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 Chapter 10. 용의 여의주 - 1 >
-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로 중급 민첩 포션 1개를 얻었습니다.
게이트 실습이 진행되는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자기 전까지 계속해서 정신을 가다듬었던 강신혁은 로그인 보너스를 보며 어이없이 정신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민첩 포션? 관리자님, 그걸 먹으면 혹시 민첩이 증가하나요?”
- 안타깝게도 영구적인 증가는 아닙니다. 민첩에 한해 30분간 2단계의 증폭이 일어납니다.
“일시적인 효과라도 대단하네요.”
관리자는 하급 포션까지는 거래 게시판의 기본 품목으로 구매할 수 있음을 추가로 알려주었다.
중급이 2단계이니 하급은 아마 1단계일 테고 그것만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가격이 개당 10만 HP였기에 조용히 포기했다.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는 터무니없는 당첨인 셈이다. 하긴 룰렛 코인만 해도 예사롭지는 않지만.
- 참고로, 중급 포션으로는 최대 S+랭크까지 적용되니 사용 시 주의해주세요.
“중급 포션으로 S+랭크까지 커버한다고요?”
강신혁이 알기로는, 특성이나 스킬의 희귀도는 S랭크인 경우가 그나마 가끔씩 있다지만 실제 스테이터스나 스킬의 숙련도가 S랭크를 넘으면 그때부터는 이미 랭커 취급이었다.
S랭크는 랭커의 상징이라고 부르는 게 괜한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S랭크를 찍기가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상급도 아닌 중급 포션으로 S+랭크까지 커버할 수 있다니!
“스테이터스란 최대 몇 단계까지 있는 걸까요……."
힘 B-, 민첩 B+, 체력 B, 영력 B-. 두 번째 특성진화를 겪으며 모든 신체 스테이터스와 영력까지 B랭크에 진입해, 내심 당장 현역으로 뛰어도 우수한 수준의 초인이 되었다며 으스대고 있던 자신이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긴 강신혁이 감히 한계를 엿볼 수조차 없는 능력의 소유자인 신은아조차 히어로 유니버스에서는 신참 취급을 받는데 대체 뭘 으스댄단 말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강신혁에게 관리자가 굳건한 의지가 느껴지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 회원님께선 언젠가 반드시 그 영역에 이르시겠지요.
“정말 그럴까요……."
- 물론입니다. 당장 동화율 20%에 이르러 VIP 권한 2차 해방이 진행되면 로그인 보너스에서 성장속도 버프가 등장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고 보면 여태껏 성장 속도 버프를 받아본 것이 손에 꼽는다. 하지만 로그인 보너스로 버프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면 확실히 그의 성장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리라.
- 거기에 더불어 거래 게시판에서 스테이터스 성장 포션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성장 속도 버프와 동시에 적용시킬 수 있으므로 그 효율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어떤데요?”
- 특별히 미리 알려드리자면, 하루 동안 성장속도를 30% 증가시켜주는 하급 포션의 가격이 30만 HP입니다.
그럴 줄 알았지. 강신혁이 동화율을 높여 VIP 권한을 회복해 많은 HP를 되찾고 나면 그것을 다시 뜯어가는 치밀하고도 치가 떨리는 구조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HP가 많아지면 인벤토리도 더 사고 싶어질 테고, 어쩌면 HP를 대가로 확보할 수 있는 편의기능이 또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에이렌 젤리를 비롯한 소모품도 무시할 수 없고, 보다 좋은 야금술 재료를 얻으려 해도 결국 거래 게시판을 찾아야 하니…….
“에휴, 무기나 열심히 만들어서 팔아야지.”
- 회원님께 100HP 보너스!
“네네, 고마워요.”
이 타이밍에 관리자가 보너스를 줄 거라는 것 정도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심드렁하니 감사를 표하고는 대충 세수를 한 후, 오닉스에게 아침밥을 주고 자신도 기숙사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원래는 오전 단련을 하고 식사를 하지만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다. 게이트에서의 실습훈련을 진행하는 모든 1학년생은 무장을 마치고 오전 7시까지 대운동장으로 집합하게 되어있었으니까.
“시뇨기.”
“엉”
백인하와 자연스레 마주친 그는 밤이며 단호박, 연근, 은행이 들어간 영양밥에 시금치된장국, 고등어구이, 명란젓이 들어간 계란찜에 말린 취나물 볶음, 장조림까지 남들의 두 배는 되는 양을 받아 백인하와 마주앉았다.
“오늘은 완전 한식이네.”
“우리나라 사람들 원래 양식이나 일식 무지하게 좋아하는 주제에 진짜 중요한 날에는 꼭 한식을 먹잖아.”
“내 생각에 이건 한국 학생들이 실습에서 유학생들을 앞지르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음모야.”
물론 한식을 못 먹는 학생들을 위해 프렌치토스트, 스프, 소시지를 비롯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도 준비되어 있지만 대부분 유학생들은 한식을 따라 먹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식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둘이 앉은 테이블에 누군가 한 명이 더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그곳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조원 도우진이었다.
“옆에 앉는다.”
“엉”
도우진의 식판을 보니 녀석도 한식으로 통일이었다. 다만 그는 강신혁이 반찬과 밥을 가득가득 담아온 것을 보며 살짝 질린 표정이었다.
“아침부터 뭘 그렇게 많이 먹는 거야. 오늘 실습인 거 잊었냐?”
“실습이니까 더 많이 먹는 거지. 게다가 이렇게 비싼 밥 밖에서 먹으려면 몇 만원 줘야 된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지.”
“고작 몇…… 아니, 아냐.”
도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착석했다. 착석하며 그런 말을 했다.
“단장님이 너에 대해 물어봤다.”
“단장님…… 더글러스 페인?”
“그래. 2관으로 쫓아내놓고 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건지.”
그는 불쾌한 듯 인상을 쓰며 계란찜을 입에 퍼 넣었다. 맛있었는지 순간적으로 인상이 펴졌지만 이내 다시 찡그려졌다.
“대충 대답했지만 조만간 직접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그게 단장까지 나설 일이야?”
"음......."
강신혁의 지당한 반문에 도우진은 뭔가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건취나물 볶음을 잘근잘근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여 설명했다.
“스트링필드는 모르고 있을 수도 있는데, 어쩌면 단장은 부단장을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부단장이 먼저 관심을 보인 남자…… 그러니까, 너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자기 여자로 만든다니, 그런 마초스러운 표현은 현실로는 처음 들어보는데.”
“딱 그런 사람이야. 소설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간.”
도우진의 말에 강신혁과 백인하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우진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뭐. 왜. 뭐.”
“아니야. 그런데 부단장이 평소엔 인재 영입을 안 하고 다니나보지?”
“그러니까 난리를 피우는 거라고. 부단장도 원래 눈이 높기로 유명했단 말이다. 남자 얘기는 원래부터 없던 사람이었지만, 내가 지금 말하는 건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는 눈이야.”
강신혁은 반찬과 밥을 있는 대로 입 안에 때려 넣은 후 된장국으로 그것을 깔끔하게 넘기며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도우진은 어째선지 그 부분에서 조금 우쭐해진 듯했다.
“그 부분에선 단장도 눈에 들진 못했던 모양인데, 갑자기 부단장이 네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니까 짜증이 났겠지.”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말이지.”
“시비를 거는 놈들이 원래 네가 뭘 잘못했다고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아까부터 뭔데. 왜 보는데.”
너야말로 아까부터 왜 자꾸 부메랑을 던지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부터 함께 던전에 들어갈 사이였으니 봐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가, 치정 문제라. 솔직히 지들끼리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강신혁이 한 거라곤 그냥 엘레노어 R. 알제가 준 머핀을 맛있게 먹은 것뿐인데!
“아무튼…… 안하무인인 사람이니까 조심해라.”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지랄.”
도우진은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는 듯이 인상을 팍 쓰며 대꾸하곤 밥을 와구와구 퍼먹었다. 강신혁도 픽 웃으며 식판에 남은 밥을 깔끔하게 비웠다. 백인하는 이미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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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모든 1학년생은 대운동장에 조별로 모여서 인원을 점검하고, 학교장의 간단한 훈화를 들은 후 감독관과 함께 배정된 게이트로 향하게 되어있었다.
기사학과 8개 반, 마법학과 2개 반 합해 10개 반, 도합 300명이 한 날에 실습을 치르니 총 75개 조가 나오는데, 규모가 거대한 게이트 같은 경우에는 여러 조가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는 모양이었다.
물론 종로에 있는 까마귀 둥지에 진입하는 것은 C클래스 7조뿐이다.
“모-닝”
“안녕."
도우진, 백인하와 함께 나온 강신혁은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카렌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그녀와 합류했다. 그녀는 셋이 한데 뭉쳐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졌대?”
“어쩌다보니 밥을 같이 먹은 것뿐이야.”
“그래? 아무튼 신혁아, 이번 주 일요일 우리 바베큐 파티 와라. 공짜로 고기 무한.”
“안 간다.”
“아 왜에!”
어디서 그런 같잖은 수를, 하고 코웃음을 치는데 그 옆에서 의외롭게도 도우진이 그녀의 편을 들었다.
“귀찮게 시비 걸리는 일을 피하려면 아예 입단하는 게 좋을 수도 있지.”
“야야, 그러면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거잖아. 시비보다 더 귀찮은……."
“시비? 누가 누구에게 시비를 건다는 거지?”
도우진의 말에 강신혁이 반박하던 그때, 그들의 뒤에서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동시에 사방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뇌제다.”
“미친 진짜였네.”
“그러게 스페셜 포스가 맞다니까.”
“어떻게 저 사람이 감독관으로 오는데!”
강신혁이 돌아보니 그곳에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절대영도의 한기를 흩뿌리고 있는 뇌제 신은아의 모습이 있었다.
“누군가 강신혁 학생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건가? ……누가?”
그녀는 도우진에게 빤히 시선을 주며 물었다. 솔직히 옆에서 봐도 무서웠다.
“음, 어, 그건 그게……."
“심각한 일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사소한 시비가 걸렸을 뿐이에요.”
"......."
그녀의 매서운 기세에 당황한 도우진이 말을 더듬고 있으려니 옆에서 강신혁이 끼어들어 그렇게 말했다. 신은아의 눈매가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사소한 시비…… 그래. 하지만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일이 있을 경우엔 상담하도록. 학교장을 통해 정식으로 조치를 취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학교장이라고? 죽었다 깨어나도 신은아에게 상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녹이한테 무슨 일이 없도록 제가 항상 옆에 있을 겁니다! 어차피 제가 한 번 이겼던 놈입니다!”
“그래. 그럼 다들 이쪽으로.”
이 틈을 타 점수를 따보려던 백인하에게 쌀쌀맞게 대꾸한 신은아는 일행을 이끌고 줄을 세웠다. 도합 75개의 조가 나란히 정렬한 모습은 제법 장관이었다.
“저기 봐.”
“뇌제다 뇌제.”
“예쁘다. 돌았다.”
“개부럽다……."
튀지 않는 검은 정장 차림이었지만 신은아의 자체발광하는 미모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녀를 발견한 사람들 사이에서 저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왔지만 그녀는 주위에는 일절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교장의 훈화가 시작되어 끝나기까지 그 분위기에는 일절 변화가 없었지만, 실습 시간이 시작된 직후 그녀가 뒤돌아서며 짧게 외쳤다.
"출발!"
아마도 사방에서 동시에 그런 구령이 울려 퍼졌겠지만 강신혁의 귀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유독 생생하게 들렸다. 조원들끼리 나누어 귀에 꽂은 이어마이크 때문이었다.
“저 조는 어디로 갈까.”
“부럽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앞다투어 나가는 다른 조. 그러나 신은아는 주위의 분위기에 일절 휩쓸리지 않고 일행을 이끌었다. 언제나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그 자세 하나는 강신혁도 배워야 할 점이라 여겼다.
"초인이 게이트 작전에 임할 때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동한다. 첫째는 이레귤러 게이트의 발생 등으로 인한 긴급 출동이고, 둘째는 일반 출동이다. 일반 출동 시에는 자가용차나 바이크, 시간에 늦지만 않는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일행을 이끌고 교문을 빠져나온 신은아가 빠른 말투로 설명했다. 다른 조에 속한 이들이 힐끔거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강신혁도 그녀의 설명에 집중했다.
“긴급 출동 시에는 활용가능한 모든 수단, 즉 자신의 능력까지도 응용하여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집결지로 이동하게 된다. 긴급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능력 발동으로 인해 다소 공공 기물이나 사유물을 파손해도 국가가 대신 배상해주지. 그러면 지금부터, 긴급 출동을 실행한다.”
“네? 어?”
반문할 틈도 없이 신은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직후 그의 스틱이 울려 확인해보니 집결지의 위치가 명시된 맵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라 있었다.
“그럼 먼저 간다!”
“아 이 새끼!"
“나도 출발할게!”
그 순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백인하가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신경계 강화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카렌 스트링필드도 뒤이어 냅다 내달렸다.
순식간에 둘만 남은 강신혁과 도우진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도우진은 이미 자신이 꼴찌일 것이라 직감하고 있는지 인상을 팍 구겼다.
“있다 보자.”
“망할!"
강신혁도 대지를 박차고 내달렸다. 영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해 신체, 그중에서도 특히 다리 성능을 극한에 가깝게 끌어올리며, 신체의 내구성을 다소 무시한 과감한 움직임으로 속도를 더 올렸다.
조금 근육이 찢어지는 정도는 D-랭크의 재생력으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었으니까!
“신혁이 너 뭐야!?”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카렌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특성을 한껏 발휘해 내달리고 있던 그녀는 강신혁이 자신을 앞서는 것을 보며 기겁해서 외쳤다.
“왜 나보다 빠른데!?”
“글쎄.”
체육대회 때 듣기로 분명 그녀의 민첩은 B랭크라고 했지. 반면 강신혁의 민첩은, 두 번째 각성에다 빠른 성장이 더해져 놀랍게도 이제 B+랭크.
물론 그녀의 신경계 강화 특성이 민첩의 위력을 몇 배로 끌어올려주겠지만 강신혁의 영력은 아마도 신경계 강화의 위에 있는 능력일 터였다.
“너 완전 사기잖아, 사기!”
“있다 보자!”
“으아아아!”
강신혁은 여유롭게 카렌을 추월해 내달렸다. 뒤에서 카렌이 분노하며 속도를 더 높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그래, 실습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