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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 Chapter 13. 어웨이크닝 - 5 >

재생 포션은 물건을 최상의 상태로 되돌려주는 물건이다. 여러 대에 걸친 잘못된 운용으로 내부가 완전히 엉클어져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안장, 용의 증표도 마찬가지였다.

단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아티팩트를 완전히 분석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재생이 한도 끝도 없이 이루어져버린다는 것. 즉 지나치게 상태가 회복되는 바람에 아티팩트가 폭주하거나, 혹은 아티팩트가 분해되는 일마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야.’

그렇기 때문에 재생 포션을 활용한 아티팩트의 수리 작업은 굉장히 번거롭고 힘들다. 재생의 강도를 조절하는 동시에 아티팩트의 내부 구조를 분석, 재건하는 섬세한 작업이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

말하자면 왼손과 오른손으로 각기 다른 마법을 구사하여 그 위력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 이라고 클레어는 말했다. 강신혁은 마법을 다루지 못하므로 그 비유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걸 내가 할 필요는 없는 건데.’

다만 재생 포션의 효능을 알게 된 시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아티팩트의 내부 구조는 이미 그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아티팩트의 ‘완벽한 상태’…… 그런 것은 아티팩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녀석과 영력으로 소통하며 녀석이 바라는 대로 이끌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 우우웅

‘드디어 반응을 해주네.’

아티팩트가 강신혁의 영력을 받아들여 희미하게 공명했다. 강신혁의 영력은 아티팩트 본체, 그리고 그 안에 흡수된 재생 포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재생 능력이 폭주하지 않게 적절한 곳으로 이끌었다.

아티팩트가 바라던 원래의 형태, 아티팩트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마구 뒤엉켜 있던 아티팩트 내부의 마나 회로가 기이이이이, 하는 미미한 소음과 함께 뒤틀리기 시작했다. 강신혁은 그 변화를 느끼며 미소 지었다.

‘이제 조금 알겠네.’

처음 아티팩트를 분석했을 때에는 이것이 테이밍과 정확히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강신혁은 아티팩트의 마나회로를 분석하여 아티팩트를 만들거나 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티팩트가 재생 포션의 힘을 이용해 변화하는 모습, 그 방향성을 분석하고 있자니 그 의미가 어딘가 모르게 이해가 됐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이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 물건은 인챈트가 포함되는 마나 크래프트로 제작된 물건이고, 강신혁이 할 수 있는 것은 야금술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가능할 것 같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아티팩트에 담긴 뜻과 의지를 파악하게 된 이상 어떻게 만들든 결과적으로 그 뜻을 품은 물건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인챈트 능력을 지닌 장인들이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면 그게 무슨 돌을 깎아 컴퓨터를 만드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가능할 것 같으니 어쩔 수가 없다.

- 우우우웅

‘음?’

그때였다. 완벽히 원래 상태를 복원하고도 재생 포션의 여력이 남아 그것을 빼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아티팩트가 강신혁에게 자신의 의지를 피력해온 것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싶다고.

강신혁은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아티팩트에 자신의 영력을 추가적으로 투입했다. 그의 영력을 매개로 아티팩트와 재생 포션이 완벽하게 결합한 순간, 재생 포션은 한계를 뛰어넘어 아티팩트의 내외부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그것을 제물로 삼아 마나 회로를 확장하고.

- 강신혁에게서 받아들인 영력을 기반으로 보다 구체적인 의지를 띤 안장에 특정한 방향성이 부여되고…… 이 과정에서, 금안의 환룡이 발동했다.

- 본래 이 아티팩트는 용의 증표라는 이름을 갖고는 있었으나 실상은 용과 관련 없는 아티팩트였다. 말하자면 이름 사기. 용이든 용이 아니든 일단 대상이 몬스터이기만 하면 별 차이 없이 작동하는 아티팩트였다는 얘기다.

- 하지만 무수한 세월 한 마리의 와이번을 테이밍하며 얻어온 ‘업’, 거기에 강신혁의 특성 금안의 환룡이 발동하여 아티팩트의 본질적인 한계를 쳐부수며, 그 변화를 강신혁의 영력과 아직까지 효력이 남아있던 재생 포션이 보조한 덕에……!

“아니, 조금 부족하네.”

“헛!?”

강신혁은 여전히 한 손을 안장에 얹은 채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계속해서 진동하며 변화하는 안장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그는 그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손가락 끝을 베었다.

“무슨 짓이냐!”

“놔둬라.”

“큭!?”

어떻게든 강신혁의 트집을 잡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더글러스 페인을 이만우의 묵직한 한 마디가 짓눌렀다.

그 사이에도 짙은 영력, 거기에 더해 B랭크에 달하는 ‘재생력’을 품은 강신혁의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안장으로 떨어지며 흔적도 없이 흡수되었다.

물론 재생 포션이 지닌 힘에 비하면 정제되지 않은 재생력, 그것도 생물을 재생시키는 재생력은 많이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기쁘게 그의 피를 받아 마신 아티팩트가 이번에야말로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수리…… 아니, ‘진화’를 끝마쳤다.

- 능력을 완전히 잃었던 아티팩트를 복원을 뛰어넘어 진화시켰습니다. [진룡의 증표(A+)]를 얻었습니다. 본인이 사용할 경우 등급을 더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의 눈앞에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고급스러운 안장이 놓여있었다. 양 테두리에는 꿈틀거리는 용이 음각되어 있어 미관적으로도 훌륭했다. 강신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내려놓는 순간,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나머지 메시지들이 그의 눈앞을 채웠다.

- 아티팩트와 직접 소통하며 진정한 힘을 끌어내는데 성공하여 야금술 스킬이 B-랭크로 성장합니다! 열기에 대한 저항력이 더욱 더 증가합니다.

- 내성 스킬 [레지스트 파이어(A)]를 익혔습니다. 재생력과 야금술의 영향으로 [레지스트 파이어(A)]의 희귀도가 상승해 [레지스트 파이어(S)]가 되었습니다. 야금술의 영향으로 스킬의 숙련도가 B-랭크로 성장합니다.

- 동기화가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17.2%

- 회원님의 새로운 내성 획득을 축하드리며 500HP 보너스!

이젠 제법 익숙해진 메시지들과 조금 독특한 메시지까지. 용의 증표가 진화한 것 정도는 그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열기 저항력이 증가하다 못해 레지스트 파이어 스킬을 얻어버렸다는 것.

내성 스킬은 가득이나 귀한 스킬인데 그중에서도 S등급의 스킬이라니, 야금술에 이런 숨겨진 효능이 있었던가 얼떨떨할 정도였다. 아니, 물론 그가 익힌 것이 평범한 야금술도 아닐뿐더러 재생력도 일조한 듯 보이긴 했지만.

‘그나저나 방금…….'

강신혁은 아티팩트의 수리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금안의 환룡이 발동했던 것을 떠올렸다. 사실 이 일은 저번에 신풍의 보주를 수리할 때도 있었던 일이긴 했다.

본래 무기강화에만 적용되는 줄 알았던 금안의 환룡이 무기가 아닌 단순한 물건(아티팩트를 단순한 물건이라 칭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을 강화시켰다는 것, 일시적인 강화에서 끝나지 않고 나아가 물건을 본질적으로 진화시키기에 이르렀다는 것.

이것은 즉 금안의 환룡이 앞으로 그의 야금술과 연계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나아가 금안의 환룡이 지니고 있는 비밀이 아직 한참은 남아있다는 것 또한.

‘단순히 마나를 막아버리는 특성인 줄 알았는데, 그게 설마 내 전생과 연관이 있었나? 아니, 어차피 같은 영혼이니 생산계열에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었던 것도 당연한 일인가?’

강신혁은 조금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그러다 전생의 자신, 즉 모루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같은 생각에 이르렀으나…….

-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회원님께선 전생에 전투능력을 지니지 않고 계셨습니다. 히어로 유니버스에 접속하기 전까지는 일반인, 즉 특성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군요…….'

- 너무 깊이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전생과 자신을 구분하실 필요도, 그렇다고 너무 일치시키려 하실 필요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회원님께서는 그저 지금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행하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관리자는 가끔씩 이렇게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말들을 해주니까 방심할 수가 없다. 강신혁은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려 대충 그렇게만 대꾸했다.

- 1,000HP 보너스!

‘마음을 읽었어!?’

강신혁이 관리자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페인 가문의 장인들이 나서서 아티팩트를 살폈다.

“허어, 이럴 수가!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이미 딴판이야! 내가 여기에서 개안을 하는구나!”

“아티팩트는 저도 많이 봐왔습니다만…… 대단하군요. 이만우님, 혹시 이건!”

“아티팩트의 진화, 여태껏 단 두 번 그런 현상이 관측된 적이 있지. 아티팩트와 그 주인의 교감이 극에 이르렀을 때, 기타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아티팩트가 성장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다. 그런데 설마 내가 만든 아티팩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호들갑을 떠는 장인들이 재밌었는지 장단을 맞춰주던 이만우는 말을 잇던 도중 아니지, 하고 고개를 저으며 강신혁을 주시했다.

“이 녀석이 한 일이라고 봐야겠지.”

“대야장께서 직접 만드신 아티팩트를 진화시키다니……!"

“이것이 대야장의 직전 제자의 능력인가!”

아티팩트를 수리하는 동안은 대체 어떻게 얌전히 있었던 걸까 궁금해질 정도로 침을 튀기며 오버 리액션을 하는 장인들. 그들을 뒤에서 노려보는 눈길은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강신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하하, 재생 포션의 효과가 좀 세게 들었나 봐요.”

“연금술사에게서 그걸 얻어낸 것만 해도 기가 막힌다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이해하고 있다. 애초에 아티팩트의 주인도 아닌 네가……."

“너!”

드디어 더글러스 페인이 앞으로 나왔다. 강신혁이 변화시킨 진룡의 증표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며…… 두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설마 비룡기사단의 물건을 멋대로 차지한 거냐! 아티팩트에 피를 떨어트리는 것은 고위 아티팩트의 주인등록 과정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는데!”

“아닙니다.”

강신혁은 차분히 대답하며 안장을 들어올렸다.

“그런 오버테크놀로지 같은 건 사용한 적 없어요. 여전히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젠 굳이 배지를 부착할 필요도 없어요. 아티팩트의 사용조건만 충족된다면요.”

“사용조건……?”

“네."

강신혁도 이 부분만큼은 예상을 못했기에 표정이 조금 떨떠름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리 과정에서 아티팩트가 성장했거든요. 그래서 자연히 자격요건이 변경됐습니다. 아마 원래도 아티팩트에 자격요건이 있었을 텐데……."

“있었지.”

이만우가 느긋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확히는 내가 설정한 것이다. 비룡기사단장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했었지. 그런데 그게 지금은……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아티팩트의 기준이 되었구나.”

“그 말인즉?"

“너희끼리 정한 사람이 아니라…… 용의 증표가 실제로 비룡기사단장에 합당한 능력을 지녔다고 판단한 사람만이 그 아티팩트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진통의 증표예요, 선생님.”

“아티팩트 녀석 참 건방지구나. 그래도 만들어준 사람인데 나보다 네 녀석에게 더 아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

물론 아티팩트를 수리하며 녀석과 깊이 교감했던 강신혁 본인은 제외해야 할 것이다.

더글러스 페인에게 자신은 아티팩트의 주인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가 원한다면 더글러스 페인이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간단했다. 그것이 영력을 이용한 아티팩트와의 교감이 지닌 힘이었다.

“큭, 그동안 자격이 없는 놈들한테 시달렸던 게 어지간히도 짜증났던 것이겠지. 어쩌면 이 녀석이 앞으로 비룡기사단장을 선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허……!”

그 얘기를 듣자 반응한 사람이 네 명 있었다. 그중 두 명은 리액션 담당인 장인들이니 제외하고, 남은 둘이 누구였는가 하면 그야 물론 - 현 단장인 더글러스 페인과 부단장인 엘레노어 R. 알제였다.

“흥, 그렇다면 아무 문제없겠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강신혁의 손에서 안장을 빼앗아든 더글러스 페인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선배님, 모처럼 오셨으니 와이번을 보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놈을 길들이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물론 그가 걷는 방향은 와이번의 축사가 있는 곳. 에밀 볼튼은 자신들을 앞에 두고도 멋대로 행동하는 그의 모습에 그저 너털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면 이만우는 그의 손에 들린 아티팩트를 보며 으으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고, 그곤 좀……."

“아……."

한편 엘레노어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혀를 깨물었고, 카렌은 전부 망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강신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확신했다.

‘역시 사정이 있구만.’

하지만 뭐 어때, 그를 비룡기사단에 입단시키기까지 했으니 그녀들도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지. 강신혁은 괜시리 오늘 지급받은 비룡기사단의 망토를 툭툭 털어보며 그녀들을 재촉했다.

“우리도 가보죠. 저 남자한테 진짜 비룡기사단장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지.”

“……에휴.”

엘레노어는 한숨을 푹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대는 와이번 멜로이의 축사로 옮겨졌으나…….

- 끄루루루루루아아아아아!

결과는 뭐 대충 예상했던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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