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Chapter 6. 알을 깨고 나오다. - 4
- 신인전 16강 1차전! 놀랍게도 같은 반에서 출전한 기사학과 동급생 사이의 대결입니다! 올해 신영에는 특히나 평년을 상회하는 수준의 학생들이 입학했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 그중에서도 1학년 C클래스는 재능 넘치는 학생들이 모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입니다.
신인전의 해설을 맡은 이는 신영 학생회에 속한 2학년 학생.
신영의 학생회에 들어갈 정도라면 자신의 능력도 뒷배경도 평범하지 않은 인물일 텐데 지나치게 촐싹을 떠는 그 목소리에, 링 위에 올라선 강신혁과 도우진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동시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 믿기십니까? 신인전 16강에 C클래스에서만 무려 3명이나 진출한 것입니다! 대체 나머지 학급은 그 동안 뭘 하고 있었냐는 생각이 드네요. 더구나 여기엔 더욱 놀라운 이야기가 감추어져 있습니다만, 그건 제1체육관에서 진행되는 투왕전을 관람하시면 알게 됩니다!
투왕전을 보면 알게 된다는 얘기를 하면 그 놀라운 이야기가 뭔지는 다들 눈치를 채고도 남을 텐데, 즉 저놈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강신혁과 도우진을 띄워줄 마음이 별로 없단 뜻이렷다.
강신혁은 그 시점에서 사회자를 무시하고 자세를 잡았다. 도우진 역시 마찬가지 생각인 듯 그를 마주보며 검을 쥐었다.
무척 투박하게 생긴 회색의 돌검. 반면 허리에는 무척 반짝이는 세련된 벨트. 아무래도 그가 준비한 두 가지의 아티팩트인 모양이었다.
- 어이쿠, 양 선수 준비를 마친 모양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시합 방식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양 선수는 지금 전신에 충격을 흡수하는 센서를 부착하고 있는데요, 이것을 통해 받은 충격이 일정량을 넘어서면 부저가 울리며 승부가 갈리게 됩니다. 물론 급소 타격 시에는 더한 충격을 받게 되니 안전하게 실전과 흡사한 승부를 치를 수 있는 셈입니다!
사회자의 말마따나 지금 강신혁과 도우진은 양팔과 양다리, 그리고 목에 초커 형태의 장신구를 달고 있었다.
그것은 초인 무구 브랜드 미스틱에서 만들어낸 충격 흡수 센서로, 일정량 이하의 충격을 흡수해 착용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그 충격의 양과 질을 측정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단한 점은 착용자의 능력이 반영된 상태에서의 충격량을 측정한다는 점으로, 몸이 단단한 사람이면 받는 충격량도 적고, 방어 스킬을 지닌 사람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착용자의 역량을 재는 데에 특화된 보조용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다.
-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1학년 중에서도 손꼽히는 마력을 지닌 도우진 선수와 반대로 마력이 아예 없는 것으로 알려진 기교파, 강신혁 선수의 경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선생님?
사회자의 신호를 받은 교사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이 내려지며 시합 개시를 알리는 순간 강신혁은 잽싸게 뛰쳐나갔다. 그러나 도우진은 반대로 뒤로 물러서며 검을 링 위에 박았다.
그것이 트리거였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폭주했다!
- 아아, 도우진 선수 마력을 끌어올립니다. 선수가 차고 있는 벨트가 그에 동조해 마력을 뿜어내는 것이 보입니다. 과연, 특성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아티팩트로군요! 도우진 선수가 자신의 특성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도우진이 강한 마력을 타고난 것은 그만큼 그의 특성이 강력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무려 A-랭크에 달했던 강신혁의 특성이 찬밥취급을 당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강한 특성을 얻을수록 보다 강한 마력을 지니게 된다! 그것이 이 초인사회에서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특성 활성화에 제약이 많아서 제대로 활성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학생이 직접 말을 하지 않아도 대충 특성이 밝혀지게 마련이지만, 그 누구도 결코 타인의 스테이터스를 훔쳐볼 수 없는 이상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도우진은 여태까지 수업 중에 특성을 활성화한 적이 없는 만큼, 어쩌면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아야만 활성화할 수 있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특성인 모양이다.
‘하지만 아티팩트도 개인의 능력이니까. 그래서? 그래서 특성이 뭐지?’
강신혁은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에 휩쓸리지 않도록 신체균형을 바로잡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연스레 영력이 그의 눈으로 흘러들어가 안력을 강화시켰다.
폭풍 속에서, 실시간으로 몸이 부풀고 있는 도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 아아아아아! 대단합니다! 과연 도우진 선수,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을 법한 능력입니다!
강신혁과 비슷한 타이밍에 도우진의 특성을 알아차린 사회자가 아낌없이 칭찬을 퍼부었다. 강신혁에게 힌트를 주는 셈이 될까 두려워 직접적으로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강신혁도 이미 눈치를 챘으니 상관없는 일이다.
“후우아!”
바로 그때였다. 장내를 뒤덮었던 마력이 일순간에 도우진의 육신으로 수렴되며, 거의 3미터에 달하는 거인으로 변화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허!”
“대단한데······! 저건 진짜 대단해!”
“변형! 그것도 저렇게 순수하게 역량강화에 집중되는 변형능력은 흔치 않은데······!
거인화(巨人化), 아니 손에 들고 있던 검마저 커진 것을 보면 거대화(巨大化)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덩치가 커진 만큼 기세도 더욱 강렬해져, 사람이 아니라 마치 몬스터라도 된 것만 같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잘 성장하기만 한다면 최고의 탱커가 될 만한 특성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강신혁은 조금 애매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아······ 음.”
“안 오면 내가 간다!”
거인이 되며 보다 호전적인 성격이 된 것인지 도우진이 대뜸 그에게 돌진해왔다. 몸집이 커진 만큼 보폭도 넓어지고, 몸에 근육이 더 붙어 속도 자체도 빨라졌다. 일반인이었다면 움직이는 것조차 보지 못했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후.”
강신혁은 그에 맞서 한 발 내디뎠다. 손에 쥔 신살검으로 허공에 한 바퀴 원을 그리며 고쳐잡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이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최고급 호텔의 최상층에서, 지금의 도우진보다도 거대한 덩치, 거대한 무기, 거대한 기세를 품고 있던 괴물과 대치했던 일을.
‘물론 포션의 보조를 받던 그때에 비해 지금의 나는 좀 약하지만······.’
트롤보다 약한 것은 지금 그에게 달려오고 있는 도우진도 마찬가지. 심지어 녀석에겐 충격파라는 무기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살검무에 대한 강신혁의 이해도가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날 이후 검무를 연습할 때면 언제나 그 트롤을 상대하는 상상을 해왔다. 비록 실제로 트롤과 맞붙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이미지 트레이닝 속에서 강신혁의 승률은 8할을 웃돌았다.
그러니 그 트롤보다 약한 도우진을 상대로 한다면 그 결과는 확연히 눈에 보이는 셈. 강신혁의 표정이 애매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만약 도우진이 갖고 있던 비장의 카드가 그것뿐이라면······.
“미안하다, 도우진.”
속삭이듯이 중얼거리는 그의 말을 들은 것일까, 도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뭔가 대꾸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나 강신혁은 그것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숙이며 돌진했다. 여태껏 열심히 갈고 닦은 영력이 솟구쳤다. 신살검이 우우웅, 그의 영력과 공명해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거인의 검이 짓쳐든다. 신살검을 들어 그것을 너무나 가볍게 흘려냈다. 거인의 주먹이 그를 찍어 누르려 했으나 닿지 않았다. 거인은 마지막으로 발로 그를 걷어차려 했으나,
그땐 이미 강신혁의 검이 목적지에 도달했다.
“카학!”
호텔에서 펼쳤던 것에 비해 한없이 유려한, 더없이 우아한, 하지만 살기는 머금고 있지 않은 깔끔한 검이 도우진의 전신을 타격했다.
허공에 그려지는 검의 궤적은 눈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느렸지만 도우진은 그것을 막아낼 수 없었다.
- 이럴 수가······ 예상과는 정반대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강신혁 선수가 도우진 선수를 압도하고 있는데요! 분명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저 움직임은······ 뭐죠? 도우진 선수, 빠르고 강하지만 강신혁 선수에게는 닿지 않습니다!
검에 베이고 나서야 뒤늦게 그것을 쫓아 대검을 놀리는 도우진의 모습은 마치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반면 강신혁은 한 마리 나비처럼 그의 공격을 피해 표홀하게 몸을 움직이며, 끊임없이 그에게 공격을 가해 명중시켰다. 합을 맞춘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저건······.”
“거인화의 부작용인가? 아니, 아니야. 실제로 저 아이는 지금 무척 강해졌어. 기세만 읽어도 알 수 있어. 그렇다면······.”
“저 아이, 특성이 뭐라고 했지? 각성 당시 보고 말이야.”
“알고 있어. 무술에 능통하는 대신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고 했었는데!”
“하지만 초인에게 먹힐 만큼 위력이 있잖아. 움직임으로 아예 압도하고 있어! 더구나······ 더구나 저 검은 나도 못 피해.”
관객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도우진이 거인화한 모습을 보고 오직 그에게만 시선을 집중하던 사람들은 찬물이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바보들 같으니, 소년이 든 검을 봐.”
그때 세계최강의 길드 중 하나인 뱅가드 소속의 스카우터가 놀라는 사람들을 조롱하듯 말했다. 그제야 다른 이들도 강신혁의 손에 들린 검에 뚜렷한 용의 문양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지금도 여전히 마나는 느껴지지 않지만, 강해졌군. 아깐 저 문양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아티팩트가 어떠한 조건으로 활성화됐거나, 아니면······.”
“저 소년의 특성의 힘이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거인과의 접전에서 물러서지 않고 대적할 수 있으며, 그 거인에게 통용되는 위력을 지닌 검을 다룰 수 있다면 마나를 다룰 수 있건 없건 훌륭한 초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가 없는 소년이 세계 최고의 초인양성기관에 입학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젠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삐이이이익!
거의 일방적인 구도가 완성되고 아주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 마침 좋은 타이밍에 부저가 울렸다. 도우진에게 한계가 찾아온 것도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크으윽······.”
강신혁이 검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검을 놓친 도우진이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그의 몸이 원래 형태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신혁은 신살검을 허리에 찬 후, 그에게 손을 내밀까 말까 고민하다가도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끝내 손을 내밀었다.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도우진은 다행히 그의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개새끼야.”
그의 손을 붙잡고 일어선 도우진이 대뜸 그를 욕했다. 어딘가 후련한 말투였다.
“왜 약한 척했냐.”
“실제로 약했는데 강해진 거다.”
“씨발······.”
절절한 심정이 담긴 그 한 마디 욕에 강신혁은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도우진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내 눈 진짜 존나 삐꾸네.”
“그래.”
“백인하 그 새낀 처음부터 널 알아보고 있었다는 게 더 열 받아.”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그래, 씨발. 너 존나 세다.”
도우진은 다시 욕설을 내뱉곤 그의 손을 놓았다. 먼저 링에서 물러나 내려가며, 그가 자그맣게 말했다.
“8강 축하한다.”
경기는 그 후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와 함께 16강에 진출했던 카렌 스트링필드가 먼저 8강을 돌파한 가운데, 강신혁은 8강에서 마주친 마법학과 학생을 빠른 신살검 투척으로 물리쳤다.
그것을 단순한 위협이라 오인한 학생은 무기를 내버린 강신혁을 비웃으며 즉시 발동 가능한 방어마법으로 방어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강신혁이 내던진 신살검에는 그가 다룰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양의 영력이 담겨 있었으며, 아룡환무로 인해 극한에 가까운 보정을 받고 있기까지 한 상황.
결국 검 투척 한 방에 충격 최대치를 초과하고, 깔끔하게 기절하고 말았다. 정말 간결하고 어떤 의미론 한심한 결말이었다.
“방금 그거 봤어?”
“몬스터한테도 통하겠는데······ 투척술인가. 재미난 기술을 배웠어.”
“아니, 모든 무술에 능통하다던데 그 안에 투척술이 포함되는 것이겠지.”
“허.”
이어진 4강 상대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지던 기사학과 1학년 F클래스의 남학생. 카렌의 말에 따르면 그녀나 도우진과 마찬가지로 비룡기사단에 입단이 확정된 굉장한 기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무기에 불꽃을 두르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불꽃도 만들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특성의 주인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것으로 신살검을 뚫어낼 수는 없었다.
- 동기화가 미약하게 가속됩니다. 동화율 3.9%
그리고 강신혁은, 그 학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에는 무척이나 익숙했다.
생애 내내 불꽃과 함께했던 대장장이의 기억이 그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고작 이 정도 불꽃에 물러서서야 대장장이를 칭할 자격이 없다고.
그는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불꽃을 베어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야금술 덕에 갖게 된 열기 내성이 한껏 발휘되며, 놀랍게도 영력이 그 내성을 보조하기까지 했다. 센서에 축적되는 데미지는 결과적으로 경미한 수준이었다.
“너, 그 무기 대체 뭐야!”
“아티팩트야, 정말 소중한 아티팩트지.”
아무래도 상대는 불꽃이 통하지 않는 이유가 강신혁의 검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C랭크에 이른 신살검이 이 정도 불꽃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마냥 엇나간 추측은 아닌 셈.
“도우진보다 약하네.”
“웃기지 마, 아직 안 끝났······ 컥!”
특성이 통하지 않는 이상 단순한 검기의 대결로 1학년생이 강신혁을 압도할 수는 없다.
강신혁은 몇 번 그와 검을 섞은 후, 그에게서 배울 것이 더 없다는 것을 깨닫곤 연속으로 검을 내질러 그의 몸통을 가격, 센서를 작동하게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신혁의 말마따나 도우진과의 시합보다도 김빠지는 결말이었다.
- 아아, 대단합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년이 강력한 우승후보로······ 아, 죄송합니다. 너무 클래식한 표현이었나요? 그래도 드라마틱한 결과인 것은 분명합니다! 결승에 진출하는 강신혁 선수! 그 상대는······!
강신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결승전 상대는 카렌 스트링필드를 4강에서 꺾고 진출한, 차기 마도왕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재.
- 결승전은 한 시간 휴식 후에 치러질 예정입니다! 다들 팝콘 준비하세요!
기사학과와 마법학과의 정면대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