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31화 (31/345)

31화.  Chapter 6. 알을 깨고 나오다. - 8

뱅가드와의 유쾌한 만남을 마치고 온 강신혁은 허겁지겁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 넓지 않은 방 한켠에는 신살검과 바로 얼마 전에 만들어낸 강철창, 그리고 천에 둘둘 감싸인 채 놓인 상자가 있었다.

“자, 그러면.”

- 관리자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알을 받자마자 바로 부화시켜버리고 싶었지만 그래서야 그가 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게 됐으리라. 그렇기에 몇 번이고 참을 인을 새기며 꾹꾹 참았다. 뱅가드가 아니었으면 만나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짜 부화하는 거겠죠.”

강신혁은 옷을 갈아입은 후 상자를 열고 알을 꺼냈다. 상자는 그냥 버리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무척 귀한 게이트 너머 재료로 만든 상자라기에 일단 보관해보기로 했다.

- 레스티야의 힘을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치들을 제가 직접 본 적도 없는데······ 아니, 믿어요. 믿어보죠 뭐.”

혹시 모르니 방문이 잠겼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샵 인벤토리에서 세상 레스티야의 부화 촉진제를 꺼냈다. 그것은 흔히 흙에 꽂아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앰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관리자님, 이거 완전히.”

- 믿으세요.

“아 글쎄 믿는대도.”

이렇게 된 이상 속는 셈치고 해보는 수밖에. 다행히 방법은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앰플의 끝을 똑 따고, 그것을 알에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앰플 안에 가득 차 있던 끈적한 액체가 알에 빠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어, 어어?”

그것을 모조리 흡수한 알이 갑자기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부화를 앞둔 디지몬 알처럼!

강신혁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급한 대로 알을 집어 들었다. 알은 계속해서 요동칠 뿐 부화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강신혁은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바로 영력을 뻗어내 알을 감싼 것이다.

- 우우웅

본능적으로 대응한 것인데 성공인 모양이었다. 그의 영력을 받아들인 알의 진동이 조금이지만 줄어들었다. 그와 함께 느껴지기 시작한 희미한 고동. 어쩌면 이것은 심장소리일까.

만약 잘못될 거라면 그 전에 관리자가 말리겠지, 반쯤 무책임한 생각을 하며 그는 계속해서 영력을 뿜어냈다. 알은 그것을 마치 모유를 먹는 갓난아기처럼 잘도 받아먹었다. 적어도 싫어하는 것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알이 품고 있는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영력을 통해 그와 알이 이어져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으어······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인데.’

무기에 영력을 불어넣어 근원을 읽어내고 소통한 적이라면 있다. 영력의 끈을 뻗어 개인의 능력을 몰래 읽어낸 적도 있다. 하지만 순수하게 영력을 뿜어내 생명체와의 교류를 시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력이란 근원의 에너지. 자신의 근원에서부터 비롯되어, 타자의 근원을 파고드는 힘이다. 즉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근원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무척 생소한 기분이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의지가 터무니없이 강하구나, 너. 아니, 그래. 이제 태어나려는 건가.’

말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신기하게 녀석의 의사를 모조리 읽어낼 수 있었다. 이제 막 태어나려고 하는 생명은 지극히 나약하면서도, 올곧은 의지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생의 의지였다.

강신혁의 영력과 교류하면서 녀석이 뿜어내는 기운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성장했다. 구체적으로는, 보다 선명해지고 보다 단단해지고 있었다.

강신혁이 모루의 기억을 얻으면서 영력을 깨우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녀석도 그렇게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공급받고 있었다.

- 제가 일러드릴 것도 없었군요. 역시 회원님은······.

“혹시 이거, 원래 부화 촉진제만으로는 안 되었던 거 아니에요?”

-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회원님만을 위한 물건이었던 셈이죠. 그 생명체 또한 회원님을 만날 운명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미 깨어날 가망을 잃고 버려진 고대 생명체의 알. 그것을 깨우려면 부족한 에너지와 부모의 손길을 대신해줄 이의 존재가 모두 필요했다.

강신혁은 방금 그것을 충족시켰고, 그 결과 알은······.

쩌저적, 알에 금이 갔다. 그는 아주 천천히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관리자가 그 대신 두근거려주었다.

- 과연 무엇의 알이었을까요. 어쩌면 종족이 정해지지 않은 채 시공의 폭풍 속을 떠돌아다니던 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유전자, 변화하는 환경, 사육주의 능력에 따라 모습과 능력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생명체 또한 존재합니······.

관리자의 말이 이어지던 그때였다. 알이 완전히 갈라지고 그 안에서 자그마한 동물이 튀어나왔다.

몸통이 완전히 새카맣고 얼굴 주위에만 동그랗게 새하얀 털이 나 있는 그것은 쥐를 닮아있었는데, 강신혁은 곧 녀석이 그렇게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등 위에 자그맣지만 날카로운 털들이 솟아나 있었던 것이다.

“잠깐만, 이거······.”

- 고슴도치로군요.

관리자가 정답을 말했다. 강신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는 반문했다.

“고슴도치는 포유류 아녜요······? 왜 이게 알에서 나와요······?”

- 몬스터가 아닌 고슴도치는 그렇지만, 이것은 형태만 고슴도치와 흡사할 뿐 완전히 다른 구조의 생명입니다. 애초에 평범한 동물은 날 때부터 털이 이렇듯 빼곡히 나 있지 않습니다.

“그도 그렇네요······.”

- 뀨우?

꼬물꼬물거리던 고슴도치가 강신혁을 알아봤는지 그를 올려다보며 작게 울었다. 강신혁이 손을 내밀자 녀석은 아장아장 기어오더니 그가 내민 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아프진 않았다.

- 아무래도 회원님의 영력을 기억하게 된 모양입니다. 영력을 섭취한다고 신체적 공복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주식으로는 곤란하겠지만요.

“······이거 제법 귀엽네.”

모든 동물의 새끼는 귀엽다는 말이 있다. 뒤뚱뒤뚱 걷는 자그마한 생명체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기가 더 어려운 일이긴 했다. 녀석은 샛별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강신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애교스럽게 머리를 그의 손바닥에 문대고 있었다.

“확실히 고슴도치는 아니네요. 이름은 뭐가 좋을까······ 빽빽이, 뾰족이······.”

- 제가 지어도 되겠습니까?

강신혁의 처참한 네이밍 센스를 견디지 못한 관리자가 요청했다. 강신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관리자는 자신감 넘치는 투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 헤그가 좋겠습니다.

“설마 헤지호그(Hedgehog)를 줄인 말인가요?”

- ······.

정곡을 찌르는 강신혁의 말에 잠시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있던 관리자는 끝내 그의 말에 해명하지 않고 다른 메시지를 보내왔다.

- 스피나는 어떨까요. 혹은 스파이크, 스파인······.

“결국 가시란 뜻이잖아요. 제가 딱 정했어요. 두식이.”

- 그것만은 안 됩니다!

- 뀨······.

관리자와 강신혁이 고슴도치의 이름을 놓고 한창 다투고 있자니 고슴도치는 몇 번인가 더 강신혁의 손가락을 깨물더니 이내 어딘가로 아장아장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야에서 녀석이 사라졌음을 강신혁이 깨달았을 때, 녀석은 이미 강신혁이 전날 만들어놓은 강철창 앞에 있었다.

“야 그거 날붙이야, 건드리면 위험······!”

- 뀨!

강신혁이 다급히 녀석을 붙잡으려 했지만 녀석은 방금 태어난 주제에 놀랍도록 민첩했다. 강신혁의 손을 빠르게 피한 녀석은 그대로 강철창에 달려들어 그것을 물었다.

“어······?”

오도독, 소리가 났다.

녀석이 그것을 깨물어먹기 시작했다.

“이까지 나 있었다니!?”

- 회원님, 그건 손가락을 물렸을 때부터 깨닫고 계셨어야 합니다.

얼빠진 소리를 하는 강신혁에게 관리자가 예리한 태클을 넣었다. 기가 막힌 강신혁이 멍하니 보고 있는 동안 고슴도치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그것을 먹어치웠다.

앗 하는 사이 그 작은 몸으로 강철창의 10분의 1이 흡수되더니, 배가 부르지도 않은지 녀석은 더 열을 올리며 강철창에 달라붙어 그것을 오도독 오도독 잘도 씹어댔다.

“하하······.”

원래 강신혁은 저 강철창을 히어로 유니버스의 거래 게시판에 올릴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모루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허접한 실력이라는 것을, 감정에 있는 대로 휘둘려 만든 실패작이라는 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보일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에게 멋대로 기대를 품고 있다가 실망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직까지 그의 환생을 믿지 않고 있다가 그것으로 인해 확신하게 되는 이도 있을 것이며, 혹은 지금의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있을 터였는데, 그 모든 가능성을 지금 저 녀석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 말리지 않으십니까?

“이미 먹혔는걸요. 창이 완전히 죽었어요.”

- 과연, 회원님과 같은 이의 관점에서 보면 저것 또한 죽음이라는 것이군요. 좋은 것을 배운 관리자의 10HP 보너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창을 이루고 있던 영력의 핵심이 이미 고슴도치 녀석에게 먹혔다. 이제 와서 녀석을 말려 창을 수습한들, 저것을 수선한들 이미 이전과 같은 창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늦은 것 말려 무엇 하겠는가. 혼내는 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잠자코 녀석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점에서 강신혁은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쇠를 먹는다는 특성 하나만 놓고 보면 지금 저놈은 완전히······.

“굳이 말하면 저건 고슴도치가 아니라 불가사리(不可殺伊)네요.”

- 그렇다면 저 아이는 바다의 불가사리와 이름이 같은 아스테로이드, 그것을 줄인 테드로······.

“정했어요. 이름은 오닉스(Onyx)로 하죠.”

검은 몸에 흰 얼굴, 또 다시 그 안에 검게 반짝이는 눈이 있는 것이 흰색 줄무늬를 가진 검은 보석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즉흥적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그 순간.

- 조건을 충족하여 새로운 펫과의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충성도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이상 ‘오닉스’는 당신을 맹목적으로 따를 것입니다. 현재 펫의 충성도는 50입니다.

보통은 테이머들이나 다룰 수 있다는 펫을 정식으로 얻게 되었다! 아마도 녀석을 직접 부화시킨 것, 밥을 먹여준 것, 거기에 더해 이름을 직접 지어준 것이 트리거가 된 모양이었다.

“알고 있었죠?”

- 물론입니다. 이름이란 그래서 무척 중요합니다. 오닉스······ 나쁘지 않습니다. 회원님의 센스에 10HP 보너스!

고슴도치와도 불가사리와도 관계없는 이름이었지만 관리자는 그 이름에 그럭저럭 만족했기에 굳이 뭐라 태클을 걸지 않았다.

둘이 극적인 타협에 성공한 가운데 오닉스는 더욱 기세를 올려 남은 강철창을 깔끔하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분간 더 지켜보고 있자니 기어이 창을 다 먹어치운 녀석이 끅, 귀여운 트림을 하고는 그 자리에 발라당 엎어졌다.

- 큐우우우······.

그리고 잠이 들었다.

“이 새끼가······.”

- 새끼니까요.

순간 치솟는 강렬한 살의! 고개를 숙여 사죄해도 모자랄 것을 다 먹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리다니 그 이상 얄미울 수가 없다!

그러나 관리자의 말대로 오닉스는 아직 새끼일 뿐이었고, 배부르게 먹었으니 잠이 드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강신혁은 솟구치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고 녀석을 들어 올려 적당히 이불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가 오닉스가 깨고 나온 알의 잔해를 정리하려 바닥을 쓸었을 때였다. 산산이 흩어져 있던 알의 깨진 조각들이 일제히 그에게 공명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음······?”

강신혁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딱히 그에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였는데, 실로 그러했다.

진동과 함께 눈부신 빛을 쏟아내길 잠시, 알의 잔해가 일제히 녹아내려 그의 손끝으로 몰려들더니 스르륵,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건.”

- 해롭지 않습니다.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관리자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그 안에 있던 생명이 부화하여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으로부터 강렬한 생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무수한 차원을 넘나드는 험난한 과정 속에서도 끝내 그 안의 생명을 지켜낸 알껍질이, 부화 촉진제의 영향으로 그 원천을 다소나마 온존하여 알을 깨우는 데 도움을 준 강신혁의 영력에 공명한 것.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강력한 혼의 힘, 그 일부를 흡수하여 영력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 생명을 북돋고 강건하게 만드는 힘! 그 이치를 일부나마 이해하여 재생력이 E-랭크로 성장합니다.

“허······.”

설마 알껍질을 흡수한 것만으로 이런 성과를 낳다니! 강신혁은 자신의 체내에서 새로이 샘솟는 강한 영력을 느끼곤 아찔해졌다. 무려 두 개 특수능력의 동시성장이라니,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강철창을 잃은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설마 관리자님은 이것까지 전부 예상하고서······?”

- ······당연하죠. 저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계산합니다.

뒤늦게 날아온 관리자의 메시지를 보며 강신혁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사실은 아니지만 강신혁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말해준다는 투였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 친절한 회원님께 10HP 보너스!

그렇게 해서 강신혁은 고슴도치의 모습을 한 불가사리를 펫으로 거두게 되었다. 어찌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예사로운 녀석은 아님에 분명했다.

······일단 녀석이 일어나면 신살검만은 절대 건드리지 않도록 교육해야겠다고, 강신혁은 단단히 다짐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