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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 Chapter 8. 히로익 실드, 절망의 성벽 - 4 >

금속의 수준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그것이 무구로서 사용된다는 가정 하에서는 역시 경도가 제일가는 평가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 지구를 비롯한 많은 세계에선 거기에 마나라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금속의 평가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금속이 마나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며, 얼마나 담을 수 있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가. 혹은, 마나로 인해 어떠한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켰는가.

“마법금속은 정말 신기한 거구나……."

오르드에서 채굴되는 브레나이트는 오르드의 광산지대 특유의 마나 흐름에 노출된 결과 무척 가볍고 날카로운 성질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마나를 담으면 그 특성이 더욱 강화되기까지 했다.

오르드인들이 말하듯 경도가 썩 훌륭하지 않아 갑옷으로 만들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지만, 화살촉으로는 아주 그만이었으며 통짜 브레나이트를 녹여 단창으로 만들어도 아주 훌륭했다.

“정말 예쁘네요.”

- 다른 누가 들으면 여성에 대한 사랑고백으로 오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예쁜걸요.”

- ……500HP 보너스!

“어째서!?”

지금에 와선 채굴조차 할 수 없게 된 금속을 낭비할 수는 없었기에 대부분 창촉을 만드는 정도에서 만족했지만, 강신혁은 자신 몫으로 얻은 브레나이트를 일부 가공해 자신 몫의 투창 용 단창을 하나 만들어냈다.

은은한 푸른빛으로 빛나는 금속창은 지난 일주일간 쉼 없이 망치질만 하며 작업에 한결 능숙해진 강신혁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된 명품으로, 그것이 명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바래지 않는 브레나이트 스피어]

[C+랭크]

[특수능력 - 강건, 분열]

*강건 - 재질의 한계 이상으로 단단해지며 공격력에도 보정이 더해진다.

*분열 - 투창 시 50% 확률로 같은 목표를 노리는 창이 두 개 더 생성된다. 생성된 창은 목표물에 명중한 후 자연소멸한다.

이 단창이 아티팩트라는 것을 증명하는 옵션이었다!

어찌나 그 자태가 아름다웠던지 강신혁은 그것을 껴안고 흙바닥이라도 데굴데굴 구르고 싶을 정도였다.

C+랭크라니. C+랭크라니! 더구나 이 단창에는 옵션이 무려 두 개나 붙어있었다. 자신이 만든 투창기에도 무척 만족하고 있던 강신혁이었으나 단창에 붙은 분열 옵션이 투창기에 붙은 것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나니 도저히 냉정할 수가 없었다.

- 관리자는 그 단기간에 마법금속으로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게 되신 회원님의 야금술이 더욱 신기합니다.

“제 야금술에 대해선 알고 있었잖아요?”

- 회원님께선 그땐 이미 완성된 상태셨습니다.

관리자의 짧은 말에 강신혁은 바로 납득하고 말았다. 과연, 전생의 모루는 히어로 유니버스에 접속했을 때 이미 기술적으로 완성된 상태였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관리자 역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강신혁을 보며 어떠한 감회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 야금술 스킬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열기에 대한 저항력이 보다 높아지며, 완성품에 긍정적인 효과가 더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동기화가 크게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7.4%

- 혼이 기억하고 있던 영력의 잠재력을 일부 근원으로부터 끌어냅니다. 영력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영력의 영향력이 보다 증대되어, 근원을 보다 능숙하게 끌어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진짜 야금술을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이가 고작 열흘간 스킬에 매진한 것만으로 스킬 랭크를 두 단계나 올릴 수 있을 리는 없지만 말이다.

이것은 생전 처음 겪는 대량생산을 해내며 강신혁이 대장장이로서 한 단계 위로 도약했다는 증거였으며, 처음 다뤄보는 마법금속을 능숙히 가공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만우 선생님이라면 제가 단기간에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 그렇지만 회원님, 퀘스트 기한이 앞으로 열흘이나 남았습니다. 물론 이렇게 극적인 성장은 다시 이루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한 단계는 확실히 더 성장하실 겁니다.

C-랭크에서 최소 한 단계의 성장, 즉 완전한 C랭크가 된다는 뜻이다. 대장장이 업계를 잘은 모르지만, 아마 C랭크라면 현업으로 활동해도 지장이 없을 만한 수준이 아닐까?

그것을 고작 한 달 만에 이룬다니…… 그런 생각을 하던 강신혁은 이내 이만우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하긴, 새삼스럽지도 않네요. 원래부터 이만우 선생님은 제가 이상한 놈이라고 하셨죠.”

- 이제야 깨달으셨군요. 그는 이 정도의 변화로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그는 회원님의 성장을 눈치챌 만큼의 실력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동화율이 100%가 될 때쯤엔, 분명 야금술도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있을 테고요.”

- 물론입니다.

“그렇겠죠…… 후우, 좋아요.”

그 순간이 오면 어떻게 될까. 1차 해방을 이룬 것만으로 이런 격변을 맞이했는데 동화율 100%를 이루고 기억을, HP를, 능력을 모두 되찾는 순간이 오면?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 감각. 마냥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는 이 순간. 그때가 닥쳐오면 보다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퀘스트 빨리 해치우고, 남은 시간동안은 보다 여유롭게 두드리죠.”

- 멋진 눈빛의 회원님께 100HP 보너스!

- 뀨웃!

“뭐? 너도 내가 멋지다고…… 아, 그래. 밥 달라고.”

물과의 교환조건으로 얻어낸 브레나이트는 아직 여유가 제법 남아있었기에, 오늘은 특식 삼아 그것으로 만든 단검을 오닉스에게 물려주었다.

- 뀨우뀨우뀨우웃!

영력이 들어간 단검을 오도독 씹어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닉스를 어깨에 얹은 채, 강신혁은 신살검, 분열하는 강철 투창기, 거기에 바로 방금 만들어낸 바래지 않는 브레나이트 스피어까지 빈틈없이 챙겨 밖으로 나왔다.

“모루, 준비는 다 된 건가.”

“너희야말로.”

밀란을 비롯한 병사들은 열흘 전에 비해 한층 굳건한 기세로 도열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급된 투창기로 식량을 공급하고, 강신혁과의 거래로 물을 얻기까지 했으니 죽음의 성벽 성채에 물의 보주를 빼앗기고,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전투를 치렀을 때와는 건강 상태는 물론이고 컨디션이 완벽하게 달라진 것.

“우리는 진즉 다 되었어. ……이제 남은 건 결전뿐이다.”

밀란이 앞으로 나서서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 전투에선 밀란을 대신해 군을 통솔하던 장군이라는 자가 있었지만 그자는 아무래도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모양.

왕자인 그가 직접 군을 이끌게 되었으니, 더구나 명운을 건 마지막 일전을 벌이게 된 셈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업을 하는 내내 바깥에서 그가 연설을 하는 것을 강신혁도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걱정하지 마. 연습한 대로만 하면 이길 수 있어.”

지난 사흘간, 밀란과 병사들은 완성된 투창기를 포함시킨 전투 및 전술 훈련에 매진했다.

그동안 더 물을 공급하는 대가로 강신혁은 그들이 장비하지 않은 거의 대부분의 브레나이트를 확보할 수 있었고, 여유롭게 야금술에 매진할 수도 있었던 것. 그 결과가 아까 만들었던 ‘명품’ 단창이었다.

“물론,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해.”

밀란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단순히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물의 보주는 오르드인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상징이며 자존심. 그것을 빼앗긴 채 도망이라도 쳤다간 다시는 그들을 하나로 묶지 못하게 될 터였다.

비록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의 단호한 결의와 기백만은 읽어낼 수 있었기에, 강신혁은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좋아, 그럼 가자.”

“가자, 출발이다!”

“성채를 함락시키러 간다!”

오르드인 중 전투가 가능한 병사는 밀란을 포함해 218명. 강신혁은 그중 100명을 투창기와 단창으로 무장시켰다.

투창기는 전부 강철을 이용했지만 가벼웠고, 창은 단단한 나뭇가지를 다듬은 것에 끝부분에는 브레나이트로 만든 창촉을 만든 것들로 무장했다. 남아있던 화살촉을 끼운 단창도 되는 대로 만들어 챙겼다.

그리고 나머지 118명 중 100명은 칼을 버리고 큰 방패로만 무장했다. 이들은 날아드는 화살로부터 본인과 투창병들을 지켜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며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그들은 지난 일주일간 부단히도 훈련을 거듭했다.

나머지 18명은 검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이다. 투창병들의 공세가 거세지면 저쪽 요새에서도 다른 수를 쓰려 들 터, 그때가 되면 이들이 활약할 것이다. 말하자면 전술의 빈틈을 막는 요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전투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

“아니, 너는 이미 충분히 우리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아니, 아니다.”

강신혁의 말에 밀란은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뒤로 물러섰다. 대충은 그가 하려던 말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강신혁은 그저 작게 웃는 것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제가 너무 냉정한가요.’

- 회원님의 생각대로 하시면 됩니다. 퀘스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방패를 회수하는 것이니까요.

관리자는 짧게 대답했다. 하긴 관리자는 이쪽 세계의 인간들과 관련된 일에는 처음부터 줄곧 단답을 고수해왔다. 아마도 강신혁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지금 히로익 실드는 분명 생존연합 측이 차지하고 있고, 퀘스트의 내용은 그들로부터 그것을 빼앗는 것이니까…….

‘으으음. 혹시 히어로 유니버스 시스템의 뜻과 관리자의 뜻은 다른 건가?’

강신혁은 그 괴리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기에 일단 머리 한 구석에 밀어 넣고는 오르드의 병사들과 보조를 맞추어 걸었다. 그런 그에게 병사 지크가 다가와 투구를 하나 씌워주었다.

“죽은 녀석이 쓰던 거야. 없는 것보단 낫겠지.”

“아니 지금 죽은 사람이 쓰던 걸 재수 없게.”

하지만 그는 그것을 벗지는 않았다. 그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느껴졌으니까. 그가 투구를 벗지 않는 모습을 본 두어 명의 병사가 더 다가와 그리브며 건틀렛을 내밀었지만 그것들은 마음만 받기로 했다. 정 주고 싶거든 나중에 녹여서 쓰게 해주면 좋겠다.

“곧이다.”

“그래, 곧이지.”

그 말을 입 밖에 낸 순간, 성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삼면을 계곡으로 보호받고 있어 전방을 틀어막은 성벽으로 인해 그 안에 들어간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지켜내는 성채. 멀리서 보니 정말 방패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저렇게 반대로 묻혀있으니 정말 성벽으로밖엔 안 보여.’

표면이 매끈하니 공성전을 하듯이 타고 기어오를 수도 없고, 부수자니 지나치게 두껍고 단단하다.

이 소인들의 세상에서 저 방패는 완벽한 무적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무력 수준이 낮은 데에는 모든 것을 작게 한다는 이 세상의 특징도 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저 버러지들이 또 왔구나!”

“엇, 저놈도 왔다! 우리에게 제 보물을 바치러 왔어!”

“생존연합의 이름으로, 오늘도 신께서 약탈을 허락하셨다!”

곧 성채에서도 그들을 발견한 것인지 목소리를 높여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밀란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린 오늘! 오르드의 자랑 물의 보주를 되찾는다!”

“우오오오오오오오!”

강신혁은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적의 도발을 끊어버리고 목적의식을 고취시키는 사자후는 분명 모든 오르드 병사의 귀에 닿았을 터. 확실하게 연습한 것인지 목소리도 아까와 비교하면 훨씬 늠름했다.

“오르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모루를 위해! 돌격!”

218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내달렸다. 성채에서는 가만히 그것을 보고만 있었는데, 아마도 확실하게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사격을 개시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쯤인가?”

“될 거야. 하지만 조금만 확실하게 하자.”

“알겠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체력이 차이가 나니……. 조금만 더 앞으로.”

그러나 오르드 병사들은 이전처럼 무식하게 돌격하지 않고 화살이 닿을까 말까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돌연 멈추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생존연합.

“후우…… 흡!”

밀란은 자신이 먼저 나서서 투창기를 쥐었다. 단창을 하나 들어 홈을 투창기에 끼워, 그대로…… 던졌다!

“칵!"

“뭐야!?”

짧은 단말마가 성채 위에서 울려 퍼졌다. 당황한 생존연합 전사들이 다급히 살폈으나 수백 미터를 가르고 날아든 단창에 가슴팍이 관통당한 그 사람은 이미 죽어있었다.

“공격! 공격하라!”

“우오오오오!”

반격의 봉화가 높이 올랐다. 투창이 통한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병사들은 의기충천하여 일제히 투창을 개시했다.

그제야 투창기의 존재를 확인한 성채의 병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거나 화살을 쏘아대거나 하는 둥 우왕좌왕했지만 오르드 병사들은 당나라 군대처럼 싸우던 열흘 전과는 달리 재빠르게 방패병들을 준비시켜 그것을 막아냈다.

애초에 이 열악한 환경에서 만든 활의 사정거리는 모루의 환생 강신혁이 만들어낸 강철 투창기에 비해 아득히 모자란 사정거리를 갖고 있었기에, 그리 위협이 되는 수준도 아니었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오르드의 병사들은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성채의 병사들은 그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신혁은 그 틈을 타 전방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는 것을 성채의 병사들이 몇몇 눈치 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공격을 돌릴 수도 없었다. 손만 대면 언제든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던 오르드 병사들이, 지금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적이 되어 있었으니까.

“시간을 헛 쓰진 않았던 것 같네요.”

- 예, 회원님께서 만드신 무기를 들릴 값어치는 하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강신혁을 제외한 다른 인간에게는 엄격하기 그지없는 평가를 내리는 관리자. 강신혁은 픽 웃고는 보다 속력을 내어 절망의 성벽, 히로익 실드 앞까지 내달렸다.

-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회수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결국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더라고요.”

방패를 작게 만드는 것. 당연한 일이다. 최소한 사람이 들고 다닐 수는 있어야 회수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모르겠어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말을 걸어봐야겠죠.”

지난 열흘간 쇠를 두드리며 많은 생각을 해보고 다른 히어로 유니버스 회원들에게 방법을 물어보기도 했지만, 영력만이라면 몰라도 영력이 포함된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모루뿐이었다.

그렇다면 모루의 환생인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야금술은 어떻게든 부끄럽지 않은 수준까지는 단련했고, 그 과정에서 영력도 키웠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평소 신살검에게 그러하듯, 히로익 실드에게도 말을 걸어보는 것뿐이다.

- 옳은 방향입니다.

관리자는 언제나처럼 긍정했다.

- 설혹 틀렸다 해도 그땐 맞을 때까지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면 될 뿐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회원님은 이 세계에서 안전하니까요.

“그렇게 느긋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요.”

고작 열흘뿐이었지만 기껏 말을 섞게 된 이들이 죽는 것은 조금, 보기가 그랬다.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꺼려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죽게 놔두는 것도 꺼려지는 심정.

따지고 보면 자신은 그저 겁쟁이일 뿐이다. 강신혁은 누구에게 변명을 하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착했다.”

어느덧 자신의 눈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성벽에 손을 얹고, 영력을 발휘했다.

- 우우우웅

성벽, 아니 히로익 실드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미세한 떨림과 진동. 하지만 그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낮고 깊은 진동이 전장 전체에 울려 퍼져 모든 병사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저 자식이 우리 성벽에 뭔 짓을 하려고 한다!”

“이런, 죽여! 화살을 쏘란 말이다!”

“헛소리하지 마, 고개만 들면 창이 날아오는데 나보고 죽으라는 거냐!”

주위의 반응은 무시했다. 어차피 저들은 강신혁을 해할 수 없었다. 설령 수십 명이 동시에 튀어나온다 해도 정면에서 짓누를 자신이 있었다. 성장한 강신혁과 저들 사이에는 그만한 격차가 있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니?’

- 우우우우

히로익 실드의 의지는 처음 만났을 때의 신살검과 비슷한 수준. 잘하면 의외로 쉽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 녀석에게서 흘러넘치는 이 애수의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이런 빌어먹을…… 성벽의 에너지포는!? 에너지포는 쓸 수 없는 건가!”

“성벽에 직접적인 공격이 가해져야만 발동할 수 있는 것 몰라? 저 빌어먹을 놈들, 창을 성벽 너머로 던져대고 있어서 성벽 자체에는 공격이…… 아아, 젠장!”

- 우우우우우

히로익 실드는 마치 수십 년간 떨어져있던 부모를 만난 자식처럼 무수한 감정을 토해냈다.

다만 그것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해 한순간에 정리되지가 않았다. 방패로서 만들어진 순간부터 성벽으로 이곳에 자리하게 된 그 모든 순간의 기억과 감정이 밀려오고 있었으니까!

“젠장…… 일단 내려가! 성벽에 무슨 일이 생기려고 한다!”

“빌어먹을……!”

“내려가, 성벽이 위험해! 당장 다들 내려가!”

“저 개새끼를 내가 반드시 죽이고 말겠어!”

- 우우우

강신혁은 뇌가 과부하로 인해 터질 것만 같은 와중에도 간신히 방패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을 정리해나갔다.

슬픔, 더한 슬픔, 그보다 더한 분노……. 어쩌면 이 방패는 자신이 이런 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또 분노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강신혁은 우습게도 방패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미안해.’

- 우우우웅

방패는 투정을 부리는 듯했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혼자 외출한 부모에게 자식이 투정부리듯 그렇게 짧게 몇 번을 울었다.

신살검과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처음부터 그를 모루로 생각하고, 모루로서 대했다. 그렇다면 그도 모루로서 녀석을 대해야만 했다.

‘이런 곳에 그동안 혼자 놔둬서 미안하다.’

- 우우웅

‘같이 가줄 수 있을까.’

방패는 짧게 울었다. 강한 긍정. 거기에 더해 후련함, 그리고 걱정이 함께 느껴졌다.

무엇에 대한 걱정일까, 아직 영력과 야금술의 수양이 낮은 터라 완벽히 그것을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강신혁은 최대한 씩씩하게 대꾸했다.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 우우우웅

그 순간, 그의 뜻을 받아들인 방패가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에 동조해 강신혁의 영력이 미친 듯이 빨려나갔다!

강신혁은 다급히 에이렌 젤리를 꺼내어 깨물며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영력을 미리 성장시켜두지 않았더라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 우우웅, 우우우우웅

- 구오오오오

격렬하게 진동하던 히로익 실드가 드디어 그 크기를 줄이기 시작했다.

강신혁은 그저 정말 줄어드는구나,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며 - 그리고 줄어드는 영력 탓에 허겁지겁 에이렌 젤리를 먹으며 -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지만 외부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이들에게 그것은 실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저, 정말…… 정말 성벽이 작아지고 있어.”

“모루는 정말 그 성벽, 아니 방패의 주인이었던 건가.”

자연스레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어, 투창을 계속하던 오르드 병사들도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병사 복장을 입은 이들 중 한 명…… 지크가 밀란에게 다가와 물었다.

“……밀리아 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본래 생존연합을 밀어내고 나면 우리가 성채를 차지할 예정이었던 것이.”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설마 모루를 죽이고 저것을 빼앗기라도 하자고?”

“아, 아뇨. 그것이……."

밀란은 고개를 떨구는 지크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실력적으로도 무리인데다, 열흘간 그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준 모루를 차마 적대할 수는 없었던 탓이다.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처음 괜한 욕심을 낸 탓에 물의 보주까지 잃지 않았던가. 모루 덕분에 소중한 보물을 되찾게 되었으니, 이제 우린 우리의 방식으로 살아남자. 저 성채에 머무른다면…… 아마 우리도 저들 생존연합과 비슷하게 변질되고 말 테니까.”

“밀리아 님……."

“밀란이라고 불러. 이제 내 이름은 밀란이야.”

“알겠습니다, 밀란 님…… 엇?”

“무슨 일이지? 헛!”

성채가 완벽하게 무너지고 나면 튀어나올 생존연합을 대상으로 재차 무력시위를 할 셈으로 투창기를 쥐고 있던 밀란은 지크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기겁해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땅이…… 흔들린다.”

“땅에 박혀있던 성벽이 빠져나와서? 아니……."

이 세상에서 살아온 이라면 저것을 모를 수가 없다. 밀란은 지진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격하게 흔들리는 대지 위에서 필사적으로 균형을 잡으며 외쳤다.

“모루, 피해라!”

성벽이 있던 자리, 정확히 그 밑부분에서.

거대한 괴물의 입이 나타났다.

“땅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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