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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 Chapter 11. 환룡, 바람을 타고 - 5 >

한국 20대 초인을 대표하는 능력자, 뇌제 신은아. 압도적인 능력에 더불어 미모까지 연예인 뺨치게 출중하다보니 그녀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었는데, 그런 만큼 그녀와 관련된 소문도 무척 많았다.

실은 거대재벌가의 2세와 사귀는 사이라든가, 진정한 능력을 감추고 있다든가, 미모와 몸을 사용해 협회의 실권을 쥐고 있다든가, 강자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국가 비밀 실험의 소산이라든가.

그 대부분이 가십에 불과한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그중에 단 하나 ‘뇌제는 평소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소문만은 제법 신빙성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여태껏 그 어떤 임무에서도 실패한 적이 없었고, 어떤 격전지에서도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국제 초인 랭킹 317위에 불과한 것은 그저 그녀가 그 이상으로 실력을 내보일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던 것이, 혹은 그녀가 그 이상 랭킹을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던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많은 초인 팬들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었으며, 현재 활동 중인 초인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제법 있었다.

‘그건 정말이었구나.’

카렌 스트링필드는 자신을 포함한 일행들을 감싼 보호막 너머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 황금의 눈을 빛내며 세상의 모든 벼락을 다스리는 진정한 ‘뇌제’의 모습이 있었다.

“벼락. 다중. 재장전. 벼락. 분산. 역행. 벼락. 반복. 반복.”

“빌어먹을, 괴물 같으니!”

“뭉쳐있지 마라, 병신들아!”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가면을 쓰고,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검은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신은아를 공격하고 있었다. 검과 창이, 불꽃과 얼음이, 중력과 마력화살과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난무했다.

그러나 신은아의 단문 초고속 영창에 즉시 발현되고 있는 번개가 그들의 공세를 모조리 무효화하며, 엄청난 병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적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벼락에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가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워낙 사방이 번쩍여 평범한 인간이라면 시야를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울 상황이지만, 신경계 강화 능력을 지닌 카렌은 희미하게나마 지금 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굉장해…… 난 저들 한 명조차 제대로 상대할 수 없을 텐데. 아니, 아무리 봐도 이상해. 전부 최소 A랭크 이상이잖아! 대체 어째서 저런 사람들이 우리를 노리는 건데!?’

어째서 게이트 안에서 실습을 하다가 다른 인간들의 습격을 받게 된 것인지는 차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곤 그저 실습 도중 갑자기 조원 중 한 명인 강신혁이 실종되었다는 것과, 머지않아 이 게이트 안에서 ‘또 다른’ 게이트가 열리며 그 안에서 무수한 숫자의 괴물들과 함께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그녀 일행을 공격해왔다는 것뿐.

“씨발.”

그녀와 마찬가지로 보호막 안에서 가만히 전투를 지켜봐야 하는 신세가 된 도우진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참고로 지금 일행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은 강신혁이 게이트에 빨려들어가는 순간 신은아가 발동시킨 것으로, 일행을 포함해 제법 넓은 범위를 보호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사라질 기미조차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뻔하잖아. 우리를 노리고 기습해온 거지. 저놈들, 초인을 납치해서 세뇌해 쓴다는 말이 있거든.”

도우진의 말에 대답한 것은 백인하였다. 지금 그는 평소 까불까불하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가라앉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카렌조차 그가 지금 터무니없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납치? 세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아마 곧 원군이 올 거야. 이런 상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처음부터 가정하고 있었을 테니까. 아니…… 지금 저걸 보면 원군이 오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될 것 같긴 하지만.”

“야, 잠깐.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니…… 그럼 우리가 미끼로 쓰였다는 거냐?”

“위험하다는 걸 미리 알았다고 실습을 그만둘 수도 없잖아. 그래서 뇌제 정도 되는 호위가 붙은 거고.”

백인하의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도우진은 이만 바득 갈았다. 자신은 당황하고 있는데 백인하가 침착해 보인다는 것도 그의 짜증을 북돋는 이유 중 하나였다.

“넌 뭐가 그렇게 침착한데?”

“내가? 그렇게 보여?”

그러나 백인하의 날선 대꾸에 도우진은 그만 위축되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제야 떠올린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게이트에 강신혁이 끌려들어가는 순간 백인하가 보였던 반응을.

그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백인하에게, 드물게도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아니…… 후, 그래.”

백인하는 얼버무리듯 대꾸하곤 팔짱을 끼며 보호막 너머에서 지금도 치열한…… 아니, 일방적이라고 불러야 할 전투를 치르고 있는 뇌제 신은아를 바라보았다.

이미 이레귤러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전멸한지 오래, 그나마 실력이 뛰어난 자들만이 버티고 있었지만 승부는 곧 날 것처럼 보였다. 뇌제는 적에게 단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어째설까, 그가 보기에 그녀는 지금 자신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 초인연합, 요르문간드와 원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혹은 게이트에 학생이 빨려 들어가는 사태를 막지 못했던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신혁아.’

자연스레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린 백인하는 입술 끝을 깨물며 인상을 썼다. 친구가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던 순간, 자신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속도로는 누구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다며 자랑스레 떠들고 다닌 주제에 눈앞에서 강신혁이 사고를 당하도록 놔둔 자신이 머저리처럼 느껴져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열 받는 점은, 치솟는 울분을 해소하고 싶어도 지금은 보호막 안에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 가면들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 그가 나서봤자 신은아를 방해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테니까. 그것 만큼 멍청한 일은 없었다.

“어? 얘들아, 저기!”

그때였다. 카렌이 돌연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도우진과 백인하의 옷소매를 잡아끈 것이다. 도우진과 백인하 모두 부글부글 끓고 있었던 만큼 그녀에게 고개를 홱 돌리며 무슨 말이라도 쏘아주려 했으나.

허공에서 일렁이는 균열을 보고 있자니 자연히 그 말도 쑥 들어갔다.

“뭐야 저거.”

“……게이트 붕괴.”

도우진의 말에 백인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야 잠깐만, 지금 네가 말하는 게이트가.”

“신혁이가 끌려갔던 게이트.”

백인하는 짧게 대답하며 이번에야말로 전투 준비를 했다.

만약 강신혁이 멀쩡히 살아 돌아오는 것이라면 그 이상 기쁜 일이 없겠지만 적의 농간으로 정체모를 이레귤러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 놓고 무사히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죽진 않았더라도 적에게 포로로 잡혀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때야말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날뛰어주마.’

백인하가 고요히 주시하는 가운데 균열이 점차 커졌다. 이내 그것은 사람 한 명이 나올 만한 크기의 검은 구멍을 만들어내, 곧 그 안에서부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뭐?’

백인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는 사이 검은 구멍은 커졌던 때와 완벽히 반대되는 모습으로 작아지더니 완벽히 소멸했다. 이윽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침묵뿐이었다.

게이트가 소멸했다면 그것을 클리어한 인간이든, 인간을 죽이고 게이트 바깥으로 뛰쳐나온 몬스터든 나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있어!’

다음 순간 백인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속아 넘어갈 뻔했지만 뚫어져라 주시한 덕에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로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사람 한 명, 그리고 조그만 생물의 기척이 하나. 변신술인가? 아니, 만약 그렇다고 하면 어째서?

그 기척은 천천히 그들에게로 가까워져왔다. 백인하는 잠깐 시선을 돌려 신은아와 그녀가 싸우고 있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이쪽에서 일어난 일을 눈치 챈 기미는 없었다. 신은아는 분노에 취해 날뛰느라, 적들은 그런 신은아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느라.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백인하의 귀에 착용한 이어마이크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보호막 열어줘.

강신혁의 목소리였다. 백인하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너, 너 진짜 신혁이……."

- 네가 생일선물로 사준 150만 원짜리 검 덕분에 살아 돌아온 강신혁 맞으니까 빨리 열어줘.

“응? 백인하 너 뭐라고 했어?”

백인하는 카렌과 도우진의 시선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보호막 밖으로 팔을 뻗었다. 보호막 외부에 있는 사람을 내부로 끌어 들일 때 쓰는 방법으로, 무척 위험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공격을 받는 중에는 결코 써먹을 수 없는 방법이었지만…….

신은아의 공격을 받는 적들은 감히 백인하를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짧은 순간 그의 손을 붙잡은 누군가가 곧장 보호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은신이 완벽하게 풀리고, 완전히 넝마가 되어버린 교복을 몸에 걸친 강신혁의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후, 살았다. 땡큐.”

한껏 지친 안색, 그러나 게이트 안에 빨려들어가기 전과 비교해 명백히 안정된 기도. 심지어 자신조차 눈치 채기 힘들었던 은신 능력 까지. 그 낯선 모습에 당황하고 만 것은 잘못이 아니리라.

“신혁이 너 진짜……."

“뭐!?”

“강신혁!”

그러나 백인하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카렌과 도우진이 빽 소리를 내질렀다. 그야 백인하가 바깥으로 손을 내민다 싶더니 갑자기 강신혁이 보호막 안으로 들어왔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반응에 외부에 있던 이들도 보호막 안에 어느덧 학생 한 명이 늘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그 게이트에서!?”

“마, 말도 안 돼. 타겟의 등급을 올려야 해!”

“이봐, 누가 본부에 보고를……!”

그러나 ‘요르문간드’ 소속의 전투원들이 그 광경을 보고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번개, 다중연환!”

뇌제는 강신혁의 모습을 보고도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황금의 번개비를 뿌려 놈들을 모조리 휩쓸었다. 아니, 어쩌면 강신혁의 안전을 확인했기에 더욱 안정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요르문간드의 최정예 전투부대가 깔끔하게 전멸했다.

@@@

원군은 일이 모두 끝난 다음에야 간신히 현장에 도착했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늦었다기보다는 요르문간드 세력의 행동이, 그리고 뇌제 신은아의 대처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늦은 것은 늦은 것이었다.

"이레귤러 게이트를 강제 발생시키는 마도구……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것을 이용한 게이트 내부 강습까지 시행할 수 있다니 대체 놈들은……."

“몬스터를 이용했다는 거잖아. 역시 지성 있는 몬스터가 놈들과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하지만 정말 문제인데. 이런 식의 습격이 가능하다면 게이트에 진입하는 모든 이가 위험해지는 거 아냐?”

“그건 게이트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면 되지. ……하지만 이번엔 정말이지 변명의 여지도 없어. 젠장.”

세계 1위 길드인 뱅가드, 서울에서만은 그 위세가 뱅가드 못지않다고 알려진 길드 백양을 비롯한 여러 길드의 엘리트 부대가 D+급 게이트 안에 옹기종기 모여 반성회를 하는 모습은 실로 그럴듯한 것이었으나, 그것을 본 뇌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바닥을 굴렀다.

“대책 회의도 중요하지만 지금 학생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 그랬군요. 미안합니다. 너무 당황스러운 사태인지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뇌제가 요르문간드의 부대를 통째로 숯덩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백양 길드의 서브 마스터 이진영은 그녀의 예민한 반응에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큼, 아이들 앞에서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말았군요.”

“지금 당장 학생들을 학교 기숙사로 돌려보내도록 하죠. 뇌제님, 학교까지만 학생들과 동행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치열한 전투를 치르셨으니 뇌제님도 그 후에는 휴식을 취하시는 걸로…… 저희가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예. 그러죠.”

이전 강신혁과도 얼굴을 마주했던 남자, 뱅가드 길드의 1팀장 임훈의 말에 신은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들을 이끌고 게이트의 출구로 향했다. 클리어 조건은 물론 이미 달성한 후였다.

“신혁이 너 진짜 괜찮은 거야? 옷 상태가 장난 아닌데.”

출구를 빠져나와 협회에서 수배한 리무진을 타고 기숙사로 가는 길, 카렌이 조심스레 그런 질문을 했다. 지금 강신혁이 걸친 옷의 상태만 봐도 그가 얼마나 심각한 꼴을 겪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켓은 물론이고 셔츠도, 안에 입은 방어구도 구멍이 뻥뻥 뚫려있어 속살이 드러나는데다, 바지는 반바지 수준으로 뜯어진데다 남은 부분은 셔츠와 마찬가지로 구멍이 뚫려 까딱하면 팬티가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묘하게 피부에는 상처자국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감히 괜찮냐는 질문도 던지지 못했으리라.

“괜찮아. 사실 괜찮지 않았는데 포션을 마신 덕에 완쾌했어.”

“포션이 어디서 나서!?”

“천사님이 보내줬어.”

강신혁의 대꾸에 어째선지 그들의 앞좌석에 앉아있던 신은아가 몸을 움찔했다. 카렌은 그의 말을 제대로 대답하기 싫은 것이라고 받아들여 볼을 팅팅 부풀렸지만 그런 카렌을 밀쳐내고 백인하가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안에 나쁜 놈들 없었어?”

“나도 걱정했는데 몬스터밖에 없더라. 추측컨대…… 그건 사람을 격리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뇌제…… 큼, 신은아 선생님을 노렸던 거라고? 선생님을 격리하고 그 사이에 우리를 납치하려 했던 거고?”

“그래. 원래는 그랬는데, 선생님이 아니라 내가 걸린 거지.”

만약 그렇다면 몬스터를 조종하고, 이레귤러 게이트를 발생시키는 놈들의 수단도 아직은 완벽하지 못한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강신혁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들이 명확히 자신을 비롯한 학생들을 포획하려는 목적으로 게이트를 발생시켰던 것이라면 그 안에 사람 한두 명쯤 없을 리가 없었다. 일단 방치해두고 나중에 잡으려고 했다는 가설도 가능은 하지만, 그러기에는 게이트 안의 몬스터가 너무 강했다.

즉 원래 그것은 뇌제를 잠시나마 게이트 안에 가둬두려는 목적으로 발생시켰다는 얘기가 된다.

“게이트, 난이도는 어땠냐.”

도우진의 질문이었다. 그에게서 숨길 수 없는 호승심을 느끼며 강신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이 녀석은 너무 알기 쉬운 것이 문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줄 수는 없다. 그의 실력이 터무니없이 늘어났음을 감안해도, 히어로 유니버스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이레귤러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려웠어. 간신히 살아남았을 정도로.”

“그래서 정확히 어느 정도냐고.”

“아, 도우진 쫌! 힘들게 게이트 클리어하고 나온 애한테 그걸 굳이 캐물어야겠어? 교복 상태를 보고 대충 때려 맞추란 말이야!”

“아니, 그렇지만…… 미안.”

도우진도 자신이 섬세하지 못했음을 자각했는지 어깨를 늘어트리며 솔직히 사과해왔다. 강신혁은 괜찮다는 뜻에서 고개를 흔들어주었다.

“실은 워낙 정신이 없어서 난이도까지는 잘 기억을 못하겠어. 미안해할 필욘 없고.”

“……그, 고생했다.”

도우진은 조금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강신혁도 그를 이해했다.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와 잠시만 보았을 뿐이지만 보호막 바깥에서 신은아가 괴인들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은 가히 경악스러웠으니까.

그야말로 천외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전투. 그것을 보고나면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학생이라도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눈치를 채고 보니 어느덧 앞좌석의 신은아가 그를 뒤돌아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눈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혼란과 충동의 기색을 읽었다. 용케도 그 감정을 이 자리에서 터트리지 않고 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녀는 끝내 그렇게만 말하곤 그에게서 애써 시선을 떼어냈다. 어느덧 학교 정문. 차는 조용히 정문을 지나 언덕을 올랐다.

방금 그녀의 말을 대체 뭐라고 생각해야 할까, 신은아와 강신혁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를 읽은 일행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제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강신혁은 쓰게 웃으며 신은아를 향해 말했다.

더는 그녀를 피할 생각은 없었기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괜찮으니까 믿고 기다리라고.”

"......!"

신은아가 번개같이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목이 꺾이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 그거. 그러니까, 역시 할……."

“선생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후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읍…… 응. 알겠어.”

신은아가 사고를 치기 전 강신혁이 잽싸게 말을 덧붙이자, 그녀는 뭐라 말하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러 참고는 간신히 고개만 두어 번 끄덕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이 리무진 안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얘들아, 지금 이거 진짜 뭐래니.”

“뭐지? 시녹이 대체 뭐지? 나를 안심시켜놓고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치는 이 테크닉은 대체?”

“아니, 게이트에 대한 보고겠지. 너희들 다 진정해라.”

“도우진 네가 제일 현실도피하고 있는 거 아냐!?”

둘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학생들이 떠들기 시작했으나, 다음 순간 신은아에게서 미약하게 뿜어져 나온 스파크가 그들을 입다물게 했다.

그때 리무진이 멈추었다. 어느덧 학교 본관 건물이 눈앞에 있었다.

길고 길었던 실습이 비로소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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