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28화 (28/345)

28화.  Chapter 6. 알을 깨고 나오다. - 5

“진짜 빨랐어. 속도로는 백인하 빼고 누구한테도 안 꿀린다고 생각했는데 마법이 내 속도를 따라오더라니까.”

결승전이 열리기 전 1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강신혁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있자니 카렌이 찾아와 이것저것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냥 왔으면 방해된다며 쫓아냈겠지만 응원한다며 망고 스무디를 사왔기 때문에 입에 그것을 물고 얌전히 그녀의 말을 듣기로 했다.

“게다가 많아. 주문을 한 번 외운 것 같았는데 화염화살이 열 개 생겨나더라구. 그 자식 특성에 분명 두 가지 이상의 힘이 있을 거야. 고속영창, 그리고 다중영창. 완전히 마법사 특화형이라니까?”

“마법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그런 특성인 거냐?”

“아니, 그렇게 마법영창에 도움 되는 특성과 스킬로만 무장한 경우는 거의 없어. 보통은 마법을 다루게 해주는 뇌 구조 격변, 혹은 마법진 개화, 혹은 마력 개변, 뭐 그 정도? 진짜 운 없으면 그냥 화염구 하나 다루는 특성만 나오는 경우도 있고. 뭐 그런 녀석들은 신영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겠지만.”

강신혁은 스무디를 빨아먹다 말고 픽 웃으며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혹시 모르지. 마법학과에도 나 같은 놈이 있을지도. 화염구를 기똥차게 다루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 아무튼! 그 녀석은 고속영창과 다중영창을 다룰 거야. 그러니까 8강 때처럼 냅다 무기를 던져버리면 곤란해. 차라리 한꺼번에 투척무기를 무진장 많이 날리는 전사랑 싸운다고 생각하고 신중하게 임해.”

“너 그 말 해주러 왔구나.”

카렌은 그녀 나름 강신혁을 응원할 겸, 자신이 상대한 적의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강신혁이 나직이 웃자 카렌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우리 파트너잖아. 내 복수 해줘야지?”

“2인3각 파트너 말이지.”

“응원할게. 이제 우리 반의 명예를 세울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음?”

뭔가 속뜻을 담고 있는 듯한 그녀의 말에 강신혁이 눈을 가늘게 뜬 그 순간이었다.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울상이 된 백인하가 들어왔다.

“시뇩아!”

“아, 안 들어도 알 것 같으니까 저기 가서 혼자 울어.”

“시뇩아아아아아!”

“저리 가라고 새꺄!”

바로 5분 전, 백인하는 투왕전의 4강에서 패배했다고 한다. 상대는 현 마도왕인 3학년의 프랑스 유학생, 나탄 보댕.

제법 멋진 승부를 펼친 모양이지만 결국 져버렸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카렌은 이미 그 정보를 들어 알고 있었다고.

“신입생이 투왕전의 4강에 진출한 시점에서 기록인데. 8강은 재작년에 한 번 있었지만, 4강은 뇌제 졸업 이후로 처음이야.”

“뇌제는 1학년 때 마도왕은 물론이고 투왕까지 먹었잖아!”

“뇌제를 이길 생각을 하네 얘가······.”

카렌은 분해 죽으려고 하는 백인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투로 웃었다. 뇌제는 신영 입학 시점에서 이미 전설이었던 여자. 현재 20대 중반의 터무니없이 젊은 나이로 세계 랭킹 317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그것도 그녀가 여력을 남기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뇌제는 여태껏 어떤 게이트를 상대로든 패주한 적이 없으므로, 그녀의 실력을 정확히 알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으아아아, 분해죽겠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이겼는데! 마력에 +만 붙었어도 발랐는데!”

“진정해, 인마. 아무튼 존나 잘한 거잖아.”

“근데 사실 백인하 진짜 민폐야. 8강에서 기사왕을 꺾고 올라가는 바람에 기사학과가 마법학과에 진 것처럼 되어버렸다니까.”

신영의 기사왕은 바로 현 비룡기사단의 단장인 3학년 미국인 유학생 남성, 더글러스 페인(Douglas Paine).

올해에도 기사왕의 좌를 사수하고는 투왕의 자리까지 확보하기 위해 투왕전에 진출했는데 마도왕이랑은 만나보기도 전에 뜬금없이 나타난 신입생 백인하가 그를 꺾어버린 것이다.

차라리 백인하가 그대로 투왕이 됐으면 괜찮은데 그는 이겨놓고 마도왕에게 지기까지 했으니!

“백인하 진심 개민폐네······.”

“아 나보다 약한 걸 어쩌라고!”

백인하는 그런 놈은 알 바 아니라는 투로 바닥을 굴렀다. 차라리 그가 기사왕전에 나가서 우승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 강신혁이었으나 이미 기차는 떠나갔으니 어쩔 수가 없다.

“카렌, 투왕전에는 기사학과 학생 안 남았냐?”

“우리 부단장님이 결승에 진출하셨어. 물론 부단장님이라면 마도왕을 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럼 혹시 너희 부단장이 단장보다 센 거냐? ······아, 됐어. 말하지 마. 야, 말하지 말라고.”

“칫, 신혁이 눈치 진짜 좋네.”

“······.”

부단장의 얘기가 나오자마자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신나서 말을 늘어놓으려던 카렌이 강신혁의 빠른 저지에 입맛을 다시며 물러났다. 백인하는 그런 둘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가늘게 떴다.

“역시 둘이 사귀네.”

“그렇다는데,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

“아니.”

“강신혁 이 배신자아아아아아!”

강신혁은 카렌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지레 호들갑을 떠는 백인하를 내버려두고 스무디를 마저 마셨다. 카렌이 자연스레 빈 컵을 받아들며 아무튼, 하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네가 이기면 만사형통이라는 말씀. 스무디까지 사먹였으니까 무조건 이겨야 돼.”

“이걸 선불인 줄을 모르고 마셨네 내가.”

“어, 그럼 나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아티팩트를 사줄 테니까 꼭 이겨라, 시뇩아.”

“그러니까 그런 건 부담스럽다고.”

강신혁은 자꾸 치근대는 백인하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녀석들과 대화하는 건 의외로 즐겁지만 이제 더는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곧 결승이 시작되니까.

그런데 대기실 문을 열자 그곳에 도우진이 있었다.

“도우진?”

“······.”

도우진은 대기실 안에 백인하와 카렌 스트링필드가 있는 것을 보곤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강신혁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16강전에서 그와 맞붙었을 때 착용하고 있던 벨트였다.

“아티팩트 대여 금지 룰은 없었을 거다. 이거 써라.”

“뭐······?”

강신혁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어 도우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칫, 혀를 차며 시선을 피했다. 반면 백인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어, 그러네! 도우진 너 겁나 똑똑하다! 시뇩아 너 잠깐만 기다려봐, 내가 가져온 아티팩트 빌려줄 테니까······.”

“아니, 어?”

자신에게 벨트를 내미는 도우진과 금방이라도 자신의 아티팩트를 벗어 내놓을 것 같은 백인하의 모습에 강신혁이 당황하고 있자니 옆에서 카렌이 손뼉을 쳤다.

“너무 잘 싸워서 당연히 다 갖추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구나, 아티팩트가 없었네.”

“검이 아티팩트야.”

“그렇다 쳐도 하나밖에 없는 거잖아? 링에 올라가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다. 네 결승전 상대는 두 개 들고 나온 아티팩트 둘 다 B급 이상이야, 직접 싸워본 내가 확실히 알아. 그런 녀석이랑 싸우려면 이쪽도 그 정돈 들고나가야지.”

“끄응······.”

카렌의 합리적인 말에 강신혁은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가 그렇게나 신인전에 열의를 불태우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물론 순수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비룡기사단의 유민준에게 자신의 격을 증명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유민준과 대립하게 된 계기를 만든 녀석이, 그것도 16강에서 나한테 지기까지 한 녀석이 직접 자기 아티팩트를 빌려주려 들다니······.’

굉장히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걸 순순히 받아들여도 그가 이상한 놈이 되는 것 같고······ 아니, 이 녀석 진짜 무슨 생각이지?

강신혁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도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도우진은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그에게 벨트를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빨리 받아, 새꺄. 그냥 네가 나를 이겨놓고 결승까지 가서 템빨 딸려서 지는 꼴 보기 싫을 뿐이니까.”

“아니, 내 걸로 가져가면 되는데? 도우진 네 거 필요 없는데?”

“웃기시네, 백인하 네가 쓰는 것들은 전부 착용자 존나 가리는 거잖아.”

그건 사실이다. 물론 등급만 놓고 보면 백인하의 것은 도우진의 벨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최고급품일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그의 아티팩트가 특화장비라는 것.

백인하는 속도와 관련된 최상위의 특성을 지니고 있고, 그의 아티팩트들은 바로 그것을 보조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아티팩트다. 그걸 민첩이 조금 높을 뿐인 강신혁이 착용한다고 해도 극적인 효과는 바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벨트는······.’

강신혁은 도우진의 손에 들린 벨트를 보며 생각했다. 저 벨트는 착용자의 특성 활성화를 보조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영력을 각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특성 하나 믿고 버텨온 강신혁에게는 그 이상 없을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후. 그래, 그럼 잠깐만 빌릴게.”

“당연히 그래야지.”

결국 강신혁은 도우진에게서 벨트를 받아들었다. 쓸데없는 고민은 때려치우고 시합동안만 아티팩트를 빌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애초에 대련 상대가 B급 이상의 아티팩트들로 무장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나는 끝까지 검 한 자루만으로 승부를 보겠어!’라고 되도 않는 고집을 부릴 때도 아니었을 뿐더러, 도우진이 나름 좋은 뜻을 품고 내민 물건을 거절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고맙다, 도우진. 무조건 이길게.”

“비싼 거니까 기스 내지 마라.”

“아니 왜, 상성 좀 안 맞아도 내 아티팩트가 훨씬 좋다니까!?”

“넌 내 특성을 얕보고 있구나. 보여줄 테니까 얌전히 지켜봐라.”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백인하를 일별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벨트를 바라보니, 곧 그의 눈앞으로 가이아 시스템이 제공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이미 옛날옛적에 감정이 끝난 물건이었다.

[강화된 델람페의 파워벨트]

[C+]

[특수능력 : 특성 활성화에 조금 약한 수준의 긍정적인 보정, 미약한 확률로 특성 강화]

기대했던 그대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성능. 강신혁은 안에 받쳐 입었던 방어구를 해제하고 그 대신 벨트를 찼다. 바로 그때만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결승전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 지금부터 신영 신인전,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됩니다! 각 선수가 입장하겠습니다!

“후······.”

짧은 심호흡을 마치고, 그는 마지막으로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어째선지 똑같이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자신을 바라보는 백인하와 도우진의 모습이 그를 미소 짓게 했다. 둘 다 어른은 못 되는 모양이다.

“신혁아 힘내!”

- 바텐더 님의 귓속말 : 위너 위너 치킨 디너!

사내놈들이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그때 카렌이 응원의 목소리를 냈다. 마침 그 타이밍에 날아든 클레어의 응원 메시지까지 그의 망막을 두드렸다.

강신혁은 굳게 고개를 끄덕이곤, 비로소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제2체육관에 모여든 무수한 관중이 그를 주목했다.

그 가운데 한 명, 익히 강신혁이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한 사람······ 유민준이 그의 허리춤의 벨트를 발견하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보였다.

대충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알았지만 직접 보고 있으니 생각보다 즐거웠다. 이러자고 도우진의 선의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즐거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아앗, 강신혁 선수! 도우진 선수가 착용했던 벨트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설마 결승전에 이르러서 아티팩트 체인지라니, 규정상으로는······ 아 문제없다고 합니다! 자신을 꺾은 상대에게 아티팩트를 빌려주다니 정말 좋은 친구로군요!

스테이지 위에서 멋들어진 스태프와 고깔모자를 쓴 남학생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대착오적인 패션이 아니라 둘 다 강력한 아티팩트였다. 카렌의 말마따나 확실히 둘 다 B급 이상인 듯 했다.

- 한쪽은 처음부터 우승후보로 점쳐졌던 천재, 다른 한쪽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데서 튀어나온 다크호스! 기사학과와 마법학과의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지는 학과는 1년 내내 굴욕을 당합니다, 두 선수 신중하게 임해야 해요!

강신혁은 링에 올라서며 자신의 상대를 살폈다.

겉으론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어떨까, 기사학과의 백인하처럼 마법학과 전체가 이 녀석을 제일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는 모양이니 과연 저 오만함도 납득은 간다.

‘도우진의 벨트를 빌리지 않았으면 진짜 검 좀 휘두르다 끝났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어째설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친구의 솔직한 응원과 마음을 받았기 때문에······ 아니, 그럴 리가. 그냥 스스로에게 확신이 섰을 뿐이다.

“후우······.”

강신혁은 스테이지에 마주서며 자신의 검을 뽑았다.

심판을 맡은 교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 그러면, 시합······ 개시!

신살검이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강신혁은 상대를 향해 질주했다.

신인전 결승이 시작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