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Chapter 9. 우리 신인왕이 달라졌어요. - 2 >
신영의 뜨거운 감자, C클래스 7조의 팀 면면은 제1체육관에 마련된 다목적 12호실에 모여 신영 학교장조차 상상도 못한 실습 감독 뇌제 신은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번 게이트 실습은 발생 후 오랜 시간 유지되며 그 안에서의 탐색이 전제되는 지속성 흡수형 게이트, 속칭 던전에서 이루어진다. 게이트의 지속성과 단발성, 방출형과 흡수형의 차이에 대해선 설명할 필요 없겠지?”
게이트는 가장 먼저 일반과 기습성으로 나뉜다. 일반은 그 전조가 미리 나타나기에 사전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고, 기습성은 예보할 틈도 없이 나타나는 것. 즉 저번에 서울에 대량으로 발생했던 이레귤러 게이트를 이르는 것이다.
지속성과 단발성의 차이는 단순히 게이트가 오래 유지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며, 방출형은 게이트 바깥으로 몬스터를 쏟아내는 형태, 흡수형은 게이트에 접촉한 인간을 빨아들이는…… 즉 게이트 내부의 아공간 환경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형태가 된다.
‘아무래도 방출형 게이트는 지속성보다는 단발성인 경우가 많고 미리 그 수준을 측정하기도 힘드니까.’
흡수형 게이트는 대개 게이트 안에서 모종의 목적, 예를 들어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든가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든가 하면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되며 인간을 다시 밖으로 뱉어낸다.
이것을 클리어라고 하며, 클리어가 된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어 변수가 적으며 반복적인 공략이 가능해진 형태의 게이트를 인간들은 던전이라고 따로 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실습에 최적화된 형태이기도 했다.
“그야 당연하죠, 그런데 혹시 어째서 우리 조를 담당하게 되셨는지 여쭤 봐도……?”
뇌제를 꼬셔서 협회 옥상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그대로 한국 초인협회 협회장에 오른다는 가당치도 않은 꿈을 꾸고 있는 백인하가 두 눈에 하트를 초롱초롱하게 띄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신은아는 그 말을 듣고 순간 강신혁을 힐끗했지만, 이내 크흠, 작게 헛기침을 하며 냉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영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입생이 너희니까. 많은 길드가 이 자리를 놓고 경쟁했고,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회에서 나섰다. 그러나 협회에서도 아무나 나서면 괜한 불똥을 맞을 우려가 있어 결국 내게 바턴이 돌아왔다.”
“협회에서도 인재를 원하지 않나요?”
“협회가 원하는 인재는 평범한 길드와는 다르다. 그럼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지.”
협회가 원하는 인재가 여기에 있다는 백인하의 어프로치는 깔끔하게 무시되었다.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성격만 놓고 보면 협회가 원하는 인재상과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을 그만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강신혁은 도우진과 카렌이 측은한 눈길로 백인하를 바라보는 것을 보며 백인하에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결론부터 말해 너희가 이번에 들어갈 게이트는 서울 종로에 있는 D+등급의 던전, ‘까마귀 둥지’다.”
“미친……."
“아니, 그러니까 잠깐.”
던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카렌이 나지막이 욕설을 흘리고, 여태껏 묵묵히 신은아를 바라보고만 있던 도우진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 던전은 상당히 유명한 던전이었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종로라는 점에서도 그러했지만 그곳은…….
“비행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잖아요.”
“맞다. 까놓고 말해 너희 전원의 근접전투 수행능력은 1학년 수준에서 판단할 영역을 벗어나 있어. 그렇다고 던전의 등급을 높여 밀어 넣자니 교육 형평성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위험성이 커지지.”
본래 던전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리고 던전의 등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돌발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사실 D+등급 던전에 신입생을 밀어 넣는 것도 학교 입장에서는 무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 측은 너희가 불리한 환경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판단하기로 했다. 까마귀 둥지의 주 등장 몬스터는 D급의 그레이 크로우. 비행 몬스터이며, 도발에 잘 걸리지 않는 높은 지능을 지녔지. 이 몬스터에 대응해 7조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 그게 이번 실습의 핵심이 된다.”
“작정하고 멕이려는 걸로밖에 안 느껴지는데…… 큭.”
짜증스레 투덜거리던 도우진이 신은아의 감정 없는 시선을 받고 그대로 굳었다. 미리 분위기를 파악하고 입을 다물고 있던 백인하가 강신혁을 돌아보며 자랑스레 어떠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강신혁은 무시했다.
“초인이 한 분야에 특화된 능력을 갖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그걸 자랑스레 내세워선 안 돼. 초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나름의 대응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원거리 몬스터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보통은 초인도 팀 단위로 움직이지만, 높은 랭크의 초인은 혼자서 게이트 하나를 담당하기도 한다.
확실히 그런 경우라면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맞겠지만…… 그들은 아직은 어디까지나 학생에 불과한 것이다. 대체 학교 측에서 얼마나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길래!
“그럼 뇌제 님은 어떻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별명이다. 지금은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선생님은 근접전투도 할 수 있으신 겁니까?”
아무래도 도우진은 그냥은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근접무기만 사용하는 학생들에게 원거리 전투도 치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으니, 마법학과 졸업생인 신은아 역시 근접전을 치를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
일견 타당한 말이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녀는 지금 대체 어째서 여기에서 일일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하이랭커였으니까!
“물론. 증명이 필요한가?”
“네. 알고 싶습니다.”
“도우진, 진짜 저건 안 고쳐지네……."
이미 심상치 않은 분위기임을 깨닫고도 거침없이 증명을 요구하는 도우진, 그런 도우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카렌. 강신혁도 그녀에게 공감했다.
도우진 저 녀석은 아마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몸으로 깨닫지 않고선 무엇이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확실히 깨닫고 나면 쿨하게 인정하는 것은 제법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으니……..
“좋아, 그럼 앞으로 나오도록.”
"......."
대련할 공간은 충분했다. 도우진이 입을 꾹 다물고 앞으로 나서자(무기는 들지 않았다.) 신은아는 바닥에 놓여있던 자신의 가방에서 은색 팔찌를 수십 개 꺼내어 자신의 팔에 주렁주렁 채워나갔다. 착용자의 마력을 억제하는 아티팩트였다.
“나 저거 드래곤볼에서 봤는데.”
“닥쳐봐, 백인하.”
"큭......!'
그녀가 스스로 마력을 극한에 가깝게 억제하는 광경을 보며 자존심이라도 상했는지 도우진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러나 그녀의 위치를 고려하면 그도 당연한 조치. 오히려 그녀와 대련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럼 시작하지.”
“하!”
신은아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도우진이 냅다 그녀에게 돌진했다. 부분적인 특성 발동으로 신체 성능을 끌어올려, 일단 한 방 넣고 볼 작정으로 달려든 것!
"후."
무척 빠르고 위력적인 돌진이었지만 신은아는 그에 맞서 침착하게 앞으로 한 발 나아가며 주먹을 내뻗었다.
파직, 주먹 근처에서 전류가 흐르는 것이 보인 다음 순간 그녀의 주먹에 명치를 얻어맞은 도우진이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클린 히트였다.
“……뭐야, 끝났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카렌, 혹시 뇌전 능력이 속도 강화 능력도 겸해?”
“몰라, 모르지만 그런 건지도 몰라. 신경계 자극은 결국 전류의 흐름이라서 내 신경계 강화 능력도 따지고 보면 전기 능력의 일종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설마 정말 전기 능력으로 신경을 강화한, 히익.”
강신혁과 카렌이 속닥이던 중 날아든 신은아의 시선이 둘 모두를 입 다물게 했다. 결국 신은아의 반사신경에 대해서는 미스테리인 채 였다.
“모든 능력은 단련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발전한다. 그러니 섣불리 자신의 가능성을 한정하지 않도록.”
신은아는 손을 휘둘러 염력 마법을 발현, 쓰러진 도우진을 다른 곳으로 옮겨두며 말했다. 염력 특성도 추가로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자연스러운 솜씨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물론 바로 답을 낼 순 없겠지. 다들 여러모로 생각해보고 내일까지는 나름의 답을 내도록. 오늘은 기본적인 능력 체크만 하고 마치는 것으로 한다.”
“능력 체크?”
“다음, 카렌 스트링필드. 나와.”
결국 전부 대련하게 되어있었단 말인가! 담담히 말하는 신은아의 모습에 카렌은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며 나갔고, 도우진과 마찬가지로 명치에 한 대 얻어맞고 기절했다.
“다음…… 백인하?”
“넵! 제대로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백인하는 입학 이래 처음으로 자신의 전력을 내보이겠다며 신이 나서는 나섰다. 신은아는 그의 기세를 가늠해보더니 흠, 감탄사를 내 뱉곤 팔찌를 몇 개 풀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열 개 이상 차고 있었지만…….
“피는 어디로 가지 않나.”
“그럼 가겠습니다!”
백인하는 속도 계열 최상위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속도는 곧 힘이 된다. 그 역시 도우진과 카렌처럼 똑바로 돌격해왔지만 그에 대응하는 신은아는 오늘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퍽!
하지만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명치에 주먹을 얻어맞은 백인하는 처음 일격을 버티며 다시 움직이려 했지만 그 직전 신은아가 잽싸게 몸을 낮추며 스트리트 X이터 에서나 나올 법한 다리 후리기를 작렬, 그를 뒤통수부터 바닥에 엎어지게 했다. 괜히 버티는 바람에 한 대 더 맞고 기절한 것이다.
“정말 괴물이네. 이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백인하를 정리한 신은아는 자신의 주먹을 털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대체 누가 괴물이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투왕전 4강까지 진출한 인재를 마력제어장치를 주렁주렁 매달고도 단 두 방으로 정리하다니, 심지어 전문적으로 근접전을 펼치지도 않는 그녀가!
“후우…… 그럼 다음은 전가요.”
“음? 아니.”
그런데 강신혁이 자신도 명치에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앞으로 나선 순간, 신은아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네 능력은 신인전을 보면서 확실하게 파악했으니까. 난 사람을 불필요하게 때리는 건 좋아하지 않아.”
왼손 검지를 까딱여 시체…… 기절한 학생 셋을 나란히 정렬한 그녀는 가방에서 캔커피를 꺼내어 하나를 강신혁에게 던졌다. 그는 ‘좋아하지 않는 것치고는 제법 찰지게 때렸던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 것은 말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캔을 받아들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둘 밖에 안 남았으니까 선배라고 불러도 돼.”
역시 일부러 기절시킨 것이 맞았다.
“그럼 선배님.”
“좋아.”
신은아의 입가에 미미하게 떠오른 미소를 보며 강신혁은 기묘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협회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겠지 뭐.’
커피는 무척 맛있었는데, 알고 보니 평범한 브랜드가 아니라 게이트 안에서 마실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한 초인 전용 상품이었다. 각성제에 가깝지만 초인의 육신은 부담 없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재생력이 뛰어난 강신혁은 더더욱 그러했다.
“밖에서도 그걸 마시면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아해.”
“선배님은 몬스터와 싸우지 않을 때도 항상 긴장해야 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감독직을 맡을 때도 신경전이 좀 있었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며 캔커피를 원샷한 그녀는 가방에서 캔 세 개를 더 꺼내어 기절한 학생들의 머리맡에 하나씩 두었다. 그녀 나름의 성의겠지만 3자의 시선으로 보니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그에게 갑작스레 신은아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혹시 무슨 일 있었어?”
“네?"
“착각이라면 미안하지만, 이전보다 더 차분해진 것 같아서.”
강신혁은 그 말을 듣고 그리 놀라지 않았다. 백인하조차 그의 변화를 알아보지 않았던가. 비록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고는 하나 바로 얼마 전 그와 만났던 신은아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주말에 했던 특훈의 성과가 있었나 봐요.”
“특훈...... 혹시 야금술?”
강신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건 조금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그녀가 아는 것도 당연했다. 강신혁은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에 속해있으며 그건 누구나가 열람할 수 있는 정보였으니까.
더구나 이번 실습을 진행하려면 자신이 야금술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어차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일반 활을 사서 들어가느니 자신이 만든 투창기를 가져가는 것이 나으니까.
강신혁이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는데,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신은아가 서늘하지만 탓하는 기색은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뭐라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 난 야금술은 무척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다면, 다행인데요……. 네, 주말 동안 야금술에 매진했습니다. 좋은 성과를 얻었고 전투력에도 보탬이 될 것 같아요.”
“역시, 너는……."
신은아는 애써 차분하게 대꾸하는 강신혁의 모습에 뭔가를 중얼거리는 듯하더니, 돌연 가방에서 캔커피 하나를 더 꺼내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친구인 클레어와는 달리 캔커피를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번 실습에서는 어떻지? 생각해둔 게 있어?”
“네. 부끄럽지만 준비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겠어.”
어쩌면 그녀는 강신혁에게 상담을 해주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야금술 쪽 얘기는 상담하면 할수록 자폭을 하는 셈이 될 것 같아 필사적으로 자제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곤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가방을 챙길 뿐이었다.
“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했어. 그럼 내일 봐.”
“네. 안녕히 가세요.”
작별인사를 마친 신은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목적실에서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자신도 나갈까 생각했던 강신혁은, 아직까지 기절해있는 친구들이 못내 마음에 걸려 결국 그 자리에 남기로 했다.
어차피 캔커피도 남아있었고.
[은아 님의 귓속말 : 할부지, 나…… 운명을 느꼈어.]
나중에 히어로 유니버스로 이런 귓속말이 왔지만, 이쪽 은아가 정신이 나가있는 거야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니까 적당히 대꾸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