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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자마자 VIP-107화 (107/345)

107화. < Chapter 20. 특무부의 비밀병기 - 3 >

모든 게이트의 이름은 가이아 시스템이 결정하는 것으로, 게이트와 마주한 초인은 게이트의 이름을 보게 될 뿐 그 연원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 보통은 게이트에서 나오는 적들을 상대하거나 게이트 내부의 환경을 겪는 도중 자연스레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강원도 평창에 있는 A+급의 게이트 벨라토스만은 그 누구도 어째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보스의 이름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네.”

벨라토스 게이트에 있는 가장 높은 바위산의 중턱에서부터 비롯된 돌계단을 타고 내려온 곳에 있는 지하 광장. 그곳에는 새하얀 비석이 광장을 둘러싸듯이 아홉 개 심어져 있었는데, 신은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감을 잡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벨라토스는 세계의 이름이었나봐. 설마 이곳에서 멸망의 파편을 줍게 될 줄은 몰랐어.”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해도 될까요?”

“아, 응. 여길 봐.”

혼자만 알고 고개를 끄덕이던 신은아는 강신혁의 뾰로통한 표정에 아차한 듯 그를 잡아끌어 광장 가장 안쪽에 있는 비석으로 데려갔다. 그 비석에는 강신혁이 알 수 없는 언어가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알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그 언어를 읽어낼 수 있었다.

- 히어로 유니버스가 제공하는 기능입니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관리자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분명 처음에 히어로 유니버스를 통해 다른 세상의 언어를 접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읽을 수 있지? 히어로 유니버스 가입자들이 가장 먼저 받는 혜택이 바로 기원(基源)어거든. 모든 세상 모든 언어의 기원이 되는 말을 체득하게 되는 거야. 기원에서 시작된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부가적인 능력이고.”

“뭐야 그게!? 그럼 저 혹시 영어도 할 수 있어요?”

“해봐.”

해봤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중국어도, 일본어도, 불어도, 그 외에 생각나는 문화권의 언어를 입으로 내고 싶다고 생각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다.

강신혁은 그것을 깨닫곤 잔뜩 신이 났지만…… 다음 순간, 외국어에 능통하게 되는 것은 기원어가 지닌 거대한 능력의 편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아예 파악할 수도 없어야 할 터인 문화권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게 해준다는 건 확실히 어처구니가 없네요.”

“그래서 기원어야. 히어로 유니버스의 가장 기본적인 혜택이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혜택.”

“그렇다면 여태까지 히어로 유니버스의 게시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통할 수 있었던 건……."

“그곳은 기원어로 서비스되는 유일한 커뮤니티야.”

히어로 유니버스를 이용하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여태 그것을 한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깨닫고 나니, 무엇 하나 거슬릴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깨닫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어로 유니버스는…… 우리가 다른 차원들과 연결되어 활동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서비스군요.”

"응."

하긴 차원 퀘스트의 존재부터가 그것을 시사하고 있었으니 대충 감은 잡고 있었지만…….

갑자기 너무 막막한 현실을 알게 된 나머지 답답해져 제 뺨을 두들겼지만, 볼 위를 덮고 있는 가면을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어쨌든 그 덕에 제정신은 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원래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벨라토스와 멸망의 파편에 대한 이야기. 이곳은 벨라토스가 멸망하며 새긴 흔적이야.”

“어째서 멸망했는지…… 물을 필요도 없겠네.”

강신혁도 비석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비석이든 요르문간드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욕을 먹고 있어서 요르문간드 놈들이 장수하는구나, 하고 멍청한 생각을 떠올릴 정도였다.

“요르문간드와 벨라토스의 교전기록이 새겨져 있으니 지구에도 도움이 될 거야. 물론 완벽히 해석하기까진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만.”

신은아와 강신혁은 이 비석을 발견한 시점에서 해석을 끝마치고 있지만, 당연히도 그 사실을 외부에 알려줄 수는 없다. 애초에 관리자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 그들은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충 예상하고 있었어요.”

강신혁은 공동을 천천히 걸으며 아홉 개의 비석에 새겨진 모든 역사를 읽어 내렸다. 신은아도 그의 곁을 가만히 걸었다.

장절한 기록의 면면을 보다 보니 우습게도 둘이서 무슨 박물관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A+급 게이트의 보스 룸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나 싶어 스스로를 탓하는데 그 옆에서 신은아가 불쑥 말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할부지랑 둘이 놀러온 것 같네.”

"......."

- 미친년이군요.

관리자의 직설적인 욕에 어째선지 강신혁의 심장이 찔리는 듯했다. 강신혁이 신은아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걸리면 관리자가 무슨 반응을 할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할부지도 깊게 받아들일 필요 없어.”

"응?"

그런 그때 신은아가 재차 기묘한 말을 했다.

“이들의 역사는 이들의 역사일 뿐이니까. 우리는 이것들을 참고해서 요르문간드를 박살내기만 하면 돼.”

“……아하.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한 강신혁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녀는 강신혁이 이것을 보고 혹여 지구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세상의 기록일 뿐이지 않은가.

애초에 그는 이런 글귀보다 훨씬 생생한 멸망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는 경험을 두 번이나 겪은 이는 아마 그리 흔치 않을 터다. 모루의 기억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나, 적어도 그가 겪은 절망적인 순간들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강신혁은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두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제 와서 이 정도로 무서워할 거라면 초인학교는 진즉 때려쳤을 테니까.”

“그래……."

신은아는 그 말을 듣곤 강신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를 알아내려는 듯한 시선에 그도 그것을 피하지 않고 그녀를 마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볼이 붉었다.

“왜요?”

“아무것도 아냐. 그럼 이제 보스를 잡자.”

“아, 그랬지.”

신은아는 강신혁에게 공동 중앙에 위치해 있으라고 말하고는 첫 번째 비석으로 다가가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 순간, 비석이 천천히 땅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첫 번째 비석이 완전히 땅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공동 중앙에서 흰 빛이 터져나왔다.

그 빛 안에서 거대한 멧돼지를 닮은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다. 강신혁이 아까 이 던전에서 사냥했던 A+랭크 몬스터의 네임드 버전(엘리트 몬스터)이었다.

- 그르르.......

- 키히!

“잡을 수 있지?”

“물론.”

몬스터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본 순간 강신혁은 양팔을 휘둘러 놈들에게 실을 날렸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산개하여 그것을 피하려 했지만 얼마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덧 공동에 생겨난 결계가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놈들뿐만 아니라 강신혁도 나가지 못하게 되어있겠지. 곤란해지기 전에 결계의 존재를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흡!”

- 키이이익!

어쨌든 지금은 그 덕에 몬스터들을 순조롭게 옭아맬 수 있었다. 강신혁은 빈틈없이 결계의 범위를 확인하고는 도약하며 양팔로 열 가닥의 실을 거세게 당겨 그 안에 걸려있던 놈들을 썰어버렸다.

- 부오오오오오오!

“핫!”

운 좋게 실의 칼날의 세례를 피한 멧돼지가 송곳니를 드릴처럼 회전시키며 그에게 돌진해왔지만, 강신혁은 허공에 뜬 상태에서 놈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강하게 발을 걷어찼다.

- 푸슉

- 캬아아아악!

그의 신발 밑창에서 쏜살같이 뛰쳐나온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멧돼지의 미간에 박혔다. 인벤토리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사마귀의 칼날 앞발을 제련해 만든 투척용 단도 중 하나로, 이나희와의 합작으로 나온 명품이었다.

[흑호저극침]

[A-랭크]

[특수능력 - 맹독, 수렁, 신체화]

*맹독 - 강한 독을 품는다.

*수렁 - 돌파력이 강화되며, 한 번 적의 몸에 파고들면 쉬이 빠져나오지 않고 상처를 악화시킨다.

*신체화 - 이 무기의 주인은 무기를 신체처럼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다. 다른 이에게는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직역해버리면 검은 호저의 가시라는 뜻. 호저는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몸도, 가시도 훨씬 더 큰 설치류 동물로, 그만큼 가시도 더 독살스러웠다.

몸의 어디에서든 이 단검을 쏘아낼 수 있게끔 이나희와 연구한 결과가 신체화라는 특성으로 나타났는데, 그 덕에 팔꿈치로도, 무릎으로도, 심지어는 겨드랑이 밑에서도 이것을 던져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그가 입고 있는 제복 이곳저곳에 이 단검이 숨겨져 있었다.

그렇다. 흑호저극침이란 같은 성능을 지닌 단검의 세트였다. 아직 무구를 하나로 묶는다는 개념이 없었기에 강신혁 혼자서는 세트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나희의 힘을 빌렸다.

천연 아티팩트 중에도 같은 성능을 지닌 부품이 여럿 포함된 세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많은 화살을 품고 있는 화살통.

이나희는 대야장을 할아버지로 둔 덕에 이런저런 아티팩트를 경험해보았고, 그것을 참고로 해 흑호저극침을 완성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어쩌면 번개거미줄을 만들었던 때보다도 더.

“그리고.”

그는 재빠르게 나머지 몬스터들을 정리한 후 번개거미줄을 한 가닥 뻗었다. 미간에 단도가 박혀 괴로워하는 멧돼지의 이마를 뚫고 들어간 거미줄이 재주도 좋게 단도 손잡이에 달린 작은 구멍을 꿰었다.

그것을 잡아당기자 실과 연결된 단도가 놈의 뇌를 헤집어버리며 튀어나와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단도가 박혔을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버티고 있던 멧돼지는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깔끔하게 침몰했다.

-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다수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18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270,000HP를 얻었습니다!

“완벽해.”

“응, 정체성은 확실하네.”

흑호저극침은 처음부터 거미줄과 같이 쓰일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무구. 칼날 반대편에 손잡이 대신 작은 고리가 달려 있었다. 거미줄로 붙잡아 회수하거나 연결해 휘두르는 등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성과는 확실했다.

- 멋진 전투였습니다. 1,500HP 보너스!

“고마워요.”

관리자는 그가 전투를 치를 때마다 보너스를 주고 있었다.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고맙다는 인사만은 꼬박꼬박 빼먹지 않았다. 가끔은 예의를 잊지 않는 멋진 회원이라며 보너스를 추가해줄 때도 있었다. 정말이지 이젠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할부지는 어쩌면 네임드가 될지도 몰라.”

전투를 마치고 돌아서는 강신혁을 보며 신은아가 말했다. 강신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네임드는 몬스터 중에서만 나타나는 것 아녜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게임에 보면 흔히 이름이 붙은 몬스터는 강해진다는 설정이 있다. 정확히는, 다른 개체들보다 유별나게 강한 나머지 그 개체를 따로 구별하기 위해 이름이 붙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랭커들 중에서도 특별한 호칭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가 있어. 마이클 샘슨이라든가.”

“대단한데.”

뭐가 대단한가 하면, 똑똑히 이름을 들었는데도 곧장 잊어버릴 듯 평범한 이름이라는 점이 대단했다. 강신혁은 마이클 샘슨이 누구인지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 하이랭커잖아요!?”

“응. 그것도 22위에 해당하는 하이랭커야. 터무니없이 강해. 특성은 경화로, 한없이 단단한 몸으로 적을 모두 박살내는 걸로 유명하지. 그런데 다들 그 사람을 그냥 마이클 샘슨이라고 불러.”

“왜?”

“너무 평범해서.”

듣고 보니 그렇다. 제아무리 그가 단단하다고 해도, 사실 경화라는 특성 자체는 그리 희귀할 것이 없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신영에도 경화 계열의 특성을 지닌 이가 제법 있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분류가 제법 갈리고, 랭크에 따라 경화의 정도도 달라지지만…….

“뭔가 그럴싸한 별명을 붙여줄 법도 한데.”

“싸우는 방식도 워낙 단순하고, 사실 그렇게 싸우는 능력자가 워낙 많아서…… 그냥 넘어가게 되는 거야. 처음엔 다들 이래저래 별명을 붙여봤는데 마이클 샘슨이라고 특정할 만한 요소가 없어서 결국 흐지부지됐어.”

“임팩트가 없구나.”

“응. 하지만 할부지는 달라. 전투방식이 매력적이야.”

신은아는 그런 말을 하며 눈을 빛냈다. 강신혁은 살짝 뿌듯해하면서도 어딘가 마음에 걸리는 것을 느꼈다. 혹시 얘도?

“초인은 어쨌든 동료를 지키면서 적을 물리치는 게 중요하지만, 그래도 주목을 받는 사람은 따로 나오게 마련이거든. 자신의 능력보다도 능력을 다루는 과정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해. 그 점에서 보면 할부지는 단연 뛰어나.”

“……저번 경연회장에서 주목을 받은 것처럼?”

“응. 그때도 멋졌어.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싸워나간다면 인지도를 쌓기 쉬울 거야. 그럼 초인사회에서의 발언력도 높아지고, 랭커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쉽겠지.”

“은아가 뇌제라고 불리는 것처럼?”

"윽."

약간 장난을 쳐봤더니 신은아의 얼굴이 금세 새빨개졌다. 그녀는 볼을 부풀리더니 두 번째 비석과 세 번째 비석에 동시에 마나를 주입했다. 두 비석이 동시에 사라지자 결계가 번쩍이며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 크루루루루……!

“아."

“네 번째까지 바로 갈까?”

“아니, 잠깐! 잠깐만!”

강신혁은 앞으로 보스 룸에서는 파티 멤버에게 쓸데없는 장난을 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던전에서 나가면 아마 그녀는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는 신은아가 그것을 기대하고 있으리라고는 차마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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