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 Chapter 13. 어웨이크닝 - >
“굿 이브닝.”
“누나!?”
오후 내내 방 안에서 차분히 영력을 뿜어내며 가죽 안장을 닦고 있던 강신혁은 똑똑 소리와 함께 그의 방문을 열고 나타난 클레어의 모습을 보며 화들짝 놀라 외쳤다.
오늘 그녀는 붉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묶어 정리하고 가죽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도발적인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눈을 둘 데가 없었다.
“또또 부끄러워하기는. 벗은 것도 아닌데.”
“아니 그보다 누나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여기 아무나 못 들어오는데!”
“뭘 놀라, 내가 들어가겠다고 했잖아.”
“제 방에 들어오겠다는 말인 줄 몰랐죠!”
그야 확실히 방금 ‘들어갈게’라는 메시지가 오긴 했다. 하지만 강신혁은 당연히 잘못 온 문자려니, 대체 어디에 들어간다는 것일까, 혹시 남자친구네 집일까, 하고 끊임없이 샘솟는 질투심 섞인 생각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 열심히 안장을 닦고 있었던 것인데!
“뭐야, 얘기 못 들었구나. 이거 시스템 만든 거 나야. 신영 말고도 다른 아카데미나 주요시설 기밀관리에도 손을 보탰거든. 정확히는 이론이랑 필요한 시약들을 제공한 게 나고 다른 마도공학 능력자들이 있긴 했는데.”
그야 시스템을 만든 것이 그녀라면 로열 클래스에 출입하는 것도 확실히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명백히 다른 문제도 한 가지 있지 않은가.
“몰래 들어오는 건 가능하다 쳐도, 제가 로열 클래스에 들어왔다는 걸 실시간으로 알 수는 없잖아요?”
"왜 몰라, 백도어를 설치해뒀는데. 걱정하지 마, 신영뿐만 아니라 내가 기술을 빌려준 단체에 대한 정보는 수시로 수집하고 있으니까.”
“이 범죄자!”
“맞아!”
충분히 남들에게 자랑해도 될 만큼 풍만한 가슴을 내밀며 자신이 범죄자임을 긍정하는 클레어의 모습은 그 이상은 없을 만큼 당당했다!
“하지만 어디에 팔아넘기는 것도 아니니까 됐잖아. 난 그저 혼자서 세계의 뒷무대에서 활약하며 일반인은 감히 근접도 할 수 없는 기밀들을 내 손아귀에서 주무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을 뿐이니까!”
“중2병이 재능과 조합되니 정말 최악의 결과물을 낳았어……!”
“그리고 실은 신영의 로열 클래스 승급 구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넌 신인왕이니까 당연히 로열 클래스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사실 나한텐 일반 기숙사보다 로열 클래스 쪽이 더 침입하기 쉽거든? 땡잡았지 뭐야.”
앞으로도 꾸준히 이렇게 불법침입을 해올 것이란 뜻인가. 솔직히 말하면 너무 좋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물론 좋다는 것도 진심이긴 한데.
“그런데 결국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는 뭐예요?”
“오늘 우리 바 첫 영업일이거든. 그래서 데리러 온 거야.”
그녀는 잔뜩 신이 나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바를 차린 곳은 한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초인상가!
그곳에서 평상시 바를 운영하며 초인 손님들에게 칵테일을(포션 효과가 없는 것도 함께 판다고) 제공하고, 손님들에게 비상 연락처를 제공해 그들이 게이트에 돌입해야 할 때 나타나 칵테일을 판매하는 프론트라인 바텐더로서의 업무를 수행한다……!
“누나, 프론트라인 바라는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어버렸나 보네요……."
“왜 이제 와서 아닌 척하고 그래? 네 덕분에 만들어진 이름이잖아. 역시 너랑 난 감성이 비슷하다니까.”
클레어는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듯이 강신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상쾌하게 웃었다. 그야 2년 전까지는 그랬지, 2년 전까지는! 하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이 더하단 말이다!
“초인상가 자리에 건물 구하기 비싸지 않았어요?”
“아, 일부러 좀 으슥한 곳으로 골라서 중심지보다는 훨씬 싸. 모름지기 바는 비밀스러운 곳에 자리하고 있어야 있어 보이잖아?”
“아, 예. 그렇죠. 납득했습니다.”
“자, 그렇게 됐으니까 빨리 가자.”
강신혁의 거부권은 없었다. 물론 거부할 생각도 없었지만 이대로 덧없이 끌려가기는 싫었던 강신혁은 그녀에게 안장을 보여 주었다.
“저도 원래 할 일이 있었는데 말이죠…… 누나, 혹시 이 아티팩트 회복시킬 방법 아세요?”
“오, 그거…… 와아, 마나 크래프트인가? 이렇게 수준 높은 마나 크래프트 능력자는 세상에 몇 없을 텐데 이런 걸 네가 어떻게 갖고 있어?”
“비룡기사단의 물건이에요.”
“흠, 아아. 그렇구나.”
그녀는 그 말만 듣고도 사정을 파악했는지 씩 웃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이라고 했지? 네가 수준급의 능력자라는 가정하에,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은 몇 가지가 생각나긴 하는데…… 좋아, 조력해 줄게. 대신 너도 오늘 일은 열심히 해야 한다?”
“사랑해요, 누나.”
“정말 지치지도 않고 얘는.”
그녀는 틈만 나면 사랑고백을 하는 강신혁에게 질렸다는 투로 대꾸하면서도, 마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작게 웃으며 그의 뺨을 부드럽게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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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와 함께 기숙사를 나온 강신혁은 그녀의 바이크 뒤에 탄 채 그녀의 허리에 양팔을 둘렀다. 자연히 그녀와 밀착하게 되었으니 가슴이 심히 두근거렸다.
만약 모루와의 동기화로 인해 조금이나마 차분한 성격이 되지 않았더라면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그러하듯 바보 같은 발언과 행동을 마구 폭주시켰을 것이다.
“너무 차분한 건 그것대로 열 받는데. 나한테 매력이 없다는 것 같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적절한 대응이라는 게 참 어렵네요, 누나.”
클레어는 그의 말에 쿡 웃고는 마력으로 구동하는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상공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강신혁은 자리에서 튕겨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클레어를 붙잡아야 했다.
“뜬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이거 무음 기능이랑 투명화 기능도 있어. 쩔지?”
“이대로 호그와트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가득이나 좁은 서울 시내에서 스포츠카보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 이동하고 있으니 초인상가에 이동하는 것도 순간이었다.
초인상가, 중심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골목길에 착륙한 바이크가 시동을 멈추자 강신혁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우리 다음 데이트 때는 드라이브 코스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
“데이트는 네 나이에 맞는 애랑 해.”
클레어는 강신혁에게 장난스레 대꾸하며 바이크를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강신혁은 골목 너머, 많은 초인들이 웃거나 떠들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을 입에 옮겼다.
“그 난리가 났었는데 다들 잘도 저러고 있네요.”
“요르문간드? 그거 대대적으로 공표되지도 않았잖아. 초인협회랑 몇몇 대형 길드가 주축으로 나서서 대처하고 있을 뿐이지.”
“그러고 보면 저도 그 당사자였는데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지.”
“네 옆에 있는 거 누군지 모르겠어? 나 하이랭커야, 하이랭커. 퇴근길도 데려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강신혁은 그제야 아, 하고 감탄사를 냈다. 생각해보니 초인상가에 있는 바에 출근하는 거였으면 굳이 그녀가 올 필요 없이 강신혁에게 오라고 메시지 하나만 보냈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강신혁이 바로 얼마 전 습격당했던 것을 배려해 직접 그를 맞이하러 온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사장이 알바생의 출퇴근을 책임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예 출근을 안 시키는 게 제일이었겠지만.”
“그건 안돼. 넌 우리 바의 필수요소야.”
“저 아직 미성년인데……."
클레어는 그의 군말을 무시하곤 손을 잡아끌며 건물 문을 열었다.
그곳은 평범한 2층 건물이었는데, 1층은 영업을 안 하는지 깜박이는 어두운 등 하나 달려있고 내부는 텅텅 비어있는 어수선한 공간이었으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위로 ‘Front-line Bar’라는 싸구려 네온사인이 걸려 있었다.
한편 2층은 올라가는 계단이 자물쇠가 걸린 철문으로 막혀있었는데, 강신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클레어에게 물었다.
“누나 이 건물 통째로 샀죠?”
“응. 원래 1층은 이렇게 황량해야 ‘지하에 뭔가 굉장한 게 있어!’같은 느낌이 들잖아. 그리고 2층은 대체 무얼 하는지 알 수 없게끔 비밀에 싸인 공간…… 건물에 들어온 사람들은 미약한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거야. 이 네온사인에.”
아무리 들어봐도 지하에 바가 아닌 던전이 있을 것만 같은 배경 설정이었다.
“그래서 원래 2층은 뭐하는 곳이에요?”
“내 방으로 꾸며놨어. 어차피 한국에서 오래 있기로 결심해서 방도 필요하겠다 싶더라고.”
“이 땅값 비싼 초인상가 건물을 집으로 쓰는 사람은 아마 누나 정도일 거예요.”
그나저나 클레어의 개인 방인가. 무척이나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면 미움 받을 것이 뻔했기에 꾹 눌러 참았다.
클레어는 강신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쭉쭉 잡아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니 그곳에 상당히 엔틱한 분위기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켜져 있는 촛불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고풍스런 목조 기둥과 테이블, 은제 장식들이 우아함을 연출했다.
한편 카운터가 있는 벽면에는 위스키, 보드카, 리큐르, 강화와인까지 온통 술병들이 가득해 보는 것만으로 취기가 오르는 듯했다.
“어때, 근사하지?”
“이건 완전히 누나 취향이네요.”
“당연하지.”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대꾸하곤 강신혁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어 살펴보니 바로 콧대부터 시작해 얼굴 윗부분만을 가리는 민무늬의 반쪽 가면이었다. 강신혁은 어떻게든 태클을 걸지 않기 위해 꾹 참았다.
“이거 한 번 써봐. 평범한 마스크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거든.”
“제 정체를 감춰주는 아티팩트 아녜요?”
“오, 아네? 이거 무려 1천만 HP가 넘는 아티팩트거든? 얼굴 형태와 눈, 머리색까지 제 뜻대로 바꿀 수 있는 물건이야. 디폴트가 있고 마음에 드는 형태를 지정해 기억해뒀다가 변환시킬 수도 있는 말도 안 되게 혁신적인 물건이지.”
“하지만 이 가면 자체로 너무 눈에 띄어서 여러 패턴을 시험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이 가면이 평범하다니, 그건 소년만화에서나 그렇겠지. 아무리 몬스터가 날뛰고 초인들이 활약하는 세상이 되었어도 이런 중2병의 기운이 흘러넘치는 마스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이미 적절한 패턴을 저장해놨으니까 바로 시험해봐."
“네……."
이런 아이템을 기뻐하며 구입하는 중2병 환자가 저장해놓은 패턴이라니 정말로 시험해보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신혁은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착용했다. 아티팩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클레어가 저장해놓은 패턴이라는 것도…… 아, 과연.
“크으으, 내 예상대로야. 엄청 잘 어울려.”
제대로 적용된 것일까? 클레어가 만족스러운 감탄사를 토해내며 강신혁의 눈앞에 손거울을 들이댔다.
그 안에 비추어지는 것은 하관이 얄상해 재수 없게 생긴 남자였다. 가면에 뚫린 눈구멍으로 드러나 있는 눈은 짙은 붉은색이며, 머리 카락은 그대로 검은색이었지만 기분 탓인지 더욱 짙은 검정으로, 길이까지 약간 길어져 어깨 위를 흐르고 있었다.
“완전 잘 어울리지? 멋지지? 이건 이제 네 거야. 선물.”
“음…… 네, 누나. 정말 고마워요……."
“후우…… 처음 봤을 때부터 넌 머리를 기르는 게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니까?”
강신혁은 뿌듯한 표정이 된 클레어를 보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내민 양복을 받아들고 탈의실에서 그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나마 이쪽은 평범한 검은 정장이라 다행이었다.
“좋아, 그럼 오픈해볼까!”
“사람이 올까요, 누나?”
“넌 초인상가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여긴 능력은 넘쳐나는데 잡으라는 몬스터는 안 잡고 뒹굴거리는 폐인 놈들이 어떻게든 새로운 놀 거리를 찾아 방랑하는 도피처라고.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가게를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어.”
한국의 초인과 초인상가에 대한 박한 평가에는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강신혁이었으나 정말로 오픈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첫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에 반박을 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헐, 연금술사잖아!”
“바텐더입니다, 손님.”
“한국 초인상가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연금술사를 보게 될 줄이야……!”
“주문 안 할 거면 조용히 꺼져라.”
“죄송합니다! ……응? 뭐야 이거, 설마 포션입니까?”
클레어가 내민 메뉴를 받아든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클레어는 씩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 가게에서만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야. 가격은 1천 달러부터 시작인데, 마셔볼래?”
“연금술사의 포션을, 고작 1천 달러에……! 주, 주세요!”
손님이 한 명 미끼를 물자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그 자가 마찬가지로 할 일이 없는 초인 친구들을 부르고, 그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을 불러 금세 가게가 만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연금술사가 타주는 칵테일을 마시게 되다니!”
“오오, 오늘 던전 다녀와서 지쳤었는데 마나가 쭉 회복되는 느낌이야.”
“앞으로 그냥 이거 한 잔씩 마시고 던전에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연금술사 누님, 정말 예뻐요. 그 바텐더 복장 정말 최곤데.”
“지금부터 연금술사라고 부르는 놈은 손님 대접 안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앙?”
비록 손님들의 인식에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영업은 성공적이었다.
성질 급한 몇몇 손님은 칵테일을 마시고 효능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사냥을 위해 달려 나가기도 했으며, 몇몇은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클레어에게 명함을 건넸으나 그녀는 프론트라인 바의 명함을 건네며 출장영업도 가능하다고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저어기 테이블에.”
“넵”
“그거 끝나면 세이커랑 잔 좀 씻어줘.”
“넵.”
한편 강신혁은 클레어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칵테일이 든 잔들을 부지런히 나르거나 빈 잔과 세이커를 닦거나 하며 열심히 그녀를 보조했다.
실은 그녀의 연금술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강신혁에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분야는 다르다지만 똑같이 생산에 업을 둔 고위 초인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여전히 영력을 다루는 건 조금 미숙해보이지만.’
“그 사람은 누구? 혹시 누님 이거?”
그때였다. 한 손님이 클레어가 아닌 강신혁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다. 하긴 그는 지금 정체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종업원 복장에, 은연중에 풍기는 기세도 만만치 않으니 클레어만은 못해도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니겠지. 연금술사 누님한테는 그 남자가 있잖아.”
“음? 아냐, 그 남자랑은 한참 전에 깨졌다는 얘기를 들었는…… 데……."
“두 분은 퇴장하시겠습니다.”
“흐압!”
강신혁과 클레어를 두고 천박한 농담을 하던 손님 두 명이 클레어에 의해 즉각 퇴출당했다. 그 광경을 본 손님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강신혁은 그들이 쫓겨나기 전까지 하던 말들이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누나한테 남친이 없을 리가 없지. 없는 게 더 이상하지.’
그 나이 먹고 연애에는 관심도 없는 것은 신은아 한 명으로 충분하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지금만은 그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모루가 되고 싶었다. 모루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금속을 두드리는 것을 이미지했더니 그럭저럭 마음이 다스려졌다.
그때였다. 출입문이 열리고 한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강신혁은 모든 번뇌를 떨쳐내고 새로운 손님에게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바가 여기였구나. 나도 한 잔 줘. 논 알코올로.”
“으, 은아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 신은아의 모습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녀가 짓고 있는 은은한 미소가 어째선지 너무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