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Chapter 9. 우리 신인왕이 달라졌어요. - 5 [2권 끝] >
“어제 부단장님이랑 만났다며?”
“그건 만난 게 아니야, 조우한 거지. 아무 말도 없이 내 트레이에 머핀 하나 떨구고 가더라.”
“크흐흐히."
다음날 아침 등교하자마자 다가온 카렌에게 투왕과 만났던 얘기를 했더니 그녀는 곧장 폭소를 터트렸다.
“내가 몰라서 묻는 건데 혹시 영국인들한테 있어서 아메리칸 머핀이 갖는 뭔가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거냐?”
“으흐힛. 아니 그냥 부단장님이 낯가림이 조금 심하셔서. 푸크크.”
이렇게 웃는 걸 보니 거기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강신혁이 물어봐도 대답을 해줄 기미는 없었다.
“아무래도 잘 하셨나보네. 나쁜 분은 아니었지?”
“좋은 사람 같긴 했는데……."
“그럼 나중에 한 번만 만나주라. 한 번만.”
그래도 머핀 하나에 팔려서 비룡기사단에 입단하는 건 좀 아니라는 자각이 있었던 강신혁은 다음에 시간이 되면 생각해보자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때 마침 등교한 도우진이 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야, 나 오늘부터 2관으로 간다.”
“응? 왜!? 아, 아아아……? 그렇게 됐어?”
“그 속 좁은 새끼 같으니.”
용건이 있었던 건 강신혁이 아닌 카렌 쪽이었던 모양이다. 비룡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신이 듣는 것도 미안하니 슬쩍 빠지려던 때, 도우진이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불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2학년에 유민준이라고 찐따 새끼 있다. 너 존나 싫어하는 것 같던데 기억은 하고 있으라고.”
“아,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있었지.”
강신혁이 신인왕이 되려던 것에는 자신을 깔아보던 그 선배의 코를 짓뭉개주자는 마음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그 직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난 나머지 새카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사실 그 존재를 다시 떠올린 지금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신경 쓰기엔 다른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왜 도우진이 신인전 결승전 때 너한테 아티팩트 빌려줬었잖아? 그 선배가 그걸 아니꼽게 봤나 봐. 도우진한테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 시작하더니…… 끝내 1관에서 내쫓기까지.”
“1관 2관 하는 게 대체 무슨 얘기냐? 혹시 단장파랑 부단장파가 갈린 거랑 상관있는 얘기?”
“맞아. 우리 학교 숲에 비룡기사단 훈련소 있다고 했잖아? 건물이 두 채거든. 그중 1관이 단장파.”
“2관이 부단장파. 쯧.”
도우진은 원래 단장파에 속한 선배의 눈에 들어 비룡기사단에 입단했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미움을 사 부단장파로 쫓겨났다는 얘기였다.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얘기였다.
“2관도 좋아. 사람도 적으니까 여유 공간도 널널하고 다들 사이도 좋고. 이번 주 일요일에도 바베큐 파티하기로 했는데.”
“애초에 왜 가르는지를 모르겠고, 그냥 아티팩트 좀 빌려준 걸로 그딴 눈빛을 받아야 되는지 진짜 모르겠다고.”
“그냥 때려 치지 그러냐?”
“그건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내가 부단장님을 곁에서 도와드려야지.”
옆에서 지켜보던 강신혁이 툭 내뱉는 말에 도우진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가로젓고, 카렌이 굳건하게 대꾸했다. 카렌은 그러더니 슬쩍 슬쩍 그의 눈치를 보며 도우진에게 말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앞으로는 한 편이구나. 같이 힘내보자, 도우진. 아아, 이런 때 우리 부단장파에 든든한 친구가 입단해주면 정말 큰 도움이 될 텐데……."
“안 들어간다.”
물론 도우진이 부단장파로 쫓겨난 데에는 강신혁도 원인제공을 한 셈인지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잘못된 것은 강신혁이 아니라 제멋대로 구는 그 선배가 아닌가.
사실 강신혁은 그런 선배랑 인연을 끊게 되었으니 자신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래,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런 웃긴 놈이랑은 나도 엮이고 싶지 않아.”
그만 생각을 입 밖에 내버린 모양이다. 다행히도 도우진은 그에게 공감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그 인간이 입장상 나보다 더 높은 위치라는 게 마음에 안들 뿐이지. ……이렇게 된 이상 부단장님을 단장직에 올리는 게 어떨까. 이번에 보니 부단장님이 단장님보다 더 센 것 같던데.”
“그게 나도 그러고 싶단 말이지……."
“그 이상은 너희 둘이서 얘기해라.”
장대한 반역의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되든 말든 강신혁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든 강신혁에게 내부 사정을 말하려 드는 카렌을 쫓아내며 자리에 착석했다.
카렌이 낮게 혀를 차곤 강신혁을 끌어들이는 걸 도와달라는 뜻에서 도우진에게 눈짓했지만 도우진은 매정하게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거기에 마침 나타난 백인하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뭐야, 너 벌써 시녹이 차고 도우진이랑 사귀냐!?”
“와, 진짜 얘네 하나도 도움이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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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을 구축한다는 건 특정한 구조로 사람을 배치해 각 위치에 있는 이에게 고유의 역할을 맡기는 것. 곧 기민한 상황 대처를 위해 사전에 약속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단 대규모 전투 때뿐만 아니라 소수 인원으로 던전을 탐색할 때에도 진형은 상당히 중요하지.”
방과 후. 다목적 12호실에 모인 C클래스 7조는 신은아로부터 실제로 던전을 탐색함에 있어 기본이 되는 것, 파티 진형 구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부터 각 상황에 맞는 기본적인 진형에 대해 교육하겠다. 던전 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얼마나 빨리 잡아내고 얼마나 적절한 진형을 구축해 대응하느냐에 따라 던전 공략의 성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겠지.”
“기초 교육을 받고 나면 이번 던전에서 적합한 진형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나요?”
“진형이 무엇인지 기본 원리를 이해하면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너희가 알아서 할 수 있게 되겠지.”
그러니까 그건 실전에 배치되는 초인 수준이 아닌가! 하는 반박은 용납되지 않았다.
실전훈련은 금요일이고 오늘은 수요일이니 남은 이틀 안에 최대한 지식을 실전에서 운용 가능한 수준으로 때려 박아야 했고, 그들은 철저히 실전적인 진형 훈련을 받았다. 거기에 전투 상황을 가정한 대응 훈련이 곁들여지니 제법 진땀을 빼야 했다.
“진짜 초인 된 것 같은 느낌 제대론데.”
“그렇게 까부는 놈이 꼭 실전에서 실수하더라.”
다들 특출난 인재라서 그런지, 이론에는 고생하던 카렌과 백인하도 실제로 진형을 구성하는 훈련에 돌입하자 아무 문제없이 따라왔다. 몸을 움직이는 문제에 있어선 다들 이미 훌륭한 프로페셔널이었다.
“흠, 이 정도면…… 합격.”
“감사합니다.”
간단한 훈련이 끝난 후, 도우진은 신은아에게 스스로 익힌 도발 스킬의 측정을 받았다.
특정한 기기를 가지고 그에게서 발산되는 도발 스킬 특유의 파장을 읽어내 강도와 지속성 등등을 측정하는 구조였는데, 탱커가 천직이라 그런지 스킬을 익힌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시녹이랑 스트링필드가 원거리의 적을 견제하고, 도우진이 도발로 적을 가까이 끌어들이면 내가 나서서 정리하면 되겠네. 완벽하지 않냐?”
“그래그래, 말한 대로만 해라.”
“우리 파티 리더는 어떻게 해? 난 신혁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음......."
“좋아, 그럼 시녹이.”
그렇게 강신혁이 파티 리더가 되었다. 강신혁도 그리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차할 때 백인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자각이 있었던 만큼 순순히 그것을 맡기로 했다.
“좋아.”
순조로이 파티 리더까지 결정되자 신은아도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좀 익숙해진 것 같군. 내일은 마지막으로 던전 진입에 있어 파악해두어야 할 것들을 돌아보고, 실전 대비 훈련을 하겠다. 그럼 이만 해산하고…… 강신혁은 남는다. 던전 내에 반입할 물품들의 목록을 작성해서 보고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아, 잠깐.”
기분 좋은 땀을 흘리고 해산하려는 찰나 아이들을 멈춰 세운 신은아는 가방에서 캔커피를 꺼내어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대충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 해산했고, 강신혁은 역시 이것은 의식임에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면…… 몇 개나 가져갈 생각이야?”
그 자리에 캔커피를 든 자신과 강신혁만이 남게 되자 신은아는 가방에서 서류와 펜을 꺼내들며 그에게 물었다.
기분 탓일까, 저번에 헤어졌을 때보다도 말투가 더 편해진 것처럼 들리는 것은. 강신혁은 마시던 캔커피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많아질 것 같은데요. 일단 투창기랑, 투창은 도중에 회수한다고 해도 족히 열 개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열 개? 전부 만들어놓은 건가?”
“아뇨, 전부는 아니고 세 개 정도. 나머지는 이제부터 만들 생각입니다.”
정확히는 이만우가 인증해준 것이 매의 강철 단창을 포함해 3개였고, 남은 7개는 이만우가 준비해주겠다는 마법금속으로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마음 같아선 브레나이트 스피어도 들고 가고 싶지만…… 그 마법금속의 출처를 설명할 수 없는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만우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이제부터? 가능할까?”
“네."
"......."
그 말을 들은 신은아는 살짝, 아주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가녀린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살폈다.
강신혁이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시계를 보며 대체 얼마일까 고민하던 그때 신은아가 결심한 듯 말했다.
“혹시 제작하는 걸 옆에서 봐도 될까? 이전부터 흥미가 있었는데.”
“어, 음……."
괜찮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은아’가 모루가 제작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도 없을 터였다. 더욱이 그녀는 자신을 후원해주는 입장이기도 하니…….
“네, 그렇다면야. 하지만 동아리에 선생님이 계세요.”
“그건 문제없어.”
하지만 강신혁이 간과한 문제가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신은아는 그 존재만으로 뭇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강신혁과 동행하고 있으니 체육관을 나와서부터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뇌제다.”
“뭐야, 뇌제가 왜 여기 있어?”
“너 몰랐어? 며칠 전부터 학교에서 보이던데.”
“존나 예쁘다……."
“헐, 신인왕. 신인왕이랑 같이 있는데?”
강신혁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을 조금 캐치한 것만으로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을 얘기들을 유추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가득이나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제 뇌제와의 소문까지 퍼질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붙잡고 그녀가 이번 게이트 실습의 감독관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설마 그녀가 이걸 노린 것일까? 아니, 변함없이 얼음장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비룡관 3층으로 향했다.
“이만우 선생님.”
"음."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실에선 오늘도 이만우가 혼자 앉아 한가로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대체된 요즘 세상에 꿋꿋이 종이 신문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장인의 분위기를 느꼈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음?"
“이만우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너냐.”
아무래도 두 사람은 면식이 있는 듯했다. 하긴 그가 원래부터 신영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신영의 졸업생인 신은아를 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라, 그런데 왜 신은아의 친구인 클레어는 그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일까……? 강신혁이 고개를 갸웃하는 옆에서 두 사람의 얘기가 점점 진행되고 있었다.
“얼마 전 일에 대해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신혁이 녀석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해라.”
“알겠습니다.”
“그러면 왜 네가 여기에 있는지…… 흠, 그래. 실습 감독이 너였구나. 녀석이 직접 만들었는지 의심이라도 하는 거냐?”
“아뇨, 제작을 견학하러 왔습니다.”
“견학이라.”
이만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또 죄 없는 사람을 붙잡아놓고 쓰레기라며 매도할 참이냐?”
“네?”
“아닙니다.”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강신혁이 고개를 번쩍 드는데 신은아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그의 말을 부정했다. 강신혁의 두 눈이 크게 뜨이자 이만우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이 녀석은 학생 시절 불쑥 이 동아리를 찾아와, 나를 포함해 아티팩트를 제작하던 모두를 매도하고 그대로 돌아간 적이 있다. 자신이 찾던 것에 비하면 한참부족하다고 했었지.”
"......."
신은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강신혁은 클레어가 이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신은아가 과거 이만우를 두고 모루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과연, 얘기가 그렇게 이어지는 건가. 강신혁이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만우가 강신혁을 보호하듯 자신 쪽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보기 힘든 원석이다. 이 녀석의 작업을 두고 무슨 말이든 할 생각이라면 그냥 돌아가라. 이 녀석이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내가 학교에 보증할 수 있으니까.”
“선생님이 직접 가르치고 계십니까?”
“……그건 아니다.”
“안심했습니다.”
“정말 지독한 녀석이군.”
거침없이 노인을 공격하는 신은아의 인성에는 사탄도 네 발로 기어 도망칠 것이다. 이만우는 신은아의 말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강신혁의 작업물에는 일절 토를 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나서야 그녀를 부실 안으로 들였다.
“그럼 봐라. 이게 가장 흔하게 쓰이는 마법금속인 케나이언, 그리고 이게 아마도 지금의 네가 가장 원하고 있을 마법금속인 에이라이트다.”
이만우가 준비한 마법금속은 각각 1kg 주괴가 두 개로 총 4kg이었다. 케나이언은 강철보다 조금 연한 은색으로 빛났고, 에이라이트는 은은한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만우가 그런 말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강신혁은 케나이언보다 에이라이트에 보다 시선이 갔다.
"케나이언은 여러 의미에서 강철의 상위호환격인 금속이지. 마력을 잘 받아들여 강화되는 특성을 갖고 있어 마력을 주로 사용하는 능력자들이 선호하며, 인챈트의 성공률도 그나마 높다는 장점이 있고…… 에이라이트는 반대로 마력을 잘 받아들이지 않아 아티팩트화가 까다롭다만, 일단 완성시키고 나면 마법을 막아내고 부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낸다.”
“그렇군요……."
강신혁이 마력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이만우도 들어서 알고 있을 터. 그가 에이라이트를 준비해둔 것은 강신혁을 배려해서였겠지. 다만…… 강신혁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투창으로 만들기에는 아까운데요.”
“모든 시도에는 의미가 있다. 해보거라.”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그는 거리낌 없이 에이라이트 주괴 두 개를 집었다. 두 개를 통으로 써 단창 하나를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그가 공방 안으로 들어가 화로를 켜는 모습을 보며 신은아가 이만우에게 물었다.
“망치는 놓으셨다고 들었는데.”
“놓은 게 맞다. 그래도 저 녀석의 앞길을 미리 치워놓는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렇습니까. ……그 정도입니까.”
신은아는 그의 말에 어째선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작업을 시작하는 강신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이만우가 문득 물었다.
“그래서, 말해봐라. 저 녀석에게 네가 붙었다는 건 혹시……."
“예. 요르문간드(Jormungand)가…… 반(反) 초인연합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만우의 표정도 덩달아 험악해졌다. 그는 요르문간드라는 집단과 굉장한 악연이 있었다.
"더구나 이전 충돌로 구성원을 많이 잃은 만큼 새로운 피를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정보를 입수한 신영은 일부러 유망주를 한데 모아놓기로 했고.”
“그 호위로 붙은 게 너냐.”
“뱅가드와도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설령 실습에서 사고가 생기더라도 학생들은 안전할 겁니다.”
깡! 깡! 깡! 강신혁이 적당히 녹은 금속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만우는 그 광경을 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윗대가리가 하는 짓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아.”
“……학생들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다만, 위험할 때는 수그릴 줄도 알아야지.”
“초인양성학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학생들은 그들과 맞서 싸울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뭣도 모르는 어린애들을 좋은 말로 구슬려 각서를 받았을 뿐이지 않은가. ……음?”
신은아로부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의아한 마음에 시선을 주니, 그녀는 작업을 하는 강신혁의 모습을 숨을 죽인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만우는 기절할 뻔했다. 그녀의 입가에 어린 은은한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웃어? 이 녀석이?’
본래 학생에게는 일절 관심이 없던 이만우였으나 신은아가 그를 형편없다며 매도하고 간 이후로 그녀에 대해서만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얼음공주, 비스크돌, 번개마녀 등등 그녀에게 붙은 별명만 봐도 그녀의 미모가 얼마나 유명한지, 더불어 그녀의 성격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 수 있다.
신영에 재학하는 3년 내내 그녀가 다른 이와 얽히는 일은 없었으며, 웃는 얼굴을 본 이도 없다는 얘기는 아주 유명하다. 그것은 졸업 후 초인협회에 소속되고도 마찬가지로, 높아지는 명성에 비례해 그녀의 악명도 높아졌다…….
‘그런데 그 녀석이.’
이만우는 그녀가 이 동아리방을 찾아왔던 그 날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만우나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매도하며, 분명 자신이 찾던 것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만약 그녀가 그것을 찾았다면? 그게 강신혁이라면……. 사실 굳이 동아리방까지 따라온 것이 감시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면?
‘허…… 적어도 저놈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됐군.’
신선한 충격과 놀라움 끝에 스스로 내린 결론에 이만우는 조금이지만 웃음이 나왔다. 그것을 느꼈는지 신은아가 홱,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무척 무서운 표정이었다.
"......."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뇨, 없습니다.”
연륜이 엿보이는 시치미 떼기에 신은아는 다시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장인답게 눈이 밝은 이만우는 그녀의 귓불이 아주 살짝 달아올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강신혁은 밖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새카맣게 모르는 채 그저 마법금속을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