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Chapter 16. 멸망한 세계의 스캐빈저 - 3 >
멸망한 인류가 남긴 미완의 술식이 한 명의 대장장이에 의해 비로소 결실을 맺은 바로 그 순간.
이치를 초월한 결집력에 의해 세상 모든 베나딜라이트…… 과거 문명인들은 신에 이르게 하는 금속, 하늘에 닿게 하는 금속이라 하여 극천신철(極天神鐵)이라 불렀던 그 금속이 모두 한 점으로 수렴했다.
세상을 가득 메웠던 황금빛이 사라졌을 때는 이미 그 세상에 베나딜라이트는 남아있지 않았으며, 오직 강신혁의 손에 들린 자두 크기의 자색 금속구슬만이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마도술식을 뛰어난 야금술로 보완하여 완성시킨 끝에, 흡수의 공능을 지닌 마도구 [극천신주(極天神珠)(SS)]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보물에는 아직 많은 가능성이 숨어있으며, 영력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만큼 스스로 영력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으로서도 기능합니다.
- 특성 [금안의 환룡(S)]이 진화의 조건을 하나 충족합니다. 나머지 한 개의 조건을 충족하는 순간 특성이 진화하게 됩니다.
- 야금술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 첫 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었습니다. 야금술 스킬이 B랭크로 성장합니다! 체력이 A랭크로 성장합니다.
- 동기화가 크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20.1%
강신혁에게 걸려있던 부유마법이 해제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신혁의 손에 들려있던 극천신주가 부유마법을 구성하고 있던 마력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읏차."
수십 미터 상공에 떠 있었지만 착지는 사뿐했다. 강신혁은 아까의 불안정한 덩어리와 같은 물질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매끄러운 금속 구슬을 바라보며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이것이 마법을 해제시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은 아까 스왈로잉 펑거스가 보인 능력과 비슷하지 않던가......?
그런 생각으로 극천신주를 빤히 노려보고 있자니 눈앞으로 가이아 시스템의 아이템 정보가 떠올랐다.
[극천신주(極天神珠)]
[SS랭크]
[특수능력-흡수, 생성]
*흡수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힘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아직 그 한계는 명백하여, 보다 많은 양의 에너지, 고차원의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선 아이템이 보다 성장할 필요가 있다.
*생성 - 자체적으로 영력을 생성해 저장하며, 에너지를 흡수할 경우 보다 많은 양의 영력을 생성해낸다.
“그래도 이건 내가 만들었다는 취급을 해주는구나…… 그런데, 이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벗어난 물건이 탄생했다. 분명 이것을 대상으로 야금술을 시도하며 무턱대고 막연한 ‘강함’을 상상하긴 했지만…….
분명 탄생한 물건은 입이 떡 벌어지도록 어마어마한 보물이었다. 야금술 자체는 대성공이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의도를 담아내지는 못했다. 보다 정확히는 담아낼 틈조차 없었다.
신풍의 보주 때와는 달리 자신이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물건임에도, 여전히 그는 제작과정에서 휘둘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그래도.”
인상을 찡그리며 야금술에 대한 생각을 하던 강신혁은, 그러나 어느 순간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아무 의미도 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이걸로 됐으려나.”
영력으로 베나딜라이트 입자를 감싸며 멸망한 인류의 근원과, 그 욕망과 맞닿았던 순간을 강신혁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자신이, 그것에 지지 않는 바람과 욕망을 담아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게 최선이었어. 그렇다면 후회할 필요 없잖아.’
애초에 어떻게 야금술을 할 때마다 모두 자신의 뜻대로 물건을 찍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야 장인이 아니라 공장인 것을.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이다.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담아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완성되기도 전에 결과를 정해놓을 수 있겠는가?
물건을 만들 때, 무엇이 완성될지 바랄 수는 있으나 감히 예지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두 번의 대장일을 하며 강신혁은 그것을 어설프게나마 깨달았다.
‘그 검을 두고 실망할 필요도 없었던 건데. 그 전에 몇 번 기대대로 물건을 만들었던 걸 가지고 내가 무슨 대장장이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떠 있었던 거지. 처음은 다 그런 법인 건데…….'
이나희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검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는가. 없었다.
클로를 만들 셈이었던 것이 단말로 완성되었지만, 그 덕분에 이 세상의 진실을 여럿 깨닫고, 신은아가 마도술식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줄 수 있었다.
자신의 의도를 담아낼 틈도 없이 막연한 강함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이 구슬은, 그야 물론 자신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질감 넘치는 물건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강함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멋진 물건이었다.
- 회원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이제 좀 홀가분해졌어요.”
물건의 완성 이후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결국 다 어딘가에 쓰이게 마련이니까.
그러니 대장장이는 대장장이답게 그저 좋은 물건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면, 그 결과물이 어떻든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일은 없다.
결론이 났다. 강신혁은 자신이 낸 결론에 제법 뿌듯해졌다.
“모루는 진즉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었을까요.”
- 글쎄요, 오히려 그 부분에 한해선 지금의 회원님보다 훨씬 깨달음이 늦지 않았을까요. 그 증거로 지금 회원님의 동화율이 20%를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원님께선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그게 무슨…… 아아.”
동기화란 강신혁의 전생의 모든 것을 지금 그에게로 끌어와 일치시키는 작업이다. 만약 모루가 일찍이 자신이 만드는 물건에 대한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었다면, 지금 강신혁이 고민할 일도 없었다는 얘기다.
- 전생과 현생의 회원님은 어차피 같은 존재이니만큼 그 둘을 구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회원님은 지금 현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현생에서 겪는 일들로 인해 앞으로도 변해갈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를 참고하되, 너무 그것을 의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하,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충고네요.”
-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회원님이라면 이것도 감당하실 수 있겠지요. 관리자는 감개무량합니다. 3,000HP 보너스!
“응? 무슨 일이길래 보너스만도 3천HP를……."
라고 말하다가 강신혁도 감을 잡았다. 바로 얼마 전부터 관리자가 동화율 20%에 대해 무엇인가 얘기를 했었단 사실을.
그것은 뭘 준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시작되었다.
- VIP 2차 해방이 진행됩니다. 1억 HP가 해금됩니다! VIP 회원 혜택이 보다 늘어나며, 차원 퀘스트 보상이 증가합니다! 마이 룸의 시간흐름이 조정됩니다!
- 전생의 스킬 중 하나를 재각성합니다. 일반 스킬 [감정]을 익혔습니다. 동화율과 야금술 스킬의 영향으로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B+랭크로 성장합니다!
강신혁은 생각했다.
어차피 감정 스킬을 각성할 거였으면 저번에 사라고 했던 건 대체 뭐야!
@@@
멸망한 인류가 남긴 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척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스왈로잉 펑거스는 오직 살아 움직이는 생물만을 습격했던 탓에, 마법진이 새겨진 건물들에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를 초월하는 문명을 바탕으로 건설된 형이상학적인 디자인의 건물들, 거리 군데군데에 장식된 의미를 알 수 없는 물건들과 작은 마법진들. 다만 너무나 멀쩡한 도시 안에 생명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소름끼쳤다.
“엄청난 자료네……! 이래서 다들 빨리 VIP가 되라고 하는 거였구나.”
“은아야, 여기 본 뜰 거야! 도와줘!”
“응!”
강신혁이 안전한 것을 확인한 후, 마도를 다루는 두 여자는 신이 나서는 그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 마치 점원이 없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처럼 마음껏 활개를 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저는 다른 곳을 좀 둘러볼게요.”
“그럼 조금 있다 저기 종루 밑에서 보자!”
“네."
마도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자신이 있어봤자 얻을 수 있는 것도 없기에, 강신혁은 두 여자에게 손을 흔들어주곤 둘에게서 물러나왔다. 사실 그도 할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1억 HP…… 이걸 어디에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요.”
- 관리자가 추천을 드리자면.
실은 관리자가 이 떡밥을 바로 물 거라고 진즉 예측하고 있었다.
- 레지스트 포이즌 스킬 스톤을 구입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관리자님, 그거 저번에도 가장 먼저 추천했던 건데.”
- 듣고 놀라지 마십시오. 평균 판매 가격 1억5천만HP의 히어로 유니버스 최고 인기 상품 레지스트 포이즌(SS) 스킬 스톤이 지금 무려!
"비싸!"
그렇다는 건 신은아도 클레어도 1억5천만HP씩 주고 레지스트 포이즌(SS)을 사서 익혔단 말인가! 스킬 스톤이라서 익히지 못하고 마석만 낭비할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 VIP 회원 한정가격으로 7천만HP에 판매 중!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오직 지금만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여전히 입이 떡 벌어지게 비쌌지만 처음 들었던 액수에 비해선 한결 현실적인 수준까지 떨어졌다.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관리자에게 질문했다.
“판매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나요?”
- 아무리 판매대상이 마음에 안 드는 여자여도 회원님께 도움을 주겠다는 것마저 거절할 수는 없는 이 관리자를 용서하세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강신혁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끝내 관리자가 추천하는 대로 레지스트 포이즌(SS) 스킬 스톤을 구매했다.
판매자는 츠쿠요였다. 은아가 아니면 츠쿠요일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측하고 있었기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
“이 사람은 절 싫어하는 걸까요 좋아하는 걸까요?”
- 전생과 현생도 구분하지 못하는 얼간이 같은 두 불여우 중 하나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저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이용하고 헌신짝처럼 버리면 됩니다.
나머지 하나가 누군지는 듣지 않기로 했다. 지나치게 과격한 관리자의 뒷말도 무시했다. 로로가 자신의 친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를르슈도 그렇게 매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 이전에 레지스트 포이즌(B)을 구입하시라고 했던 것은, 물론 그 당시 회원님께 돈이 얼마 없었고 독의 내성을 갖추는 것이 꼭 필요하기도 했지만, 하위 랭크를 익혀두는 것으로 상위 랭크 스킬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킬 스톤이 거부반응을 일으킬 확률이 비약적으로 낮아지는 것이죠.
“과연. 헛돈 썼다고 후회하고 있을 때 그 얘기를 들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
-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덜었겠다, 강신혁은 거침없이 스킬 스톤을 부수었다. 그 안에 깃들어 있던 눈이 부실 정도로 짙은 녹빛의 마력이(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극천신주는 인벤토리 안에 넣어두었다.) 성공적으로 그에게 흡수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내성 스킬 [레지스트 포이즌(SS)]을 익혔습니다. [레지스트 포이즌(B)]의 숙련도를 승계합니다. 뛰어난 재생력의 영향으로 [레지스트 포이즌(SS)]의 희귀도가 상승해 [레지스트 포이즌(SS+)]이 되었습니다. [레지스트 포이즌(SS+)]의 숙련도가 B랭크로 성장합니다.
“엇."
- 앗.
방금 명백히 관리자도 놀라워했다. 일부러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면 조금 수상쩍지만.
- SS랭크란 현계한도라고 하는, 필멸자가 도달할 수 있는 일반적인 한계선입니다. 재생력 덕분이라고는 하나 희귀도가 SS랭크를 초과한 것은 지극히 놀라운 일입니다.
“다른 회원들은 어때요?”
-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 중에는 필멸자가 오히려 적습니다.
괜히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지금 저기 멸망한 도시를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는 흑발의 아가씨도 SSS랭크 특성을 가지고 있었지.
“아무튼 기분 좋은 일이네요. 이 기세를 몰아서 다른 스킬도 익히고 싶은데. 혹시 이전에 익힌 윈드 마스터리 같은 사대속성 마스터리는 없나요?”
- 회원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속성의 힘을 다루게 해주는 스킬은 희귀도를 불문하고 무척 희귀하며 원하는 이도 무척 많습니다. 대개 매물이 나온 순간 판매되지만, 지금 회원님께서 머무르시는 세상의 시간 흐름이 무척 느린 덕에…….
“있구나!”
- 파이어 마스터리(C+) 스킬 스톤이 2억6천만 HP에 올라와 있습니다. 회원님이시라면 VIP 특별 할인가로 2억1천만 HP에…….
“때려칩시다.”
아무리 사대속성 마스터리가 귀하다고 해도 그렇지, 희귀도 C+랭크 주제에 SS랭크의 레지스트 포이즌보다도 비싼 가격이라니!
“잠깐만, 이거 두 사람한테라도 익히게 하면.”
- 그녀들은 익히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입니다.
“그야 그렇겠죠……!”
- 그리고 방금 팔렸습니다.
이젠 태클을 거는 것조차 지쳤다. 강신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관리자님이 추천하는 아이템은요?”
-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2차 해방이 진행되어 거래 게시판에서 스테이터스 성장 포션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게 있었죠.”
더불어 2차 해방이 되면 로그인 보너스로 성장속도 버프가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고 했었다. 스테이터스 성장 포션의 효과가 성장속도 버프와 중첩이 되니 수련 효율도 극도로 높아진다고 했던가.
- 하루 동안 성장속도를 30% 증가시켜주는 하급 포션의 가격이 30만 HP입니다. 포션 한 병만 마시면 모든 스테이터스의 성장속도가 증폭되니 절대 놓치지 마세요.
“앞으로 하루에 30만 HP씩 소모하면서 살라고요?”
- 대신 다른 이보다 30%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VIP 할인가가 적용되기에 24만 HP입니다!
레지스트 포이즌을 구매하고 남은 HP가 2차 해방 전에 모은 것까지 합쳐 대략 3,300만 HP. 강신혁은 고민했지만, 우선 10% 추가 할인이 적용되는 10개 묶음을 하나 사두기로 했다.
- 210만 HP를 지불하여 성장 증폭 포션(하급)을 10병 구입했습니다. 지금 드시겠습니까?
“아뇨, 여기에 있을 땐 수련보다는 대장일을 하려고…… 음?”
자신의 발을 뭔가 잡아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강신혁이 바닥을 내려다보자, 그곳에 있던 새카맣고 작은 생물체와 눈이 마주쳤다.
“저어기…… 제 부탁이 아직인데요.”
땅을 뚫고 나온 지저왕이, 발톱도 없으면서 억지로 땅을 파헤치는 바람에 피가 터진 앞발로 강신혁의 바지 자락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지상은 너무 밝아서…… 왕국을 새로 파야 될 것 같거든요. 이제 제 발톱을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후.”
강신혁은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웃으며 대꾸했다.
“이번에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