 쓴다고?”
“디버프는 신은혁이 썼을지도 모르지.”
“무슨 소리야, 그만한 능력을 다루는데 거기에 어떻게 디버프까지…… 아, 뇌제님!”
두 사람의 내력이 궁금해 안달하던 차에 둘의 책임자인(실제로는 지금도 하늘에서 바이크를 타고 있는 클레어였지만) 신은아가 나타나자 다들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신은아는 그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뚜벅뚜벅 걸어가 강신혁 앞에 이르렀다.
“선배……?"
"흐."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신은아. 강신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갑자기 신은아가 그를 꽉 껴안았다.
격전을 치르고 다소 지쳐있던 강신혁으로선 미처 저항할 수 없는 빠르고 강력한 포옹이었다.
“으, 은아 선배!?”
“역시 동생인가!”
“동생이 아니면!?”
다음날 기사 1면 사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불여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