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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 Chapter 17. 성장이 너무 빠른 남자 - 7 >

- 대련이 끝났습니다. 1학년 C클래스 강신혁 학생 승리, 가점을 부여합니다.

제2체육관, 대련장. 강신혁은 방송이 흘러나오는 것과 동시에 훈련용 목검을 거두었다. 맞은편에서 그의 기세에 밀려 주저앉은 마법학과 학생이 울상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했다.

“서로 수고했다고 한 마디 해줘도 될 텐데.”

- 재밌는 농담이었습니다, 회원님. 마법학과라는 점이 좋지 않았군요.

“그러게요.”

관리자가 마법학과라는 점을 강조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체육대회 때 있었던 신인왕전과 투왕전에서 모두 기사학과가 이기면서 안 그래도 마법학과가 기사학과에 경쟁심을 불태우게 되었는 데, 이번에 강신혁이 덜컥 마도왕을 이기면서(물론 수업 중 대련에 불과했지만 서로 공정한 조건하에 벌인 정당한 대련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마법학과 전원이 굉장한 치욕을 당하게 된 것.

그래서 이번 기말 테스트로 치러진 공식 전투력 순위 측정 대련…… 통칭 ‘랭킹전’에도 마법학과 학생들은 절대로 기사학과 학생들에겐 질 수 없다며 이를 악물고 임했는데, 그 기세가 워낙 흉흉해서 기사학과 학생들 중에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진 학생들도 제법 나왔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음, 아냐. 너무 건방지게 들릴 것 같으니 그만둘게요.”

- 어설프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정답이었다. 강신혁은 관리자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맞춘 것에 끄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히 그랬다. 히어로 유니버스 덕분일까, 또래에 비해 제법 많은 경험을 하고 나름대로 위기도 겪어본 강신혁은 그들이 아무리 독기를 품고 덤벼도 그래서 뭐? 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오히려 냉정을 잃은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욱 쉽게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

“저도 별 다를 바 없는 애송이인데 이렇게 자만을 하다니 글렀네요.”

- 부끄러워하는 회원님께 2,000HP 보너스!

“방심하지 말고 앞으로도 정진하라는 뜻에서 받아들일게요. ……역시 부끄럽네요.”

- 3,000HP 보너스!

이러다 조만간 관리자가 주는 HP 보너스가 1회에 1만 HP를 초과하게 되는 것 아닐까. 히어로 유니버스의 균형이 걱정될 따름이다.

강신혁은 대련장을 나와 무기 거치대에 목검을 돌려놓았다. 총 다섯 번의 대련을 모두 승리로 끝냈으니 이것으로 실기 마지막 평가인 랭킹전도 무사히 끝이 난 셈이다. 대부분은 감점요소 없이 해낸 것 같았다. 아니, 모르긴 몰라도 가점도 제법 받았을 것이다.

‘이걸로 중간고사에서 까먹은 성적은 어느 정도 만회가 될 것 같네.’

1학기 성적과 랭킹을 기준으로 학생에 대한 지원금도, 취급도 달라진다. 신인왕을 획득해 덜컥 로열 클래스에 들어와 버린 지금은 굳이 거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지만, 강신혁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거기에 최선을 다하고 보는 타입이었다.

더구나 세계 최우수 초인교육기관인 신영에서 공식적으로 우수한 기록을 남기면 그것이 강신혁의 앞날에 두고두고 도움이 되어줄 터였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기든 스스로의 입지를 키워두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 이것으로 모든 시험이 끝입니까?

“네. 자유네요.”

2학기가 되면 게이트 실습도 단숨에 늘어날뿐더러 학교축제, 교류회에 초대형 게이트 전투참관 등등 중요한 이벤트가 몰려있지만 1학기는 체육대회를 제외하고는 별 일이 없다. 학기 중에 남은 일이라곤 학생회 선거 정도였다. 그게 끝나면 한 달 반의 여름방학에 돌입한다.

‘백인하는 잘 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시험이 끝나면 헌팅하러 가자던 백인하는 지금 강신혁의 연락을 제때 받지도 못할 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강신혁은 거기에 살짝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백인하에게 제법 비밀을 갖고 있는 만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서로 한가해지면 정말 날 잡고 어디 놀러 가기라도 해야겠어.’

체육관에게 있던 시험관에게 대련 결과를 확인하고 그대로 하교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강신혁은 곧장 블랙우드 훈련소로 향했다.

시험기간 중에는 서로 바빠 만나지 못한 만큼 오늘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엘레노어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만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1대1 대련을 하게 되고, 엘레노어 같은 강자와의 대련은 강신혁에게도 무척 큰 도움이 되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신혁 안녕.”

“안녕하세요, 선배.”

강신혁보다 한 발 빠르게 도착해 차를 마시고 있던 엘레노어는 그를 발견하곤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그녀는 대련이 모두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들었어. 랭킹전 전승 축하해.”

“대련이 끝난 게 바로 방금인데요.”

“응…… 하지만 갱신은 실시간이니까.”

갱신? 고개를 갸웃하는 강신혁을 보며 엘레노어가 작게 웃곤 자신의 스틱을 매만졌다. 그 위로 홀로그램이 떠오르더니 사람의 이름이 주르륵 나열된 페이지가 나타났다.

“설마 1학년 랭킹인가요?”

“응. 입학시험 이후로 변동이 없었지만, 이번 랭킹전에서 처음으로 갱신됐어. 신혁이 6위야.”

아마 다음 시험에서는 5위 이내의 학생들과도 대련을 하게 되겠지, 하고 엘레노어가 구슬이 흘러가듯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신혁이 살펴보니 그 안에 백인하와 신인왕전 결승전 상대였던 미츠이 유타의 이름이 있었다.

“카렌은 없네요.”

“아직 대련 중. 아, 지금 모든 대련이 전승으로 끝나서 7위가 됐오. 축하해줘야겠네.”

카렌이 7위라, 그도 그럴 것이다. 연줄을 이용해 로열 클래스에 들어왔다곤 해도 그 지위에 합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그녀였으니까.

“도우진은…… 아, 싸우는 중인가. 만약 지금 대련 상대에게 이긴다 치면……."

“4위야.”

“그렇구나. 아, 이겼나보네요.”

도우진이 4위에 랭크되었다. 그는 원래부터 순위가 높았던 만큼 이번 대련에서도 순위가 높은 이들과 대련하게 되었고, 그간 많이 성장한 것인지 당당히 5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부럽다.”

“풉.”

“왜 웃으세요?”

강신혁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엘레노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엘레노어가 시치미 떼지 말라는 듯 그를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보며 말했다.

“넌 이미 1학년 랭킹에 신경 쓰고 있을 수준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사실 백인하를 제외한 그 어떤 1학년생도 강신혁과 제대로 된 대련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1학년뿐만 아니라 전교로 범위를 넓혀도 몇 명 되지 않을 터다.

“이곳에서 졸업을 해야 하니 몸까지 떠날 수는 없지만, 시야만은 늘 넓은 바깥에 두도록 해.”

엘레노어는 가만히 말하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과 마주하고 있자니, 그녀의 얼굴은 이렇게 작은데도 불구하고 무섭도록 단정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이 학교 학생들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있을 시간이 아까워. 넌 이런 데엔 신경 쓰지 말고, 더 멀리 보고 움직여도 돼.”

“선배도 그러고 계세요?”

강신혁의 물음에 엘레노어는 가만히 웃을 뿐이었다. 하긴,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이번 투왕전에 이겨서 처음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그녀 본인의 능력은 그 훨씬 이전부터 학교 최상위였을 테니까.

“충고 고맙습니다, 엘레노어 선배.”

강신혁은 끝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도 엘레노어의 말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신은아에게 초인으로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분을 부탁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번 여름방학, 그는 정식 초인으로서 데뷔할 예정이었다.

“그, 그래서 제안이 있는데……."

“네?”

그때였다. 엘레노어가 문득 그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말을 길게 끌었다. 사람에게 제안을 한다면서 시선을 피하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만은 어디까지고 진지했다.

“방학 중에 나와 함께 행동해보지 않겠어? 던전 탐사.”

“던전? 허가가 나왔나요?”

“비룡기사단의 합숙이라는 명분으로 학교 측에 제법 재량권을 부여받았오……. 허락만 해준다면 바로 예약 가능해.”

“명분? 방금 명분이라고 안 하셨어요?”

“다른 학생들도 가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우리보다 약하니까. 단둘이 가게 될 거야.”

그럼 기사왕은? 그 사람은 힘만 놓고 따지면 이 학교 그 누구보다 강할 텐데? 하지만 그것은 묻지 않는 게 예의이리라. 엘레노어도 말하지 않았는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어…… 아니 잠깐만요. 우리 둘이서 간다고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나 개인적으로는, 함께 행동하면서 네게 점수를 따고 싶기도 하고.”

“또 제법 노골적으로 나오시네요.”

그녀에게 학교 내부에 그녀를 도와줄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강신혁 본인이다. 그녀는 그 말에 공감하며 대뜸 그에게 자신의 편이 되어줄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었고.

그때 제법 단호히 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후로 심기일전해 재차 도전해오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엘레노어와 함께 던전이라.

방학 중에는 신은아와 함께 활동할 예정이지만, 그녀라고 항상 강신혁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신은아와는 다른 타입의 능력자와 함께 던전을 탐사하는 것도 강신혁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줄 터.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일단 좋은 기회니까 감사히 받아들이긴 하겠는데요.”

“좋아.”

엘레노어가 자신의 작은 두 주먹을 말아 쥐며 자그맣게 환호했다. 몸집이 작아 그런지 하는 행동이 하나하나 귀여웠다.

“그래도 남녀 둘만 던전에 들어가는 건 조금 그렇지 않아요?”

“믿어.”

“음, 이게 믿고 말고의 문제가……."

“믿어.”

믿는다면 어쩔 수 없지. 강신혁은 그녀의 확고한 목소리에 밀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불여우년…….

일부러 시뻘건 폰트로 눈앞에 나타난 관리자의 메시지는 못 본 척 하기로 했다.

@@@

“오우.”

오후. 칠칠치 못한 표정으로 부실에 늘어져 있던 이나희는 강신혁의 얘기를 듣곤 입에 물고 있던 각설탕을 씹으며 감탄사를 냈다.

“우리 엘리 제법이네.”

“선배가 무슨 착각을 하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아마 아닐걸요.”

이나희가 엘레노어와 친분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녀의 진정한 신분까지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엘레노어가 강신혁에게 던전에 함께 들어가자는 제안을 한 진짜 이유도 물론 깨닫지 못할 터.

그러나 이나희는 강신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관심도 없다는 듯 쯔쯔 혀를 차며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데이트, 그것도 날밤 까면서 던전 안에서 단둘? 그거 그냥 덮쳐달라고 하는 거잖아.”

“선배, 성격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처음엔 낯 많이 가리셨는데.”

뭣보다 이런 아저씨 같은 성격은 절대 아니었을 텐데. 혹시 다른 사람이 들어있나 싶어 째려보자 이나희는 칵, 소리를 내며 강신혁을 위협했다.

“그땐 네가 많이 거북했으니까 그랬던 거고. 지금은 호감도가 좀 올라서 그래.”

“그 단어 선정부터가 아저씨 같은데.”

강신혁은 한숨을 쉬며 셔츠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시답잖은 얘기는 이쯤 하고.”

“야, 후배. 걔가 덮쳐달란다고 진짜 덮치면 안 된다. 걔 엄청 무거운 애야. 몸은 가벼운 주제에 다른 모든 게 무거워.”

“그건 저도 알아요. 걱정 마세요.”

하지만 역시 시답잖은 얘기다. 강신혁은 공방 문을 열며 말했다.

“오늘 완성시킬 겁니다. 바로 작업 시작하죠.”

“그래. 아, 그 전에.”

“또 뭐가 있나요?”

“아티팩트 경연.”

이나희가 자신의 스틱을 강신혁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아티팩트 경연의 개최 날짜가 쓰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번 주 금요일? 내일모레잖아요!”

“응. 그 날 대상까지 발표하니까 우리도 가야 돼.”

“대상을 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당연하지. 하지만 아까워. 오늘 완성될 물건으로 출품했으면 대상 수준이 아니었을 텐데.”

“대상 위에는 뭐 없잖아요……."

“아깝다, 아까워……."

이나희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안에 마무리 작업을 기다리는 작품이 놓여 있었다.

수십 미터 길이의, 반투명한 금색의 금속실.

길게 펼쳐놓으면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 만큼 얇은 금속실 전반에 걸쳐 지극히 작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안에 깃든 것은 첨예하게 가다듬어진 마력과, 그 마력을 웃도는 질과 양의 따스한 영력.

강신혁의 신(新)무장의 완성까지 앞으로 한 걸음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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