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Chapter 23. 역류하는 증오 - 5 >
“지, 지원? 무슨 지원? 아, 그러고 보니 당신 분명히 협회의……."
“일단 여길 정리한 다음에 얘기하죠.”
제정신을 찾곤 다급히 덤벼드는 남자의 몸을 대충 훑고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강신혁은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늑대들을 통솔하던 엘리트 몬스터가 죽고 나니 남은 늑대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조금 쉬고 있어요.”
“응, 고마오."
엘레노어가 강신혁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투 시간은 지극히 짧았지만, 그런 만큼 순간에 전력을 쏟아 부어야 했던 탓에 팔과 다리의 피로가 상당했던 탓이다.
강신혁이었더라면 재생력, 아니 황룡투기가 있어서 그 정돈 몇 초도 걸리지 않아 회복할 수 있었겠지만 엘레노어는 어쩔 수 없이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나도 함께하지.”
“아뇨, 금방 끝날 테니까 당신도 조금 쉬고 있......."
- 캬악!
엘리트 몬스터와 싸우며 지친 것은 그들이 구한 남자도 마찬가지. 강신혁이 그에게 쉬고 있으라는 말을 하던 그때 분위기를 읽지 못 하는 가시 늑대 한 마리가 강신혁에게 덮쳐들었다.
민첩은 A랭크를 뛰어넘는 수준이었지만 방어력은 그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을 강신혁은 잘 알고 있었다. 교과서의 예습 범위에 있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그 엘리트 몬스터는 없었지만 말이지.’
요즘 들어 이레귤러 게이트다 뭐다 해서 신영의 졸업반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괴상한 몬스터들과 줄기차게 안면을 마주해온 강신혁의 입장에선 교과서에 나오는 늑대를 보니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그 반가움을 담아 검지로 번개거미줄 한 가닥을 내쏘았다. 미로토즈에서 밭을 갈며 익힌 황룡투기를 가볍게 담으니, 끝부분에 단검이나 못을 매달지도 않았는데 실 끝부분이 날카롭게 가다듬어지며 늑대의 미간을 꿰뚫었다.
엘리트 몬스터는 방어력의 기준이 다르기에 차마 시도하지도 않았지만, 역시 이 녀석들에겐 먹혔다.
“좋아, 이것들은 쉽겠어.”
“으, 응? 실로? 실로 꿰뚫었어?”
아까부터 구경꾼의 반응이 실로 훌륭했다. 강신혁은 그를 무시하며 실을 끌어당겨 늑대 사체를 회수했다. 자동 루팅 기능을 대놓고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이쪽을 빨리 처리하고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띄는 지역으로 이동해야겠어.’
그는 자아도취한 지휘자처럼 양팔을 활짝 펼쳤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열 가닥의 거미줄이 황룡투기의 영향으로 옅은 황금색으로 번쩍이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꿰뚫고 나아가며 제각각 독과 번개를 뿜어내, 수십 미터 범위 내에 있던 늑대 무리를 초토화시켰다.
“에잇.”
그가 장난스러운 기합과 함께 팔을 기묘하게 비틀자 실이 크게 출렁거리며 난동을 피웠다. 그 모습은 마치 황금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처럼 환상적이었으나, 결과는 지극히 잔혹했다.
일대가 헤집어지고, 늑대의 사체가 토막 나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피와 살점이 별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이 늑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비료가 되었다.
- 캬아아악!
피 안개의 장막을 뚫고 그를 덮치려던 늑대의 몸을 한 줄기의 실 가닥이 자연스럽게 긋고 지나갔다.
놈은 그것을 눈치 채지도 못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움직인 것은 상체 뿐, 실로 단절된 하체가 내장을 쏟아내며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토막 나 쓰러지는 늑대를 무시하며 일시에 주먹을 꽉 쥐고 끌어당기자, 열 가닥의 실이 일시에 팽팽해지며 장갑으로 빨려 들어왔다. 실이 회수되는 경로 안에 들어온 모든 것들이 갈려나가며 재차 피분수가 솟았다.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그쪽은 이제 된 것 같은데? 남은 건 그 남자한테 맡기고 우린 다른 쪽으로 가자.
실을 회수한 강신혁이 그나마 멀쩡한 늑대 사체를 골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있으려니 마침 클레어의 귓속말이 날아들었다.
강신혁이 위를 올려다보니 바이크 위에서 원격으로 통신하는 오퍼레이터를 흉내 내며 그를 내려다보는 클레어의 모습이 보였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귓속말은 싫어한다더니, 중2병을 위해서라면 그것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 어디로 갈까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으음, 네 기준으로 3시 방향? 쭉 가봐. 우리도 따라갈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늑대 사체를 대충 회수한 강신혁은 체력을 회복하고 일어서는 엘레노어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거대한 몬스터를 꿰어 땅바닥에 꽂아버렸음에도 흠 하나 가지 않은 랜스의 매끄러운 곡면에 감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무기를 만들었오?”
“소재랑 실력이랑 뽀록이죠. 갑시다.”
사방이 몬스터였다. 강신혁은 아까 회수했던 것과 반대로 한 방향으로 열 가닥의 실을 사출, 몬스터 무리를 한순간에 치워버리며 길을 만들었다. 체력이 B랭크 이하인 몬스터들은 관통을 피할 수 없었다.
남자, 에이스 브렛은 그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의 공격력은 이전과 똑같을 텐데, 이상하게 더 강해진 것 같아.”
“버프 받았잖아요. 거기에 특성의 영향이 커요.”
클레어의 포션과 이나희의 인챈트가 준 효과도 상당했지만 결정적으로 수호황룡이 발동하며 두 거미줄의 사출 속도와 절삭력을 크게 강화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그는 영력이 아닌 황룡투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황룡투기는 특성 스킬 황룡투와 함께 운용될 때 모든 무기와 스킬의 위력을 극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이전에도 영력을 무기에 담으면 무기가 일시적으로 강화되는 현상을 느낀 바 있지만, 순수하게 공격성을 강화하는 효과로 따지자면 황룡투기가 영력을 상회했다.
영력은 마력에 비하면 비교적 추상적인 기운이었으며 전투능력은 어디까지나 근원과 소통하는 능력에 더불어 따라오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황룡투기는 순수하게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신체와 무기를 벼려 치명적인 무기로 만들어내는 기운이었던 것이다.
‘체내를 흐르는 황룡투기가 느껴져. 무리한 움직임을 해도 금세 회복될 것 같은 느낌…… 아니, 오히려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보조해줄 듯한 느낌이야.’
아마도 마력을 직접 운용하며 전선에서 싸우는 근접 능력자들도 이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겠지. 신체와 무기의 강화에 특화된 황룡투기에 비하면(그렇다. 황룡투기는 그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힘이었다.) 마력은 어딘가 미진한 부분이 있겠지만.
영력만을 다룰 땐 어딘가 마력 사용자들과 괴리감을 느꼈던 강신혁도,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근접능력자로서 한 걸음을 내딛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의 한 걸음은 다른 능력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고 묵직한 한 걸음이었지만.
“엇, 이봐!”
“그럼 수고하세요.”
에이스 브렛의 부름에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 몸을 날리는 강신혁의 뒤를 따라 엘레노어도 짧은 크기로 돌아온 창을 쥐고 내달렸다. 에이스 브렛은 자신이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체감하고 그를 따라잡는 것을 포기했다.
‘하, 젠장.’
목소리만 들어봐도 자신보다 나이가 적을 것임에 분명한 청년이 초인협회의 신인으로서 데뷔한 시점에서 이미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는 그저 웃음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저런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이 이 위로,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겠지. 저 청년뿐만 아니라 창으로 S+랭크의 엘리트 몬스터의 몸통을 단번에 꿰어 죽인 저 여자도 포함해서 말이다.
“여자도 젊은 것 같았는데…… 대체 저것들이 어디서 튀어나왔지? 혹시 초인협회가 정부랑 손을 잡고 인공초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도시전설이 사실이었나? 가만, 그래서 뇌제랑 같이……."
이렇게 또 근거 없는 소문이 생겨나고 있었다. 강신혁과 엘레노어의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난 나머지 생겨난 소문이었다.
@@@
“언니, 저쪽 와요!”
“와아, 공중 게이트도 제법 열렸나보네.”
한편 클레어와 이나희로 이루어진 바이크 잔류 팀도 지금 제법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클레어가 현장에 온 시점에서 신은아와의 전화를 통해 자신이 특정 구간의 공중 몬스터를 모조리 맡겠다며 큰소리를 쳤기 때문이다.
- 우이이이이이잉
“우리가 듣기엔 그냥 조금 이상한 소리인데, 효과 끝내주네요.”
그 비결은 바로 클레어가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구입하거나 스스로 만들어낸 마도구들. 바이크 뒤에 탑재한 확성기에서 연신 울려 퍼지는 기묘한 소리가 사방의 공중 몬스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게다가…… 이거!”
- 드르르르륵!
이나희는 손에 들린 마나 라이플(마나로 작동하는 라이플)의 조정간을 자동으로 놓고 밤하늘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마음 놓고 마탄을 갈겨버리며 환하게 웃었다.
“이거 엄청 끝내주는데요! 직접 만드신 거예요!?”
“개조도 했어. 그거 구조 섬세하니까 막 다루다 고장 내면 네가 물어내야 돼.”
“이 정도 컨트롤은 껌이예요, 껌.”
클레어는 본인의 전투력이 부족한 대신, 특유의 뛰어난 마나 컨트롤과 연금술을 활용할 수 있는 병기로 전투를 치른다.
그중 대표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총…… 마총이었는데, 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개의 마법진과 고급 소재를 첨가한 끝에 완성된 마총은 지극히 섬세한 취급을 요구하는 만큼 이것을 다루기 위해선 최소한 독자적으로 마법을 구축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이 마총을 능력자라면 누구나가 다룰 수 있도록 만들어냈더라면 마총의 가격은 천장을 뚫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나희도 아티팩트 제작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인챈터 특성을 갖고 있었기에 그나마 마총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거 후배도 다룰 수 있는 거 아냐?”
자기자신에 한해서는 한계가 해제되는 만큼 최고 위력의 인챈트를 걸어 총의 성능을 높인 후 탄창을 갈고 재차 총을 쏘아내며 이나희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인벤토리를 뒤져 지금 상황에 적절한 전투 병기를 찾던 클레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신혁이라면 가능할 거야. 기운의 섬세한 컨트롤로는 애초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데다……."
단순한 마력도 아닌 그의 영력이라면 이 무기의 근원 구조를 해석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더욱 파괴적으로 강화해 다루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이나희에게는 영력과 관련된 얘기를 해줄 수 없었기에 다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신혁이는 사격술도 개쩔거든. 너 체육대회 때 안 봤니?”
“아, 그땐 후배한테 관심 없었거든요. 글쿠나, 총도 잘 쏘는구나.”
이나희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로 날아드는 박쥐에게 세 발의 마탄을 먹이고는, 다음 순간 클레어에게로 고개를 휙 돌렸다.
“후배랑 그때부터 알고 지내셨어요!?”
“어, 음. 그때 눈여겨봤다고 할 수 있지……?”
“저기 언니,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혹시 후배랑 정말로 그렇고 그런? 그런 느낌인가요?”
“음, 그건……."
클레어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냈다.
아니, 무기라고 보기엔 다소 어폐가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하늘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력으로만 조종할 수 있는, 마총과 유탄발사기를 탑재한 드론형 병기였다. 총기류를 다루는 초인들과 용병들 사이에선 이미 명성이 높았다. 다만 그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 드론을 다룰 수는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
“와, 꿈에서도 봤던 연금술사 에디션 전투 드론이잖아……."
“후후, 고마워. 그런데 혹시 너도 신혁이한테 관심 있니?”
“할아버지가 저랑 걔를 붙이고 싶어 하긴 하든데.”
이나희는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다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저도 관심은 있어요. 뭔가 애가 묘하단 말이야. 능력도 좋고…… 일단 연하 같지가 않아요. 그러다가 또 어떨 땐 귀엽기도 하고.”
“그치그치?”
"흠?"
클레어가 바로 동의해오자 이나희는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클레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표정관리를 시작했다.
"응?"
“으음?”
“왜?”
한 대, 두 대, 세 대. 총 세 대의 드론이 바이크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몬스터들을 향해 마탄을 쏘아내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나희는 벌집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얌전히 그녀에게 말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클레어는 한 대의 드론을 더 꺼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드론은 마총과 유탄발사기를 탑재하고 있지 않았다. 이나희는 솔직히 질문했다.
"그건 무슨 용도예요?”
“죽음의 인형사 전투 장면 촬영 용도."
"......."
대역류가 일어나고 30분. 아직까지는 공중전과 지상전 모두 이상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