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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 Chapter 17. 성장이 너무 빠른 남자 - 6 >

강신혁이 대련에서 마도왕을 박살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에 퍼졌다. 만약 강신혁이 마도왕 본인이었더라면 그냥 자퇴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퍼졌다.

당연히 강신혁의 인기는 순식간에 하늘을 찌를 기세로 높아졌고, 올해의 신인왕이며 동시에 비룡기사단에 속한 기사학과 학생이 마법학과의 에이스이며 마도왕, 동시에 신영마도학회의 회장이기도 한 나탄 보댕을 꺾었다는 사실로 인해 기사학과 전체가 기세등등해지기도 했다.

이전 강신혁에게 충고를 받은 일로 인해 그를 좋게 보게 된 기사왕 더글러스 페인은 일부러 그에게 [잘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올 정도였다. 하지만 더글러스 페인한테 스틱 메일 주소를 가르쳐준 기억이 없었기에 그건 일단 씹어두었다.

그리고 한 명 더, 강신혁이 마도왕을 꺾은 사실에 광희난무하는 이가 있었으니.

“우하하하하하하하!”

“그렇게 화통하게 웃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선배.”

이나희는 생긴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소를 터트리며 이어 붙여놓은 부실 책상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여태까지 그녀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완벽하게 박살나는 순간이었다.

“나, 나탄 보댕이 대가리에 목검 얻어맞고! 으히, 우크크크크크크크.”

“안 되겠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사람이 고장 난 것처럼 웃어대는 이나희를 보고 있자니 역시나 그녀는 나탄 보댕의 피앙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강신혁이 그 얘기를 하자, 이나희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며 그 자리에 정좌했다. 기왕이면 책상 위에서 내려와 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들어봐. 내가 지금 이렇게 좋아하는 게 그것 때문이거든?”

“선배한테 집적대던 남자가 저한테 시원하게 얻어터져서?”

“응. 야, 남자는 다 그래? 싫다는데 짜증나게 달라붙고 멋대로 남친 행세하려 그러고 진짜 최악인데. 뭐? 피앙세? 진짜 짜증나서, 직접 말 걸지 말라고 했더니 뒤에서 그 지랄을 하고 다녔단 말이야?”

“어린 나이에 너무 큰 힘을 가지다 보니 지가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 아닐까요? 저도 추측일 뿐이지만요.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건대 그런 남자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일반 중학교를 나왔다면 알 것 아닌가. 거기엔 능력자 학생들이 별로 없었을 테니까.

강신혁이 그렇게 말하며 남자를 전부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어깨를 으쓱이자, 이나희는 살짝 묘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 여중이었어. 졸업하고 신영에 들어와서 본 남자애들은 다 이상한 것들밖에 없더라고.”

“저런.”

“서울 끄트머리에 지화여중이라고 있잖아. 거기 나왔는데.”

“……지화여중? 제가 아는 지화여중이면 초인들만 다닐 수 있는 사립 중학교밖에 없는데.”

사립도 사립 나름이지만 지화여자중학교는 가히 부모 모두 초인이고, 일정 이상 랭크를 달성했으며 특히 어떤 방면으로든 특출난 활약을 한 이들의 자녀만이 입학할 수 있는…… 말하자면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엘리트 학교.

실제로 지화여중을 졸업한 대부분 학생들이 신영을 비롯한 우수한 교육시설에 입학한다. 물론 그와 비슷한 남자중학교도 존재하는데, 고아 출신인 강신혁은 당연히 이런 곳에 들어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선배…… 실은 부잣집 따님이에요?”

아니, 생각해보면 대야장의 손녀이니 그것도 당연한 일인가. 그래도 지화여중에 들어가는 조건 중에는 부모가 모두 초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니, 즉 이만우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대단한 능력자였다는 얘기가 되는데…….

“으음…… 응, 뭐 비슷해.”

그러나 그때까지 활기차게 말을 늘어놓던 이나희는 강신혁의 질문에 갑자기 말문이 막힌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표정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며, 강신혁은 그녀의 집안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직감하곤 말을 돌렸다.

“큼, 아무튼 제가 그 선배를 팼어도 아무 문제없었단 얘기네요. 혹시라도 선배랑 관련이 있을까봐 일단 살살 팼는데……."

“구라치지 마. 대가리 찍고 그대로 걷어찼다며.”

그 잔혹하고 간결한 동작에 마도왕은 신영의 우수한 치료시설과 능력자들을 동원해도 족히 사흘간은 등교하지 못할 만큼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정식 대련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애초에 3학년이 1학년을 상대로 어떤 핸디캡도 없이 전력으로 덤볐다가 박살났기 때문에 마도왕을 비웃는 목소리는 있었어도 강신혁의 손속이 심했다며 탓하는 이는 없었다.

“실은 그 사이에 18콤보 정도 더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마도왕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긴 건데?”

“솔직히 말하면 믿으시게?”

"하긴 말해줘도 이해 못하겠다.”

강신혁의 말에 대번에 납득한 이나희는 고개를 주억이고는 가만히 강신혁을 바라보았다. 강신혁이 빤히 시선을 받아치자 그녀는 흐으음,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했다.

“너 조건이 되게 좋구나. 능력 좋고 야금술도 뛰어나고 지금 보니 잘생기기도 했네.”

“선배는 속 시원하도록 노골적인 속물이시네요.”

“아니, 그냥 냉정하게 판단한 거야. 앞으로 너 엄청 귀찮아지겠다. 모든 여자가 너 하나 붙잡아보겠다고 달려들 텐데.”

“선배가 마도왕한테 귀찮게 시달렸던 것처럼?”

이나희는 그 말에 인상을 팍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잖아? 이 학교는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어린 짐승들의 낙원이나 다름없어. 조금 난폭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틀리지도 않았을걸.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모여서 서로 힘자랑이나 해대질 않나, 논리 따윈 내다버리고 힘으로 선악을 가리려 하질 않나, 남자고 여자고 하나같이 더럽게 밝혀대질 않나……. 초인은 그런 게 아니잖아. 몬스터들에 맞서 싸우려고 힘을 기르는 거 아냐? 그런데 하나같이 쓸데없는 일들에만 몰두하고…… 대체 이 학교를 만든 처음의 목적은 어디로 간 걸까?”

강신혁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 만큼 그녀의 말에 그리 강하게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비단 능력자들뿐만 아니라 금력, 권력, 그 외에 다른 힘을 가진 일반인들도 다르지 않다.

단지 신영에서는 그 힘이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구성원들이 어린 만큼 제 욕망을 능숙하게 감추지 못해 드러낼 뿐이다.

“인기투표도 마찬가지야. 초인들을 길러내는 학교에서 인기투표 같은 걸 해서 뭐하겠다는 거야? 작년에도 그것 때문에 나탄 보댕이 본격적으로 나한테 집적거리기 시작했고, 올해도…… 믿겨져? 멋대로 사퇴도 못하게 해놓고 1위로 만들어서는 사진을 전시하는 거야. 그걸 보고 남학생들이 뭐라고 말하고 다녔는지 알아?”

“선배, 진정해요.”

적어도 이나희가 자신이 2년 연속 인기투표 1위를 했다는 것을 그리 기뻐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분명 처음엔 좋은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나탄 보댕도 설마 앞으로는 그러고 다니지 못할 것 아녜요. 그러면 좀 낫겠죠. 안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고. ……아무튼 이번에는 괜히 나 때문에 폐를 끼쳤네. 미안해.”

이나희가 드디어 책상에서 내려오더니 툭툭, 치마를 털고는 강신혁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강신혁은 새삼스러워하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그녀에게 솔직히 질문했다.

“그런데 나탄 보댕 그 자식은 대체 왜 이 타이밍에 저를 찾아왔던 걸까요. 혹시 알고 계세요?”

강신혁이 그 말과 함께 나탄 보댕이 자신에게 했던 얘기를 짤막하게 늘어놓자, 이나희는 명백히 아차, 하고 실수한 표정을 지었다. 강신혁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그녀는 그의 기세를 이기지 못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음, 반 친구한테 농담조로 날 마음대로 부려먹는 후배가 생겼다는 얘기를 했는데……."

“표현 좀!”

5할은 이 여자 잘못이었던 셈이 아닌가! 그녀가 이렇게 도발적인 표현을 하니까 나탄 보댕도 대놓고 강신혁을 미워하며 찾아왔던 것이다!

“아니, 우리 반에서 내 친구랑 얘기하고 있던 건데 그걸 훔쳐 듣는 스토커 새끼가 나쁜 거잖아! 게다가 네가 날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확실한 약속으로……."

“반성하세요.”

“넵, 반성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신혁에게 그녀가 원하는 금속이 있는 이상, 그의 말에 강하게 나올 수 없는 이나희였다…….

@@@

시험기간에 들어선 신영의 시간은 실로 빠르게 흘렀다. 동시에 선거활동도 드디어 표면으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실기와 필기 준비에 더불어 선거까지 치러야 하는 백인하는 요즘 들어 점점 더 지쳐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컨디션이 아무리 봐도 최악인 것 같은데, 선거 자체엔 문제 없냐?”

“회장 얼굴만 알리면 되니까, 내가 표면으로 나설 필요는 없어……. 게다가 내가 필요할 땐 제대로 꾸미고 있거든.”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닌데 말이지……."

선거에서 뭣보다 중요한 것은 회장. 나머지 임원들은 그 회장의 뜻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회장의 이미지가 중요해지는데, 작년도 부회장을 지냈던 인물이라고 하면 일단 신용 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셈이었다.

“힘내라. 임원은 안 할 거지만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

“여자 소개시켜주세요.”

“그건 네 힘으로 해라.”

아무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말에 단호히 대꾸했더니 백인하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양팔을 뻗어 강신혁의 멱살을 붙잡고는 마구 흔들었다.

“넌 임마! 뇌제랑도 친하고! 알제 누님 직속 후배인데다, 이번엔 이나희 선배랑 단둘이 동아리 생활!? 장난 하냐? 나랑 바꿔줘! 바꿔 달란 말이다!”

“백인하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인기가 없……."

는 거야,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에 도로 들어갔다. 강신혁은 한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흔들고 있는 백인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백인하는 갑자기 강신혁이 진지한 표정을 짓자 당황스러워하며 그의 멱살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니, 내가 진짜 화나서 이러는 건 아니었는데, 신혁아?”

“나도 화나서 이러는 거 아냐. 그냥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강신혁은 전날 이나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초인들을 양성하는 신영에서 인기투표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몬스터와 맞서 싸울 힘을 길러야 하는데 엉뚱한 짓들을 하고 있다고도.

물론 그녀의 말이 어느 만큼의 무게를 갖는지는 앞으로 그녀와 함께하며 곁에서 지켜보지 않는 한 판단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말 자체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강신혁도 심정적으로는 그 말에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만약 백인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면……?’

누누이 말하건대 백인하는 확실하게 잘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외모의 주인이다. 거기에 능력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뛰어나다. 입학 초창기 때만 해도 아마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백인하를 록온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능력이나 외모에 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제법 식은 지 오래다. 백인하가 입을 열 때마다 그의 주가가 뚝뚝 떨어지는 말만 계속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백인하의 의도대로였다면 어떻겠는가. 그가 신영에서 스스로 집중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에, 일부러 자신의 평가를 떨어트려 귀찮은 일들을 줄였다면?

‘신빙성이 있어. 그도 그럴 게 당장 나만 해도 여자 관련해서 귀찮은 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으니까!’

강신혁은 경악을 숨길 수 없는 표정으로 백인하를 바라보았다. 그가 만약 입학하는 순간부터 이것을 노리고 행동하고 있었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다. 그를 다시 평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너……."

“아니, 이제 여자 소개시켜달란 말 안 할게! 안 할 테니까!”

백인하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 부분에서 갑자기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며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온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강신혁은 처음으로 백인하의 진심을 듣게 된 것이다!

“시험 끝나고 이번에야말로 초인 누님 헌팅하러 가자, 콜? 아야!”

"......."

강신혁은 말없이 손을 뻗어 백인하의 입술을 찰싹 때렸다. 이어서 자신의 뺨을 두드려 제정신을 찾았다.

그로부터 한 주가 더 흘러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강신혁은 모든 필기 과목을 만점에 준하는 성적으로 통과했으며…….

다음으로 실기 시험, 졸업생 랭킹에도 반영되는 정식 대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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