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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 Chapter 11. 환룡, 바람을 타고 - 3 >

거미, 거미, 거미. 눈길이 닿는 곳 어디에나 거미가 있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독 거미줄을 바람의 칼날을 쏘아내 갈라내는데, 그 여파에 휘말린 근처의 알집이 붕괴하며 거미들의 분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일시적으로나마 민첩이 A랭크에 이른 지금 강신혁의 스피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뛰어올라있었다. 거미들도 사마귀에 비해선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지만 강신혁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놈들의 숫자가 열 마리 이하만 되었어도 제법 여유롭게 전투를 벌일 수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나타난 적의 숫자가 그 백 배는 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물론 남은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저지른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거미로 우글거리는 공간에서 어떻게든 맨바닥을 찾아 발을 디디며 속으로는 마구 욕설을 내뱉었다. 용감하게도 정면 돌파를 꿈꾸었던 몇 분 전의 자기 자신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차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 딸깍딸깍

소름끼치는 소리가 수십, 수백 겹으로 겹쳐 귓가를 두들겼다. 놈들은 사마귀와는 달리 주위에 거미알들이 뭉친 알집이 있건 말건 사정없이 그를 공격해왔다.

사방에서 쇄도하는 독니, 날카로운 다리, 그리고 독 거미줄! 강신혁은 자신의 눈앞에서 어지러이 교차하는 무수한 공격의 궤도를 바라보며 이를 빠득 갈고는 칼날 앞발을 들었다.

제아무리 숫자가 많아봤자 결국 놈들의 덩치나 위치 탓에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놈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놈들의 덩치에 지나치게 겁을 먹을 필요도 없다. 덩치가 크다고 칼이 안 박히지는 않을 터였다.

‘민첩이 올라가서…… 동체시력도 눈에 띄게 올라갔어. ……좋아!’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의 궤도를 보며 어떻게 움직여야 피할 수 있을지, 피할 수 없는 것들은 어떤 것부터 먼저 쳐내야 할지를 계산했다. 다급한 상황이라 그런 것인지 머리도 빠르게 돌아갔다.

“흡!”

짧디 짧은 한순간 모든 계산을 마친 그는 곧장 돌격했다. 사마귀의 칼날 앞발에 새겨진 용이 입을 쩍 벌린 다음 순간에는 이미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거미의 다리 하나를 베어버린 후였다.

이어서 한 마리 더. 바람의 칼날을 쏘아내 거미들을 물리치고 근처의 알집을 붕괴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 키이이이!

- 키힉!

거미들의 다리 사이를 빠르게 지나치며 칼날 앞발을 그어 올렸다. 위에서 내쏘아진 독 거미줄이 그것에 잘려 떨어져나갔다. 이어서 그 자리를 피하며 검을 횡으로 휘둘러 전방을 가로막던 거미들을 두 마리 동시에 베어 쓰러트렸다.

그때 옆 벽면을 타고 기어온 거미 몇 마리인가가 입으로 독을 토해냈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그럴 수 없는 것은 검면으로 막아 직격만은 면했다. 다만 치직, 소리를 내며 피어오른 독연까지 완벽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 맹독에 중독되었으나 레지스트 포이즌으로 대부분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독의 여파가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전투에는 아무 지장 없겠어…… 오닉스, 괜찮아?”

독으로 인한 피해를 스스로 체크해보며 안전하다는 판정을 내린 강신혁은 뒤늦게 오닉스를 살폈다. 혹시나 독연이 품안의 오닉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역시 녀석은 해독제라도 먹여서 인벤토리 안에 얌전히 숨어있게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오닉스를 부르는데…… 녀석의 대답이 없었다.

“아…… 이 새끼 진짜.”

전후좌우로 덤벼드는 거미를 베어내던 중 자신의 품을 힐끗한 강신혁은 곧장 한숨을 내쉬었다. 놈은 대체 언제 빠져나간 것인지 알수도 없게 이미 강신혁의 품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다급히 도약하며 녀석을 찾아보았지만 거미들로 우글거리는 이 공간에서 오닉스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녀석한테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런 거겠지?’

잘해봐야 D랭크 조금 넘는 수준인 그 녀석이 대체 무슨 깡으로 이 위험지대에 몸을 내던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녀석을 믿는 수밖에 없다. 솔직히 지금 오닉스까지 찾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에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 키이이이이이이이!

- 딸깍딸깍

생각을 할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거미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밀어닥쳤다. 그래, 차라리 생각을 그만두고 본능에 몸을 맡겨 움직이는 쪽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그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을 차례대로 쳐내고, 공격할 기회를 잡아 공격한다. 그 두 가지 논리로 움직이는 데 복잡한 생각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 키이이이이이!

비록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무기가 신살검은 아니었지만, 강신혁은 점차로 자신이 기억하는 신살검무를 칼날 앞발을 통해 능숙하게 펼쳐내고 있었다. 여러 무기로 신살검무를 펼치려는 노력을 했던 결실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휘두르고 있는 강신혁 본인도 해석할 수 없는 고유의 궤적을 통해 적의 움직임을 파훼하고, 마력을 흩트리고, 방어를 꿰뚫는 결과를 낳는다. 비록 오리지널에는 한없이 못 미치는 움직임이라 해도 거미들에게는 무척 유효했다.

- 딸, 깍

-딸깍딸깍...... 딸깍딸깍딸깍!

금방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침입자에게 당하는 동포의 숫자가 많아지자 거미들도 당황한 듯 다급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구 흩뿌려낸 독 거미줄이 강신혁 대신 다른 거미의 몸에 감기기도 하고, 독침은 잽싸게 몸을 날리는 강신혁을 스치고 지나가며 알집을 녹여 그것을 와르르 무너트렸다.

사실 그것은 강신혁이 한순간에 높아진 자신의 민첩에 적응한 덕분이기도 했다.

“흡……! 핫!”

- 키히이이이이!

딸깍거리는 불쾌한 소리 속에 점차로 거미들의 비명소리와 갑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거미들은 민첩하게 공격하며 움직이는 대신 방어력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A-랭크에 이른 힘으로 칼날 앞발을 휘두르면, 운이 좋으면 단숨에 목숨을 거두는 것도 가능했다.

벌써 그렇게 몇 마리의 거미를 죽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부순 알집은 이미 셀 수 없는 수준. 벌어들인 HP 역시 막대했다. 지금 여유롭게 거래 게시판에서 쇼핑을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데. 그렇게나 활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도저히 끝이 보이질 않아 ’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지? 그는 영력을 잔뜩 집중시킨 바람의 칼날을 한 차례 쏘아내 거미 몇 마리인가를 으깨곤 시간을 체크했다. 정확히 11분이 지나있었다.

'씁.......'

마침 영력이 떨어져 있었기에 곧장 영력 회복 포션을 까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관리자에게 부탁해 영력 포션을 두 개 더 구매했다. 앞으로 19분이 지나면 스테이터스는 원래대로 돌아올 터, 포션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 안에 안 끝내면 내가 끝날 테고.’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신한 것이 있다면, 이대로 무턱대고 싸우기만 해선 절대로 전투를 끝낼 수 없다는 것.

근 10분간 증가한 스테이터스를 바탕으로 날뛰며 제법 많은 양의 거미를 잡아냈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 공동 안에 넘쳐나는 거미들의 숫자에 비하면 별로 티도 나지 않는 수준.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해.’

강신혁은 다시 고개를 들어 공동 한쪽 구석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마법진을 주시했다. 거미들이 워낙 열심히 그를 막아, 아직 마법진과의 거리가 그리 좁혀지지도 않았다.

저것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미들의 모습도 그렇고,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도 저것과 연관이 되어 있으리라. 거미들을 죽이는 것보다도 어떻게든 저기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여야만 했다.

‘만약 아니면 그냥 죽는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숫자의 알집을 파괴한다. 포션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스테이터스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면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가자.’

목표를 다시 한 번 설정한 강신혁은 영력의 배분을 하체에 집중했다. 동시에 전투 과정에서 F+랭크로 성장한 윈드 마스터리를 발동, 바람의 힘으로 조금이나마 자신의 몸을 가볍게 만들고자 시도했다. 기척을 차단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 딸깍딸깍

“흡…… 하!”

순간이지만 그의 눈에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보인 것 같았다. 환룡무의 효과였을까? 강신혁은 직감적으로 그것을 따라 몸을 날렸다.

갑자기 옆에서 툭 튀어나와 뾰족한 다리를 내미는 거미의 머리통을 팔꿈치로 으깨며 그대로 칼날 앞발을 내뻗어 바람의 칼날을 쏘아냈다. 산산 조각 난 거미의 몸통에서 터져 나온 독이 근처 벽면에 매달려 있던 알집을 깔끔하게 녹였다.

눈앞에 연달아 떠오르는 HP 획득 메시지를 확인하며 다시 몸을 앞으로, 앞으로 내던졌다.

- 키이이이이이이이이!

거미들은 강신혁의 기세가 바뀐 것을 느끼곤 저마다 흥분하여 울음소리를 높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그의 움직임이 또 바뀌었다. 순식간에 비틀린 궤도를 따라 몸을 던지며 강신혁은 자신에게만 읽히는 이 기묘한 경로의 정체를 비로소 파악했다.

‘윈드 마스터리와 환룡무…… 거기에 어쩌면 신살검무의 효과까지 더해졌어. 윈드 마스터리는 단순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아니라, 보다 전체적인 흐름에 관여하는 힘이었구나.’

그래, 그 경로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강신혁이 갈고 닦아온 능력들을 기반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그것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끔 윈드 마스터리의 힘을 빌려 확고한 흐름으로 빚어낸 것이다.

스킬은 결코 아니다. 능력과 경험을 버무려 직감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일종의 요령이었다. 결코 범상치 않은 능력들이 버무려졌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그 능력의 주인인 강신혁의 재능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했다.

- 굉장히 특별한 경험으로 스킬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원드 마스터리(A-) 스킬이 단번에 E랭크로 성장합니다! 영력과 민첩에 보정이 주어졌으나 다음 랭크로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 스킬의 잠재력을 끌어내 체화했습니다. 환룡무(S+) 스킬이 B+랭크로 성장합니다! 특성의 효과가 보다 늘어납니다.

두 줄기의 메시지가 망막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강신혁은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흐름은 일종의 기연과도 같았다. 여태까지 그가 겪은 경험과 능력을 한데 녹여내 조화시켜, 확실한 그의 실력으로 굳히는 과정.

흐름을 따라 한 발짝씩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그의 뇌리에 자신의 움직임을 새기며, 아직까지 불완전한 직감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던 판단력을 현실로 끌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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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각딸각딸각

- 키이이이이이이이이!

정신없이 갱신되는 메시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강신혁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어느덧 공동 한쪽 벽면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마법진과 불과 100미터도 남겨 두지 않고 있었다.

- 스테이터스 포션의 지속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강신혁이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것을 알리는 듯한 관리자의 목소리에, 그는 불쑥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지금 제 스테이터스 어때요?”

- 힘 B+(A-), 민첩 A-(A+), 체력 A-(A)입니다.

“아직 힘 하나가 부족하네.”

그나저나 민첩은 한 단계가 오른 덕에 민첩 중급 포션의 효과까지 적용받아 A+가 되었었구나. 어쩐지 흐름을 읽어낸다고 쳐도 지나치게 스스로의 움직임이 쾌활하지 않은가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서두르셔야 합니다, 회원님. 부화가 머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조금 전부터 고동이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네요.”

마법진에 보호받고 있는 알에서 심장고동과 같은 진동이 꾸준히 공동 전체로 퍼지고 있었으니까. 알 수밖에 없다. 저게 부화했다간 그리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하지만 문제는 남은 백 미터다. 강신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거미들은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마법진을 사수하고 있어, 문자 그대로 육벽이라 불러 마땅한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놈들을 전부 쓰러트리지 않고서야 도저히 강신혁이 나아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강신혁은 이렇게 될 것까지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한 것이 있기도 했다.

“아, 하지만 그 전에. 관리자님, 오우거 파워 건틀렛 하나 주세요. 힘까지 깔끔하게 올려놓고 시작하죠.”

- 죄송합니다, 회원님. 그것이 바로 방금 팔린 지라…… 원래 오우거 파워 건틀렛 같은 아티팩트는 인기가 무척 많습니다…….

미안함이 뚝뚝 묻어나는 관리자의 메시지에 강신혁은 추궁할 기력조차 잃고 말았다. 그는 쩝,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수밖에.

그 사이 몰려드는 거미들에게 특대형 바람의 칼날을 날려 시간을 번 후, 인벤토리에서 세 가지 물건을 꺼냈다.

첫째는 투창기.

둘째는 힘을 올려주는 폭주환.

마지막 셋째는, 실습을 위해 벼린 한 자루의 단창.

마법을 부수고 꿰뚫는 데 특별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전해지는 마법금속, 에이라이트로 만든 단창이었다.

- 정말 다 드실 겁니까?

“오우거 파워 건틀렛만 구했어도 다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이거 괜히 후유증 두렵다고 하나 아꼈다간 힘이 아주 조금 부족해서 마법진을 못 부수고 끝날 걸요. 장담할 수 있어요.”

- ……관리자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는 툴툴거리며 폭주환 세 개를 연달아 삼켰다.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전신에 힘이 끓어올랐다. 아직 유효시간이 조금 남은 힘 포션에 더해 세 개의 폭주환까지, 총 네 단계의 힘이 상승해 그의 힘을 순간이나마 ‘S-랭크’의 영역에 올려놓았다!

그는 문자 그대로 폭주하는 자신의 힘에 압도되어 중얼거렸다.

“아, 이거 망했다. 3분 지나면 무조건 망했다.”

- 그러니 반드시 부수셔야 합니다!

관리자가 느낌표를 사용하고 있으니 무조건 그대로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신혁은 이 급한 와중에도 미소를 지으며 투창기에 에이라이트 단창을 걸었다.

그리고 투창기를 있는 힘껏 당겼다가 그대로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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