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Chapter 19. 여름의 시작 - 3 >
첫 번째 전리품부터 S랭크 스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아직 전리품은 두 가지가 더 남아있었다.
그중 하나는 여왕말벌에게서 직접 뽑아낸 독침. 두꺼운 뿌리에서부터 날카로운 첨단에 이르기까지 원뿔 형태를 취하고 있는 1.2미터 길이의 제법 커다란 물건이었다.
손잡이만 달아놓으면 중세시대 기병이 쓰던 헤비 랜스를 연상시키는 모양새. 하지만 크기가 작다는 게 치명적인 문제다. 감정해보니 랭크는 A+, 영구적인 독성까지 겸하고 있으니 만약 이걸 거대화시킬 수만 있다면 정말 장관이겠지만…….
‘가만, 거대화?’
거대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바로 도우진이다. 물론 그에게 이걸 줘봤자 거대화를 하면 그의 몸도 거대해질 터, 비율로 따지면 도로묵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 번 물어볼 가치는 있겠지.’
좌우지간 이대로는 어정쩡해서 써먹을 수 없다. 강신혁은 그것을 적당히 손질만 하고는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게이트 클리어 보상, 여왕말벌의 날개 팔찌! 금색의 보석을 중심으로 반투명한 날개가 양쪽에서 뻗어 나와 둥글게 말린 형태를 취하고 있는,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이었다.
한때 강신혁에게도 게이트에서 아티팩트를 얻어 나오는 초인을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직접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게 된 지금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그가 직접 만든 아티팩트들과 어떤 면이 다를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좋아…… 감정.”
[여왕말벌의 날개 팔찌]
[A+랭크]
[특수능력 : 여왕말벌의 비행]
*여왕말벌의 비행 - 원하는 대상에 강한 진동을 일으킨다. 바람에 의해 강화된다.
‘어라.’
S-랭크의 이레귤러 게이트 보상치고는 어째 능력이 조금 초라한 것 같은데. 혹시나 자신의 감정능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읽어내지 못 한 것일까, 강신혁은 괜히 팔찌를 이리저리 살피며 뭔가 더 찾아보려 애썼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나 영력을 뻗어 진지하게 팔찌를 탐색하다보니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여왕말벌의 능력과 세트였구나.”
A+랭크임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뿐인 특수능력. 그 설명에 바람에 의해 강화된다는 문구가 있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요소였다. 만약 칼날바람의 폭풍을 만들어내는 크루얼 스톰을 이 날개 팔찌로 강화한다면? 그 결과는 지극히 흉악할 터였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크루얼 스톰을 흡수해 더욱 강한 바람을 다루게 된 강신혁 역시 충분히 이 아티팩트를 다룰 수 있다는 얘기. 상당히 주인을 가리는 아티팩트지만, 강신혁에게는 딱 맞는 아티팩트였다.
‘과연, 천연 아티팩트는 인간의 뜻으로 만든 아티팩트와는 다른 개성이 있다는 거지 ’
강신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바로 자신의 왼쪽 팔목에 찼다. S랭크로 성장한 윈드 마스터리를 더 잘 다루기 위해서라도 이 아티팩트는 필히 자신이 가져야 했다.
“그러면......."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 도우진에게 연락을 해둘까. 스틱으로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블랙우드 훈련소 2관으로 오라는 답장이 왔다.
강신혁은 그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본인의 뜻이 아니겠지. 그래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대회에서 무려 대상을 수상한 자랑스러운 우리 막내 신혁이한테 박수!!”
“축하해!”
“잘생겼다!”
“멋지다 신혁이! 나한테도 무기 하나만 만들어줘! 만들어주세요!”
“그것보다 이나희랑 무슨 관계인지 알려주세요!”
“역시나.”
어쩐지 그럴 것 같아 점심을 거르고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단장 일파(지금은 단장 일파가 되었지만)가 그럴싸한 파티를 준비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번 바베큐 파티도 그렇고 이 사람들은 너무 노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강신혁은 생각했다.
“한 잔 받아!”
“……이거 술 아니지?”
“그럴 리가!”
능글능글 웃으며 다가와 그에게 잔을 내미는 카렌의 볼이 기분 탓인가 붉다. 강신혁이 의심스레 묻자 그녀는 깔깔 웃고는 그에게 속삭였다.
“아까 불 붙여봤는데 안 붙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누가 경찰에 신고해!”
“농담이야, 진짜 논알콜이야.”
마셔보니 정말로 논알콜이었다. 그렇다면 카렌은 왜 이렇게 들떠있단 말인가. 그가 빤히 바라보자 카렌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실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거든.”
“아, 응. 그래. 잘 해봐.”
“누군지 좀 물어봐주라!”
어딘가 불길함을 느낀 강신혁이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나 어째선지 주위 사람들이 모두 포기하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보아하니 다들 일찌감치 녀석에게 시달렸던 모양이다.
“어제 너도 거기 있었잖아, 경연대회 시상식!”
"응."
불길함이 순식간에 증식했다.
“거기서 내 운명의 남자를 만나버린 거야! 능력도 외관도 심지어 말투까지 내 완벽한 이상, 망상이 그대로 구현화된 듯한 남자와! 누군지 궁금하지?”
“아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실렸는데! 초인협회 특무부 대원 신은혁! 몰라? 뇌제 친동생이라는데! 신혁이 너 뇌제랑 친하잖아. 어떻게든 소개시켜주세요!”
그제야 강신혁은 어째서 카렌이 자신을 록온하고 다가왔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결사적으로 그녀를 밀어냈다. 그런 그를 엘레노어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엘레노어 선배, 그렇게 보고 있지 말고 이거 좀 데려가요.”
“인과응보라고, 생각해.”
“......!?"
눈치 챘는가!? 아니, 확실히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무예 자체에 정진해온 엘레노어라면 자신과 몇 번이고 대련했던 상대가 얼굴을 가리고 전법을 바꾼다 한들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강신혁의 얼굴이 1초에도 몇 번씩 바뀌는 모습에, 엘레노어는 작게 웃고는 입 모양만으로 그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빚진 거야.’
강신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직접 카렌을 그에게서 떼어냈다.
“그만 괴롭혀. 신혁은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니까.”
“단장님도 그렇게 여유부리고 계실 틈이 없다니까요! 신혁이 어제 나희 선배랑 짝짜꿍하는 거 못 봤어요? 네? 단장님도 이제 좀 적극적으로, 아야야야.”
“그만, 괴롭혀.”
“아야야야야야야야!”
대체 누가 누구를 괴롭히고 있단 말인가. 카렌을 단단히 붙들고 힘을 주는 엘레노어를 차게 식은 눈으로 보던 강신혁이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곤 둘에게서 떨어졌다.
차례차례로 달라붙어 귀찮게 구는 선배들을 적당히 상대해주며 물리친 그는 이내 도우진을 발견하곤 그에게 다가갔다.
“너 인마.”
“선불이다. 그래서 물어볼 게 뭔데.”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혼자 고생하며 말빨을 키운 것인가. 확실히 그의 말도 맞았기에 강신혁은 더 추궁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거대화를 좀 보여줬으면 하는데 시간 나냐?”
“……너도 만만치 않은데. 설마 개인의 특성을 배운다는 헛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그냥 좀 무기를 만드는 데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무기.”
도우진이 멍하니 그의 말을 따라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까 그랬구나. 이 사람들 오늘 모인 게.”
“너, 내가 안장 수리할 때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다른 쪽 임팩트가 너무 커서 잊어먹고 있었어.”
도우진은 멍하니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굳게 끄덕였다.
“따라와라.”
“오우굿.”
일단 협상카드는 준비해두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줄 줄이야. 둘은 곧장 훈련소 안의 대련실로 향했다. 도우진은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해보더니 강신혁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아티팩트의 도움 없이는 아직 활성화 및 유지가 불안정해. 그걸 감안하고 봐라.”
“오케이.”
“……그럼 시작한다.”
도우진이 그 자리에 편하게 서서는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강신혁은 그에게 미세한 영력의 실을 뻗어 접촉했다. 도우진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후우우우..!”
이윽고 변화가 시작되었다. 도우진의 체내 마나가 활성화되어 고속으로 체내를 회전하더니 이윽고 특별한 무엇인가로 승화했다.
그야말로 특성의 힘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순간적이고 불가해한 변화. 어차피 그것 자체는 강신혁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는 변화한 마나를 분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마나는 여전히 도우진의 체내를 빠르게 회전하며, 천천히 그의 육신을 부풀렸다. 확실히 그것은 확대의 성질을 띠고 있었다. 마나는 그의 체내를 도화지로 삼아 특수한 마법진을 그려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도우진의 체내 세포 하나하나를 감싸 변화시켰다.
“완성.”
“오오.”
이윽고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천장에 닿을 만큼 커다랗게 변한 도우진의 모습. 신체비율은 특성을 발동하기 전 그대로였기에 대개 근육과 군살이 덕지덕지 붙은 몬스터보다는 훨씬 날렵한 인상이었지만, 그래도 그가 주는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가 방패를 들고 파티의 선두를 지킨다면 그 이상 든든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 상태에서 무기를 쥐면 무기도 거대화하는 거지?”
“가능해. 다만 그 전용으로 만들어진 무구가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거대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부탁할게.”
“좋아.”
예상하고 있었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있던 훈련용 목검을 쥐는 도우진.
그 목검은 정말 아무런 처치도 되지 않은 평범한 목검이었으나, 놀랍게도 그의 체내를 휘돌던 마나의 흐름이 격해지자 목검을 구성하는 원자 하나하나에 마나의 막이 씌워지며 그것의 크기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굉장한 능력인데. 눈으로 보면서도 쉬이 이해하기 힘들 만큼 고등한 특성. 저 특성에는 조금 더 높은 랭크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야, 슬슬 한곈데.”
“잘하고 있는데 왜. 그대로 유지하면 되잖아.”
“그게 힘들다고.”
“너무 의식하고 있는 거 아냐? 지금 자연스럽게 발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통제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보여.”
“뭐? 네가……."
특성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를 두려는 거냐, 라고 대꾸하려던 도우진이 어째선지 입을 다물었다.
동요가 커서인지 거대화가 풀려버리고 말았지만, 제 모습으로 돌아온 도우진의 기분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았다.
“뭔가 알 것 같은데.”
“뭐냐, 무협소설도 아니고 혹시 내가 말 한 마디 했다고 능력이 진화라도 했어?”
“그건 아니지만 앞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될지는 대강 알겠는데……."
도우진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솔직히 대꾸했다.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젠장, 빚을 지워두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되지?”
“빚을 지워서 뭐하고 싶었는데?”
“됐어, 말 못해. 나 간다.”
“어라.”
그대로 자리에서 떠나가는 도우진을 보며 강신혁은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저 초탈한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학기 초만 해도 에고로 똘똘 뭉친 멋진 청소년이었는데!
- 역시 애들은 맞으면서 성장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몰라보게 자라나지 않았습니까.
“그럼 저는요?”
- 회원님은 저와 만나기 전에 많이 맞으셨지요.
“……부정은 못하겠네요.”
도우진의 모습에 감회가 새롭긴 했지만, 어쨌든 강신혁도 목적은 달성할수 있었다. 물론 강신혁 본인이 거대화를 구사할 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거대화하는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을지는 대강 감이 왔다.
“재료를 구해봐야겠어.”
- 그 전에 약속이 있지 않으십니까?
“아."
관리자의 말에 제정신을 차린 강신혁은 다급히 움직였다. 동아리실에서 이나희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설마 그곳에서 뇌제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