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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자마자 VIP-38화 (38/345)

38화.  < Chapter 8. 히로익 실드, 절망의 성벽 - 3 >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뭐야, 그럼 지금 진짜 이세계에 가 있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제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 연락을 일부러 무시할 리가 없잖아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얘 티 나게 아양 부리는 것 좀 봐.

다음날, 자신에게 주어진 임시 막사 안에서 강신혁은 클레어와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본래 폰을 이용하지 히어로 유니버스의 시스템은 잘 이용하지 않는 그녀이지만, 강신혁이 하도 연락을 받지 않다보니 걱정이 되어 귓속말을 한 것이다.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그런데 VIP쯤 되면 그런 신기한 일도 겪는구나. 이세계라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였으면 도와줬을 텐데.

“외부인이 도와줄 수 있어요?”

- 히어로 유니버스의 다른 회원을 동행할 수 있는 차원 퀘스트도 있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있대요. 다음에 부탁해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지금 다음 일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세계잖아. 진짜 괜찮아?

자신을 걱정해주는 클레어의 말 한 마디에 감동한 강신혁은 내심 자신이 참 쉬운 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티를 내지 않으며 씩씩하게 대꾸했다.

“물론이죠. 애초에 여긴 무력 수준이 우리 세상보다 많이 낮은 곳이에요. 해결할 수 없는 퀘스트는 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히어로 유니버스도 수상쩍다니까, 그런 걸 왜 너한테 시키는 거야? 분명 우리한테 좋은 시스템인 건 인정하지만…… 그런 노골적인 부분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누나. 제가 하고 싶어요.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강신혁은 그를 대신해 히어로 유니버스를 욕하는 클레어에게 다소 단호하게 대꾸했다.

비록 차원 퀘스트를 받게 된 계기는 마이 룸 기능의 활성화를 위해서라지만, 그것을 제해도 아마 그는 퀘스트를 받았을 것이다.

그는 모루와 미랑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고, 모루가 직접 만든 무구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정말 히로익 실드가 잘못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면, 그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루의 능력을 얻고, 모루의 기억을 얻고, 모루의 인연을 얻었으면서, 모루의 업보에서는 눈을 돌려버리는 것은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미 모루가 자신의 전생임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이건 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그래?

“네.”

강신혁은 그 뒤에 장난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게다가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위험할 일도 없겠다, 동화율도 높일 수 있겠다, 심지어 지구와 시간비율이 10배래요. 안 그래도 할 일 많아 죽겠는데 여기서 느긋하게 다 하고 갈 수 있어서 좋다니까요.”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그 말만 안 했으면 좀 멋져보였을 텐데.

클레어는 강신혁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는 사실을 눈치 챘지만 괜히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다.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그럼 지금은 뭐하는 중인데?

“지금은……."

- 깡! 깡! 깡!

강신혁은 쉴 새 없이 망치를 휘두르던 손을 멈추고 후우, 한숨을 불어냈다. 불씨가 이리저리 흩날리며 허공에서 마치 반딧불이처럼 춤을 추었다.

“쇠를 두드리는 중이에요.”

강신혁은 지금 간이 화덕과 간이 모루를 앞에 놓고 투창기를 만들고 있었다. 오르드 병사들의 능력으로 높디높은 성벽을 넘어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해주는 병기 중에서 짧은 시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은 투창기밖에 없었으니까.

뭣보다 투창기로 던질 투창 자체는 비단 강신혁이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제조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길고 두꺼운 나뭇가지를 손질해 그 끝에 쇠로 만든 촉만 박아 넣으면, 갑옷 정도는 여유롭게 뚫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투창기라, 정말 이런 원시적인 병기로 그 성채를 뚫을 수 있을까.’

밀란 반 오르드는 처음 강신혁의 생각을 듣고 우려를 표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투창기는 어떤 문명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쓰였던 것이고, 그것이 사장된 데에는 활보다 사거리가 짧다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무를 꺾어 대충 만든 투창기에나 해당하는 얘기고.’

이런 말은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강신혁에게는 자신이 만든 투창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확신이 있었다. 스스로 고작 강철로 빚은 투창기를 아티팩트로 만들어내며 자신감을 얻었다.

아티팩트가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잘 만든 투창기는 분명 활에 못지않은, 아니 활보다 더한 사거리와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야금술을 지닌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의 힘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강신혁은 야금술이 D랭크로 올라간 후, 자신의 작업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작업에 있어서 사고와 행동의 연결이 더 자연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보다 적은 움직임으로 좋은 효율을 낼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이곳에 도착해서부터 꼬박 하룻밤이 지난 지금 무려 10개가 넘는 숫자의 투창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좋아, 이 정돈가.”

투창기는 전부 강철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강철은 대부분 세상에서 대량으로 유통되는 금속인지라 거래 게시판에서도 무척이나 합리적인 가격(10kg에 1HP 정도)에 구매할 수 있었다.

HP의 가치를 생각하면 더 싸야 하지만 강철을 거래 게시판까지 와서 찾을 정도라면 그 세상에 정상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가 있기에 비싸게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비싸봤자 관리자의 보너스 한 번이면 최소 100kg을 살 수 있으니 강신혁도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한 것이지만.

……덤으로 오닉스는 강철 따위는 무기로 가공하지라도 않는 한은 안 먹으려 들었다. 아주 괘씸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모루, 아직도 작업하고 있는 건가.”

“응, 좋은 아침.”

막 12개째의 투창기를 완성해 마지막으로 다듬던 강신혁은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병사, 지크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는 못내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한켠에 늘어놓은 투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난 잘 모르겠군. 난 밀…… 란 님께서 자네를 용병으로서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정말 이 작대기로 그 성채에 있는 놈들을 맞출 수 있을까?”

“그렇지, 안 그래도 슬슬 시연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시연?”

강신혁은 놓여있던 투창기 중 아무 거나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지크에게 밖으로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막사 밖에는 병사들이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1미터 길이의 단창들이 한데 쌓여있었다. 쇠를 쓰는 것은 아까웠는지 끝을 예리하게 다듬어놓았을 뿐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모루.”

“안녕. 보아하니 창을 제작하는 데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좋아, 일단 시연 먼저 보여줄게.”

그를 맞이하는 밀란의 목소리가 썩 밝지 않은 것을 보면, 작업에 임한 병사들에게서도 그리 좋은 말이 나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강신혁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단창 하나를 집어 들어 투창기의 돌기에 홈을 맞추었다.

“여기 새는 좀 있어?”

“여태까진 궁수들이 그것들을 잡아 비교적 쉽게 식량을 조달했었지. 물의 보주는 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이 작은 무리를 수습하는 데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지만……."

“아니, 알았어. 그만.”

짠내 나는 이야기의 조짐을 느낀 강신혁이 밀란의 말을 끊고는 막사를 벗어나 탁 트인 곳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정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 보였다. 그것도 제법…… 아니, 엄청나게 많았다.

“엄청 많네……."

“모루 넌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군.”

강신혁의 얼굴표정을 본 밀란이 쓰게 웃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리 세상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땅지옥 때문이지. 반면 날개 달린 것들은 놈에게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고, 지금도 번성하고 있어.”

“땅지옥?”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먹잇감을 낚아채 지하로 끌고 들어가는 괴물이다. 온갖 방식으로 의태해 사람을 속이지. 너도 수상쩍어 보이는 물건이 떨어져 있거든 근처로 다가가지 않는 게 좋아.”

“기억해둘게.”

어쩌면 이번 퀘스트 중에 놈을 잡아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강신혁은 밀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자세를 취했다.

투창기는 모양새가 간단한 만큼 숙달도 쉬운 병기다. 그저 투창기에 창을 끼워, 창과 투창기를 단단히 붙잡고, 목표하는 방향으로 있는 힘껏 뿌리듯이 창을 던져내면 되었다. 간단한 사용방법에 비해 그 효과는 실로 극적이어서…….

- 꾸엑!

쏜살같이 허공을 가르고 솟구친 나무창이, 족히 수백 미터 상공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던 커다란 새를 꿰뚫었다. 창에 꽂힌 새가 힘없이 추락해 근처에 떨어지자 병사 한 명이 후다닥 달려가서는 그것을 주웠다.

“진짜 꿰뚫었어! 죽었어!”

“아니, 어떻게 방금……."

“정말 죽었다고!”

“그거…… 평범한 투창기가 아닌 것 같은데?”

병사들이 순수하게 감탄(혹은 강신혁이 저 새를 자신들에게도 나누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나오는 환호)을 하는 반면 밀란은 그의 손에 들린 투창기를 바라보며 의심쩍은 목소리를 냈다. 강신혁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반문했다.

“평범한 투창기를 만들 거였으면 처음부터 말도 꺼내지 않았겠지. 그래서 어때, 이젠 내 말을 좀 믿겠어?”

“그래. 병사들 전원, 아니 4분의 1만이라도 이 투창기로 무장시킨다면…… 가능성이 있어. 성채를 전복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애초에 오르드 병사들이나 생존연합이나 그 숫자는 수백 가량으로, 그렇게 많은 무리는 아니었다.

하긴 스스로 말하길 쇠퇴한 세상이라는데 무리가 모여 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절망의 성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기만 있다면 그들이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되찾을 수 있어. 물의 보주를……!”

“애초에 그 소중한 물건을 어째서 빼앗긴 거야?”

강신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기합을 넣는 밀란에게 대수롭지 않게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어차피 얼굴 표정도 보이지 않는 주제에 강신혁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슬쩍 돌리며 대꾸했다.

“……우린 원래 그 성채에 의탁하려 했다.”

“그런데 배신당해서 물의 보주만 빼앗기고 쫓겨난 거야?”

“그렇다. 게다가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민간인들도 있어서…… 그들은 싸울 수 없는 자를 지켜줄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 치명적으로 의견이 맞지 않았다.”

역시 짠내 나는 얘기뿐이었다. 그는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하며 밀란에게 방금 자신이 쓴 투창기를 건넸다.

“어쨌든 내가 던지는 걸 보여줬으니, 지금부턴 이걸 가지고 병사들을 훈련시켜. 식량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을 테고. 아, 손이 남는 사람들한테는 창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혹시 물은 좀 없나?”

아, 물을 생산할 수 있는 보주를 빼앗겼다고 했던가.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차피 물이라면 거래 게시판에서 지극히 싼 값에 구할 수 있는 품목 중의 하나였다. 만약 물과 그것을 교환할 수만 있다면……!

“좋아, 그럼 물물교환을 하자.”

“교환? 네가 원할 만한 것이 우리에게 있을까 모르겠다만.”

“있을걸.”

강신혁은 밀란이 입고 있는 푸른빛을 띠는 금속갑옷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은 강철은 물론 아니었고, 그 외에 강신혁이 알고 있는 다른 어떤 금속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이 세상에서만 나는 금속으로 보였다.

‘다른 세상의 금속을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얻을 기회.’

물론 그도 멀쩡한 병사들의 갑옷이나 검, 창을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단지 부상을 입어 싸우지 못하거나, 이미 죽은 병사의 병장기를 원할 뿐.

산 자들을 살릴 물을 주는 대가로 필요도 없어진 금속을 받고자 한다면, 그들도 감히 거절할 수 없을 터였다.

“호, 혹시 내 몸을 원하나?”

“아니, 미안하지만 그쪽 취향은 아냐. 그 금속에 관심이 있거든.”

기분 나쁜 오해를 하는 밀란에게 강신혁이 정색하며 대꾸하자, 그는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면서도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브레나이트, 우리 오르드의 특산품이었지. 가볍고 날카로워 화살촉의 재료로는 아주 그만이지만…… 미안하게도, 경도가 그리 높지 않아 본격적인 무구를 제작하고자 한다면 그리 좋지 않아.”

“가볍고 날카로워? 화살촉의 재료로는 아주 그만이라고? 완벽하잖아.”

“완벽하다니…… 아!”

밀란 역시 뒤늦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강신혁은 그저 씩 웃고 말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오르드 부대는 강철로 만든 투창기와 브레나이트로 만든 단창으로 무장을 완료했다.

……강신혁은 그때까지도 새로 얻은 금속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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