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 Chapter 18. 죽음의 인형사 신은혁 - 7 >
- 캬아아아아아아아!
여왕말벌의 반응은 실로 격렬했다. 놈이 한순간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개를 진동시키자 놈의 몸을 뒤덮고 있던 독 중 일부가 사방으로 튀었다. 강신혁은 기겁하며 두 특무부 대원 앞을 가로막았다. 다행히 늦지 않게 그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얼굴에!”
“크…… 문제없습니다.”
그의 옷과 얼굴에 튄 맹독이 치직,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피부를 녹였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그로마스에서 지내는 동안 관리자의 조언을 받아 익힌 레지스트 포이즌(SS+) 스킬을 A-랭크까지 수련해두었기 때문.
애초에 독이 두려웠다면 독거미줄 같은 것을 다룰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치익…….
희귀도 SS+랭크에 이르는 그의 독 내성은 숙련도에 비해서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터무니없는 독성이었지만 어떻게든 떨쳐낼 수 있었다. 그러고도 남은 상처는 재생력으로 회복했다.
‘나한테 조금 튄 걸로 이 정도란 말이지.’
그렇다면 여왕말벌 쪽은 어떨까. 강신혁은 속으로 히죽 웃으며 녀석을 살폈다.
여왕말벌은 여전히 발악적으로 몸을 진동시키고 있었지만 이미 독은 놈의 전신으로 파고들며 놈을 약화시키고 있었다. 강신혁이 게이트 주위에 수천 개의 거미줄을 설치해둔 시점에서 체크메이트였던 것이다.
다만 놈이 계속해서 몸을 떨어대는 와중에 허공에 무수한 바람의 칼날이 생성되고 있었다. 어쩌면 방금 독을 튕겨냈던 것은 단순한 발악이 아니라 저 스킬에 의한 작용이었을지도 몰랐다.
“바람 속성을 다루는 보스 몬스터! 선배, 우리도 싸워요!”
“그, 그렇지. 조력하겠습니다.”
“아뇨.”
강신혁은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제게 맡겨달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놈은 무조건 강신혁에게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드롭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특무부고 자시고 양보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지금 저놈은 독 때문에 거의 죽어가는 상태일 터!
하지만 급한 마음에 대꾸하다 보니 강신혁의 의도와는 달리 야밤의 암살자 같은 말투가 되고 말았다. 흑역사가 늘어나고 있었다.
“큭…… 멋져!”
“저 보스 몬스터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A+랭크…… 아니, S-랭크까지도 볼 수 있는 흉악한 놈입니다만!”
강신혁은 남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한 발짝 나아가며 열 개의 거미줄을 뽑아냈다. 여왕말벌 역시 그것에 마주해 빼액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이 만들어낸 바람의 칼날을 일시에 쏘아냈다.
“흡!”
강신혁은 두 눈을 번뜩이며 양손으로 허공을 거세게 긁어내렸다.
그 손의 움직임에 따라 정면으로 쇄도한 열 개의 거미줄이 눈앞으로 날아드는 바람의 칼날들을 가볍게 절단.
지리멸렬해진 바람의 칼날의 폭풍을 넘어, 열 가닥의 거미줄이 일제히 여왕말벌의 몸을 베어냈다!
- 캬아아아아악!
여왕말벌의 고통어린 비명이 회장을 가득 메울 기세로 울려 퍼졌다. 본래 여왕말벌은 이 정도 공격에 몸이 베일 정도로 연약하지 않지만 지금은 대량의 맹독에 의해 피부가 흐물흐물해진 상황.
여왕의 비대한 몸에 열 가닥의 핏빛 실선이 내달렸다. 동시에 다섯 줄기의 거미줄이 뇌전을, 다섯 줄기의 거미줄이 독을 토해내며 여왕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 끼히이이이이이이!
“온다!”
여왕의 날갯짓이 더욱 격렬해졌다. 극도로 분노한 여왕은 끝내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강신혁을 어떻게든 죽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폭주했다.
녀석의 맹렬한 날갯짓을 따라 녀석의 몸 주위를 휘돌기 시작하는 녹색 빛의 돌개바람. 명백한 몬스터의 고유 스킬이었다.
“우와, 진짜 강한 몬스터잖아요 저거!”
“요르문간드 놈들, 이런 위험한 걸……."
“조장님은 대체 언제쯤 오시는 거예요!?”
아마 안 올걸, 강신혁은 여왕을 막아낼 준비를 하며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신은아가 이미 상황을 대강 정리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른 게이트들도 아직 완벽히 진압된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 클레어가 있으니 안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도와주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강신혁을 도와줄 수 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강신혁이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평소 강신혁을 끔찍이 여기는 신은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은 얘기가 달랐다.
‘이건 내 데뷔무대니까.’
강신혁이 이렇게 눈에 띄게 활동하며 주목을 받는 것이 오늘의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녀의 능력이라면 이런 우스운 공작 따위 단숨에 진압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해 최소한의 안전성을 확보하며 강신혁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는 스테이지를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은 그것을 감추려는 생각인 것 같았지만 솔직히 귓속말에서부터 너무 티가 나서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좋은 기회야. 보스몬스터까지 선배가 의도하진 않았을 텐데, 운이 좋았어.’
왜 운이 좋냐고? 그것은…… 강신혁은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구슬을 꺼냈다.
은은한 황금빛을 발하는 그 구슬을 지금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수트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의 심장에 가까운 위치. 심장이 뛸 때마다 구슬이 발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 키히!?
여왕말벌 역시 구슬의 기운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러나 놈은 멈추지 않았다. 녹색의 바람은 점점 더 기세를 불려 흡사 작은 태풍과도 같은 형태가 되어 있었다. 그 안에 몸을 감춘 여왕말벌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단, 그 안에서 치명적인 예기가 느껴졌다. 정확히 강신혁의 미간을 노리고 있는 예기가.
‘그래, 맞다이를 뜨자 이거지.’
강신혁은 피식 웃으며 무릎을 앞으로 살짝 굽혀 돌진할 준비를 했다. 마스크 안의 두 눈이 황금빛을 발하며 품 안의 구슬과 공명했다. 그의 전신을 시원한 바람이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 이 정도면 윈드 마스터리도 충분히 강해지겠지.’
지금, 그의 품에 있는 것은 [신풍의 보주(SS)]였다.
복원해낸 당시만 해도 영력을 생산해낸다는 것밖에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 것치고는 쓸데없이 이름이 거창하다는 사실에 강신혁은 처음부터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마침 그로마스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되며 이것을 연구할 기회가 왔고, 극천신주와 함께 연구하는 과정에서 신풍의 보주에 대한 정보를 상당부분 얻을 수 있었다. 감정 스킬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것도 대부분은 이 두 개의 구슬 덕분이었다.
신풍(神風), 즉 신의 바람. 신풍의 보주는 무한히 이어지는 바람의 흐름, 그 시작점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영력을 무한히 생산하는 것도 그 때문. 바람 속성을 상징하는 지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강신혁의 스킬인 [윈드 마스터리(A-)]와 궁합이 좋다. 여러 차례 실험해본 결과 신풍의 보주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윈드 마스터리의 위력이 크게 상승하고, 뭣보다 바람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증가했다.
덤으로 이쪽은 비교적 소소한 정보이지만, 사실 윈드 마스터리는 바람을 이용해 공격하는 능력과 바람에 대한 내성을 동시에 커버하는 스킬이었다. 즉 윈드 마스터리가 있으면 레지스트 윈드를 익힐 필요가 없다는 것. 아니, 애초에 레지스트 윈드가 윈드 마스터리의 하위 스킬이었다.
“저거 돌진하려고 하는데요!?”
“제가 막죠. 뒤로 물러서세요.”
“아니 그 자세 뭔데? 설마 맞받아치려고요!?”
“흡…… 흣!”
그 순간 강신혁이 바닥을 박차 돌진했다. 오히려 여왕말벌의 스킬이 완성되는 것보다도 미묘하게 빠른 타이밍. 물론 놈의 마나의 흐름을 두 눈으로 읽고 있던 강신혁이 선수를 친 것이었다.
여왕말벌은 그에 분노하며 뒤늦게 마주 돌진해왔다. 녀석이 몸에 휘감은 녹색 돌개바람 역시 함께였다.
강신혁을 집어삼킬 기세로 폭주하는 돌개바람, 그는 앗 하는 순간 태풍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캬아아아악!
그러나 여왕말벌의 괴성이 크게 울려 퍼진 직후, 태풍 안에서 강신혁이 튀어나왔다.
그의 전신은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로 가득했다. 제아무리 신풍의 보주와 윈드 마스터리가 있었다고 해도 보스 몬스터의 스킬을 노 데미지로 받아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죽음을 앞두고 폭주한 보스의 필살기를 상대로도 고작 그 정도로 끝났다는 것이다.
"흡."
강신혁은 갈라져 피가 흐르는 입가를 핥으며 양 주먹을 꽉 쥐고 가슴 앞에서 교차시켰다. 열 갈래의 번개거미줄과 독거미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열 갈래의 거미줄의 끝부분은 녹색 돌개바람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여왕말벌이 일으킨 바람 탓에 지독히도 흔들리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끊어지지 않고 버텨냈다.
그 증거로 돌개바람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멈추었다. 그의 거미줄이 여왕말벌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 캬아아아아아악!
“그만하고…… 내놔!”
강신혁이 이를 악물고 양주먹을 앞으로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열 가닥의 거미줄 위를 황금빛의 기운이 내달렸다. 그가 영력을 쏟아 부어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게 강화하고 있었던 것.
“끄읍…… 흐아아아!”
그는 재차 힘을 주어 앞으로 전진했다. 뿌득, 태풍이 일으키는 소음에 비해 미약한 소리가 났다.
다시 한 걸음 뻗자 뿌드드득, 하고 보다 섬뜩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것은 거미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가 뽑히는 소리였다.
- 캬우아아아아아!
여왕말벌의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돌개바람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그 안에서 열 가닥의 거미줄에 단단히 붙들린 뭔가가 튀어나와, 강신혁의 손아귀에 잡혔다.
그 길이만 무려 1미터 20센티미터에 이르는 여왕말벌의 독침이었다.
“살아있는 보스몬스터에게서 독침을 뽑아냈잖아!”
“원래 부위파괴는 살아있을 때 해야 하는 거예요, 선배!”
대한민국 초인 중에서 가장 몬스터를 많이 상대하는 특무부 대원들조차 강신혁이 벌인 짓을 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방금 저 인간은 보스의 스킬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놈의 독침에 거미줄을 묶어, 기어이 그것을 뽑아내기까지 한 것이다!
“좋아.”
부위파괴는 살아있을 때 해야 한다고? 역시 저 여자가 뭘 알긴 아는구나.
강신혁은 여왕말벌에게서 뽑아낸 거대한 원뿔형의 독침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그것을 잽싸게 인벤토리에 넣었다.
- 캬아아아아악!
한편 전신이 독에 절여진 데다 놈을 찔러죽일 셈으로 내밀었던 자신의 자랑스러운 독침마저 뽑히고 나자 여왕말벌은 더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놈의 전신에서 독과 섞인 피가 흘렀다. 여왕의 부릅뜬 겹눈이 강신혁을 포착하며 살기로 번뜩였다.
"후."
그러나 그에 맞서는 강신혁은 아직 여유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 중에 입은 상처는 재생력으로 실시간 치유될 정도로 미약한 것뿐이었던 데다 소모한 영력조차 품 안의 신풍의 보주가 조금씩 보충해주고 있었으니까.
‘역시 아직 실전에서 대놓고 사용할 만큼 능력이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신풍의 보주는 SS랭크의 아티팩트. 하지만 완벽하게 복구되지 않은 탓에 그 성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 어렵다.
다만 이번엔 상대가 바람을 다루는 몬스터였기에 상성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신풍의 보주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따로 있지만.
“그럼 이제 끝내자.”
- 샤아아아아악!
여왕말벌이 마지막 발악으로 맨몸으로 그에게 돌진해왔다. 돌개바람은커녕 진동으로 만들어내는 바람의 칼날조차 없지만,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육신에서 폭주하는 독 기운은 그 이상으로 섬뜩했다.
"후."
그러나 강신혁은 그것을 보곤 훗, 작게 미소 지으며 왼손 검지를 들어 허공을 그었다.
손가락의 궤적을 따라 쏘아내진 한 가닥의 거미줄에 강신혁의 남은 영력 모두가 담겼다. 금안의 환룡이 지닌 강화의 힘도 적용되었다. 거기에 장비 슬롯의 효과, 로그인 보너스로 얻은 버프 효과까지 더해져…….
- 파직
번개와도 같은 황금의 궤적이 여왕말벌을 갈랐다.
놈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