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 Chapter 17. 성장이 너무 빠른 남자 - 5 >
3학년 졸업반에 속한, 심지어 신영의 최강자중 한 명인 마도왕이 어른스럽지 못하게 강신혁을 도발했다. 3학년생들은 미리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별 반응이 없었지만 1학년 C클래스 전원은 그것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저 사람 왜 저래?”
“강신혁이 뭐했다고 저러는 건데?”
“피앙세가 어쩌고 하지 않았냐?”
이전엔 강신혁이 누구에게 미움을 받든 ‘강신혁이니까 그럴 만하지’하고 무시하거나 오히려 지들도 동참했겠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져있었다. 이것이 원만한 사회생활의 결과로 따라오는 든든한 빽, 아군의 힘!
1학년생들이 수군거리며 그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자 마도왕 역시 자신의 행동이 이상했음을 깨달았는지 큼, 헛기침을 하고는.
“지금부터 대련을 시작하지. 올라와라.”
전후사정을 설명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강신혁을 호명하며 먼저 대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강신혁은 그것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가만히 있었지만, 평소 강신혁을 싫어하던 공준표도 일이 이렇게 되는 데에 한 몫 거든 것이 분명할 터 그에게 뭐라 말을 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듯이 보이고.
결국은 나가서 마도왕 나탄 보댕이 원하는 대로 두들겨 맞고 내려와야만 이 촌극이 끝난다는 얘긴데…….
“백인하, 조언 없냐?”
“짧게 가자.”
나탄 보댕이 강신혁을 록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대책을 짜고 있던 백인하가, 강신혁이 스스로 나서서 해볼 기색을 보이자 잘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말했다.
“가장 짜증나는 건 저 자식이 갖고 있는 특성 [마도간섭]이야. 체외 마력에 간섭하는 능력인데 이걸 극한까지 다루면 상대의 체내 마력까지 일순 흩어내 무력화시킬 수 있거든.”
“너 그거에 당했지?”
“쒸이벌 내가 마력에 +만 붙었어도……."
대상의 마력을 흩어낸다. 말만 들으면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능력이지만 사실 마력 계열의 특성은 제아무리 강력해 보이는 것이더라도, 상대방보다 마력이 낮은 경우 뾰족한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백인하가 나탄 보댕에게 당했던 것은 그의 마력이 나탄 보댕보다 낮았기 때문. 당시 백인하가 자신의 마력에 +만 붙었어도 그를 이길 수 있었다고 하는 것도 괜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자식은 마법학과 3학년 최우수생과 마력으로 비등한 수준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하지만 넌 마력이 없잖아? 일단 이건 봉쇄하고 들어가는 셈이지. 그래도 귀찮은 게 두 가지 남는데, 첫 번째는 속공으로 발동하는 중력마법. 아마 체외마력에 간섭하는 특성에서 비롯된 마법일 거라고는 생각한다만, 한순간에 일정 범위를 짓눌러버리니까 제법 까다로워. 마력 유동을 눈치 채고 피하는 수밖에 없어.”
“그건 잘 피했겠네.”
“당근이지. 아무튼 두 번째는 순수하게 마력 양에서 비롯된 엄청난 마법연사. 원래는 초대형 마법을 구사해 일대를 파괴하는 화력 계열이라는데 이건 영창시간도 그렇고 아무래도 대련에서 쓸 수는 없으니까.”
“져놓고 제 특기분야가 아니었다면서 찡찡댈 수도 있겠네.”
“안 그래도 알제 누님한테 지고 그런 소릴 하면서 찡찡댔다던데.”
언제부터 알제와 알고 지내는 사이였냐고 물으니 마음속으로 그렇게 부를 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이지 까도 까도 양파처럼 눈물 나는 구석밖엔 없는 녀석이었다.
“나오지 않을 건가? 겁을 먹는 것도 이해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수업 시간이야. 너희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준 선배의 마음을 헤아려라.”
때마침 공준표가 얄밉게 지껄였다. 강신혁은 쯧, 혀를 차며 비치되어 있던 훈련용 목검을 하나 쥐었다.
어디까지나 일반 대련 시간이기 때문에 이쪽도, 저쪽도 아티팩트를 착용할 수 없다. 아마도 그 조건은 강신혁에게 유리한 조건이리라.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마도왕이다보니.”
강신혁은 이죽거리는 공준표에게 ‘병신 새끼가 1학년 줘패려고 3학년 데리고 와놓고 참 좋댄다’는 뜻을 완곡하게 돌려 말하며 대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충격을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결계가 발동했다.
“도망칠 것까지 예상했는데 의외군. 나로서도 널 또 찾을 필요가 없어져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죠. 남자한테 스토킹당하는 취미는 없으니까요.”
“신인왕이 되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본데, 마음 고쳐먹는 게 좋을 거야. 조금 무예 능력이 뛰어날 뿐, 혈통도 후원자도 별 것 없는 쓰레기가 내 피앙세에게 손을……."
“그 피앙세 분은 혹시 본인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알고 있나요?”
순수한 궁금증에서 나온 질문에 마도왕은 순간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였다. 강신혁은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여자를 스토킹하며 그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남자를 짓밟으러 찾아올 시간에 보다 순수하게 여자에게 인정받을 방법을 찾는 쪽이 훨씬 건설적일 텐데.
“이나희 선배랑 좋은 관계셨다면 선배한테 직접 저랑은 별 관계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으셨을 텐데, 아마 그렇지 않겠죠. 모르는 데서 피앙세라고 불리고 있는 이나희 선배한테 솔직히 민폐라고 생각 안 하세요?”
“어…… 어차피 그녀는 언젠가 내 것이 된다! 조금 미리 호칭을 정해둔다고 해서 뭐가 문제란 말이야!”
“우와아아……."
어째서 이 학교의 남정네들의 연애 수준이란 중학생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인가, 어쩌면 어쭙잖게 강한 힘을 갖고 있으니 정신의 발전이 그만큼 더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래서 아무리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교육기관에서 이들을 묶어놓는 것이구나! 물론 이 녀석을 보면 그것도 소용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아니, 오히려 기사왕 쪽이 나아보일 정도잖아 이건. 그 인간은 표현법이 잘못되었을 뿐이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려 했던 건 아니니까.’
물론 부분적으로는 강신혁에게도 민폐가 되었지만, 그 남자는 어디까지나 엘레노어를 자신의 파트너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연달아 무리수를 두고 있었을 뿐이다.
반면 이 마도왕이라는 녀석은 다짜고짜 이나희를 피앙세 취급하며, 그녀와 같은 동아리에 속해있을 뿐인 강신혁을 날파리 취급하며 시비를 걸러 오기까지 할 정도이니…….
“그럼 지금부터 대련을 시작한다.”
“하!”
공준표가 대련 개시를 선언한 직후, 마도왕이 아무런 사전동작도 없이 허공에 무수한 숫자의 속성화살을 만들어냈다.
이전 신인전에서 1학년 마법학과 수석인 미츠이 유타와 싸웠을 때도 그 나이에 보이기 힘든 화력이라 놀랐던 적이 있지만, 지금 그는 미츠이 유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양의 마법을 일시에 해방하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에 담긴 힘은 D랭크까지의 몬스터라면 어렵지 않게 소멸시킬 수준. 과연 신영에서도 마법학과의 최고봉이라 불릴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대련은 강신혁에게 있어 너무나 유리했다. 강신혁은 마도왕과의 상성상 완벽한 우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절반 이상 그의 환룡무에 녹아든 신살검무로 인해 마법을 흩어버리는 요령을 깨달은 강신혁은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강력한 카드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몸에 마력이 없는 탓에 마도왕의 가장 강력한 수인 [마도간섭]에 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도왕이 그를 꺾을 방법은 사실상 한 가지밖에 남지 않는다. 바로 중력마법. 강신혁은 그것만 조심하면 되었다.
‘지금 내 속도와 반사신경만으로는 부족해. 그렇다면…….'
대련장 전체를 부술 기세로 닥쳐오는 수백 개의 마법화살들을 보며 강신혁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다음 순간, 그는 훈련용 목검을 쥔 채 일직선으로 쇄도했다.
“하."
그가 무식하게 돌진해오는 것을 본 마도왕, 나탄 보댕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그는 강신혁이 자신과 백인하의 시합을 보았으리라 생각했다.
백인하 역시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그를 향해 빠르게 돌진하며, 모든 마법화살을 피하고 그가 회심의 수단으로 발동한 중력마법마저 피해내보였으니까. 물론 강신혁이 백인하보다 빠르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영 요령이 없는 그였으나 강신혁이 백인하보다 느리다는 것은 척 보기만해도 알 수 있었다.
“하!”
강신혁은 빠르게 돌진해오는 와중에도 화려하게 검을 휘둘러 자신의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마법화살들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심지어 그에게 직접 닿지 않은 화살들도 근처에서 소멸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검을 다루는 스킬에 뭔가 부가효과가 달려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십 개 이상의 마법화살이 나탄 보댕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강신혁의 등 뒤를 노렸지만, 강신혁은 그것마저도 파악하고는 손쉽게 대처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탄 보댕이 노리던 순간이었다.
‘어디 피해봐라!’
나탄 보댕은 화살들을 쏘아내며 영창하고 있던 마법을 바로 발동했다. 그것은 바닥을 바위 가시로 변화시켜 위로 찌르는 대지 마법으로, 발동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긴 하지만 일단 명중하면 어지간한 몬스터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파괴력 높은 마법이었다.
단 문제가 있다면 마법이 발동하기 전의 전조가 제법 눈에 띠는 탓에 눈썰미가 좋은 이라면 사전에 그것을 파악하고 피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원래 이 마법은 대상을 구속할 방도를 마련해둔 후에 발동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게 아니면, 이 마법을 발동하는 것으로 일부러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고자 할 때!
‘공중으로밖엔 피할 공간이 없을 거다!’
그리고 놈이 공중으로 뜨는 순간이 바로 그의 특기이며 반쯤 고유마법으로조차 취급되는 최상위 마도, 중력마법을 해방할 때! 놈은 꼼짝없이 그것에 걸려 낙하, 가시에 타격 당하게 된다.
그렇다. 나탄 보댕은 마도왕답게 동시에 두 가지의 상위마법을 영창하며 발동할 타이밍을 다르게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굉장한 능력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그 솜씨를 피력할 기회는 없었다.
“핫!”
강신혁이 땅에서 솟구친 가시를 그대로 돌파하며 나탄 보댕에게 질주해왔기 때문이다. 나탄 보댕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파악할 수 없었다.
강신혁에게 마법을 흩어버리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았어도 설마 상위 마도마저 파훼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탓이다.
“미친, 정면돌파하는 거 봐!”
“부서졌다! 마도왕의 그라운드 스파이크가……."
“너무 빨라, 검 휘두르는 것도 안 보이네……!”
물론 강신혁에게도 그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B+랭크의 재생력이 없었다면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법이 발동하는 일순에 한해 모든 영력을 훈련용 목검에 밀어 넣으며, 금안의 환룡의 능력으로 훈련용 목검의 성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동시에 재생력을 활용해 팔근육을 최대한 부풀리며, 완벽한 타이밍을 계산해 검을 내지르면 이 정도 마법을 없애는 것쯤은 이제 그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흐, 욱신욱신하네…… 하지만 괜찮아!’
강신혁이 재차 바닥을 박찼을 땐 이미 나탄 보댕과의 거리가 1미터 가까이로 줄어들어 있었다.
나탄 보댕의 중력마법은 무척 강력하지만 아직 지정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았기에, 이미 마법의 영역에서 벗어난 강신혁을 노리고 다시 좌표를 재조정하기엔 압도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당황한 나탄 보댕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특성 [마도간섭 ]을 극한으로 운용해 강신혁의 체내의 마력을 흩어버리려 했지만, 그 직후 강신혁에게는 마력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큭!? 제기…… 카학!”
- 빡!
나탄 보댕이 마지막 반격 찬스를 놓치는 것과 동시에 강신혁의 목검이 마도왕의 대가리를 쪼갤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나탄 보댕은 항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마법결계를 두르고 있었지만 [그라운드 스파이크]마저 부순 강신혁의 검은 마법결계를 그대로 부수고 들어가 나탄 보댕의 머리통을 강하게 가격했다.
“흐어!”
마도왕이 한심한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는 그 순간, 강신혁은 가차 없이 그를 걷어차 장외로 날렸다.
사실 고의는 아니었고 혹시나 그가 무릎을 꿇는 척하며 추진력을 얻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는지 나가떨어지자마자 깔끔하게 의식을 잃었다.
"......응?"
"으응?"
시작된 지 불과 수십 초도 지나지 않아 끝난 대련에 학생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상대는 마도왕이었다. 신영에서 제일 능력 있는 인재 중의 한 명인 마도왕!
그런데 그런 그가 무엇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아 기절하다니, 혹시 둘 사이에 무슨 뒷말이 오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결말이었다.
“무, 무슨 이런……!”
담당교사 공준표가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대련을 지켜보던 도우진은 언젠가 자신이 처음으로 강신혁에게 졌던 때도 저 교사가 저런 표정을 지었지, 하고 살짝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신혁은 살짝 묘한 표정으로 기절한 나탄 보댕을 바라보고 있어, 미처 장내의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뭐지, 저게 진짜 실력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으음? 무슨 마법을 구사하려는지 훤히 보였었는데……. 특히 중력마법 발동할 때는 마력이 움직이는 게 너무 훤히 보여서 생각하는 걸 모르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는데, 대체.’
두 달간 그로마스에서 두 명의 하이랭커, 그중에서도 뇌제와 함께 머무르면서 마법을 보는 자신의 두 눈이 지나치게 발달했다는 사실을 강신혁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
- 영력이 A+랭크로 성장합니다. 영혼의 근원에 내재된 잠재능력에 자극이 가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론 그가 상대의 움직임과 의도를 읽어내고 보다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지만…… 그쪽은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