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 Chapter 10. 용의 여의주 - 4 >
사마귀의 무덤에는 크게 잡아 두 종류의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다. 다른 벌레형 몬스터도 제법 출몰하긴 하지만 놈들은 C급 이하의, 즉 강신혁에게도 그리 위협이 되지 않는 몬스터인데다 무리를 짓는 특성도 없었으므로 그리 유의할 것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마귀, 즉 베놈 블레이드 맨티스와 그런 사마귀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능력의 거미, 톡식(toxic) 웹 쓰로워. 둘 다 유독성이고, B+급의 몬스터다. 더욱이 놈들은 숫자까지 많았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구나.’
강신혁은 영력을 통해 사마귀의 ‘칼날 앞발’로부터 읽어낸 정보를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설마 몬스터의 신체와도 소통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도 못했지만 일단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해도 살아 움직이던 사마귀에게 붙어있던 칼날 앞발에는 놈의 생태, 전투 방식, 약점에 대한 모든 정보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고, 영력의 컨트롤이 능숙해진 강신혁은 그 모두를 완벽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력에 이런 가능성이 숨어있을 줄은 몰랐는데.’
물론 이전에도 한 번, 자신을 찍어 누르려던 선배의 기세를 영력을 이용해 역으로 파악했던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땐 상대의 힘의 총량을 대충 감지했을 뿐 이렇게 디테일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는데.
어쩌면 그가 제압해 생물체에서 직접 뜯어낸 신체의 일부여서일지도 모르고, 그의 영력이 이전보다 성장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 회원님, 괜찮으십니까?
한시가 위급한 상황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그가 걱정되었던 것일까, 관리자가 메시지를 보냈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관리자도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괜찮아졌어요.”
- ......?
반면 강신혁의 대답은 차분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분류하여, 그것을 이용해 어떻게 움직일지를 구상하고 있었다.
곧 결론은 나왔다. 아직 몇 개인가의 빈틈이 있었지만, 그 빈틈은 아마도…….
“관리자님, 제게 있는 HP가 얼마나 되죠?”
히어로 유니버스를 이용해 메울 수 있을 터! 강신혁의 질문에 관리자는 지체하지 않고 대꾸했다.
- 753,090포인트입니다.
"끙."
인벤토리를 한 칸에 150만HP씩 주고 구매한 경험이 있는 강신혁은 그것이 결코 많지 않은 양임을 알았다. 그래도 지금 상황을 타파할 정도는 되어 주리라.
“제 영력을 한꺼번에 채워줄 만한 포션은 없나요?”
- 가장 싸게 올라온 상품은 개당 5만 HP에 팔리고 있습니다.
“그럼 일단 그걸 한 개만. ……아니 두 개.”
-VIP 수수료 면제, VIP 특별 할인가로 두 개 합쳐 8만 HP에 구매했습니다. 이 포션에는 10분의 쿨타임이 있습니다.
“알기 쉬운 설명 고마워요. 하지만 포션을 연달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마 시간을 여유롭게 재고 있을 여유는 없을 것 같네요.”
67만 포인트가 남았다. 그중에서 이전에도 신세를 졌던 긴급외상치료약을 5개 사고(1차 해방이 이루어져 더 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된 덕에 개당 4천 HP에 살 수 있었다.), 체력 회복 포션(중급 포션으로 할인가를 적용하면 개당 12,000HP)도 5개 샀다.
- 다른 어디에서도 구매하지 못하는 상품입니다. 히어로 유니버스에는 포션 제작에 도가 튼 마도사들도 소속되어 있지요.
클레어가 만든 포션들과 비교하면 어떨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잡념을 털어내곤 이어서 말했다.
“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중에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상품은 없을까요?”
- 거래 게시판을 검색중입니다.
이번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전 클레어에게 듣자니 본래 히어로 유니버스 거래 게시판의 검색 기능은 이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모양이다. 강신혁이 관리자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는 얘기다.
-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더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잘 됐네요. 저도 조금 작업을 해둘 게 있어서.”
강신혁은 또 어떤 몬스터가 오지는 않나 귀를 쫑긋 세워 경계하며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그가 바닥에 칼날 앞발을 내려놓은 후, 인벤토리에 보관해두고 있던 신살검을 꺼내는 순간…….
- 뀨
“……뀨?”
- 뀨!
그 안에 들어가 있던 오닉스가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튀어나와 강신혁의 코를 붙잡고 매달렸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얘진 강신혁은 일단 급한 대로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선 조용히 안 하면 목숨이 위험해. 알아듣지?”
- 뀨
녀석도 곧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속삭이듯이 울었다. 그가 놔주자 뽈뽈거리며 기어가 그의 어깨 위에 자리 잡는 오닉스. 그러나 강신혁은 여전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대체 네가 어떻게 인벤토리에…… 이거 생물도 들어갈 수 있는 거였어?”
- 인벤토리는 내부에 수납되는 모든 것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회원님의 소유물이 아닌 것은 수납할 수 없으니 유념하세요.
관리자의 친절한 대답. 과연, 오닉스가 강신혁의 펫이기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설마 녀석이 인벤토리 안에 기어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에 그도 비교적 경계가 느슨하긴 했지만…… 정말 겁도 없는 녀석이다.
“보나마나 인벤토리 안에 가득한 브레나이트를 먹으려고 했던 거겠지.”
- 하지만 녀석이 여기 있어서 다행입니다.
관리자의 메시지가 아까에 비해 한결 밝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째서냐고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관리자가 바로 설명을 해줬으니까.
- 제시하신 가격 안에서는 도저히 회원님의 바람에 부응하는 상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만, 오닉스 덕분에 쓸 수 있게 된 상품이 있습니다. ‘흉내 내기 두루마리’입니다.
“혹시 그걸 쓰면 제가 오닉스의 ‘은신’을 흉내 낼 수 있게 되나요?”
오닉스에게는 무려 희귀도 A급에 달하는 은신 스킬이 있다. 그가 만든 C급의 함정 아티팩트를 먹어치우고 얻은 능력. 강신혁의 추측에 관리자는 망설임 없이 긍정했다.
- 정확합니다. 단 대상과 계속 붙어 있어야 합니다. 대신 한 번 펼쳐 활성화하면 두루마리가 소멸하는 일곱 시간이 지나기까지는 계속해서 대상의 스킬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빌려올 수 있는 스킬은 한 번에 한 가지로 한정됩니다.
“완벽히 이 순간을 위한 물건인데, 그건……."
- 뀨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주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오닉스가 자랑스럽게 울었다. 강신혁은 녀석을 조심스레 쓰다듬어주며 관리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가격은 얼마죠?”
- 56만 HP입니다.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
처음 사마귀와 조우하고 나선 운 좋게도 다른 몬스터와 조우하는 일이 없었지만, 강신혁은 그곳에서 할 일만 마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사마귀들의 평소 이동속도는 느린 편이라는 정보를 얻었지만, 그래도 동포가 사라진 것을 깨닫게 된다면 놈들도 기민하게 움직일 터였다.
- 흉내 내기 두루마리를 사용하여 개체 오닉스의 ‘은신(A)’을 흉내 냅니다. 두루마리의 등급이 높아 기술의 숙련도(D랭크)를 온전히 따라합니다.
“좋아…… 대체 언제 숙련도를 올려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잘했어. 완벽해.”
- 뀨
강신혁은 피 같은 돈을 주고 구매한 흉내 내기 두루마리를 바로 활성화하여 자신에게 오닉스의 은신이 적용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보다 자신을 얻었다.
전투 행위를 하면 바로 은신이 풀린다지만, 두루마리가 유지되는 한은 언제든 다시 은신을 적용할 수 있으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 회원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강신혁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상대가 격상이라고 하나 이만큼의 정보를 얻어놓고도, 이만큼 준비를 하고도 겁을 먹고 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여러 타입의 초인이 있지만, 강신혁은 자신에게 힘이 있고 눈앞에 몬스터가 있다면 비록 조금 위험할지라도 몬스터에게 덤벼드는 타입의 초인이었다.
- 뀨
“그래, 출발하자.”
지금 그의 한손에는 투창기가, 다른 한손에는 사마귀의 칼날이 들려있었다.
길이만 2미터에 달하는 그 거대한 칼날에 달려있던 사마귀의 살점이나 갑각을 적당히 떼어내고 날을 숫돌로 다듬어 보다 예리하게 만든 후, 인벤토리 안에 있던 가죽을 덧대어 손잡이를 만든 것이었다.
단지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 굉장히 멋들어진 곡도가 탄생했다. 이전 키엘론에서 갑각으로 무구를 만드는 것을 익힌 덕에 제법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왔다. 물론 길이가 무지막지하게 길어 다루기가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 굳이 그것을 드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거대한 놈들을 상대하려면 이쪽도 이 정도는 들어줘야죠. 더구나......."
베놈 블레이드 맨티스의 앞발에는 짙은 독성이 있는데, 독성을 갖춘 만큼 내성도 확보하고 있어 같은 사마귀의 독을 막아낼 수도 있고, 나아가 거미가 쏘아내는 독 거미줄도 막아낼 수 있었다.
강신혁이 괜히 손에 맞는 B랭크의 신살검을 놔두고 이것을 가공해 든 게 아닌 것이다.
- 다시 보니 상당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생의 회원님께선 이럴 기회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적지에 잠입하여, 적의 신체를 뜯어내 즉석에서 그럴 듯한 무기로 가공하여…… 300HP 보너스!
“고마워요.”
어쩌면 관리자의 보너스로 1,000HP 이상씩 받게 되는 날도 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강신혁은 다음 순간 헛숨을 들이켰다. 그의 감각권에 느껴지는 몬스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미.’
천장 속 구멍에서 거대 거미 한 마리가 빼꼼 얼굴을 드러냈다. 여덟 개 다리의 끝부분이 보랏빛으로 물든, 연신 소름끼치게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는 괴물.
강신혁이 호흡을 멈춘 채 가만히 있자 놈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는지 겹눈을 깜박이며 다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은신의 효용이 완벽하게 증명된 것이다.
“덕분에 살았다.”
- 뀨
다음에 몬스터를 만났을 땐 보다 대담한 시도를 해보았다. 숨은 그대로 멈춘 상태에서 이동은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놈…… 베놈 블레이드 맨티스는 그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아직 숙련도는 D랭크에 불과할 텐데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보이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 개체 오닉스의 은신 스킬 숙련도가 D+랭크가 되어, 흉내 내기의 수준이 함께 상승합니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성장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 만든 함정을 오닉스가 먹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이젠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둥지다.’
그렇게 얼마나 더 움직였을까, 그는 곧 유독 사마귀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동 앞에 이르렀다.
여태껏 길을 지나다니는 사마귀는 모두 단독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저 공동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마귀들은 어림잡아 서른 마리 이상. 강신혁은 저 안에 무엇이 있을지도 알고 있었다.
‘알을 품고 있는 암사마귀. 저것들은 태어날 사마귀를 지키는 병사이자, 암사마귀가 필요로 할 때 영양분이 될 먹잇감…….'
자연계의 사마귀들도 울고 달아날 가혹한 번식환경이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환경에서 거미들과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만들어진 습관이었는데, 거미들을 제치고 이 자그마한 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차지하려면 최대한 새끼들을 낳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었다.
‘그 덕에 내가 놈들을 잡을 방법이 생겨났으니까.’
강신혁은 놈들이 보이는 곳에 넓은 통로를 발견하고는 그 중앙에 병 하나를 두었다. 그 병은 바로 이전에 로그인 보너스로 얻은 몬스터 유인제(C+)로, B-급까지의 몬스터를 마구 끌어들일 수 있는 사냥보조용품이었다. 다만 그 자체로는 B+등급의 사마귀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해서 강신혁은 여기서 자신이 사둔 첫 병째의 영력 포션을 활용해, 자신이 발할 수 있는 최대 영력을 유인제 안에 담았다. 영력은 만물을 강화하며 유인제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이전이었다면 이런 발상도 무리였겠지. 어떻게든 머리를 짜내야 하는 환경 속에서, 강신혁은 서서히 영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깨달아가고 있었다.
- 이제 영력의 수발에는 통달하셨군요. 이 정도라면 사마귀들 정도는 얼마든지 끌어당길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 그럼……."
지금 병을 열어버리면 안 된다. 그는 얌전히 병을 놔두고는 품 안에서 다른 병을 꺼냈다. 이것도 마찬가지, 로그인 보너스로 얻은 영력 접착제. 영력을 담아 이것을 바르면 자신의 영력과 불일치하는 모든 대상을 상대로 초월적인 접착력을 발휘하는 물건이었다.
“이거 혹시 상점에서는 안 팔아요?”
- 3차 해방이 되면 개당 200만 HP에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할인혜택도 더욱 강해져 80만 HP에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괜히 물어봤지.”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접착제를 듬뿍 퍼 몬스터 유인제를 놓아둔 곳 주위에 발랐다. 정가 200만 HP의 상품답게 접착제의 양은 상당히 많았고, 어렵지 않게 통로 전체를 커버할 수 있었다.
‘혹시 모르니 딱 한 번 쓸 양은 남겨두자.’
이제 준비가 다 되었다. 강신혁은 은신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그 통로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사마귀들은 그제야 거대한 통로 중앙에 놓인 유인제를 발견했는지 저마다 키륵, 소리를 내며 그것을 경계했다.
직후 강신혁이 투창기로 쏘아 날린 강철 단창이 그 병을 산산조각 내, 유인제를 사방에 퍼트렸다.
- 기이이이이이이이!
- 키기기기기기!
끔찍한 소동이 일어났다. 사마귀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그 통로로 달려든 것이다! 심지어 투창을 날리면서 그의 은신이 한 번 풀렸음에도 놈들은 일절 관심을 주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마치 번식기라도 찾아온 것처럼 기성을 내지르며 유인제가 퍼지는 방향으로 몸을 날리는 사마귀들!
직후 놈들은 일제히 강신혁이 바닥에 발라둔 접착제에 발을 붙들려 그 자리에 멈추어서고 말았다.
- 기기기기기기기긱!
- 키이아아아!
- 서두르셔야 합니다. 한 번 발동한 영력 접착제의 유효시간은 불과 수 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강신혁은 냅다 공동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 순간 눈앞으로 날아드는 바람의 칼날.
그는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곧장 바닥을 굴러 피했다. 그러자 눈앞에 거대한 공동의 전경이 들어왔다.
- 키이이이이이……!
수컷들을 꾀어내고 쳐들어온 침입자를 향해 번뜩이는 분노를 드러내는 거대한 암사마귀 한 마리와…….
공동 가득 들어찬 사마귀의 알집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