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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 Chapter 8. 히로익 실드, 절망의 성벽 - 6 >

- 콰아아앙!

거검이 땅지옥의 몸통을 가르고 지상에 박힌 순간, 끔찍한 충격이 대지 위를 내달렸다. 전투를 벌이던 모든 이들이 그 자리에 엎어져 움직이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대를 모두 집어삼킬 것처럼 날뛰던 땅지옥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꼬챙이에 꿰뚫려 죽다니…… 이것이 신의 행사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 우우우웅

단 일격으로 땅지옥의 숨통을 끊어놓은 신살검이 오랜만에 활약을 해서 기쁘다는 듯이 크게 울었다. 히로익 실드가 질투할 정도로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진화한 특성을 만끽할 틈도 없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엎어졌던 강신혁은 간신히 땅을 짚고 일어서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인마. 고생했다.”

- 우웅

마지막으로 뻐기듯이 낮게 진동한 신살검이 그 자리에서 지워지듯 자취를 감추더니 강신혁의 손아귀로 회귀했다. 깔끔하게 영력을 소진한 탓에 다시 세상의 법칙에 속박되어 크기가 줄어든 것이다.

- 쿠우웅

“어……."

“죽었어.”

“땅지옥이 죽었어. 그 거대한 땅지옥이!”

몸을 지탱하던 신살검이 사라져, 땅지옥의 사체가 힘없이 지상에 쓰러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놈이 죽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들 인류가 가장 강성할 때조차 한 마리 잡는 것을 버거워했던 절대악을,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신이다.”

놈을 베어 죽인 검이 강신혁의 손에 들려있다는 것을 파악한 병사 한 명이 외쳤다.

“그는 신의 사도야!”

“신이시여.”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어어, 어리석었던 저희를 용서하십시오……!”

“다시는 같은 인간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부디 저희 죄를 사해주소서!”

얼결에 신의 사도가 되어버린 강신혁이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이가 그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하긴 객관적으로 보면 갑자기 나타나 성채를 자그맣게 줄여버리고, 검을 던져 거대화시켜 땅지옥을 격살하기까지 했으니 신의 사도로 오해할 법도 했다. 그것을 괜히 부정하느니, 강신혁은 그들을 위해 잠시만 신의 사도 행세를 하기로 했다.

지금은 모두에게 힘든 순간이고, 힘들 때 신에게 의지하며 기운을 되찾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니까.

-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30,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로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45,000HP를 얻었습니다!

- 차원 퀘스트를 완벽 그 이상으로 해결했습니다. 동기화가 가속되어 동화율이 10.4%가 되었습니다. 마이 룸의 등불 기능을 해금하며, 추가로 타일 기능까지 해금합니다. 퀘스트 초과달성 보너스로 20,000HP를 드립니다! 다음 차원 퀘스트의 선택 폭이 넓어집니다.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에 방점을 찍는 관리자의 메시지가 강신혁의 망막을 두드렸다. 비록 VIP 1차 해방을 이루며 되찾은 HP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여태껏 스스로 힘으로 얻은 HP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통이 크네요.”

- 대단한 일을 하셨으니까요. 관리자로서 회원님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감상만 전하자면, 무척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고마워요……."

관리자의 메시지를 보며 비로소 강신혁은 몸에 힘이 풀렸다. 이제야 완벽하게 전투가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타일 기능까지 추가로 해금한다는 건 원래는 타일조차 없었다는 얘기겠지. 강신혁은 새삼 동화율을 빨리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단 바닥에 엎드린 사람들을 일으키러 향했다.

엉망진창이 된 전장으로부터 생존자들을 구출해야 했으니까.

@@@

전장정리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가 우선 많았고, 땅지옥에게 잡아먹힌 이도 많았다.

그나마 다행한 점은 마지막 순간 강신혁이 떨어트린 신살검이 땅지옥만을 반으로 가르고, 다른 인간은 신기하리만치 아무도 해하지 않았다는 것. 사실 그것은 신살검이 B랭크로 회복되며 추가된 특수능력 덕분이었다.

[신살검]

[B랭크]

[특수능력 - 날붙이 포식, 회귀]

[특수능력 개방- 살의제어]

*살의제어 - 검의 주인이 원하는 것만을 베어 죽인다. 그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공격력에도 긍정적인 보정을 더한다.

과연 이쯤 되니 정말 신살검이라고 부를 만한 능력이구나, 하고 강신혁은 감탄했다.

비록 공격력에만 치중된 옵션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보다 훨씬 보기 힘든, 드물고 귀한 능력이었다. 이 능력 하나만 가지고도 다양한 전술적 이점을 누릴 수 있으리라.

- 우우웅

“그래, 훨씬 멋져졌어. 투창기에 못 걸게 된 건 아쉽지만.”

- 우웅!

비록 일시적이었다곤 하나 강신혁의 영력을 듬뿍 담고, 거기에 더해 특성을 한계까지 쥐어짜낸 덕에 신살검은 잃었던 격을 재차 일부 되찾아 B급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검손잡이도 완벽히 복구되어 이젠 겉으로 보아도 잘 손질된 명검 취급을 받을 정도는 되었다. 물론 가드 부분의 빈 공간은 여전했지만. 그는 다시 작아진 신살검을 칼집에 꽂으며 작게 웃었다.

그뿐인가, 특성이 완전히 진화하며 그의 능력도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폭증했다. 처음 신살검을 쥐고 특성이 진화했던 순간이 떠오를 정도였다.

[강신혁 - B랭크] (동화율 10.4%)

[특성 ]

금안의 환룡(幻龍)(S) -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대신 모든 종류의 무술을 무척 빠르게 숙련한다. 스스로 익힌 무술의 효과를 매우 크게 증폭하고, 영향 하에 있는 무기의 성능을 크게 증폭하거나 봉쇄할 수 있다.

[신체능력]

힘 - C- → C+

민첩 - B- → B+

체력 - C+ → B

[특수능력]

영력 - C+ → B-

재생력 - E- → D-

[스킬]

환룡무(S+) - B- → B

야금술 - C-

모든 신체능력이 두 단계 성장했고, 최근 급성장을 거듭했던 영력은 한 단계에 그쳤지만 재생력이 무려 세 단계나 성장했다. 지친 몸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덤으로 희귀도 S+랭크의 스킬로 진화한 환룡무는 숙련도가 B랭크로 성장하기까지. 만약 땅지옥을 놔두고 도망쳤더라면 이런 성취도 얻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더욱 좋았다.

스스로의 행동이 낳은 결과를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좋았어……."

“모루!”

자신의 능력을 점검하며 우습게도 스스로에게 취해 있던 그때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밀란이었다.

다행히 그는 강신혁을 신의 사도라고 착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감탄하고 있기는 한 듯했다.

“정말…… 정말 대단해. 그 검을 소환하는 능력은 대체!”

“전장정리는 전부 끝난 거야?”

“물론. 네가 도와준 덕에 한결 수월했다…… 거기에 대해선 감사를, 아니 그보다!”

여전히 답답한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대충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알 수 있었다. 목소리로 다 전해졌으니까. 강신혁은 신살검이 들어간 칼집을 두어 번 두드려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야. 방패가 커졌듯이, 검도 그렇게 커졌을 뿐이지. 너무 힘들어서 아마 다시는 못할 거야.”

거짓말이다. 영력이 보다 성장한다면 아마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저들이 그에게 괜한 기대를 품을까 두려워 그렇게 둘러댔다. 아무래도 밀란은 완벽히 속은 모양이었다.

“하긴 어마어마한 능력이었으니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났어. 고마워…… 정말, 고맙다.”

“방패를 되찾는 김에 겸사겸사 한 거라고 생각해. 이 녀석이 그 빌어먹을 벌레한테 시달리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라.”

- 우우웅

강신혁의 말에 보조를 맞추어 낮게 진동하는 히로익 실드를 보며 밀란은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너는 이제. 방패를 되찾았으니, 그, 돌아가는 건가?”

“글쎄…… 어떻게 할까.”

- 차원 퀘스트를 일찍 완료했으니, 본래 예정된 기한까지는 이곳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하는 쪽이 여러모로 편하겠지요.

강신혁은 관리자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자신을 신의 사도로 여기는 이들이니 앞으로 그들과 시비를 붙을 일도 없을 터.

그가 열흘 정도는 더 머무를 수 있다는 뜻을 전하자 밀란은 기뻐하는 듯했다. 그때 뒤에서 병사 지크가 다가와 밀란에게 보고했다.

"밀란 님, 생존연합의 생존자들이 밀란 님을 찾습니다.”

“전부 모인 건가?”

“예."

땅지옥이 나타난 순간부터 아무런 생각 없이 놈을 죽이는 데에 전력투구했지만 본디 그들은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상대. 하지만 강신혁도 밀란도, 그들이 다시 덤벼들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당신 같은 주군이 있었더라면……."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만, 한 번만 우리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준다면 결코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살아남기에 필사적이었을 뿐이다. 굳이 변명할 것 없어.”

밀란은 그들이 내민 물의 보주를 받아 품에 안으며, 굳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너흰 이제부터 내 부하다. 우린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 멸망한 땅에서, 반드시 살아남아 새 생명의 싹을 틔울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역시 인간은 단순하다. 서로 죽어라 싸워댈 때는 언제고, 고작 한 번 함께 전투를 치렀다고 해서 갑자기 화해하고 한 편이 되다니.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저런 단순함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신혁은 그런 생각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객에 불과한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봐, 모루.”

“음?"

지크였다. 강신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지크는 엉망이 된 전장을 가리키며 그를 이끌었다. 순순히 따라가 보니 그곳에 잔뜩 쌓여있는 것은 다름 아닌 땅지옥의 사체가 남긴 부산물이었다.

“부산물 정리가 끝났으니 챙겨. 저 괴물은 네가 혼자 잡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아, 그렇구나. 너희가 다 해준 거야?”

“물론. 이 정도라도 해야지.”

몬스터 사냥을 직접 해본 적이 얼마 없어 사체 갈무리까지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다. 강신혁은 산처럼 쌓인 부산물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흑의 갑각, 날카로운 이빨(정확히는 이빨 모양의 단단한 돌기였다.), 기분 나쁜 살점덩어리, 마지막으로 실로 거대한 마나 스톤까지. 강신혁이 보았던 것 중에서는 가장 컸다.

- 팔기는 어려울 겁니다. 회원님의 신분으로는 인증이 어려울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 야금술의 재료로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사실 인챈트의 재료로 삼는 것이 더욱 좋지만 회원님께서 인챈트를 다루지 못하시니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야금술이라. 마나 스톤을 야금술에 쓴다니 강신혁은 알지 못하는 방법이었다. 나중에 어떻게든 얼버무리며 이만우에게라도 물어볼까. 더구나 놈의 갑각과 이빨도 어떻게든 가공해 써먹을 수 있을 터였다.

‘이거 들고 돌아가면 갑자기 거대화하거나 그런 거 아니죠?’

- 회원님의 야금술이 극에 이르면 그렇게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물론 반대로 작아질 일도 없으니 안심하세요.

‘그런데 이걸 전부 어떻게 챙기죠?’

- 기뻐하세요. 1차 해방이 되며 거래 게시판에서 구매할 수 있는 품목 중 히어로 유니버스 서비스 시스템이 포함됩니다! 이중에는 놀랍게도 인벤토리 기능이 있습니다!

인벤토리라면 설마 구매한 물품을 보관하는 샵 인벤토리와 같은 아공간을 말하는 것인가!?

그러고 보면 클레어는 종종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물건을 꺼내곤 했는데, 여태까진 그게 다른 아티팩트나 샵 인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했던 개인 인벤토리였다니! 금방이라도 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강신혁이 다그치자 관리자는 바로 긍정했다.

- 바로 그렇습니다. 부피 제한 없이, 1칸에 최대 200킬로그램 보관이 가능한 인벤토리를 VIP 50% 특별할인가 150만HP로 모십니다!

'.......'

강신혁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VIP 50% 특별할인가가 150만HP라면 원래는 한 칸에 300만HP라는 게 아닌가.

더구나 최대 200킬로그램이라면 이것들을 넣기엔 택도 없을 터…… 강신혁은 이 줬다가 뺏어가는 듯한 참을 수 없는 감각에 치를 떨면서도 말했다.

‘3칸…… 구매할게요.’

- 5칸 이후로는 구매가격이 더욱 비싸지니 참고하세요!

‘빨리 3칸 주기나 해요.’

3칸의 인벤토리가 자신에게 귀속되었다는 것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샵 인벤토리보다도 명확하게, 나 자신만이 다룰 수 있는 개인적인 서랍이라는 느낌으로 어디서든 열고 닫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전부는 못 챙기겠네.’

강신혁은 손에 잡히는 대로 부산물을 챙겨 인벤토리에 밀어 넣고는(검도 거대화시키는 마당에 아공간 정도로는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나머지는 즉석에서 보자기를 만들어 그 안에 쌌다.

이곳에 올 때도 배낭과 함께 올 수 있었으니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은 함께 가져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너희가 가져.”

“으음, 가져도 우리가 이걸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빤히 보이는 수작하기는.”

강신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든 가공해줄 테니까 다 맡겨봐. 대신 대가는 브레나이트를 포함한 금속으로 확실히 받는다. 아, 그리고 이거 너희가 막사까지 다 옮겨.”

“접수했습니다, 사도님.”

원하는 바를 얻어낸 지크가 싱글거리며 대꾸했다. 어차피 남은 열흘간 강신혁이 야금술을 수련할 계획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에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그로부터 열흘이 더 흘렀다. 그동안 강신혁은 사람들에게 신의 사도 대접을 받으면서도 착실히 야금술에 매진했고, 넘치도록 쌓인 갑각을 가공해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무기(주로 투창기와 단창이었다.)를 만들어냈다.

- 야금술 스킬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스킬의 성장에 의해 힘이 B-랭크로 성장합니다. 열기에 대한 저항력이 보다 높아집니다. 앞으로 작업속도에 30%의 보정이 붙게 됩니다.

그렇게 기어이 목표했던 야금술 스킬 C랭크를 달성하고.

-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로 몬스터 유인제(C+급)을 얻었습니다!

지구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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