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 Chapter 9. 우리 신인왕이 달라졌어요.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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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 깡! 깡!
강신혁이 키엘론에서 머무르는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만든 것이 무엇일까. 당연히 투창 목적으로 만든 단창이었다.
- 깡! 깡! 깡!
자신이 쓸 용도로도 만들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오르드의 투창병들에게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강철로 만드는 것이 주였지만 브레나이트로도 만들었고, 심심풀이로 나무를 깎아보기도 했다.
- 슥, 스윽, 슥
요는 무엇인가 하면, 그 단기간에 강신혁이 가장 깊숙이 숙달한 영역이 바로 투창을 제작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어떻게 하면 보다 좋은 투창이 탄생할지, 어떻게 하면 투창에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지 이젠 조금 알 것 같았다.
“……됐다.”
- 영기를 품은 ‘매의’ 강철 단창(C-)을 만들었습니다. 야금술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합니다. 현재 동화율 11.4%
오랜만에(그래봤자 이틀이었지만) 망치를 붙들게 되어 다소 신이 났던 탓인가, 단박에 아티팩트가 완성되었다. 더욱이 등급 또한 C-랭크로, 자신이 강철로 만들어낸 것 중에선 최상위 랭크였다.
어쩌면 강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팩트는 C-급이 최대인지도 모르겠다, 강신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완성된 아티팩트의 정보를 훑었다.
[매의 강철 단창]
[C- 랭크]
[특수능력 - 명중, 관통]
*명중 - 목표물에 명중하기 쉬워진다. 공격력에 조금의 보정이 더해진다.
*관통 - 재질의 한계를 극복해 목표물을 관통할 확률을 높인다. 공격력에 상당한 보정이 더해진다.
“나도 볼 수 있겠나.”
“네, 여기.”
두 개나 붙은 특수능력에 미미한 미소를 짓던 강신혁이 그의 작업을 지켜보던 이만우에게 단창을 내밀자, 한참동안 진지한 눈빛으로 그것을 살피던 이만우는 옅게 탄식하며 그것을 다시 강신혁에게 돌려주었다.
“어떤가요?”
“강철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네놈은 알았다고 생각하면 다음 순간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구나.”
“칭찬이시죠? 감사합니다.”
“주말 사이 제법 능글맞아졌구나.”
강신혁은 자각이 없었지만 이만우는 기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강신혁에게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툭 던지듯이 물었다.
“여자라도 생겼나?”
“네!?”
“그건 아니군. 비슷한 일은 있었던 것 같지만.”
“떠보지 마세요.”
계면쩍은 미소를 짓는 강신혁의 모습에 코웃음을 친 후, 이만우는 무척 놀라운 말을 했다.
“마법금속을 다뤄볼 생각은 없나? 더 이상 강철만 붙들고 끙끙대고 있어도 기술영역에서 이보다 나아갈 순 없을 것 같으니 하는 말이다.”
자신도 방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하면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까? 강신혁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그에게 물었다.
“주시나요?”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공짜를 좋아하니…… 사비를 털어야 하니 많이는 못 내놓는다. 다만 네가 그걸로 좋은 물건을 만들어 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면, 그 후로는 학교에서 지원이 나오겠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만우는 대답은 잘한다며 혀를 쯧쯧 차더니 자신의 스틱을 꺼내들어 조작했다.
“실습이 언제라고 했지.”
“금요일입니다.”
“내일까지는 준비를 해놔야 실습에서 쓸 만한 것을 만들 수 있겠군. 그나마 네 손이 빨라 다행이다.”
“음, 제가 평균적인 작업 시간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많이 빠른 편인가요?”
“제아무리 야금술이 작업을 보조해줘도 작업 시간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별할 것 없는 검 하나 만드는 데 사나흘씩 걸리는 사람도 있지.”
스틱의 조작을 마친 이만우는 그것을 품에 집어넣고는 마지막으로 단창에 다시 한 번 시선을 준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엔 사람을 한 명 소개해주마.”
“사람?”
“네가 오기 전 동아리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녀석이다. 그걸 내가 쫓아냈다고 해야겠지.”
기껏 쫓아낸 사람을 왜 다시 불러 소개해주겠다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하는 강신혁의 모습에 이만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 녀석 혼자 남아있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실력은 확실하다.”
“혼자 있어도 의미가 없다……."
“그 녀석이 네가 동아리에 들어온 것을 알고는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더구나. 다만 여태까진 내가 그것을 잘랐다만…… 아마 네가 만든 물건을 보면 그 녀석도 납득할 게다. 아니, 어쩌면 너와 합작을 하려 할지도 모르지.”
“합작이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도제를 말씀하시는 건 아닌 듯한데.”
“넌 정말 이세계에서 혼자 쇠만 두드리다 온 놈 같구나.”
이만우는 마치 강신혁의 주말 동안의 행적을 고스란히 읽어내기라도 한 듯한 말로 그의 심장을 잠시 멎게 하더니, 이어서 더욱 충격적인 말을 했다.
“원래 아티팩트는 합작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야금술 능력만 가지고 아티팩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네놈이 기이한 것이지.”
“……네?”
생전 처음 듣는 얘긴데!? 정말로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는 강신혁을 보며 이만우는 제 머리를 짚었다.
“형태는 대장장이가 잡고, 능력은 인챈터가 부여한다. 그 둘이 조화를 이루면 아티팩트가 탄생한다. 그것이 지금 생산되고 있는 아티팩트 대다수에 적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인챈터, 그렇구나.”
강신혁도 인챈터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 물건에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어떠한 힘을 부여하는 마법사들을 인챈터라고 불렀다. 그들이 아티팩트를 만든다는 것을 그도 물론 알고 있었고…….
하지만 설마 대장장이가 만드는 아티팩트에조차 그들이 관여하는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니 모루는 처음부터 혼자 힘으로 아티팩트를 만들고 있었으니까!
“야금술만으로 아티팩트를 만드는 것도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소재가 특별할수록, 야금술의 경지가 높을수록, 대장장이 본인이 지닌 마나가 강력할수록 아티팩트가 탄생할 확률은 높아지지. 나 역시 혼자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대장장이는 그렇지 않아. 그들은 인챈터의 힘을 빌려야만 간신히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지.”
강신혁은 그 얘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의 묘한 표정을 본 이만우가 슬며시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처음엔 너를 너무 자만하게 만들 것 같아 일부러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녀석이 자꾸 졸라대기도 했고…… 네가 내 말 한두 마디에 휘둘릴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솔직히 털어놓기로 한 것이다.”
“그건…… 감사합니다.”
“더구나 인챈터와 합작을 해보는 것도 네게 좋은 경험이 될 테고……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어라. 녀석과 합작하여 좋은 아티팩트가 나오면 그걸 경연에 제출해도 되겠지.”
“넵”
이만우는 그 말을 남기곤 부실을 떠났다. 강신혁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좋은 분이야.”
- 어떻게 하면 회원님의 재능을 극도로 개화시킬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쪽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원활하게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주는 도움들을 생각해보면 역시 이쪽 세계에서 거물이기는 한 모양입니다.
“인챈트, 인챈트라. 아직은 전혀 감도 안 잡히네요. 읏차.”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오후 6시30분밖에는 되지 않았다. 조별훈련이 끝났을 때가 4시30분이었으니, 고작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C-랭크의 아티팩트를 하나 만들어낸 것이다.
“브레나이트나 땅지옥의 갑각으로 뭘 만들어볼까요.”
-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지만 기숙사로 돌아갔다 다시 오기엔 비룡관과 기숙사 건물과의 거리가 그리 만만치 않다. 이 빌어먹게 큰 학교 같으니!
고뇌하던 강신혁은 문득 이전 백인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교내에 카페가 있다고 했었는데.'
이전까지 강신혁이 카페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신영에는 워낙 많은 건물들이 딸려있고 내부 구조도 복잡했기 때문.
실은 점심시간에 이용하는 학생 식당 바로 옆에 볼링장과 체육관, 간단한 오락실을 포함하고 있는 다목적건물이 존재했는데, 카페를 비롯한 편의시설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이다.
건물의 이름은 운유(雲遊)관. 평소엔 수업이 끝나면 바로 기숙사 단련실에 처박혀 무기를 휘둘렀던 강신혁과는 인연이 없을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기숙사보다 훨씬 가깝기도 하고, 뭣보다 이젠 돈도 있으니까 굳이 기숙사 식당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는 거지. 돈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야…….'
- 뿌듯해하는 회원님께 50HP 보너스!
관리자에겐 새삼스러운 일로 가슴을 펴는 강신혁이 귀여워보였을지도 모른다. 강신혁은 그런 관리자의 메시지를 있는 힘껏 무시하며 운유관으로 향했다.
카페는 1층에 있었다. 설마 1층, 그것도 건물 외부에서도 살 수 있도록 매대를 갖추고 있는 매장이었다니 여태껏 카페의 존재를 몰랐던 강신혁이 레전드가 되는 순간이었다.
“강신혁이다.”
“진짜네. 운유관에선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굉장히 우습게도 그가 카페 안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아마 신인왕이 되기 전이었다면 어림도 없었던 일이겠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시선에는 익숙했기에, 그는 카페모카(휘핑크림 많이많이)와 레모네이드, 소시지 프레첼 2개와 버터 크로와상과 크로칸슈를 주문해 진동벨을 받아들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카페 안에 사람 엄청 많네.’
- 회원님께서 상당한 엘리트 집단이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실망스럽네요.
‘사람이 쉬기도 해야죠.’
강신혁은 완고한 관리자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물론 정작 그렇게 말하는 자신은 여태껏 별로 쉬었던 적이 없지만 그것은 그가 무능력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스스로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거야말로 일종의 도피였지. 무작정 수련만 한다고 강해지는 건 아니니까. 지금이라면 그걸 알겠어…… 그 부분은 모루와 완전히 똑같나. 그래, 하긴 똑같은 나니까.’
제아무리 능력자의 육체가 대단하다 한들 적절한 휴식은 필수다. 더욱이 학교는 사회생활의 축소판이라는 말도 있듯이, 차후 초인으로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게 될 이들과의 친분을 다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강신혁이 신인왕이라는 신분을 얻는 데 집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보라, 그 덕에 엘리트들이 모인 이 공간에서도 특별대접을 받게 되지 않았는가.
- 벨이 울립니다.
“아."
강신혁은 카운터로 다가가 트레이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먹을 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양의 빵과 음료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자리로 돌아오던 중, 그의 눈에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투왕?’
2학년 기사학과의…… 엘레노어 R. 알제(Eleanor R. Alger)라고 했던가. 가득이나 작은데 의자에 앉아있으니 아예 중1 정도로밖엔 보이지 않는 그녀가 강신혁처럼 혼자 카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먹고 있는 것은 강신혁도 주문한 크로칸슈. 길다란 슈를 양손으로 붙들고 갉아먹는 꼴이 무척 귀여웠지만 본인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한 것이 귀여워 보이려는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손도 무척 작아서 한 손으로는 들기 불편할 것이다.
‘신체조건은 정말 턱없이 불리해 보이는데, 투왕이라. 대단하네.’
- 말이라도 걸어보실 생각입니까?
‘아뇨, 그래도 비룡기사단은 싫어요.’
- 회원님께 10HP 보너스!
‘그러니까 왜!?’
그는 그녀의 등에서 펄럭이는 비룡기사단의 망토를 일별하며 자리에 앉았다. 앉기 직전 그녀로부터 시선이 날아든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리라 여겼다.
“가서 말이라도 붙여봐.”
“무리라고. 근데 저렇게 있으니까 좀 웃기네.”
“알제 선배 쪽이 더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냐?”
“왜 아니겠어. 강신혁 정도면 차기 기사왕 인재잖아.”
“그렇지, 게다가 솔직히 더글러스 페인은……."
“쉿. 투왕이 움직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프레첼을 모조리 해치우고 레모네이드를 원샷한 순간, 문득 눈앞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 바로 투왕 엘레노어 R. 알제의 모습이 있었다.
"......."
"......."
앉아있는 강신혁과 눈높이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 서글픈 점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게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고고하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귀족적인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하며 강신혁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순간.
“……이고.”
그녀는 조금 서툰 한국어로 그렇게 말하며 그의 트레이에 아메리칸 머핀을 하나 얹어주었다. 영국인인데 잉글리시 머핀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은 그녀에게는 감히 말할 수 없다.
"어, 감사합니다......."
"응."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트레이를 들고 그대로 떠나갔다. 정말 그것으로 끝이었다. 혼자 남은 강신혁은 머핀을 베어물며 혹시나 그 안에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살펴보았으나 그런 건 없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무슨 먹이로 길들이려는 줄.”
갤러리의 말은 굉장히 무례했지만 사실 그것은 강신혁에게 굉장히 유효한 공략법이었다. 말없이 머핀을 먹는 강신혁의 마음속에서 투왕의 호감도가 올랐다. 분하게도.
- 관리자는 회원님의 앞날이 무척 걱정됩니다.
'미안해요, 관리자님…….'
덤으로 트레이를 깔끔하게 비우고 동아리실로 돌아가는 길에 굉장히 의외로운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 츠쿠요 님께서 두 개의 상품을 모두 구매하셨습니다. 대금 117,300HP를 수령합니다!
츠쿠요가 물건을 구매했다는 메시지 외에 그녀로부터 개인적인 메시지가 날아들지는 않았지만, 강신혁이 올려놓은 시작가의 2배 이상을 주고 물건을 사간 것을 보면 그녀 나름 강신혁을 인정한 것이 아닐까?
- 은아 님의 귓속말 : 할부지가 만든 거 사려고 했는데 어떤 이상한 사람이 상회입찰해서 둘 다 가져가버렸어…….
- 제 실력이 좀 더 좋아지면 하나 만들어줄게요.
- 은아 님의 귓속말 : 와! 할부지가 직접 나한테 주는 거야? 그건 얼마나 주면 돼? 100만? 200만?
기분이 좋았던 강신혁은 직후 은아로부터 날아든 메시지에 제법 친절한 대꾸를 해주었으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은아의 의욕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로써 츠쿠요와 은아사이의 경쟁에 불이 붙어 이윽고 히어로 유니버스 전체를 휘말리게 하는 전쟁이 되었으나, 물론 강신혁이 그것을 알 턱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