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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 Chapter 14. 대야장의 손녀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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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도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만 모이는 곳이 신영이라지만 그런 신영에서도 가끔은 모든 이의 이목을 독차지하는 압도적인 천재가 나오곤 한다.

유독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 신영의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이번 재학생들 가운데에서도 최근까지 가장 많은 주목을 받던 이는 바로 백인하였다.

1학년의 나이로 투왕전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기사왕 더글러스 페인을 꺾고 4강에 진출.

비록 마도왕을 만나 지기는 했지만 대진운이 조금만 좋았더라면 투왕도 불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미 학생들도 교사들도 그를 다른 학생과는 다른 차원에 놓고 생각하고 있었다.

“야, 강신혁 대박 아니냐.”

“저번 주말?”

“너도 들었냐.”

그런데 요즘은 그 대신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신인왕 강신혁이었다. 신인왕이다 뭐다 화제를 몰고 다니던 그인데, 더구나 이번엔 그와 엮인 이까지 있었으니.

“비룡기사단에 있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비룡기사단 단장 바뀐 거? 그럴 줄 알았다. 투왕이 기사왕보다 급이 높은 건 당연한 거지.”

“근데 그것뿐만이 아니래. 같은 날에 강신혁도 단원 한 명 끌어내리고 입단했잖아.”

“어……?”

“혹시……?”

신영은 전교생 기숙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주말 내내 남녀 기숙사 전체로 소문이 퍼졌고, 그들이 등교하자 서로 얘기를 통해 소문을 더욱 부풀리기 시작했다.

요즘 떠오르는 핫한 신인 강신혁에, 투왕이 되며 주목도가 높아져 있던 엘레노어 R. 알제. 그 두 사람이 한데 엮이는 이야기였으니 사람들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그럼 그 둘 사이에 뭐 있는 거 아냐?”

“내가 저번에 카페에서도 둘이 같이 있는 거 봤다니까. 그 여자 원래 다른 남자랑은 말도 한 마디 안 섞는데.”

“야, 근데 강신혁은 그 뇌제가 찜했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건 대체……."

“아무리 뇌제가 예뻐도 솔직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잖아. 투왕이랑은 한 살 차이고. 나 같아도 투왕을 선택하지.”

“모르는 소리하네. 뇌제가 마력이 얼만데. 지금 그 외모로 족히 수십 년은 버틸 텐데 당연히 뇌제지.”

“투왕도 엄청 강해질 텐데 마찬가지지.”

강신혁은 주위에서 숨길 생각도 없이 떠들어대는 인간들을 한 번씩 째려보며 등교했다. 그러나 반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원래 한창 나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쌈박질하고 연애가 아닌가. 그 두 가지가 엮인 소문이 퍼지고 있었으니 자제를 할 리가 없었다.

“배신자.”

“피곤하니까 하지 마라.”

백인하의 인사를 대충 받아주며 자리에 앉았다. 떠들고 있는 놈들을 일일이 붙잡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원하는 대로 떠들도록 놔두기로 했다.

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전후 사정을 모조리 알고 있는 카렌마저 그들 사이에 섞여 깔깔대고 있다는 것이다.

“카렌 저건 나중에 죽었다.”

“카렌 스트링필드에서 뇌제로, 뇌제에서 투왕으로 갈아타다니 시녹이 너도 내 친구지만 진짜 대단하다.”

“응, 이제부턴 친구 아냐.”

“아니 맞는 말이잖아! 같은 날에 네가 단원 되고 투왕이 단장 된 건데 솔직히 뭐가 있다고 밖엔 생각할 수가 없잖아!”

“아니라고. 나중에 말해줄 테니까 일단 닥쳐. 아, 이제 친구 아니니까 말해줄 필요도 없겠구나.”

“내가 잘못했다.”

그러나 유독 소란스러웠던 월요일 오전은 담임 시아라 베르트랑에 의해 참혹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곧 기말고사가 시작됩니다.”

이터널 블리자드를 뛰어넘는 수준의 언어 폭격에 강신혁의 연애 문제로 떠들던 모든 학생들의 안색이 일시에 창백해졌다.

강신혁이 투왕과 핑크빛 무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소문도, 그가 카렌과 도우진에 이어 1학년 C클래스에서만 세 명째 비룡기사단원이 되었다는 얘기도 그것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쌤, 체육대회 방금 끝난 것 같은데 왜 벌써 기말……."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저희 아직 여유 있잖아요 그쵸."

“신영의 기말고사는 2주에 걸쳐 진행됩니다. 일류 초인이 되기 위해선 필기과목의 중요성도 잊어선 안 됩니다. 그 외에 시험대체과제도 미리 준비해놓는 것이 좋겠지요. 더불어 실기 시험이 존재합니다. 이번에 치른 전투 실습을 강화시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앗, 아아앗……!”

지금 시기는 6월 중순. 그리고 시험은 6월 말부터 시작되어 7월 초중순에 막을 내린다. 정말로 시험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시험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수록 졸업생 랭킹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신영의 졸업생 랭킹은 그 후의 초인으로서의 삶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들 떠들고 놀 시간이 없을 거예요.”

“끝났다. 저번 주가 마지막 휴식이었는데 헌팅도 못하고 사내새끼들이랑 농구만 했잖아……!”

“야, 필기는 그렇다 쳐도 실기는 어쩌냐? 전투 실습도 힘들었는데 그게 더 강화라니.”

교실이 순식간에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시아라 베르트랑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시험 일정을 고지하고는(그러나 사실 모든 학생이 일정을 미리 알고는 있었다.) 조회를 마쳤다.

“졸업생 랭킹, 그런 것도 있었지……."

“뭐 까놓고 말해 진짜 우수한 놈들은 랭킹으로 증명할 필요도 없이 미리 상위권 길드에 자리가 예약되어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소릴 하는구나.”

아마도 그건 백인하 본인 얘기겠지. 어쩌면 그는 자리가 예약된 수준이 아니라 입학 이전부터 이미 미래의 거처가 결정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주위에서 하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그랬다.

“시녹이 너도 마찬가지잖아. 협회 들어갈 거 아냐?”

“아…… 음.”

정확히 말하자면 위장신분이긴 하지만 이미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걸 말해주면 위장신분을 노출하는 셈이니 할 수 없고. 그는 대충 얼버무렸다.

“글쎄, 아직은 아냐 좀 보고 ”

주로 뇌제의 존재 때문에. 그녀가 없었다면 비교적 고민 없이 협회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하긴 넌 만성(故成) 타입이니까. 졸업할 때쯤 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그럼 넌 조숙 타입이냐?”

“당연히 나도 만성 타입이지. 아직 내 성장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어.”

지금 시점에서 이미 괴물인 주제에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백인하의 모습에 강신혁은 그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만약 자신이 백인하를 따라잡는다 해도 안심하고 쉴 여유는 없을듯했다.

@@@

시험기간이 되었다고 교사들이 학생들을 덜 굴렸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필기과목은 필기과목대로, 실기과목은 실기과목대로 지금이야말로 근성을 보일 때라며 학생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 정말 누구 하나 실려 갈 것 같은데 실려 가지 않는 것이 그렇게 빡칠 수가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들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학기 초만 해도 수업이 끝나면 초인상가나 운유관에 놀러 가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다들 놀러나갈 여유가 있으면 죽은 듯이 쉬었고, 체력이 회복되면 다른 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수련하고 공부에 매달렸다. 비로소 세계최고의 교육기관에 다니는 학생들처럼 보였다.

“그런데 넌 여유가 있어 보이네.”

아티팩트 작업을 시작한 지 다섯째 되는 날, 즉 목요일. 처음 만났던 날과 비교하면 조금 피로해 보이는 얼굴로 이나희가 그런 말을 했다.

강신혁은 교복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 회복력이 남다르거든요.”

"난 아티팩트까지 사용해가며 버티는데도 힘들어죽겠는데…… 게다가 넌 기사학과잖아. 몸으로 구르는 것도 엄청 많을 텐데 어떻게?”

“회복력이 남다르다니까요?”

농담이 아니다. 이레귤러 게이트에서의 사투 끝에 재생력 B랭크가 된 강신혁의 신체회복력은 일반적인 초인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 되었다.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뿐만이 아니라 지치고 힘든 육신의 피로를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능력 덕에 그는 아무리 힘든 훈련을 소화해도 조금 쉴 시간만 주어지면 금세 쌩쌩해졌다.

교사들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유독 그를 많이 괴롭혔지만(백인하까지 세트로 묶어서) 그럼에도 그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성장을 가속시킬 뿐.

강신혁은 재생력이야말로 자신의 신체 스테이터스를 성장시키는 데에 최적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1학기가 끝나기 전에 모든 스테이터스가 -가 떨어진 진정한 A랭크에 이를지도 몰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 정도로 뛰어난 야금술의 재능이 있으면 신체능력은 좀 떨어져야 되는 거 아냐?”

“선배님은 칭찬을 되게 어렵게 하시네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작업 준비를 마친 강신혁이 먼저 공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나희는 분한 마음에 바닥을 구르며 그 뒤를 따랐다.

재킷은 강신혁과 마찬가지로 벗어던지고, 공방 안은 더우니 조끼까지 벗고, 셔츠도 버튼 세 개를 풀어 젖힌 차림이었다.

속옷이 대놓고 보였다. 가슴골 사이에서 반짝이는 목걸이가 괜히 시선을 집중시켰다. 더구나 그녀의 가슴은 클레어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풍만하다보니……. 강신혁이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번에 팬티도 그렇고, 선배님은 혹시 제가 남자로 안 보이세요?”

“너 바보야? 굳이 그런 말 하지 말고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며 조용히 감상하면 되잖아.”

“감상하고 있으면 작업을 망치잖아요.”

강신혁은 투덜거리며 망치와 집게를 들었다. 일단 작업에 돌입하고 나면 눈앞에서 가슴이 흔들리건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어내건 신경 쓰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후우……!”

“……너야말로 날 여자로 안 보는 것 같은데?”

곧장 작업에 돌입하는 강신혁의 모습에 이나희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지만 이미 그의 귀에는 그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완성되어가는 검과 마주하고 있는 강신혁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만 같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이나희의 눈썹을 꿈틀거렸다. 물론 그가 봐주길 원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열 받는다. 과연, 아까 강신혁이 짓던 표정에는 그런 오묘한 감정이 담겨있었는가. 그녀는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좋을 때다.”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이만우가 흡족하게 중얼거렸다. 이나희는 말없이 손으로 총을 만들어 검지 끝에 마나를 모으더니 그에게 쏘아냈다. 미니 매직미사일로 훌륭히 할아버지를 격추시킨 그녀는 늦지 않게 작업에 합류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흘러 작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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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 위에 한 자루의 바스타드 소드가 놓여 있었다. 은색을 띠고 있는 마법금속 케나이언으로 빚어낸 검은 묵직한 기세와 함께 은은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니, 분명 [방어막 생성]이라는 특수능력과 함께 추가로 [착용자 방어력 증가]라는 패시브 능력까지 달려 있었다. 단언컨대 B등급 아티팩트 중에서도 최상위에 랭크될 법한 아티팩트였다.

“정말…… 단번에 성공했네.”

“……그러게요. 그래서 이건 외발인가요, 두발인가요?”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나 혼자였으면 특수능력을 두 개 띄우지는 못했어.”

“그런가요.”

모두 강신혁의 첫 시도였다. 여태껏 그가 만든 모든 무구는 강화 계열이든 부여 계열이든 무기의 본 목적에 충실한 특성을 담고 있었으나, 이번엔 굳이 방어 기능을 첨부한 검을 만드는 데 도전했다.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고, 이나희에게 맞추어 작업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성공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B랭크라니, 초인상가에도 쉬이 출품되지 않는 고급품이니까. 팔려고 마음먹으면 수십억은 기본. 이것으로 경연에서 대상을 타지 못 한다면 오히려 경악할 수준이다. 랭크만 놓고 보면 신살검과 동급이지 않은가.

물론 실제로는 신살검보다 훨씬 격이 딸리는 수준일 테지만, 명품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적어도 몇 번은 실패할 줄 알았어. 아티팩트라는 게 원래 만든다고 바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 분명 똑같은 설계도를 가지고 제작해도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는데, 그런데…… 진짜.”

이나희는 실로 기이한 표정으로 실드 가디언의 장검의 검신을 쓸었다.

자신이 직접 구상하고 새긴 마법문자의 음각을 매만지고 있자니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기여한 작품이 B랭크로 완성되었다. 그 실감이 비로소 그녀를 덮쳐왔다.

그저 자신이 작품의 완성에 일조한 것이 기쁘다는 마음이 절반, 온전히 자신만의 능력으로 이뤄내지 못한 것이 분하다는 마음이 절반.

강신혁의 능력에 대한 질투는…… 그건 며칠 동안 같이 작업하는 과정에서 이미 털어낸 지 오래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과 조우한 경험은,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선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

“이걸 학생들이 만들어냈다고 하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응? 너,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아뇨."

검을 보며 침묵하고 있던 강신혁은 그녀의 질문을 받고서야 나직이 고개를 젓고는 몸을 일으켰다.

날을 가는 마무리 작업을 마친 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만우에게 그것을 건넸다.

“전 피곤해서 먼저 가볼게요, 선생님.”

“피곤할 만하지. 가봐라.”

“예. 선배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응? 그렇긴 한데 너……."

강신혁은 이나희가 뭐라 말하려는 것도 듣지 않고 재킷과 가방을 챙겨 부실을 빠져나갔다.

뭔가 이상하다 여긴 이나희는 그를 쫓아나가려다 말고 지금 자신의 모습을 깨닫곤 멈추었다. 셔츠 차림에 땀으로 푹 젖어있어 도저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혀를 찬 후 마법을 시전해 몸과 옷의 습기를 제거하며 뒤를 돌아보니, 이만우가 바스타드 소드를 쓰다듬으며 강신혁과 비슷하게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쟤 왜 저러는지 알아, 할아버지?”

“자존심이 상한 거지.”

이만우는 익히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대꾸했다. 이나희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자존심이 상해? 그 나이에 B랭크 아티팩트를 만들어놓고? 대체 뭐에 자존심이 상한 건데?”

“나이도 랭크도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전력을 쏟아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그것이 중요한 거지.”

“그러니까 지금…… 지금 이게 제 실력을 못 낸 거라고? 제 실력을 못 낸 게 분해서 저렇게 뛰쳐나간 거라고?”

이만우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내려놓았다.

“너와의 합작을 제안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저 녀석은 자신을 위한 무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거든.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만드는 것을 모두 마음을 다해 만들 수 있었어.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지. 설계 작업이 먼저 들어갔고, 너와 의견을 조율해야 했고, 경연에 내는 작품이라는 점을 의식해야 했어. 그런 많은 생각들이 충돌한 끝에 결국…… 자신의 뜻을 온전히 담는데 실패한 거다.”

“투덜거리지도 않고 내 뜻에 잘 맞춰준다고는 생각했는데.”

“너와의 합작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검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능력에 도전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녀석은 전부 너에게 맞춘 거다. 이번 작업의 중심을 네게 맞췄어.”

“설마 날 배려한…… 아니, 그게 아니구나. 나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도를 했던 거구나.”

그제야 전모를 파악한 이나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만우는 그 옆에서 혼자 웃고 있었다.

“본인도 스스로의 방식이 마냥 좋지 않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단 증거지. 하지만 마냥 새롭기만 해도 안 된다는 걸 오늘 깨달았으니,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수를 짜내겠지. 그것에 성공하면 아마 실력이 또 한 차례 엄청나게 늘 테고…… 참 기대되는구나.”

“날 그 녀석의 강화 제물로 써먹은 거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고 그러냐. 너도 신혁이를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을 텐데.”

“열등감밖에 못 느꼈거든!?”

이나희가 버럭 외쳤다. 그러나 이만우는 여전히 그녀의 속을 다 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좋은 인연이 될 거다. 잘해봐라. 네가 그렇게 바라마지않는 사업의 재건도 가능하지 않겠냐.”

“그 말을 할아버지한테 듣고 싶진 않거든……?”

이나희는 성질을 박박 내며 자신의 짐을 챙겼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젖힌 그녀는, 그러나 그대로 뛰쳐나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탈퇴 취소해둬! 그 자식 얼마나 대단한지 옆에서 한 번 두고 봐야겠으니까!”

“킥."

문이 닫혔다. 홀로 남은 이만우는 빤히 보이는 손녀의 행동에 피식 웃어버리곤, 검을 챙겨 자신도 방을 나섰다.

강신혁에게는 실패작일지 몰라도, 이 검은 이번 경연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기적 그 자체였으니까.

@@@

그 시각, 분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강신혁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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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살검이 품고 있던 기억의 일부를 열람합니다.

“아니 이게 왜 이제, 으아아아악!”

언제나처럼 기억의 흐름에 휩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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