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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 Chapter 21. 마지막 휴가 - 4 >

게이트의 이름은 그 게이트의 정체성이다. 다른 초인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게이트를 탐색하게 되면 우선은 게이트 이름과의 연관성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초인들의 다방면에 걸친 시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비밀을 드러내지 않는 게이트도 분명히 존재했다. 벨라토스가 그쪽 방면의 대표격 주자였고(이젠 아니다.) 장미정원 역시 역사는 깊지 않지만 당당히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게이트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장미정원이라는 이름을 듣고 가장 먼저 사람들이 했던 생각은 바로 이 넓은 땅이 정원이라는 것. 그래서 우선은 땅을 전부 헤집어가며 장미나무를 찾았던 모양이네요.”

“하지만 발견하지 못했어.”

“이 게이트는 체류 제한 시간이 있으니까. 그 안에 이 넓은 땅을 전부 헤집는 건 무리죠. 더구나 입장제한이 두 명이니까.”

대부분의 지속성 게이트에는 체류 제한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제한 시간을 넘기면 대개는 무작위 위치로 튕겨나게 되는데, 무작위라는 것이 범위가 상당히 넓은데다 땅속이든 바다 속이든 하늘 위든 가리지 않기 때문에 제한 시간을 넘겨 튕겨 나게 되면 목숨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시간 내에 공략을 못할 것 같으면 게이트를 탈출하는 것이 현명했다. 물론 그 즉시 게이트는 재구성된다.

‘이 던전의 체류 제한 시간은 12시간. 아티팩트를 만든답시고 벌써 그중에서 4시간을 낭비했어.’

한 방에 성공해서 다행이지 만약 실패했더라면 제법 곤란해졌을 것이다. 물론 게이트의 공략보다도 새로운 와이번을 테이밍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인 만큼 어떻게든 시간 내에 아티팩트를 만들어 플레임 와이번을 테이밍했겠지만.

다만 새로 나타난 와이번들까지 추가로 테이밍할 여유는 없다. 추가로 아티팩트를 만든다고 제한시간 내에 성공할지도 미지수고, 덜컥 성공해버리는 것도 무섭다. 테이밍용 아티팩트 하나라면 스스로 얻은 것이라고 해도, 운 좋게 만들었다고 해도 되지만 그게 두 개 이상으로 늘어나면 변명의 여지가 없어지니까.

운 좋게 게이트의 숨겨진 요소를 발견했으니, 이것을 순순히 이용해 게이트의 클리어까지 이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터였다.

“그러면 신혁의 생각은 어때? 장미정원이 뜻하는 게 뭘까.”

“아니, 그야 장미가 맞겠죠.”

"......."

엘레노어가 보랏빛 눈을 들어 강신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신장의 차이 탓에 귀엽게만 느껴졌다. 강신혁은 무심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뻗어나가던 자신의 손을 붙들고 스스로의 생각을 입에 냈다.

“여기 나타나는 주적 몬스터는 그레이트 웜이잖아요? 여기를 나무가 자라나는 정원이라고 생각하면, 이 웜은 뭐에 대입할 수 있을까요.”

“지렁이.”

그렇지. 아마 여기까지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도달했을 것이다. 강신혁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지렁이는 익충이죠?”

“하아…… 즉 숨겨진 요소를 찾기 위해선, 그레이트 웜을 잡으면 안 된다는 고야?”

이 게이트의 보스는 그레이트 록 웜이다. 놈을 잡으면 확실하게 게이트가 클리어된다.

그레이트 웜을 지렁이와 연결시키는 것까진 가능해도, 그레이트 웜을 방치하는 한 보스는 나오지 않고 보스가 나오지 않으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없으니 결국엔 울며 겨자 먹기로 불쌍한 지렁이들을 사냥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시뇩.”

“방금 뭐라 했어요.”

“시, 신혁.”

자신을 그런 수치스러운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이 둘로 늘어나는 것만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강신혁의 예리한 시선을 받은 엘레노어가 움찔하며 발음을 고쳤다.

“공략 정보에는 그레이트 웜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소, 아슬아슬할 때까지 그것들을 가만히 놔둔 케이스도 제법 있었는데.”

“하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게이트를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죠, 저도 그 내용 읽었어요. 선배가 준비해준 자료에 있었으니까.”

“그러면 결국 신혁의 가설이 틀렸…… 다는 얘기잖아.”

엘레노어의 말투는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틀렸다’는 말을 하는 데에 저항감이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신경써줄 필요 없는데. 강신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에게 답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와이번을 불러내지는 못했잖아요.”

"응?"

그녀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숨겨진 요소를 찾아냈다고는 해도 그들은 여태까지 그레이트 웜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강신혁이 생각하기엔, 정답은 지나치게 간단했다.

“와이번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 게이트에서 서식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 그렇구나.”

그녀도 비로소 강신혁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와이번들도 여기서 그레이트 웜을 사냥하고 있었구나.”

“그렇겠죠. 이 게이트 안에서 달리 먹을 것이라곤 없었을 테니까.”

안 그래도 한 차례 난동을 피운 와이번들은 제정신을 찾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격하게 움직여 배도 비웠겠다, 그레이트 웜을 찾아 잡아먹을 생각이 아닐까. 강신혁은 지그시 노려보는 것만으로 놈들을 다시 얌전하게 만들며 말을 이었다.

“던전에 입장한 사람들이 그레이트 웜을 가만히 놔둬도, 그들이 모르는 사이 와이번들이 그레이트 웜을 사냥한다. 따라서 숨겨진 조건이 달성되지 않아, 공략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더구나 어쩌면 와이번들의 사냥감 가운데에는 장미의 씨앗이나 묘목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레이트 웜이 지렁이라면, 와이번은 새. 지렁이나 씨앗을 쪼아 먹어 밭을 해치는 새다.

“그래…… 뭐야, 결국.”

강신혁의 설명을 듣고 납득한 것도 잠시, 엘레노어의 뺨이 미약하게 부풀었다.

“그럼 역시 와이번들을 모두 잡으면 해결되는 게 맞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이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봐요. 와이번들이 나타난 조건을 생각하면.”

“와이번들이 나타난 조건…… 멜로이?”

강신혁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성별은 별로 관계없었을 것 같지만…… 아무튼, 멜로이 덕에 이 녀석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가 형성됐잖아요. 즉 우리가 와이번을 대동하고 온 것으로 인해 이 녀석들과 임시 파티를 맺게 되었다는 얘기에요. 이 상황에서 와이번들을 잡아버리는 건 흐름상 불필요하죠."

“그건 신혁의 능력 덕분인 것 같은데……."

암컷 와이번을 데리고 들어와 수컷 와이번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든, 수컷 와이번을 데리고 들어와 와이번들의 서열 싸움에 불을 붙이든 상관없다.

아마 동행하는 와이번의 성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략자와 동행하는 와이번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게이트 안에 숨어있던 와이번들이 한데 모이게 된다는 점.

“이걸 그냥 죽여 버리는 건 아까워요. 뭣보다 이것들을 죽인다고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이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

게이트 공략에 있어 가장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바로 게이트가 클리어되는 조건이다. 와이번을 모두 잡는다고 게이트가 클리어될 턱이 없고, 설마하니 이 게이트에 장미꽃을 피우는 것이 클리어 조건일 리도 없을 터였다.

“어쩌면 새로운 몬스터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면 남는 것은 새로운 보스 몬스터의 존재뿐이다. 이대로 와이번들을 붙들어두고 있으면, 분명 장미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보스 몬스터가 나타날 것이다.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기다려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와이번들을 이용해서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는 거죠.”

“응…… 그건 역시 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것도 사실. 엘레노어는 와이번들을 사냥하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멜로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와이번을 찔러 죽이는 것도 영 기분 좋은 일이 아니기도 했다.

“자자, 그렇게 됐으니까 너희들은 그만 성질내고 이거나 먹어.”

- 그루루루루루루!

- 쿠오오오오오!

강신혁은 사냥이 하고 싶어도 그의 카리스마에 눌려 마냥 끙끙대고만 있던 와이번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었다. 신은아와 게이트를 순회하며 인벤토리 가득 쌓인 몬스터의 고깃덩어리였다.

참고로 강신혁은 그녀와 함께 쉴 틈 없이 사냥을 다니면서 다섯 칸의 인벤토리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 열 칸의 인벤토리를 구매해 지금은 모두 열다섯 칸의 인벤토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부피에 상관없이 최대 3톤의 화물을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덕에 게이트 순회에서 얻은 HP의 절반가량이 날아갔지만!

“그렇게 많은 화물이 들어가다니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네. 내, 내 사재로는 도저히 이런 지원은……!”

“안 어울리니까 그렇게 고뇌하면서 몸 비틀지 마요, 엘레노어 선배.”

- 그루루루루루루!

강신혁의 탄압에 다소 불만을 갖고 있던 와이번들이었으나, 게이트 안에 있는 그레이트 웜의 고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맛있는 다종다양한 몬스터의 고기를 물어뜯으면서 전원 강신혁에 대한 충성도가 실시간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 굳이 지렁이를 먹으려 하지는 않겠지. 강신혁은 녀석들을 모두 충분히 배불려준 후, 읏차, 기합 소리와 함께 플레임 와이번의 등 위에 올랐다. 안장이 없어 제법 불편했지만 온갖 무예로 단련된 그였기에 금세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하늘에서 상황을 지켜볼까요.”

“아…… 그렇구나. 그렇게 되는구나.”

엘레노어는 플레임 와이번의 등 위에 타는 강신혁을 보며 일순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강신혁이 그 표정의 이유에 대해 묻기도 전에 고개를 젓곤 서둘러 멜로이의 등에 올랐다.

“그럼 다들 올라가자.”

- 쿠오오오오오!

강신혁의 지시에 플레임 와이번이 붉은 피막 날개를 크게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뒤를 따라 와이번들이 일제히 같은 모습으로 따라 비상하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멜로이는 그 조금 뒤에서 ‘나는 이 녀석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표정으로 얌전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제법 괜찮은 기분인데……."

- 쿠오오오오!

순식간에 수백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플레임 와이번. 강신혁은 눈 아래로 펼쳐지는 광활한 황야의 풍경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가를 끌어올려 웃었다. 엘레노어가 모는 멜로이의 등 위에 탔던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딴판이었다.

안장이 없어 몸이 장난 아니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와이번의 등 위에서 균형을 잡고 버티는 것도 제법 괜찮은 기분이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대로 전투를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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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스톤 빼고 스마일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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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정말 쉽다. 게임 속 NPC라면 첫 만남에서 이미 호감도가 100을 돌파한 느낌이었다.

물론 농담 삼아 대꾸하긴 했지만 기승전투는 조만간 구매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플레임 와이번을 타고 싸울 예정은 없지만, 푸른 소를 개조해 그 녀석을 타고 다닐 예정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승전투라. 환룡무에 이게 포함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환룡무는 이론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무예를 다루는 것이 가능한 스킬. 기승전투 또한 명확한 목적성을 지닌 무예의 형태다. 여태껏 강신혁이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없었을 뿐,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으음, 역시 될 것 같은데.”

녀석의 등 위에서 균형을 잡고 단단히 몸을 굳힌 후, 신살검을 뽑아 몇 번 휘둘러본 끝에 그런 결론이 나왔다.

결국은 요령을 깨우치면 되는 것이다. 땅을 딛고 있지 않은 만큼 검을 휘두르는 방법도 태세를 굳히는 방법도, 적을 경계하고 대처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달라지지만, 그런 만큼 자신이 타고 있는 와이번을 이용해 공격에 힘을 더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와이번의 기동력을 살려 공격에 의외성을 더하고 회피능력을 살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익숙해지면 같은 조건에서 두 배 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도 있을 터. 강신혁은 순식간에 새로운 전투의 가능성을 깨닫고 더욱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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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 요즘 보너스가 점점 더 위험한 수준이 되어가는 느낌이 드는데 괜찮아요?”

- 2,500HP 보너스!

“알았어요, 내가 잘못했다니까.”

그때였다. 대기가 미약하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니 대지에 거대한 금이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설마 했던 지진이었다.

“나가린가?”

“아니, 네가 맞았어.”

엘레노어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랜스를 들어 지상의 어느 한 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와이번의 등에 타고 랜스를 쥐고 있는 공주기사의 모습은 정말 멋지구나, 하는 생각을 순간 떠올렸다가 황급히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강신혁은 그곳에서 땅을 뚫고 자라나는 짙은 갈색의 나무줄기를 발견했다.

“반응이 제법 빠른데.”

“어쩌면 와이번을 모두 구속한 시점에서부터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겠네.”

나무줄기는 빠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그레이트 웜들이 적극적으로 땅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황야 이곳저곳에서 차례로 나무줄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이윽고 그중 하나의 나뭇가지에 새빨간 장미 꽃봉오리가 맺혔다. 그것을 보는 강신혁의 입가에도 짙은 미소가 맺혔다.

지진이 멈추었다. 대지의 틈을 넓혔던 금이 천천히 막혔다. 황야의 한가운데에서 뻗어난 나무줄기가 지상에서부터 치면 족히 수십 미터 높이까지 자라나, 그 끝에 거대한 장미꽃 한 송이를 피워냈다.

꽃봉오리가 완전히 열린 순간, 그 안에서 붉은 안개가 터져 나왔다. 지상을 삽시간에 덮은 붉은 안개, 그 안개에 닿은 그레이트 웜들이.......

일제히 말라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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