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 Chapter 21. 마지막 휴가 - 6 >
- [극천신주]와의 융합으로 인해, 신살검이 본디 지닌 격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되찾습니다. 신살검이 S+랭크가 되었습니다. 검의 단단함과 예기가 증폭되며, 모든 특수능력의 위력이 극대화됩니다!
- 극천신주의 특수능력 [흡수]와 [생성]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특수능력 [방출]이 일시적으로 개방됩니다.
변화는 실로 극적이었다. 자색의 금속구슬이 신살검의 구멍에 정확히 박히는 순간, 신살검이 환희로도, 포효로도 들리는 격한 진동을 하며 보다 길고 날카로운 검으로 화한 것이다.
흑색이던 검신은 완연한 자색으로 물들었고, 외부로 흩뿌려지던 섬뜩한 기세는 차분하게 갈무리되었다. 아니, 모두 검신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그저 빨아들여 저장하는 터무니없는 공능을 지닌 보물, 극천신주는 검이 존재함으로 인해 자연스레 발산되는 기세마저도 에너지로 취급해 빨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욕심쟁이다.
‘구슬의 형태로만 존재할 땐 그랬었지.’
사실 극천신주는 에너지를 흡수해 저장하기만 할 뿐 뚜렷한 공격 수단은 없었지만, 신살검과 융합되며 한 가지 능력이 개방되었다. 바로 흡수한 에너지를 반대로 뿜어내는 방출.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쿠오오오오…….
“괜찮아, 쫄 필요 없어.”
주위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신살검의 힘에 놀란 플레임 와이번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검에 삽입된 지금은 흡수 기능을 조금이나마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녀석의 마력을 빼앗길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 그라라라라!
“피해, 시녹!”
“시녹이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강신혁이 신살검에 극천신주를 끼우고 자세를 바로잡은 직후, 강화될 대로 강화된 멜로이의 브레스가 재차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뒤늦게 그것을 눈치챈 플레임 와이번이 화들짝 놀라 날개를 퍼덕였으나 이미 완전히 피하기엔 무리.
“괜찮아, 가만히 있어.”
강신혁은 신살검을 앞으로 뻗었다. 윈드 마스터리로 바람을 일으키자, 신기하게도 자색의 바람이 일어 검신을 소용돌이처럼 휘감았다.
다음 순간, 그들을 덮쳐 불사를 것처럼 보이던 브레스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신살검에 수렴했다. 그대로 검을 녹여버리는가 했던 그것은 반대로 검신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갔다. 마치 노면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 뭐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브레스를 쏘아낸 멜로이와 엘레노어도 경악했지만 그것은 스파인 로세의 경악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녀만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공능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거, 내게 줘!
“줄게!”
강신혁은 냅다 신살검을 그녀에게 던졌다. 의외에 이은 의외의 상황. 스파인 로세는 순간적으로 저 녀석도 내 현혹에 걸렸었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얼른 가지를 뻗어 그것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그렇게 잘 될 리가 없다.
환룡무의 A랭크의 숙련도에 힘입어 예술적인 궤도로 날아든 신살검은 가지를 단숨에 꿰뚫고는, 아까 엘레노어가 꿰뚫었던 스파인 로세의 복부에 정확히 꽂히며 막대한 화염을 [방출]했다.
-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재차 스파인 로세의 피가 솟구쳤다. 신살검을 듬뿍 적신 요괴의 피가 검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신혁은 와이번을 조종해 그를 공격하려 돌진해오는 멜로이를 피하며, 신살검의 특수능력 [회귀]를 발동해 그것을 다시 제 손 안으로 불러들였다.
- 죽여 버릴 거야!
전신이 피에 물든 스파인 로세의 원념어린 목소리가 장미정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허공으로 손을 뻗어 신살검을 되찾으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제아무리 스파인 로세의 피에 물들었다 해도 신살검의 소유권을 가질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극천신주는 그것마저 에너지로 받아들여 빨아들였을 뿐이었으니까.
“좋아,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인데.”
방출은 실로 대단한 능력이어서, 빨아들인 에너지를 순수한 파괴 에너지로 치환하여 방출하는 것도 가능한가 하면 아까 불을 뿜어냈 듯 흡수한 에너지와 같은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강신혁이 스파인 로세에게 신살검을 던졌던 것은 그녀의 피를 흡수해 분석하고 그와 같은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면 멜로이와 엘레노어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
다만 이것은 단순하게 화염을 방출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스파인 로세의 힘의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한 것이 문제였다.
- 전부…… 전부 죽여 버릴 거야!
다만 지금은 한가롭게 연구를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스파인 로세의 분노가 극점에 달한 결과 재차 게이트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 작은 세상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여왕님, 여왕님께서!
- 아아, 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시고 다시 내려주시는 분!
- 쿠아아아아아아아아!
- 키이이이잇!
스파인 로세의 마력은 여태까지 생존해있던 알라우네와 와이번들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덮쳤다. 강신혁과 플레임 와이번에게도 닥쳐오고 있었으나 그것은 신살검이 모조리 빨아들여주었다.
- 이 정도가 되면 단순한 현혹 스킬이 아닌 고유능력의 영역이군요. 아무래도 여태까지 그 어떤 세상에서도 이 게이트를 공략하지 못 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면 보스의 힘이 강화되지요.
“어떤 세상에서도? 그게 무슨…… 아니, 나중에 물을게요!”
사방에서 덮쳐오는 알라우네들의 꽃줄기를 피해 플레임 와이번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스파인 로세의 마력에 의해 강화된 탓일까, 꽃 줄기에 흉흉한 장미가시들이 돋아나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번만 스쳐도 와이번의 두꺼운 가죽 피부를 벗겨낼 것이다.
- 쿠아아아아아아아!
- 크르르르르!
비상하는 플레임 와이번의 뒤를 다른 와이번들이 쫓아왔다. 녀석들의 가죽 위로도 장미 가시가 돋아나고 있었다.
그 녀석들 뒤를 쫓아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날아오는 멜로이, 그 위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랜스 투척을 준비하는 엘레노어. 강신혁은 그 시점에 이르러 간신히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 와이번들을 살리면 안 됐나?’
- 늦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회원님의 능력이라면 전부 죽이고 살아남으실 수 있으니 안심하세요.
‘아니 전부 죽이면 안 되죠.’
- 쳇.
“피해!”
그 순간 랜스가 투창되었다! 허공에서 급선회하며 화려하게 창을 피하는 플레임 와이번. 그러나 놀랍게도 랜스 역시 궤도를 꺾어 되레 빨라진 속도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그론 스킬이야, 미안해!”
- 역시 죽이죠!
“둘 다 시끄러!”
강신혁은 다급히 신살검을 쳐들었다. 섬광처럼 날아든 랜스와 신살검의 검날이 부딪히는 순간, 신살검을 휘감고 있던 자색의 기류가 맹렬한 회전을 일으키며 랜스가 품고 있던 힘을 탐욕스레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힘을 모두 해소하기엔 무리였다. 강신혁의 몸이 뒤로 거세게 튕겨나고, 한 번 허공으로 튀어 오른 랜스는 강신혁의 정수리를 노리고 수직으로 내리꽂혀…….
- 우우우웅
그의 머리에 구멍을 내기 직전에, 허공에서 정지했다.
“진짜 아슬아슬했다……."
- 막지 못했어도 신살검의 [수호]가 발동되었겠지만요.
엘레노어의 키의 거의 3배에 달하는 묵직한 거창, 놀랍게도 그것이 지금 신살검과 같은 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신살검이 [방출]한 힘으로, 스파인 로세의 현혹을 지우고 대신 강신혁의 것으로 덧씌운 것이다.
아니, 자색만이 아니다. 찬란한 황금빛이 나선의 형태로 랜스 위를 내달렸다. 그것은 용의 각인이었다. 그의 특성 금안의 환룡이 무기를 더욱 강화하고 있었다.
“플레임 와이번, 가장 높이!”
- 쿠오오오오오!
한 손에는 신살검, 나머지 한 손에는 엘레노어의 랜스를 쥔 강신혁이 플레임 와이번과 함께 순식간에 게이트의 한계선까지 높이 상승했다.
그 뒤를 열 마리가 넘는 와이번들이 추적했으나 플레임 와이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플레임 와이번의 날개에도 황금룡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 쿠오오오……!
가장 높은 곳에 이른 순간, 플레임 와이번이 방향을 전환했다. 아무래도 모든 몬스터를 조종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는지 스스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스파인 로세의 얼굴이 보였다.
한껏 부릅뜬 채 그를 직시하는 진홍의 두 눈. 강신혁은 랜스를 쥔 손에 가득 힘을 실어, 요괴를 향해 그것을 똑바로 내던졌다.
“하아아압!”
- 막아!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들을 쫓아오던 와이번들이 급히 궤도를 수정했다. 그러나 창을 휘감고 있는 자색의 기류에 맞닿은 순간 놈들은 다급히 정신을 차린 것처럼 거기서 벗어났다.
- 어째서!?
“꺄아아아아아악!”
마지막으로 그것을 막아선, 창의 원래 주인인 엘레노어마저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멜로이와 함께 다급히 투창의 궤도를 이탈했다.
이어서 지상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알라우네들이 쏘아낸 장미 꽃줄기들이 그것을 막으려고 달려들어, 나선의 기류를 따라 배배 꼬이며 투창을 따라 스파인 로세를 향해 쇄도했다.
- 말도 안 돼……!
다급해진 것이겠지, 스파인 로세는 순간적으로 현혹을 풀고 자신의 전력을 발해 창을 막아냈다.
그녀가 만들어낸 가시줄기 방패가 랜스와 격돌한 순간, 방패와 랜스가 함께 터져나갔다. 뒤따라 날아든 꽃줄기들은 텅 빈 스파인 로세의 몸을 파고들며 그녀의 몸에 잔혹한 상처를 새겼다. 재차 그녀의 피가 흩뿌려졌지만, 거기엔 더 이상 현혹의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아아아아아!”
엘레노어가 그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렇겠지, 무려 A랭크의 아티팩트였으니까. 영국 왕실에서 푸대접을 받긴 해도 과연 공주는 공주구나, 강신혁도 그렇게 생각하며 감탄했을 정도였다. 이젠 없지만.
“이제 몸은 괜찮아졌죠?”
“아, 응! 고마워!”
비록 랜스가 터지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강신혁의 의도했던 대로 되었다. 엘레노어도, 다른 와이번들도 스파인 로세의 현혹에서 무사히 풀려난 것이다.
녀석들은 자유의 몸이 된 것에 안도하면서도 서둘러 플레임 와이번의 뒤로 집합했다. 엘레노어를 태운 멜로이 역시 겸연쩍게 울며 곁으로 다가왔다.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네, 괜찮으니까 그만 울어요.”
“아, 안 우는데?”
적에게 현혹되어 그를 죽일 뻔한 상황에서 무사히 구해줬으니 감사인사는 해야겠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무기를 깔끔하게 부숴먹은 탓에 엘레노어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차마 강신혁을 탓할 수도 없고 속만 타들어가는 것이 훤히 보였다.
“나중에 적당한 무기 하나 만들어줄게요. 대가는 받을 거지만.”
“정말?”
엘레노어의 얼굴이 제법 밝아졌다. 아까 강신혁이 몇 시간 만에 A랭크 아티팩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일단은 저걸 잡죠.”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을 토해내고 있는 스파인 로세의 몸 주위로 새빨갛게 물든 가시 줄기가 여럿 일어서고 있었다. 엘레노어의 일격, 거기에 연이은 강신혁의 공격으로 그녀는 이미 빈사상태에 빠져있었다. 제대로 한 번만 공격하면 쓰러지겠지만, 방심하면 이쪽이 쓰러지게 될 터였다.
- 끄아아아아아아아아!
가시 줄기들이 솟구쳤다. 그 과정에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던 알라우네들이 깔끔하게 전멸했다. 단말마조차 내지 못하고 핏빛 가시 줄기에 찔려 기운을 흡수당하는 알라우네들의 마지막이 실로 처량했다.
- 죽어어어!
장미정원 전역을 뒤덮은 피의 가시 줄기들이 실시간으로 팽창하며 기분 나쁘게 꿈틀거렸다. 그 안에서 서서히 위로 떠오르는 붉은 가시의 여왕.
전신을 가시의 드레스로 두르고 있었으며, 강신혁을 바라보는 두 눈에선 선홍의 피가 흘렀다. 그것이 다시 가시가 되어 그녀의 살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흥."
강신혁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붉은 가시의 파도에 대항하듯 금색 섬광이 규모를 불렸다.
강신혁 본인, 플레임 와이번, 엘레노어, 멜로이, 다른 와이번들까지. 섬광의 품에 안겨있던 모든 존재가 강화되었다.
“무슨, 이건……!?”
- 어떻게 그런 권능을…… 너!?
그것을 감지한 엘레노어도, 그와 대치하고 있던 스파인 로세마저 경악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신혁이 가장 크게 놀랐다.
그냥 스파인 로세의 현혹의 힘을 다루는 요령으로 특성을 발동해봤을 뿐이었는데!
- 회원님, 옵니다!
그 순간 가이아 시스템의 메시지가 강신혁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 특성 [금안의 환룡(S)]이 진화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여 [수호황룡(SS)]으로 진화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대폭 성장합니다. 특성스킬 [환룡무(S+)]가 [황룡투(SS+)]로 진화합니다.
- 신살검이 본래의 격을 일부 되찾아 S급(SS급)으로 성장합니다.
- 특성의 진화에 따라 새로운 특수능력, 황룡투기를 각성합니다! 특수능력 재생력이 황룡투기에 완전히 흡수되어 황룡투기를 더욱 증폭시킵니다!
이미 준비를 차근차근 해오고 있었던 탓일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였으나 강신혁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뼈가, 살이, 피가, 근육이, 혼이.
모든 것이 산산이 분해되고 새로 조립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고통은 분명 끔찍했지만, 그것도 순간에 끝나버렸다.
그의 피를 타고 흐르는 황금의 기운이 고통을 잠재우고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영력은 그것에 섞여 그의 육체와 정신을 더욱 강화시켰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어야 한다는 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비로소 강신혁은 자신이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무기의 손에 여의주가 들린 것이다.
-.......
세상이 숨을 죽이는 가운데 강신혁이 눈을 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의 두 눈 안에 신비한 각인이 깃들었다. 그것은 부릅뜬 용의 눈동자 같기도, 사나운 용의 발톱이 긁고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난폭한 문양이었다.
그것을 보는 누구나가 직감할 수 있었다. 한순간 찾아온 변화로 인해 강신혁의 능력이 족히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뛰었음을.
- 무.......
스파인 로세가 몸을 뒤로 물렸다. 팽창하던 붉은 가시의 군단도 그녀를 따라 위축되었다.
-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하하.”
빈사상태로 인한 격분도 잊어버린 듯 조심스러운 발언에 강신혁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신살검을 들어 올려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