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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 Chapter 14. 대야장의 손녀 - 3 >

두 사람, 아니 교사인 이만우까지 더해 셋은 본격적으로 인챈트와 야금술의 조합…… 즉 [마나 크래프트 - 블랙스미스]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인챈트에 두 가지 방식이 있어. 제작과 부여. 이미 완성된 물건에 인챈트를 새기는 것을 부여, 제작 작업부터 치밀하게 회로를 꾸며 인챈트를 새기는 것을 제작이라고 하지. 당연하지만 후자 쪽이 효과도 훌륭하고 작업 자체도 어려워.”

“회로를 꾸민다…… 즉 설계도가 필요해지나요?”

“정말로 호흡이 맞는 두 사람이라면 설계도까진 필요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아니면 야금술과 인챈트 능력을 동시에 지닌 한 사람이 작업을 한다든가.”

이나희는 그 부분에서 어째서인가 자신의 할아버지를 째려보았다. 강신혁도 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용의 증표를 만들어낸 이가 이만우라지 않은가. 그것은 마나 크래프트로 제작된 물건이고, 제작 당시 따로 그를 도와준 이가 없다면 이만우는 야금술의 능력이 아니라 인챈트 능력으로 아티팩트를 만들어냈다는 얘기가 된다.

강신혁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전 처음 이만우 선생님이 혼자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야금술만으로 아티팩트를 만들어내신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사실이다. 야금술만으로도 가능은 해. 단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인챈트라는 능력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고, 인챈트 없이도 그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제작 과정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도 효과는 인챈트에 비해 떨어지지만.”

당시엔 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강신혁의 눈이 가늘어지자 대야장이라 불리는 노인은 허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네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기도 했다. 혹시나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인챈트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함부로 거기에 대해 얘기할 수 없었지. 나희 녀석의 반응을 보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만.”

“나이 드신 분이라 그런지 표정관리 능력이 상당하시네요, 선생님.”

“하하, 그건 너도 만만치 않다.”

그때 이나희가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쳤다.

“할아버지가 사기꾼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더 얘기할 것 없어. 지금 중요한 건 우리 작품이야.”

“그랬죠.”

혼자서 작업을 할 땐 작업을 하면서 뭘 만들지 생각해도 충분했다. 비록 동기화는 완전하지 않아도 망치를 붙들고 모루 앞에 서는 순간에는 모루의 본능이 강해져, 본능적으로 그의 몸을 이끌어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모든 것을 미리 정해야 한다. 모루였던 시절에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 전생의 회원님께선 올 크래프트의 영역에 이르러 있었으니 인챈터 따위가 끼어들어도 방해만 될 뿐이었겠죠.

‘올 크래프트라는 게 가죽제작뿐만 아니라 인챈트 같은 것까지 다 포함하는 거였어요? 그럼 모루였던 시절 만들어낸 물건들은 따로 인챈트를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네요.’

- 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물건의 가능성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회원님께서도 머지않은 언젠가 그렇게 되실 겁니다.

실제로 인챈터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 증거라나 뭐라나.

강신혁은 언제나처럼 관리자의 칭찬을 대충 넘기고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이나희가 A3용지를 펴놓고 있었다.

"뭘로 만들지 부터 정하고 싶어. 물론 네가 만든 단창도 훌륭하지만, 혹시 다른 물건에 비해 유독 단창 제작능력이 뛰어나다든가……."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럼 됐어. 우선 내 의견부터 말하자면, 난 검을 만들고 싶어. 능력자들 사이에선 가장 대중적인 무기이기도 하고 인챈트 작업도 쉬우니까.”

“검이라.”

그가 망치를 잡고 처음으로 만든 것도 검이었다. 모루 역시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강신혁은 열의로 불타오르는 이나희의 모습을 보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죠.”

“좋아, 그 다음은 내용물이지. 검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이냐. 즉 능력의 부여.”

“아아.”

강신혁은 용의 증표를 떠올리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물건은 처음부터 테이밍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안장을 만들다 보니 우연히 그런 아티팩트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테이밍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

“부여하고자 하는 능력에 따라 모습이 많이 달라지겠네요.”

“검 계열 아티팩트도 크게 두 종류로 갈려. 첫째는 검 자체의 절삭력이나 착용자의 신체능력을 끌어올려주는 강화 계열. 둘째는 검수로서의 단점을 타파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주는 부여 계열. 불꽃을 뿜어내거나, 착용자의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만들어내는 검 같은 게 여기 속해.”

강신혁은 그 부분에서 잠시 생각했다. 여태껏 자신이 만든 아티팩트들은 어땠을까. 날린 투창을 분열하거나 하는 능력은 아마도 부여에 속할 것이고, 관통력이나 파괴력을 증가시켜주는 능력은 강화에 속하겠지.

‘하지만 지금 이 사람의 도움을 받아 만들 수 있는 거라면…….'

“부여 계열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좋아.”

인챈트란 무구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새기는 작업. 테이밍 능력을 지닌 안장을 분석하면서도 느꼈지만 지금 강신혁에게 필요한 것은 물건이 품을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배우는 일이었다. 막말로 단순한 강화라면 금안의 환룡 특성을 지닌 자신이 이나희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못하진 않으리라.

강신혁의 마음가짐을 알아차린 것이겠지, 이나희가 입 꼬리를 끌어올려 만족스레 웃었다. 여태껏 만난 여자들 덕에 보는 눈만은 높아진 강신혁도 움찔할 만큼 멋들어진 표정이었다.

“부여라고 해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뭐가 좋을까?”

“여태껏 만들어보신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흐음…… 그렇지, 무기에 부여하는 능력 중에서 가장 무난한 건 마나를 소모해 방어막을 만들어 내거나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이야. 그런 만큼 인챈트 회로에 참고할 자료도 많고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높기도 해.”

“그건 느낌이 잘 안 오네요.”

강신혁은 솔직하게 대꾸했다. 그가 여태껏 제작한 아티팩트는 설령 부여 계열에 속해있다고 해도 본질을 따지면 그 무구가 강한 위력을 내게 만드는 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전생의 모루도 비슷해서, 그 무구의 근본적인 역할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은 무구만 만들곤 했던 것이다. 히로익 실드의 파괴빔도 결국은 실드에 주어지는 데미지를 다르게 치환했을 뿐, 본 목적은 방어였다.

“음…… 감이 안오는 건가? 좋아, 마침 잘 됐네.”

강신혁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이나희가 문득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그것을 받아들고 보니, 겉으로는 평범한 은반지처럼 보이는데 반지 안쪽으로는 빽빽이 알아들을 수 없는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아티팩트인가요?”

“내가 만든 거야. 회복 능력을 갖고 있어. 이걸로 내 실력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겠지.”

마침 잘 됐다는 것은 강신혁에게 자신의 아티팩트 제작 능력을 확인시키기에 마침 좋은 기회라는 얘기였다. 정작 강신혁 본인은 이만우가 소개해준 시점에서 이미 그녀의 능력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지만…….

그는 생각을 접어두고 반지의 겉면을 살폈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금속 세공 능력도 뛰어나시네요.”

“그건, 별 것 아냐. 인챈트만 보면 돼.”

“아, 네.”

어라, 어째 돌아오는 대답이 조금 차가웠다. 딱히 말실수는 하지 않았을 터인데……. 강신혁이 이만우를 힐끗하니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자신의 손녀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도 우선은 반지를 살피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영력을 끌어올려 반지에 주입했다. 반지의 근원을 찾아 소통을 시도했다. 만든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여태껏 접해온 아티팩트들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수준이 높은 물건은 아니었기에 제법 쉽게 해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아마 B-랭크…… 아니, C+랭크 정도일까.’

물건의 기원, 마나의 총량, 그것을 종합한 물건의 의지의 크기, 그런 것들을 가늠하면 대충 물건의 격이 감이 왔다. C+랭크라면 현역 초인들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물건. 그녀의 능력의 증명은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영력을 좀 더 뻗어내 아티팩트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분석했다. 반지의 구석구석까지 뻗어간 영력이 그 기원을 읽어내고, 의지에 따라 발동하는 마나회로의 흐름을 스캔했다.

그 안에 신살검이나 히로익 실드가 그러했듯 자아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확고한 의지는 없었지만 그것은 아마 마나 기반의 아티팩트이기에 그런 것이겠지. 용의 증표도 이와 비슷했다.

거기에…… 회복 능력이라서 그런가, 아티팩트의 내부 구조에는 어딘가 강신혁이 지니고 있는 특수능력인 재생력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도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재생력을 주입하고 금안의 환룡 특성을 발동해 회복능력을 영구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을지도 - 까지 생각한 시점에서 그는 두 눈을 떴다.

“잘 봤습니다.”

"......."

이나희는 말없이 자신의 반지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이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손을 들어 강신혁의 눈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눈 그거 뭐야? 제작계 특성이야?”

“네? 아, 어라.”

그 말을 듣고 확인해보니 정말이지 어느덧 그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진화한 특성에 적응하다보니 어느덧 능력을 발동할까 잠시 고민한 것만으로도 즉각 반응이 나타나게 된 모양이었다. 특성을 보다 자연스레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반지에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왠지 할 수 있었다는 것처럼 들리네. 할아버지, 얘 진짜 뭐야?”

“같이 작업해보면 알게 될 거다.”

사실 이만우도 거기까진 알 수 없었지만 허세를 부린 것이었다. 제작에 자신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신혁이 깨우친 것부터가 최근의 일이었으니까.

“어때, 이걸로 해볼래? 방어막 아티팩트도 등급이 낮은 거긴 하지만 갖고 있긴 한데.”

“마법학과 2학년쯤 되면 원래 그렇게 아티팩트를 줄줄이 달고 다니는 건가요?”

“아니, 내가 특별한 거지.”

이나희는 그렇게 말하며 한껏 폼을 잡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유독 몸에 장신구를 많이 달고 있었다.

귀에도 몇 개씩 귀걸이를 달고 있었고, 목걸이 두 개, 양손에도 반지를 몇 개씩 겹쳐 끼우고 있는 데다 왼쪽 허벅지에도 반짝이는 금속장식이 달린 가터 링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녀의 화려한 미모를 더욱 강조하는 악세서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만약 저것이 다 아티팩트라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착용가능한 아티팩트에는 한계가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너 모르는구나? 특성에 따라 아티팩트 착용한계가 얼마든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인챈터들은 특히 많은 아티팩트를 착용할 수 있는 직업군으로 유명한데.”

특성에 따라 아티팩트의 착용한계가 달라진다, 라. 그 얘기를 듣고 퍼뜩 강신혁은 자신의 특성도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진 막연히 무술에 능하게 해주는 능력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저번 진화로 무기를 강화하는 능력이 추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무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물건도 강화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래?”

“음, 네. 그럼 방어막 아티팩트도 한 번 보고 싶은데요.”

“좋아.”

이나희는 흔쾌히 대꾸하곤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왼쪽 다리를 몸쪽으로 구부리며 가터 링을 벗으려 하다보니 저절로 치마가 들춰지며.......

“선배님, 팬티 보이는데요. 팬티조차 화려하시네요.”

“아, 미안. 그런데 너 되게 침착하네. 일단 체크해둘까, 여자 경험은 상당히 있는 것으로 보임……."

“그 정보를 대체 누가 원하는데요!?”

결국엔 방어 능력을 지닌 검을 만들기로 결정이 났다.

이나희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푸른빛이 백지 위를 천천히 훑고 지나가며 마력으로 이루어진 섬세한 설계도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강신혁은 그것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을 느꼈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야, 새로운 능력에 도전하면서 생긴 불안감일 뿐이라 여기며 설계도에 집중했다…….

@@@

강신혁과 이나희는 설계도 작성이 끝난 후 마침 이전에 이만우가 준비해두었던 마법금속 ‘케나이언’을 재료로 삼아 즉각 아티팩트 작성에 돌입했다.

합작이라곤 하나 그리 어려울 것은 없었다. 강신혁이 정신없이 쇠를 두들기고 있으면 작업에 맞추어 이나희가 자신의 인챈트를 발동 할 뿐이었다.

다만 강신혁 혼자서 작업을 하던 때와는 달리 페이스 배분이 필요했고, 결국 자정이 가까워올 때까지 작업을 했음에도 전체 작업의 20% 정도가 진전되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

강신혁은 자정이 되고서야 정신을 차리곤 내일 이어서 하자며 돌아갔다. 그러나 이나희는 그 이후에도 부실에 남아있었다. 이만우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공방 안의 화로에선 아직까지 불이 타오르고 있다. 모루 위에는 작업이 한창인 미완성의 검이 한 자루. 벌써부터 그것이 뿜어내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 제작이 완료된다면…… 어쩌면 경연이 문제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나 걔 싫어.”

열기가 남은 검신 위를 쓸어내리며 이나희는 짓씹듯이 그렇게 말했다. 이만우는 그 말을 듣곤 피식 웃으며 생뚱맞은 대꾸를 했다.

“우리 손녀도 벌써 사랑을 할 나이가 됐구나.”

“나 방금 분명히 싫다고 하지 않았어?”

“여태까진 좋다 싫다 이전에 사내놈들하곤 상대를 안 하려 들었잖냐. 그러니 싫어하는 남자가 생긴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녀석 진짜 짜증나. 어떻게 그 나이에……."

이나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장일을 하던 강신혁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듬어지고 있는 중인 검날에 고스란히 그 흔적이 묻어있었다.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은 압도적인 패배감이었다.

“너무 놀라는 바람에 정작 본론은 꺼내보지도 못했잖아.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는데……."

“네 부전패구나. 명예로운 죽음을 당한 셈이지.”

“알아. 나도 안다고. 걔가 망치 잡는 것만 봐도 바로 알았거든? 굳이 날 두 번 죽여야 돼? 할아버지가 그러고도 내 할아버지야?”

“아프다, 아퍼 이놈아.”

그녀는 죄 없는 이만우의 등을 퍽퍽 때리며 화를 내다가 이내 제풀에 지쳐 고개를 늘어트렸다.

“일단…… 일단 저거 다 만든 후에 생각할래.”

“사귀어 볼지 말지?”

“아니.”

손녀는 할아버지의 등짝을 한 대 더 때리며 말했다.

“동업 제안을 할지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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