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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 Chapter 21. 마지막 휴가 - 1 >

-뀨.......

- 쿠우우우.

- 꾸우!? 뀨뀨!

- 쿠우우우우우.......

- 뀨뀨뀨우웃!

로열 클래스, 강신혁의 숙소 거실에서 수수께끼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종족은커녕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장벽마저 뛰어 넘은 초월적인 광경. 강신혁은 푸른 소의 등 위에서 아장아장 걸으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오닉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먹으면 안 된다.”

- 뀨!?

“어째서 들켰지 같은 표정 짓지 마라. 어차피 네 생각 같은 건 빤히 보이니까.”

정기적으로 무구를 만들게 된 요즘은 심심치 않게 오닉스에게도 무기를 먹여주고 있는데, 하여간 저 녀석은 새로운 금속만 발견하면 눈이 돌아갔다.

지금도 어떻게 몰래 한 입만 먹어볼 수 없을까 고민하던 것이 틀림없었다. 소통은 개뿔,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그는 오닉스에게 오늘 마이 룸의 공방에서 만든 배틀 해머를 던져주어 조용히 만든 후 소파에 몸을 뉘였다. 과연 로열 클래스의 물건 답게 눕자마자 느껴지는 편안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혹시 아티팩트가 아닌가 싶어 농담 반 느낌으로 감정했더니 아티팩트까지는 아니어도 제작계열의 능력자가 만들어낸 고급품이었다.

“진짜 로열 클래스에는 돈 엄청 쏟아 붓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의 시선이 거실 벽에 걸린 TV에 꽂혔다. 아마도 전 국민이 가장 많이 봤을 채널에서 신은아와 함께 찍힌 강신혁…… 정확히는 신은혁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초인협회는 이번 벨라토스 게이트 공략은 어디까지나 신인 교육 과정에서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전 루브론 호텔에서의 테러를 막아낸 바로 그 인재죠, 마력을 담은 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초인 신은혁 씨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벨라토스는 지난 몇 년간 미공략인 채 남아있었지만, 뇌제 신은아씨와 신은혁 씨의 활약으로 클리어, 소멸되었습니다. 협회는 이번 세계초인회의에서 중대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혀, 벨라토스에서 다른 세계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신은혁 씨는 뇌제 신은아 씨가 발굴해 육성하고 있는 신인으로, 친남매 관계는 결코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그 뛰어난 재능과 잠재력은 향후 하이랭커가 될 가능성도 다분한 것으로 밝혀져…….]

[한편 벨라토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초인들과 용병, 지방상인들의 불만이…….]

“으아아아……."

강신혁도 벨라토스 클리어의 여파가 그리 작지 않으리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를 클리어한지 일주일이나 지난 만큼 그 열기가 제법 식었으리라 믿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강신혁이 일주일간의 탐험(특훈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을 마치고 돌아온 시점까지도 온갖 뉴스의 메인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뉴스의 반응은 강신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한국 내에 한한다면 어쩌면 루브론 호텔 테러 사건보다도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A+급 대형 게이트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니며, 벨라토스는 그 규모로 인해 개방 당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던 탓이다.

벨라토스의 보스가 무엇이었는지, 거기서 얻어나온 보상은 또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로 온갖 커뮤니티는 폭주, 초인협회에 벨라토스에 관해 밝혀달라며 문의를 넣는 사람들, 신은혁의 과거를 캐내고 싶어 하는 이들까지 무슨 잔치라도 난 것처럼 떠들썩했다.

“은아 선배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말을 흘려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신은혁]에게로 향하는 관심을 줄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몇 년간 클리어되지 않았던 게이트에 초인협회에 발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 들어가자마자 떡하니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왔는데, 그걸 ‘뇌제가 했습니다’라고 얼버무린다 한들 완벽히 믿어 줄 사람은 드문 것이다.

막말로 신은아는 여태까지 몇 번이고 그 게이트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클리어를 할 수 있었더라면 진즉에 했을 터였다. 아니, 설령 할 수 있었다 해도 그녀는 이번에, 신은혁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간 타이밍에 맞추어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어느 쪽이 든 신은혁의 존재는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위장신분이야, 차라리 나보고 스테이지에서 아이돌 댄스를 추라고 해라.”

- 500HP 보너스!

“……어? 추라고요?”

- 2,000HP 보너스!

“안 출 거거든요!?”

요새 점점 관리자가 맛이 가는 것 같은데 괜찮을까.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TV를 보고 있어봤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중2병 환자(바로 그였다.)만 나올 뿐이고, 단련이라도 할 셈이었다.

스틱에 메시지가 온 것은 그때였다.

[엘레노어 선배 : 일정이 잡혔어.]

강신혁은 그것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곧 그녀가 무슨 일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깨달았다.

[나 : 던전이요?]

[엘레노어 선배 : 응. A급 지속성 게이트. 입장제한은 두 명.]

[나 : A급 게이트를 독점할 수 있다고요? 대체 그걸 어떻게 예약한 건데요?]

[엘레노어 선배 : 이 정도 연줄은 있어.]

강신혁은 새삼 그녀가 권력자처럼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나 사연을 들었을 때 너무 구구절절해 보였던 것이 문제였는지, 여태까진 유산분쟁에 휘말린 딱한 막내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 : 그런데 선배, 이전 호텔에서 노려졌던 건도 있는데 그건 괜찮을까요. 이 시기에 둘만 움직이는 건…….]

[엘레노어 선배 : 그래서 둘만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를 골랐어. 시내에서는 누구도 나를 대놓고 노릴 수 없을 테고, 게이트 안에 들어가 버리면 우리 둘뿐이니까.]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애초에 초인은 게이트 밖에서보다 안에서 더 위험해지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두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를 고른 것인가. 강신혁은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노어 선배 : 말이 나온 김에 알려주자면, 지금 나한테 현상금이 걸려있는 것 같아. 그때 테러범들이 나한테 덤벼온 것도 그 때문. 본래 목적은 내가 아니었겠지만 날 발견한 김에 확보하려 했던 것 같아.]

[나 : 위험하잖아!?]

지금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현상금이라니!? 더욱이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있다고 해도 엄연히 신영에 정식으로 소속된 영국의 유학생인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현상금이 걸리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엘레노어 선배 : 착각하고 있구나. 현상금이 걸려있는 건 어디까지나 ‘언더’에서의 얘기. 일반적인 초인은 접하지 않는 빌런들의 커뮤니티야.]

히어로 만화에 나오는 악당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명백히 현 사회구조와 초인연합에 적대심을 품고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반 초인연합, 테러범, 그 외 쓰레기들을 통틀어 대부분 사람들은 빌런이라고 불렀다.

물론 그들을 통칭하는 전문적이고 혀가 꼬부라지다 못해 경련이 올 것 같은 전문용어가 따로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빌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영국 왕가는 그런 놈들을 이용해서까지 선배를 치우고 싶어 한다고?]

[엘레노어 선배 : 왕가가 아니야. 왕가에 빌붙고 싶은 다른 쓰레기들이 알아서 나를 지우려 하는 것뿐. 그것도 은근슬쩍,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느낌으로.]

[나 :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죠.]

[엘레노어 선배 : 내가 조금 거슬리게 된 거겠지. 신영에서 주목을 받아버려서.]

이번 년도, 1학년 중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백인하와 강신혁이라고 한다면,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지명도가 높아진 이는 단연 엘레노어였다.

2학년이면서 투왕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 원래 단장이었던 더글러스 페인을 꺾고 비룡기사단의 단장직에 올랐으니 어찌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엘레노어 선배 : 어디까지나 조금 거슬리는 정도야. 그러니까 그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아. 하지만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어. 그래서, 현상금을 거는 거야.]

[나 : 진짜 귀찮네.]

[엘레노어 선배 : ……미안.]

[나 : 아니 선배가 왜 미안해요.]

[엘레노어 선배 : 나랑 같이 있으면 더 귀찮아질 테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자는 말을 꺼낸단 말인가. 그보다 보통 이런 대사는 주인공에게 이별을 고하는 히로인이 하는 대사가 아니던가!

[엘레노어 선배 : 네가 귀찮음을 감수해도 좋다고 느끼게 해줄 테니까.]

[나 : 그러니까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영입하라니까요…….]

강신혁은 이것저것 다 귀찮아져 대충 대꾸하다 말고 떠올렸다.

[나 : 당연한 거긴 한데 문자로는 발음 안 꼬이네요.]

[엘레노어 선배 : 화낼 거야.]

엘레노어는 던전행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일시는 앞으로 이틀 후, 게이트의 평균 클리어 시간은 10시간 정도. 던전의 환경과 나타나는 몬스터의 정보……. 모든 자료를 확인한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던전을 대비해서 단련이나 할까.”

신은혁으로 활동하면서는 주로 실과 단검을 사용한 전투를 벌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은혁의 스타일. 엘레노어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단박에 들키게 될 것이다.

사실 신은혁의 신분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져버린 지금은 ‘이제와서 친구들한테까지 감출 필요 없는 것 아냐……?’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수록 허무해졌기 때문에 일단 숨겨두기로 했다. 어차피 유사시에는 장비 슬롯 전환 기능을 사용해 바로 활약할 수 있기도 하고.

“이번엔 너로 간다.”

- 우우웅

최근 들어 여러 장비를 만들어내고 다루면서 신살검을 별로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쥐었을 때 가장 감이 잘 오는 무기는 역시 신살검. 아직 신살검무를 완전히 익힌 것도 아니고, 검을 이용한 실전에도 더 능숙해지고 싶었기에 이번엔 무기를 하나로 제한하기로 했다.

‘아니, 그래도 여왕말벌의 날개 팔찌 정도는 써도 되나?’

강한 진동을 일으켜 바람을 강화하거나 적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특수능력을 지닌 천연 아티팩트, 여왕말벌의 날개 팔찌.

처음 얻었을 때는 S-랭크라는 높은 수치에 비해 하나만 딸린 특수능력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으나, 바람 속성이 더해지면 급격히 강해진다는 것을 확인한 후로는 S랭크, 아니 S+랭크를 줘도 아깝지 않은 보물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저번엔 결국 제대로 못 써봤고.’

다른 몬스터는 굳이 진동을 더할 것도 없이 그냥 거미줄로 썰어버릴 수 있었고, 푸른 소는 반대로 규격외였기에 특수능력을 쓸 수 없었다. 슬슬 아티팩트의 시운전을 해보고 싶은 참이었다.

‘좋아, 쓰자.’

바람으로 인해 강화되는 진동의 힘. 흔한 능력은 아니지만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능력도 아닌 만큼 누군가 유사성에 의문을 제시하는 일도 드물 것이다. 강신혁은 곧장 신살검과 여왕말벌의 날개 팔찌를 챙겨 수련실에 처박혀 연구를 개시했다.

- 우우우웅

“그래, 역시 검신 자체를 진동시키는 건 좀 힘든가.”

원격으로 조종하며 일정 부분만 진동시킬 수 있는 실과 달리 검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이대로 검을 들고 진동을 더한다면 검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떨어트리고 말 터였다.

그렇다고 진동을 약하게 하면 이건 무기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지닌 무엇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터라 그것도 무리. 강신혁은 몇 시간 정도 그것에 매달려 끙끙대다 말고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바람으로 검신을 둘러싸고, 그 바람만을 진동시킨다는 건 어떨까.’

신살검 자체의 위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신살검 위에 바람으로 된 진동검을 하나 만들어내 공격력을 추가하는 것. 그에겐 그것이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졌고, 곧장 실험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틀 후, 거대한 비룡이 강신혁을 마중 나왔다.

강신혁은 그제야 자신이 누구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는 것인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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