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Chapter 10. 용의 여의주 - 5 >
모든 초인에게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 특성과 스킬, 심지어 스테이터스마저도 개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명확한 한계점이 있어, 그 한계점이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사람의 잠재력을 판단할 수 있다.
보통은 특성이나 스킬의 희귀도로 한계점도 대충 알아볼 수 있고, 바로 그렇기에 높은 희귀도 랭크의 특성을 지닌 초인들이 엘리트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강신혁도 두 번의 특성진화를 통해 S랭크의 특성 [금안의 환룡]을 얻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한계점이 다른 이들보다 높은 편일 터.
그렇다면 초인은 어떻게 해서 그 한계점까지 강해지는가? 여기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했다.
첫째는 단순하게, 노력해 단련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특성을 깊이 탐구하고, 지닌 스킬들을 반복적으로 구사해 성장시키며,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신체를 함께 단련한다. 지속적으로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스테이터스는 느리게나마 성장하게 되어 있었다.
‘이게 여태까지 나를 비롯한 학생들이 해온 방식. 그리고…….'
그리고 둘째가 바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애초에 능력자를 탄생하게 하는 가이아 시스템은 능력자가 몬스터를 사냥해 성장하는 것을 전제로 두는 시스템이었다.
능력자는 자신이 쓰러트린 몬스터의 능력을 지극히 일부 흡수하여 성장한다.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를 해치워봤자 그리 강해질 수 없지만, 반대로 자신의 능력에 비해 강한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게임 속에 나오는 경험치 개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성장한다고 해봐야 게임에서 레벨 업 하듯이 당장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단련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빨리 능력이 성장한다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으면 확실하게 능력치가 성장하며,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에 도전하는 자들은 뚜렷이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성장속도가 빠르다. 당장 강신혁만 해도 변종 트롤을 해치우고 수련에 매진했을 때 빠르게 스테이터스가 성장했던 데에는 비단 버프뿐만 아니라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명확한 수치로 파악할 수는 없을뿐더러 게임과는 달리 죽을 위험이 높으니만큼 실제로 일부러 격상의 적을 찾아 도전하는 변태는 드물지만, 지금 강신혁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더욱이 그는 이전 키엘론에서 명백한 격상의 적인 땅지옥을 사냥한 경험까지 있다. 즉 ‘잔여 경험치’가 있다는 얘기다. 그 후로 아직까지 스테이터스가 성장하지 않았으니, 보다 스테이터스의 성장에 가까워져있는 상태다.
- 기이이아아아아아!
“좋아. 한 마리 상대라면 해볼 만하네.”
- 뀨우웃!?
“오닉스, 너는 빨리 인벤토리 안으로 피신하고.”
지금 그의 눈앞에는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거대 암사마귀가 있었다.
B+랭크의 베놈 블레이드 맨티스 중에서도 특히 강한 암컷. 더욱이 둥지를 지키고 있을 정도의 암컷이라면 개중에서도 최상위 개체일 터였다.
하지만 강신혁은 그런 암사마귀의 행동 패턴조차 이미 사마귀의 칼날 앞발을 통해 습득을 완료한 상태. 더욱이 그 칼날 앞발을 쥐고 있으면 보다 민감하게 대응할 수도 있었다. 그래, 마치 그 스스로가 사마귀가 되기나 한 것처럼.
‘신살검과의 일체감을 느꼈던 때와는 달리 묘한 기분이지만…… 나쁘지 않아.’
- 기이이이이이이!
암사마귀가 발악적으로 울부짖으며 앞발을 휘둘러왔다. 강신혁은 자신이 예상한 궤도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 제법 여유롭게 몸을 놀리며 나지막이 웃었다.
본래 놈들은 앞발에 마나를 모아 독성을 품은 바람의 칼날 공격을 날리지만 지금 녀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째서? 바람의 칼날 공격을 하지 못하는 개체라서? 아니.
그것은 이 공간이 온통 사마귀의 알집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얘기로는 들어본 적 있었는데. 거의 도시전설인 줄 알았지.’
단발성 흡수형 게이트에 들어간 초인들이 아주 가끔, 운 좋게 그런 일을 겪는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었다.
바로 알을 대량으로 낳는 곤충형 몬스터의 둥지 중심부에 떨어져, 그것을 전부 없애자 ‘그 자리’에서 스테이터스가 오르는 경험을 겪었다는 얘기를.
몬스터의 알이 가이아 시스템의 기준으로 얼마나 높은 경험치로 인정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몬스터의 둥지에 떨어져 알을 깨트린 자들의 경험담부터가 도시전설 취급이니까.
하지만 보다 랭크가 높은 몬스터의 알일수록 그것을 깨트린 자도 높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아닐까. 그것도 B+등급 몬스터의 알이라면!
- 몬스터의 알은 성체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경험치’를 제공합니다. 다만 그 몬스터의 격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경험치가 동일한 다른 약체 몬스터에 비해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 강신혁은 칼날 앞발을 통해 둥지의 정보를 알아내고, 관리자에게 확답을 들었기에 비로소 이런 위태위태한 도전에 나선 것이었다. 심지어 이것은 상당히 확률이 높은 도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그가 가장 근처에 있던 알집을 사정없이 칼날 앞발로 후려치자 파바바박,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알집이 무너져 내렸다.
알일 때는 독에 내성이 없는 것일까, 직접적으로 날에 베이지 않은 알도 금세 검은색으로 물들어 파삭,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족히 백 개 이상의 알이 뭉쳐있던 알집을 하나 처치하자 당장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대량으로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12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180,000HP를 얻었습니다!
- 힘이 B랭크로 성장합니다!
그 순간 강신혁은 전율을 느꼈다. 비단 HP를 획득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족히 수백에 달하는 무수한 생명을 거두는 그 순간 놈들에게서 동시에 날아든 무언가가 뚜렷하게 자신에게로 흡수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B+급이 되면 알조차 품고 있는 기운이 이렇게 압도적인 것인가. 힘이 성장한 것은 아마도 땅지옥을 잡고 얻은 경험치가 남아있던 덕이겠지만 그래도 굉장했다!
강신혁이 반쯤 황홀경에 빠져 그런 생각을 하던 중.
- 기이이이이이이!
"흐."
재차 날아든 암사마귀의 칼날이 그의 목덜미를 노렸다. 공격 궤도만 놓고 보면 제법 소심하지만 제대로 명중한다면 확실하게 그의 목을 거두어갈 일격이다.
‘하지만.’
사실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계속 녀석을 피해 움직이며 알들을 먼저 깨트리고 나서 상대하는 것이 안전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계속 녀석을 피해 움직이면서 알을 전부 어느 세월에 부수겠는가. 지금 강신혁은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게 소동을 피우고 있으면 곧 거미들도 반응할 테니까.’
더구나 영력 접착제는 분명히 좋은 물건이지만 B+랭크의 사마귀들을 오랜 시간 동안 붙잡아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빠져나가는 게 최고였다.
그렇다면. 강신혁은 칼날 앞발을 양손으로 고쳐 쥐고, 발악적으로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향해 덤벼오는 사마귀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흡!”
- 키이이이이!
놈은 그와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자 냅다 독침을 뱉어왔다. 총탄조차 능가할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 모르고 있었더라면 그대로 당했겠지만 강신혁은 그대로 칼날을 돌려 넓은 면으로 그것을 받아냈다.
독침은 날을 녹이지 못했고, 그는 그것을 휘둘러 놈에게로 튕겨내며 다시 한 발짝 성큼 나아갔다. 놈의 갑각에 튄 독침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그 부위를 조금 녹였다. 덤으로 옆에 있던 알집도 함께 녹아내렸다. 아마 강신혁이 죽인 것으로 인정이 될 것이다.
- 기이이익!?
두 앞발이 교차하듯 휘둘러져왔다. 그는 한층 더 몸을 낮추고 전진했다. 하나는 피해냈고, 하나는 회수되는 순간을 노려 칼날을 휘둘러 튕겨냈다.
정면에서 붙으면 밀리겠지만 적의 공격 궤도를 전부 읽어낼 수만 있다면 튕겨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사마귀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그때 놈의 칼날이 닿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로 다가가며 그대로 일섬!
놈의 목 관절이 있는 부위를 칼날 앞발이 깊숙이 베어 들어가며 빠직, 섬뜩한 소리를 냈다.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간 완벽한 공격, 하지만 B+급의 몬스터답게 치명적인 급소에 치명적인 일격을 맞아놓고도 바로 죽지는 않았다.
- 키이이이이이이이!
그런데 강신혁이 놈에게서 검을 뽑아내려 힘을 주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놈이 양 앞발을 당겨 그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두며, 동시에 깊숙이 베여 덜렁거리는 머리를 그에게로 불쑥 내민 것이다.
놈의 머리가 완전히 갈라지며 그 안에서 징그러운 네 갈래의 촉수처럼 보이는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놈들이 사마귀처럼 보여도 실제론 몬스터에 불과할 뿐이라는 증거였다. 그것은 칼날 앞발에는 담겨있지 않던 정보이기도 했다.
"후."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무기를 포기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무리였다. 그렇다면 손에 쥔 칼날로 저것을 모조리 베어내는 수밖에.
어떻게? 그는 반쯤 본능적으로 칼날 앞발을 세게 쥐며 이를 악물고 그것에 힘을 주었다.
그의 전신에서 솟구친 영력이 일제히 칼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이 지닌 근원의 한계 이상으로 능력을 끌어내, 그것을 강신혁의 근원과 이었다.
금안의 환룡이 발동하며 칼날 앞발 전체에 용의 문양이 새겨졌다. 강신혁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순간, 칼날 앞발이 소름끼치는 진동과 함께 바람의 칼날을 토해냈다!
- 끼이이이아아!
"큭!"
위험을 감지한 것일까, 놈이 발악적으로 촉수를 뻗어냈다. 자신이 공격을 하는 순간 날아든 적의 반격에 강신혁은 그만 어깨를 내주고 말았다.
공격에 맞은 부위에서 금세 격통이 밀려왔으나 한가롭게 상처를 살필 시간은 없었다.
그는 칼날 앞발을 쥔 채, 방금 바람의 칼날을 얻어맞고 머리가 깔끔하게 날아가고 몸통만 남은 사마귀에게 재차 일격을 박아 넣었다. 칼날 앞발의 정보에 따르면 놈들은 머리가 날아가고도 당분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욱, 후우우......."
다행히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촉수가 돋아났던 머리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몸통 역시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순간.
-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1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15,000HP를 얻었습니다!
- 재생력이 D랭크로 성장합니다!
- 독에 당하셨습니다. 재생력의 성장을 감안해도 최소한 중급 단계 이상의 해독약을 복용해야만 합니다. 관리자의 재량으로 바로 구입하여 수령합니다. 2만 HP가 차감됩니다.
“고마워요.”
관리자의 메시지가 다급했기에 강신혁 역시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자신의 손에 나타난 해독약을 복용했다.
어깨를 살피니 교복 상의와 셔츠가 엉망진창으로 찢겨져나가고 살이 푹 파여 피가 몽글몽글 솟아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체내의 독 기운은 해독약이 해결해준다 쳐도 외상만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회복 포션도 하나 꺼내어 마시고, 외상약을 상처 부위에 덕지덕지 발랐다. 어마어마하게 쓰리고 아팠다.
“끄으으…… 그래도 트롤하고 싸웠을 때보단 훨씬 덜 다쳤네.”
- 회원님…….
“아니, 미안해요.”
- 회원님을 탓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방금 외부의 상황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좋지 못 한 소식인지라…….
“변화?”
- 뀨?
그는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 있던 오닉스를 꺼내며 관리자의 메시지를 재촉했다. 관리자는 지체 없이 말을 이었다.
- 까마귀 둥지 안에서 다시 이레귤러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이번엔 방출형의 게이트입니다. 더욱이 그 게이트에서 정체불명의 적들이 나타나 신은아는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개시…… 아무래도 외부의 구조를 바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즉……?”
- 회원님께서…… 직접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셔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Ah……."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사정이 변할 리도 없다.
생각을 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될 일은 없었으므로, 강신혁은 우선 이 공동 안에 가득한 사마귀 알을 전부 깨트리고 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워낙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는 그러는 사이 오닉스가 쓰러진 암사마귀에게 다가가 무슨 짓을 하는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