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Chapter 12. 비룡이 부르는 소리 - 2 >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솔직히 계속 감추는 게 무리였지. 은아 그 녀석도 이미 감은 대충 잡고 있었을걸? 만약 한 달만 더 오래 감추고 있었어도 은아한테 할배 배때지 뚫렸다는 데에 1억 HP 건다.
간신히 만족한 은아를 떼어놓고 기숙사로 돌아온 저녁. 강신혁에게서 전후사정에 대해 들은 야누스는 작정하고 강신혁을 놀렸다. 뾰족하게 반박할 수도 없다는 게 가장 열 받는 일이었다.
강신혁은 인벤토리 안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던 부산물들을 하나씩 꺼내어 쓸고 닦고 종류별로 정리해 넣으며 그에게 잔뜩 심통어린 말투로 대꾸했다.
- 1억 HP 있기는 하고?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하, 1억 HP가 뭐 대수라고. 모루 할배 진짜 그지네. 한 자루에 몇 억 HP씩 나가는 무기를 턱턱 만들어내던 때도 있었는데. 야금술 실력은 많이 회복했어?
- C랭크.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하이고, 아직 멀었네. 야누스 늙어죽는다. 이래서 신은 언제 죽이나?
- 그래도 부지런히 성장시키고 있거든?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할배. 차원 퀘스트해, 차원 퀘스트.
야누스가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마침 이전에 했던 차원 퀘스트에서 얻은 땅지옥의 갑각을 손질하고 있던 강신혁은 뜬금없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야누스가 곧장 해설해주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차원 퀘스트는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의 적성에 완벽하게 맞춰진 퀘스트니까.
- 하지만 관리자님은 전생에 내가 만든 무구를 회수하는 차원 퀘스트가 많다고…… 아.
그러고 보면 차원 퀘스트가 그것뿐이라는 말은 또 하지 않았었구나. 강신혁이 그것에 대해 질문하자 관리자는 바로 긍정해주었다.
- 차원 퀘스트는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 숭고한 과업인 동시에 히어로 유니버스의 VIP 회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극소수의 회원들을 위해 가장 적합한 환경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죠. 회원님은 단지 거기에 회원님만의 특수한 회수 퀘스트가 더해졌을 뿐입니다.
“뭐 결국 윈윈이라는 건 알겠는데요……."
- 회원님께선 관리자만 믿고 계시면 됩니다. 위험하지 않은, 하지만 가장 빠르게 야금술 능력을 회복할 수 있는 차원 퀘스트를 순서대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처음 차원 퀘스트를 시작했을 때 영문도 모르게 전장으로 끌려갔던 강신혁 입장에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도 없었으나, 관리자가 그를 속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차원 퀘스트. 알겠지?
- 그래, 여유가 나면 말이야.
지금은 새로운 차원 퀘스트는커녕 자유로운 출입권한을 획득한 케일론에도 못 가보고 있는 실정인지라 야누스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최소한 며칠을 비워야 하는 일정이 되는 탓에 아무래도 주말만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학교라고 했던가? 할배도 정말 귀찮은 짓을 하는구나. 몸에 지닌 능력만으로 능히 세상을 오시할 수 있으면서.
- 아직 그 정도 능력도 없을 뿐더러, 지금은 학교에서 내 기반을 다질 때야. 서두르면 탈이 나는 법이잖아. 나중에 어떻게든 신살검은 만들어줄 테니까 너무 투덜대지 말고 느긋이 기다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슬슬 예전 할배 말투가 나오네. 괜히 반갑게시리.
야누스의 추궁이 뚝 끊겼다. 그런데 이대로 대화가 끊기나 싶었던 순간 재차 그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나저나 할배 앞으로 고생 좀 하겠어.
- 또 왜, 뭐.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은아 말이야.
- 그건…… 응, 엄청 귀찮을 것 같다.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 대꾸로 봐선 할배는 아직 모르는가보네. 제3자인 나도 뚜렷이 알겠는데.
- 또 무슨 말을 하려고?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그냥 앞으로 지켜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그럼 이만, 난 카오스 드래곤 잡으러 간다!
- 야! 맨날 뭐 만들어달라고만 하지 말고 그런 거 잡으면 넓적다리 살이라도 떼어다가 좀 보내봐.
야누스는 제 할 말만 늘어놓고는 사라졌다. 메시지를 보내도 정말 바쁜지 답장이 오지 않았다. 하여간 츠쿠요도 그렇고 야누스도 그렇고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이란 놈들은 하나같이 이렇다니까! 강신혁은 투덜거리며 인벤토리 정리를 마쳤다.
도합 1톤에 달하는 인벤토리 용적을 가득 채우는 대량의 사마귀 칼날과 갑각, 거미 이빨과 독실샘과 방적돌기(거미의 피부는 무른 편이어서 루팅할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혼자 200킬로그램 정도는 차지하는 여왕거미의 부산물까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는 느낌이었다.
“이걸로 대충 정리는 끝났고…… 그럼 이제 슬슬 요놈을 살펴볼까.”
- 회원님께 보너스 50HP!
모든 부산물을 정리정돈한 후 마지막으로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바로 둘로 쪼개진 영력의 구슬 파편 두 개. 개인적으로는 이번 실습에서 가장 큰 수확이 아니었나 싶은 미지의 에너지 덩어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개의 단면을 맞대어보니 소름끼칠 정도로 딱 맞아 떨어졌는데, 그런다고 만화처럼 자연스럽게 합쳐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흠."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강신혁이 아니다. 그는 우선 구슬의 단면을 서로 맞춘 채 자신의 영력을 끌어올려 두 구슬 파편과 동시에 소통을 시도해보았다.
그는 구슬 파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영력의 집합체를, 그리고 그 집합체를 잇는 영력의 통로를 느꼈다. 아마도 구슬이 완전했던 때에는 이 모든 통로가 이어져있어 영력의 집합체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어떠한 종류의 힘을 낳고 증폭시키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단순히 구슬을 맞물리게 한다고 끊어진 통로가 다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그의 영력은 단지 두 파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소통할 뿐 두 개의 구슬을 근본적으로 잇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강신혁은 이전 게이트에서 쓰고 딱 한 번 쓸 만큼만 남겨두었던 영력 접착제를 꺼냈다. 관리자는 제법 회의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 영력 접착제에는 근본적인 수복 능력이 없습니다. 관리자는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것 말고는 딱히 써볼 만한 방법이 없잖아요.”
- 회원님의 영력이 더욱 늘어나고, 보다 많은 몬스터를 사냥해 확보한 마나 스톤으로 보조재를 만든다면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렇구나. 정석대로 한다면 무척 나중에야 복원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실패해도 남은 영력 접착제를 날리는 정도니까 일단 해보죠.”
- 지켜보겠습니다.
관리자는 그가 실패하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강신혁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관리자 또한 강신혁의 영력 활용 능력을 제대로 재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영력 접착제를 남김없이 짜내 구슬의 단면에 세심하게 펴바르고는 다시 한 번 단면을 맞추었다. 야금술을 수련하고 모루와의 동화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손재주가 늘어나기라도 한 것일까,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완벽하게 맞물렸다.
‘좋아…… 지금부터다.’
관리자의 말마따나 영력 접착제는 일시적으로 구슬을 맞물리게 할 뿐 근본적으로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강신혁이 영력으로 구슬 안에서 회전하는 영력의 흐름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것을 이끌어 인도하기 시작하자 얘기가 조금 달라졌다.
끊어져있던 통로가 일시적으로나마 회복되어있던 상황에 영력이 통로를 순환하며 차츰차츰, 접합부가 보다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대론 약해.’
강신혁은 구슬 안의 무수한 통로에서 이루어지는 영력의 순환을 주시하며 눈을 빛냈다.
마치 은하를 축소한 듯한 찬란한 빛 무리의 회전. 그것이 보다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보다 완전하게 달라붙도록 자신의 영력을 보태어주고…… 구슬이 지닌 힘 자체를 강화한다.
그의 특성, 금안의 환룡이 발동하며 강신혁의 눈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놀랍게도 무기가 아닌 구슬이 황금빛으로 공명하며, 그의 특성의 영향을 받아 강화되고 있었다.
- ……놀랍군요.
관리자가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강신혁은 이미 그것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단순히 영력을 주입해 강화해줄 셈이었는데 특성까지 함께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강신혁에게도 기연이라고 불러 마땅한 상황.
그는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만약 이것을 자유자재로 발동할 수 있게 된다면 그의 특성은 다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으리라……!
‘붙고 있어.’
만물과 소통하며 근원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영력에 더해 금안의 환룡이 지닌 강화능력까지 어우러지자 구슬은 비로소 태초의 능력을 되찾았다.(실은 그 과정에서 영력 접착제까지 덩달아 강화된 덕분에 수복능력이 빼어나게 상승, 구슬의 복원을 돕고 있었다.)
불완전했던 접착면이 빈틈없이 메워진다. 단절되어있던 구조가 접착제의 힘을 녹여낸 끝에 다시 완전히 결합한다. 통로가 완전해지고, 그 통로를 내달리는 영력의 흐름은 보다 원활해졌다.
무수히 반짝이는 별과도 같은 영력의 덩어리들이 정교한 질서를 만들어내어 순환하기 시작했다. 미약하게나마 새어나오던 영력이 완벽히 내부로 수렴하고, 구슬은 점점 더 강렬한 황금빛을 발했다.
“흡……!”
그리고 강신혁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남아있던 모든 영력을 짜내어 주입한 순간, 구슬로부터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와 기숙사 방을 가득 채웠다. 그 안에 갇혀있던 은하수가 그의 방 안에 풀려난 것만 같았다.
- 손상되어 있던 물품을 완벽 이상으로 복원한 끝에 [신풍의 보주(SS)]를 획득했습니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파손되어 있던 탓에 정기를 많이 잃어, 태초의 상태를 되찾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 특성 [금안의 환룡(S)]이 진화의 조건을 하나 충족합니다. 나머지 두 개의 조건을 충족하는 순간 특성이 진화하게 됩니다.
- 아주 귀중한 물건을 성공적으로 복원하는 경험을 쌓아 야금술 스킬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열기에 대한 저항력이 더욱 더 증가합니다.
- 동기화가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14.1%
강신혁은 눈을 떴다. 어느덧 그의 눈앞에 은은한 황금빛을 발하는 매끄러운 구슬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강신혁의 주먹만 한 크기였으며, 그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SS랭크라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입에서 그 말이 새었다. 방금 메시지로는 분명 SS랭크라고 했다. 여태껏 들어보지도 못한 랭크가 아니 던가. 너무 놀란 나머지 사고회로가 일시적으로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전혀 실감이 되지 않았다.
- 그것조차 많은 힘이 손실된 탓에 하락한 수준입니다. 회원님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그 이상으로 복원될 수 있겠지요.
“이런 어마어마한 보물이 대체 왜 그 게이트 안에 있었을까요……?”
- 그것은 회원님을 공격했던 자들이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아뇨, 어쩌면 그들도 잘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그 가치를 누구도 알지 못하게 되었던 것일지도요.
혹시 미리 신풍의 보주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던 놈들이 뇌제 신은아를 이용해 이 보주를 찾으려 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 그렇지만 오닉스는 이것들을 쉽게 찾아냈는데…… 어쩌면 오닉스가 특별했던 것일까? 언제나 그랬듯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인과관계가 확실해질 때까지 밖에는 드러내지는 않는 게 좋겠어.’
신풍의 보주가 힘을 되찾은 지금이기에 관리자가 어째서 바로 인벤토리에 그것을 집어넣으라고 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물건이지만 그 활용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래도 대박은 대박이네요.”
- 히어로 유니버스에서조차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 관리자는 회원님께서 보주를 성공적으로 복원하셨다는 것이 가장 놀랍습니다.
심지어는 그 복원 과정에서 다시 한 번 특성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특성이 S랭크로 진화했을 때 어렴풋이 이 너머도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설마 벌써 그 존재가 뚜렷이 제시될 줄은.
“이러니 야금술이 성장한 건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네요.”
- 무구가 아니라고는 해도 워낙 대단한 물건이니, 오히려 단번에 두 단계 이상 성장하지 않은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강신혁은 보주에 손을 얹어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확인 불가능’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날 뿐이었다.
그가 만든 물건이 아닌지라 혹시나 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복원했는데 정보를 보지도 못하다니! 어쩌면 랭크 차이가 너무 극심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럼 이번엔 감정 스킬을 구해볼까요.”
- 물건을 창조하고 강화하는 능력을 갖고 계시니 감정 스킬과의 궁합은 따로 보지 않아도 되겠지요. 거래 게시판에 가장 싸게 올라온 것은 500만 HP입니다. VIP 특별 할인을 적용해 400만 HP입니다.
“네, 나중에 살게요.”
이렇게 된 이상 영력을 활용해 이 녀석과 소통을 해가며 일일이 파악할 수밖에 없나? 아니, 그렇지만 이걸 그가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SS랭크의 물건이니만큼 손을 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을 만한 공간이라면 이걸 시험해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래, 마이 룸.’
그런데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친 강신혁이 신풍의 보주를 쥐고 마이 룸에 입장하려던 찰나귀신같은 타이밍에 스틱이 울렸다. 힐끗 확인해보니 카렌이었다.
“씹을까.”
하지만 그는 결국 그것을 씹지 못했다. 여자기숙사로 찾아와주지 않으면 남자기숙사로 직접 찾아가겠다는 메시지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룡기사단의 부단장을 대동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