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Chapter 19. 여름의 시작 - 2 >
본래 신영에서는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대회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생산 계열 초인을 육성하지 않는 신영과는 애초에 관련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만우가 일을 조용히 처리한 것도 있어 올해도 그저 ‘그런 것도 있었지’라는 느낌으로 관망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경연대회에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경연대회가 열린 호텔, 그것도 초인상가를 코앞에 두고 있는 5성 호텔에서의 테러 사건이.
그 덕에 새삼스럽게 강신혁과 이나희가 경연대회에 참가, 대상을 탔다는 소문이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반 초인연합이 기승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대담한 일을 벌일 줄이야.”
“올해 신영에서도 경연에 출품했었다고요.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우리 학과 2학년의 이나희와…… 기사학과 신입생 강신혁. 강신혁이면 미츠이 유타를 제치고 올해 신인왕을 딴 친구였죠? 설마 대상을 탈 줄은 몰랐네요. 물론 이만우 선생님의 손녀의 능력이겠지만.”
마법학과 교무실. 본래 휴일인 토요일에는 할 일이 있는 교사들만 나와 있을 뿐 한산하게 마련인데, 바로 어제 서울 한가운데에서 테러가 일어나기도 한 만큼 오늘은 대부분 교사들이 교무실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스틱으로 비추어지는 화상 속의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 뉴스가 되었든 이번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대회에서 있었던 테러 사건과 함께 강신혁과 이나희가 나란히 찍힌 사진이 보였다.
“앗, 이만우 선생님!”
아침조회가 시작되기 전 교실에서 학생들이 그러하듯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참에, 마침 거기에 이만우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만우가 이 학교에 재직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도 교무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교사들은 화들짝 놀라면서도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손녀분의 대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평소부터 재능이 넘치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신영에서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대회에 주목하지 않는 것은 신영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기 때문일 뿐, 그 가치를 폄하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성 계열을 가리지 않고 모든 초인은 좋은 장비를 원하고, 그러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좋은 장인과의 커넥션을 가져야 했으니까.
당장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연금술사 클레어 보일만 해도 이 대회의 대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처음 이름을 알리지 않았던가. 이나희 역시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었고, 이만우에게 인사 한 마디 건네는 것으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여겼다.
"음."
그러나 이만우는 그들의 속내를 빤히 읽어내곤 그저 코웃음을 칠 따름이었다.
분명 경연에 출품한 장검은 둘의 합작으로 완성된 물건이고 기사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강신혁의 역할을 깎아내리며 이나희를 추켜세우는 모습은, 적어도 이만우에게는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들이 왜 강신혁을 무시한 것일까. 이유는 뻔하다. 처음 강신혁이 신영에 들어왔을 때부터 마나가 없는 그를 좋게 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능력을 각성해 마법학과의 학생인 미츠이 유타를 꺾고 신인왕을 차지하게 되니 그에게 놀아난 기분에 더더욱 그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신영의 학생들은 기사학과와 마법학과로 나뉘어 어떤 행사에서든 쉽게 대립하곤 하지만, 그건 학생들이니까 애교로 보아 넘길 수 있는 것. 언제나 중립을 지켜야 할 교사들까지 저런 모습을 보이니 실로 개탄할 노릇이었다.
“동아리는 누구 관할이었지.”
그러나 이만우는 그것에 대해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강신혁의 능력은 감추려 한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때가 되면 저들도 깨달을 터. 굳이 입을 놀리는 쪽이 더 귀찮다.
“동아리? 아,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그거라면 굳이 번거롭게 발걸음을 옮기실 것도 없습니다.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대상을 기록한 동아리를 폐부시킬 수는 없지요!”
“아니, 그래도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지. 누구한테 제출하면 되지?”
“그러시다면……."
이만우는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동아리 존속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것으로 강신혁도 보다 자유롭게 야금술을 수련할 수 있게 되겠지. 처음 강신혁이 동아리에 들어올 때 제시했던 조건이 클리어되는 순간이었다.
“이만우 선생님, 혹시 다시 활동을 시작하시려는 겁니까?”
이만우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그때 교사 중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안 그래도 다들 누군가 먼저 그 말을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가만히 눈을 빛내며 이만우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이만우가 어째서 이 학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가 한때 신영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도 극소수. 단지 그가 한때 초인협회의 회장이 직접 찾아와야만 의뢰할 수 있다는 전설의 대야장이었다는 것만은 다들 알고 있었다.
“……아니, 내가 직접 망치를 잡을 생각은 없네.”
“역시 그렇습니까……."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 대답하는 이만우의 모습에 교사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고 대부분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이제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단지 소중한 손녀딸 때문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하지만 이만우 선생님, 주제넘지만 선생님의 재능은 묵혀두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라……."
"흥."
이만우는 재차 코웃음을 쳤다. 재능이라. 그도 한때는 자신의 재능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곧 다들 깜짝 놀라게 될 거다.’
이만우는 상상했다. 신영을 졸업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아티팩트 제작자로서 활약하는 강신혁의 모습을.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머지않아 정상이 될 것이다. 과거 자신이 한 번 걸었던 길이기에, 이만우는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길을 잘못 들지 않게…… 그를 정상으로 안내할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이만우의 개인적인 소망을 하나 더하자면, 그때 그의 옆에 이나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가능성은 있어보였는데. 그 녀석, 연금술사와 만나고 살짝 풀이 죽는 것 같았으니…….'
이만우는 입맛을 다셨다. 손녀딸이 조금만 솔직하게 행동할 수 있다면, ‘그 녀석들’이 그랬듯이 둘의 사이가 빠르게 진전될 것도 같은데…… 지금은 그저 이나희가 잘 해주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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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희 : 후배야]
토요일 오전, 무려 50%나 되는 성장 속도 증가 버프를 얻은 강신혁은 오전부터 자신의 방에 딸린 단련실에서 빡세게 구르고 있었다.
영력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든 스테이터스 하나를 올려보려고 몸을 악착같이 밀어붙였던 그인지라, 모르긴 몰라도 독하게 수련하는 데에는 신영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으리라 자신하고 있었다.
[이나희 : 오후에 같이 작업하자.]
그런데 대략 3시간 정도의 단련을 마치고 잠깐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에 이나희의 연락이 날아든 것이다.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 온 세상에 알려져 스틱에 평소 온갖 메시지가 날아들던 와중에 온 메시지가 괜히 반가웠다.
[나:웬일로 적극적이네요?]
[이나희 : 네가 나 몰래 개사기 아티팩트 만들었잖아;; 나도 더 좋은 아티팩트 만들고 싶거든? 네가 혼자 만든 것보다 훨씬 센 거 만들 거니까 아무튼 협력해.]
[나 : 뭐 어차피 저 좋은 일 하는 거니까 괜찮긴 한데, 선배 원래 그렇게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던가.]
[이나희 : 아니 딱히 그렇진 않은데.]
[이나희 : 그냥.]
[나 : 그냥?]
[이나희 : 아무튼. 오늘 늦게까지 할 거니까 각오해.]
[나 : 저 밤에는 다른 볼 일 있는데요.]
[이나희 : 연금술사 만나러 가?]
정답이었다. 어젠 워낙 정신이 없어 그대로 헤어졌고, 그 대신 오늘 저녁에 경연대회 뒷풀이를 하기로 한 것. 메뉴는 물론 치킨이었다.
[이나희 : 그럼 나도 끼워줘]
[나 : 아니 왜요!?]
[이나희 : 나도 연금술사 만나보고 싶단 말이야. 안 돼?]
[나:안될 것까지는 없지만…….]
그녀를 끼워줄 이유가 없다. 뭣보다 높은 확률로 신은아도 함께할 터, 일단 강신혁과 가까운 여자라면 모두 적대하고 보는 신은아라면 이나희에게도 귀찮게 굴 것이 분명했다.
[나 : 기다려 봐요, 그럼.]
하지만 지금 이나희는 강신혁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 그는 강하게 나갈 수 없다. 결국 강신혁이 택한 것은 클레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거절해달라고 하는 것. 그런데 뜻밖에도.
[바텐더 누나 : 음, 오케이!]
[나 : 왜!]
믿었던 클레어가 거침없이 그의 발등을 찍어버렸다.
[바텐더 누나 : 나도 신혁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니까 그러지. 게다가 너 대상 탄 거 축하하는 자리잖아. 걔도 같은 팀이었으니까 끼워줘도 이상할 거 없지.]
[나 : 제 학교생활이 궁금하셨으면 제가 말해드리면 되는데!]
[바텐더 누나 : 아냐, 다른 애 입으로 듣는 거랑 완전 다르지. 그리고.]
[나 : 그리고?]
[바텐더 누나 : 아무튼. 걔 꼭 데리고 와! 아니, 어차피 네 방에 모일 거니까 그냥 방으로 데려와.]
이나희도 그러더니 클레어도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나희를 데려오라고 한 것은 분명한 일이고…… 도망칠 길이 사라져버린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이나희에게 회신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 또 의미불명한 말이었다.
[이나희 : 그래? 역시 그 여자 그랬구나.]
[나 : 뭐지, 뭐가 그랬다는 건데요?]
[이나희 : 넌 몰라도 돼.]
[나 : 치사하게 말을 하다 마냐?]
[이나희 : 어, 반말하네? 너 자꾸 이러면 앞으로 호칭을 죽음의 인형사로 통일해버린다?]
[나 : 아 쫌]
조금 더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그는 곧 그녀와 학교 동아리실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씻고 점심을 먹는 것까지 감안해도 아직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 전에 해두고 싶은 게 있었다.
“전리품을 확인하는 게 아직이란 말이지.”
- 뀨!
전리품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 한 구석에서 그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오닉스가 달려들었다. 그는 픽 웃으며 녀석을 쓰다듬어주었다.
“먹을 거 냄새는 귀신같이 맡고 오네. 기다려봐, 네가 먹을 수 있는 건지 확인해보자.”
히어로 유니버스의 자동 루팅 기능은 그가 상대한 몬스터를 자동으로 루팅해 자동으로 인벤토리에 보관해주는 혁신적인 기능이다. 어제는 방출형 이레귤러 게이트 하나를 통째로 털은 만큼, 적당히 비워두었던 다섯 칸의 인벤토리가 모두 빵빵하게 차 있었다.
“어디 보자……."
강신혁은 그 안에서 수십 센티미터 길이에 달하는 독침을 하나 꺼냈다. 용맹하게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것은 좋지만 함정 거미줄에 갈려 그대로 죽어버린 말벌이 남긴 것으로, 어지간한 금속은 비교도 되지 않는 경도와 예기, 나아가 독성을 지니고 있는 일품이었다.
“이거 먹을 수 있겠어?”
- 뀨우…… 뀨우웃!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그것을 보던 오닉스는 이내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냅다 달려들어 독침의 끝을 물었다.
독침이 품고 있는 독성은 새삼스레 걱정할 것도 없다. 녀석은 희귀도 SS랭크에 달하는 구현 능력으로 모르긴 몰라도 강신혁보다 더 독을 잘 다루고 있으니까.
- 뀨우우우우웃!
“그래, 맛있어?”
- 뀨우뀨우뀨우우!
“그래도 여왕의 독침은 안 줄 거야.”
- 뀨우…….
어딜 주제넘게 그 귀한 것을 노리는가. 강신혁은 오닉스가 먹을 수 있도록 몇 개인가의 독침을 더 꺼내어주고는, 어제 얻은 전리품의 핵심이 되는 세 가지의 물건을 꺼내어놓았다.
여왕말벌이 남긴 스킬 스톤, 강신혁이 직접 뽑아낸 여왕말벌의 독침, 마지막으로 여왕말벌의 토벌과 게이트의 소멸이 확인되는 순간 획득한 여왕말벌의 날개 팔찌.
사실 강신혁은 자신의 날개를 진동시켜 강한 바람을 만들어내던 여왕말벌을 보며 내심 그 날개도 수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아티팩트의 형태로 변환된 모양이었다.
“와, 미쳤다 진짜.”
- 뀨우우우…….
스킬 스톤, 독침, 팔찌. 뭘 봐도 전부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감히 장담컨대 강신혁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낸 전리품 중에선 최상위급,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초인이라도 이 정도 전리품을 쉬이 얻어내진 못하리라!
“내 운이 좋은 걸까.”
- 본디 생산계열 능력을 지닌 이들은 전리품 획득에 있어 강한 긍정적 보정을 얻습니다. 생산계열 능력을 지닌 이들이 전투에 잘 나서지 않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야금술 만만세네요.”
강신혁은 뭘 먼저 확인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거침없이 스킬 스톤에 손을 뻗었다. 찬란한 녹색 빛을 뿜어내는 스킬 스톤, S-랭크의 보스가 남긴 것이니 비싸게 팔 수 있겠지만, 가능하면 그가 직접 익힐 생각이었다.
[크루얼 스톰(Cruel Storm)의 스킬 스톤]
[희귀도 : S-랭크]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폭풍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담긴 마석. 강한 내구력이 없으면 본인도 찢겨나간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다.]
그건 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인데!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몬스터의 능력을 너무 고스란히 담아낸 나머지 인간이 익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스킬이 나오는 경우가. 이건 대개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반 초인연합의 능력자들이 익히곤 한다. 물론 비싸게 팔리지만, 솔직히 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익혀둘까. 쓰지만 않으면 되고.”
그에게는 재생력이라는 사기 스테이터스가 있는 만큼 언젠가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강신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영력을 뻗어내 스킬 스톤을 감싸, 그대로 자신 안으로 받아들여…….
- 액티브 스킬 [크루얼 스톰(S-)]을 흡수합니다. 뛰어난 영력으로 스킬의 근원을 분석해 스킬이 품고 있던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입니다. [윈드 마스터리(A-)]스킬이 [크루얼 스톰(S-)]을 완전히 흡수해 [윈드 마스터리(S)]로 진화했습니다! 영력이 S-랭크로 성장합니다!
- 바람을 다루는 이치를 깨닫습니다. 윈드 마스터리 스킬의 숙련도가 단숨에 B+랭크로 성장합니다!
그래, 재생력보다 영력이 더 사기였지.
강신혁은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되새기며 자리에 앉았다.
어쩌면 노트 속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설정, [절망을 몰고 오는 바람 블러드 브리즈]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