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Chapter 6. 알을 깨고 나오다. - 1
강신혁은 스스로 장담한 대로 다른 경기에서도 연습 때 이상으로 크게 활약했다. 특히 그가 빛난 것은 백인하와 콤비를 맺고 참전한 기마전.
신영의 기마전은 초인을 양성하는 학교답게 오직 말과 기수 2인조로만 이루어지는데, 발이 빠르기로 유명한 백인하가 말이었고 단순한 기교로만 따지면 1학년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도 톱을 노려볼 만한 강신혁이 기수를 맡았다.
이 둘의 조합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뭐야, 지나갔어!?”
“야 머리띠 뺏겼잖아!”
“저 새끼 잡아! 마법으로 묶어!”
“아 미친, 백인하! 저 새끼 특성 대체 뭐길래 멈추질 않아!”
“너도 뺏겼어 병신아, 아웃이야!”
콤비를 이룬 두 명의 신입생은 신영의 쟁쟁한 학생들로 가득한 기마 무리를 그야말로 일기단필로 용맹과감하게 뚫고 돌진하여 무수한 사람을 낙마시키거나 머리띠를 빼앗아 실격시켰다.
초반부터 워낙 어그로를 끈 탓에 백팀 측 마법학과 학생들의 견제 마법이 쏟아졌지만 그 정도로는 백인하를 감히 맞출 수 없었다.
“시뇩이, 좀 더 빠르게 간다!”
“콜!”
이미 획득한 머리띠로 옷을 지어도 될 정도였지만 둘은 멈추지 않았다. 백인하는 달리고, 강신혁은 근처에 보이는 기수와 치열한 손다툼을 벌여 머리띠를 뺏거나 넘어트린다.
속도가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강신혁의 손놀림이 느렸으면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을, 둘은 철저히 호흡을 맞춰 움직이며 수십 명의 기수를 좌절시키고 본인들은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었다.
“야 몰아넣어! 몰아넣어!”
“와 인해전술 개쩌네!”
“우리 팀 뭐 하냐!”
“대장 기수 보호하고 있어!”
그러나 신영은 기라성 같은 인재가 몰려있는 곳. 단기로는 대적할 이가 없었으나 다수가 작정하고 뭉쳐 포위망을 좁혀오니 제아무리 백인하라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여태까지 잘 버텼네. 특히 너, 강신혁. 다시 봤다.”
“마나를 각성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본데. 혹시 특성에 마나를 감추는 능력이 더해졌나?”
“흥, 마나를 각성했으면 바로 보고할 것이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어.”
백팀에 속한 기사학과 선배들이 포위망을 좁혀오며 한두 마디씩 입을 열어 말했다. 싸가지없는 말투로 보아 아무래도 비룡기사단에 속한 선배들도 섞여있는 모양이었다.
강신혁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지옥에 끌고 갈 작정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백인하가 그에게 말했다.
“신혁아.”
백인하가 장난질을 치지 않고 제대로 된 이름으로 그를 부를 때는, 그가 무척 진지할 때거나 터무니없는 장난질을 칠 때, 둘 중 하나뿐이다.
“엉.”
“뛴다.”
“어우어어어어억!”
그 순간 백인하가 제자리에서 높이 뛰었다. 슬로우 마법에 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높이.
수십 미터 이상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 강신혁은 그저 웃고 말았다. 상쾌한 공기였다.
“우리가 대장 기수 잡자.”
“야, 마법들 따라 올라온다. 무슨 폭죽 터트리는 거 같네.”
“어차피 직접 공격은 금지잖아. 디버프는 좀 더 버틸 수 있어.”
마법학과 학생들이 다루는 마법은 크게 둘로 나눠 공격마법과 보조마법이 있다.
개중 보조마법에는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상태이상에 빠트리는 디버프 계열 마법이 있는데, 이것을 막아내기 위해선 특수한 아티팩트를 장착하거나, 특수한 스킬을 익히거나, 그도 아니면 마력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야 한다.
단체전은 아티팩트 착용이 금지되니 아마 백인하는 스킬 아니면 마력······ 혹은 둘 다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대장 기수 찾았다. 간다.”
“와 진짜.”
그 순간, 백인하가 허공에서 발을 박찬 것 같았다. 직후 그들은 쏜살같이 지상을 향해 내쏘아졌다. 그대로 사람과 부딪치면 큰 사고가 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실격처리가 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백인하는 놀랍게도 백팀 대장 기수 바로 뒤쪽에 솜씨 좋게 착지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주위 사람들은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
다만 괜히 대장이 아닌지 백팀의 대장 기수만은 잽싸게 몸을 틀어 돌아서며 눈을 빛냈다.
“올해 정말 터무니없는 신입생이······.”
“죄송합니다, 끝났어요.”
그러나 그땐 이미 강신혁의 손에 대장 기수의 머리띠가 들려 있었다.
대장 기수를 맡은 백팀의 기사학과 3학년생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테크닉, 아룡환무는 맨손 무술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스킬인 것이다.
“청팀 승리!”
“또 이겼다!”
“진짜 미쳤다 백인하!”
“신입생이 3학년들을 가지고 노네 돌았나!”
“강신혁 너 이 새끼 해낼 줄 알았다!”
“백인하! 백인하!”
강신혁은 백인하의 등에서 폴짝, 가볍게 내려와 그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강신혁과 백인하가 그들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기억시킨 순간이었다.
“야 그래도 저건 백인하 빨이지 솔직히.”
“네가 백인하 등에 탄다고 선배들한테서 머리띠 뺏을 수 있어? 드래곤 등에 탄다고 짐꾼이 용기사 되냐?”
“솔직히 손도 안 보였는데. 진짜 마나 안 다루는 거 맞아?”
“그럴 리가 있냐, 저번에 각성한 게 분명하다니까. 특성 진화되면서 마나까지 각성했다니까?”
“근데 마나 안 느껴진다는데······.”
“잘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어.”
기존의 인식을 벗어나는 강신혁의 활약에 사람들의 혼란이 갈수록 더해가는 가운데, 오전시간의 마지막 대회인 기예 경연 무대 위에 올라선 강신혁이 동시에 여러 가지 무기를 다루며 S-등급 스킬인 아룡환무의 포스를 제대로 내보이자 환호성은 더더욱 높아졌다.
특히 미리 준비된 판을 도끼로 거세게 내리쳐 부수고, 그 충격으로 허공에 튀어 오른 수십 개의 파편을 허리춤에서 꺼낸 쌍권총으로 연달아 탄환을 쏘아내 모두 맞춰 부수는 장면이 큰 호응을 얻었다.
나름 머리를 짜낸 결과물이었는데, 다행히도 높은 점수를 받아 반에 공헌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대체 무기술을 몇 개를 익힌 거야?”
“들은 것 같은데. 쟤가 가진 특성이 모든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이라고 했어. 그런데 마나를 못 다뤄서 이무기가 여의주를 빼앗긴 꼴이라고······.”
이쯤 되니 관객들, 대형길드에 속한 스카우터들 중에서도 강신혁을 주목하는 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마전은 백인하의 능력이 많이 개입되었다 쳐도, 순수하게 개인의 기량을 보여준 기예 경연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아까 보니까 실제 능력도 대단하던데?”
“성장한 거지. 신영에서 보고 배운 게 있나봐.”
“이름을 기억해둬야 할 학생이······ 확실하게 한 명 늘었군.”
“운동회가 끝날 즈음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겠어.”
강신혁은 신영의 학생들의 환호는 물론 외부 관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스테이지에서 퇴장했다.
어쨌든 이것으로 오전 경기는 끝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경연만 끝나고 나면 바로 점심시간 돌입이다.
재생력 덕에 모든 경기를 완벽한 컨디션으로 수행할 수는 있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지금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
그런데 강신혁이 주린 배를 움켜쥐며 백인하와 합류하려 움직이고 있던 그때 문득 스틱이 울렸다.
[바텐더 누나 : 기마전에서 멋지더라. 근데 너무 멋졌다는 게 문제야. 은아가 널 뚫어져라 보고 있었거든.]
[나 : 솔직히 중간부터는 포기하고 있었어요. 신은아 씨보다 제 실기 평가점수가 더 중요하거든요.]
[바텐더 누나 : 모루라는 걸 들켰을 때 네가 감수해야 할 귀찮음과 비교해도?]
객관적으로 따져 봐도 오늘 강신혁의 활약은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물론 강신혁이 나가지 않은 다른 대회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학생들이 활약을 했지만, 그래도 1학년 중 오늘 사람들의 눈에 가장 많이 띈 학생을 10명 고른다면 그 안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자신할 정도는 되었다.
강신혁은 잠시 답신을 망설이던 끝에 그녀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나 : 으음, 모루라는 것도 들켰어요?]
[바텐더 누나 : 다행히 그건 모르는 것 같아.]
[나 : 그럼 역시 그 사람도 영력은 다룰 줄 모르는구나.]
[바텐더 누나 : 뭐야 너 영력 썼었어!?]
[나 : 그걸 모르고 있었다면 누나도 좀 더 연습해야겠는데요.]
[바텐더 누나 : 이 자식이······.]
분명 클레어는 세계 초인 랭킹 500위 안에 들어가는 터무니없는 강자지만 영력이라는 분야에 한해서는 강신혁보다 훨씬 못하다. 강신혁이 얼마든지 훈수를 둘 수 있는 것이다.
강신혁은 화면 너머에서 부들부들거리고 있을 클레어의 모습을 떠올리며 킥킥 웃다가······ 문득 한 명의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링필드?”
“서먹서먹하긴, 카렌이라고 불러. 그런데 방금 그건 혹시 여자친구?”
“아니, 그냥 아는 사람이야.”
강신혁은 스틱 위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다급히 껐다. 카렌 스트링필드······ 카렌의 눈이 가늘어졌다.
“히죽히죽 웃고 있던 것도 그렇고 의심스러운데······ 설마 전 세계의 엘리트란 엘리트는 다 모인 신영을 놔두고 밖에서 여자친구를 찾을 줄은 몰랐어.”
“여자친구 아니라니까. 여자친구를 신영에서 찾을 생각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아······ 음.”
바로 표정이 미묘해지는 것을 보면 강신혁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안 그래도 한 번은 얘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무슨 얘기?”
“알잖아.”
물론 그의 가시 돋친 말을 무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잠시 망설이던 카렌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강신혁에게 다가와 말했다.
“있지······ 이해해줄 수는 없을까? 나를 포함해서 다들 신영이라는 엘리트 기관에 속한 스스로를 굉장히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어. 입학하기까지가 엄청 힘들었던 것도 우리 특권의식을 고취시켰고······ 그런데 신영에 들어와서 보니, 마나를 못 다루는 학생이 있다고 하니까.”
강신혁은 눈썹을 치켜떴다.
“맞아, 그래서 나는 너희들보다 더 힘들게 들어왔지. 그런 만큼, 비록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약하고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고 해도, 엄연히 신영의 커트라인을 통과한 학생이었고.”
“아니아니, 물론 네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어. 우리가 어리석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저 다들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해. 그, 네 능력의 특수성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게 정확할까.”
카렌이 스스로에게 유리한 단어를 골라서 말하고 있다는 것은 강신혁도 잘 알았다.
그래도 굳이 그녀의 말에 더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자 카렌이 살짝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마무리했다.
“그래, 결국은 널 믿지 못했던 모두가 바보였다는 게 증명됐지. 그것도 오늘 하루만에.”
“거긴 너도 포함되는 거냐?”
“물론이지. 음, 혹시 사과하면 받아줄래?”
“아니,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갈 길이 멀겠네.”
강신혁의 단호한 대꾸에 카렌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는 했지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닫아버린 강신혁이 아니라, 과거 못나게 행동했던 자기자신에게.
“밥이라도 같이 먹자. 노점에서 좀 많이 사왔는데 버리기는 아깝잖아.”
“······그러지 뭐.”
사람에겐 죄가 있어도 밥에겐 죄가 없다. 미국식 핫도그며 타코야끼, 큐브 스테이크에 닭꼬치까지 노점 메뉴를 싹 쓸어온 것을 보고 있자니 배가 다시 꼬르륵 울기 시작했기에 그는 얌전히 카렌이 건네는 봉투를 받아들었다.
“저기 앉을까.”
“오키.”
신영의 부지는 턱없이 넓다.
학교와 기숙사 건물을 제외한 공간의 대부분은 운동장 혹은 실습장과 ‘블랙우드’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숲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잘 꾸며놓은 공원과 산책로가 있었다.
그들은 공원에서 숲으로 넘어가는 언저리의 벤치에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저 숲을 보니까 하나 궁금한 게 생각났는데.”
“뭔데?”
강신혁이 핫도그를 베어 물며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와의 친목을 도모하고 싶은 카렌은 기꺼운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비룡기사단 훈련소가 숲에 따로 마련되어 있잖아.”
“블랙우드 훈련소? 비룡기사단에 주어지는 특혜잖아. 그게 왜?”
“거기서 용을 기른다는 소문 진짜냐?”
“진짜.”
“헐······.”
강신혁은 타코야키를 한꺼번에 세 개 집어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감탄사를 토해냈다.
사실 그 얘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비룡기사단이 어째서 비룡기사단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신영이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신영의 한 학생이 재학 중 우연한 기회로 비룡······ 와이번(Wyvern)을 사로잡아, 그놈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학생은 자신을 검으로 이기는 이에게 와이번을 넘겨주겠다고 선언했고, 승자의 영광과 함께 와이번을 원하는 이들이 몰려들어 그에게 대련을 신청했다고.
물론 그들은 모두 패했고, 그 후 그들이 와이번을 길들인 학생을 중심으로 뭉쳐 결성한 것이 초기의 비룡기사단이라는 얘기다. 만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얘기라서 당연히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비룡이 있다면 그 얘기의 신빙성도 높아진다.
“와이번은 최소가 B급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면 적어도 몬스터를 길들이는 희귀 특성이나 테이밍 스킬이 없으면 무리잖아.”
“실은 단장한테만 대대로 전해지는 테이밍 전용 아티팩트가 있대. 그래서 비룡기사단의 단장이 되면 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와이번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거지. 학교에서 주관하는 던전 실습 때는 못 데려가지만 고학년으로 가면 실기 평가 중에 게이트 원정이라고 자율실습과제 있거든? 그건 순수하게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거라 와이번을 데려갈 수 있대. 거의 공식 치트키.”
“······야, 그럼 단장들은 졸업하기 싫겠는데.”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카렌이 키득 웃으며 자신 몫의 컵 샐러드를 먹었다. 강신혁은 다 먹은 닭꼬치의 막대를 봉투에 집어넣으며 기사학과 학생이 저것만 먹어서 되겠나 속으로만 의아해했다.
“그러면······ 날 불러서 원래 하려던 말은 뭐야?”
다음은 큐브 스테이크다. 스테이크는 식기 전에 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입에 쓸어 담은 후, 야무지게 씹으며 질문하는 강신혁.
겉으로 보기엔 한강변 푸드트럭에서 파는 큐브 스테이크와 별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느껴지는 육즙부터가 달랐다. 한우 A++등급 채끝등심임에 분명했다.
“응?”
강신혁이 고기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방울토마토를 입에 물고 있던 카렌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의뭉을 떠는 모습에 강신혁이 픽 웃곤 재차 그녀를 추궁했다.
“원래 하려던 말. 그냥 밥 먹자고 부른 건 아니잖아.”
“아, 좀 티 났나?”
“응.”
카렌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켰다는 생각에 포크를 든 손으로 뺨을 긁적였다. 그 사이 강신혁은 스테이크가 담겨있던 접시를 정리하고 햄버거 포장지를 벗기고 있었다.
“별 건 아니고, 비룡기사단에 대한 이야기. 네가 말했잖아, 몸값 비싸기 전에 얘기해두라고. 오늘 너 하는 거 보고 앞으로 몸값 엄청 비싸지겠다 싶어서 그 전에 최대한 친해지려고 했지.”
“그래도 조금 우수한 수준이었을 텐데.”
“그럴 리가, 다들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다고 평가하던데. 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부단장님이 널 주목하고 계셔. 신체능력도 훌륭하지만, 특히 전투기교면에서 압도적인 포텐셜을 봤다고 말이야.”
비룡기사단의 부단장······ 부단장이 누구였더라. 강신혁은 햄버거를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카렌이 그의 손에 콜라를 쥐여 주었다. 그는 햄버거를 단숨에 해치우곤 그것을 깔끔하게 원샷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데, 2학년 여자선배였나?”
“응. 신영 제일의 창수(Lancer)로 유명한데.”
“어, 그래. 입학식에서 본 것 같아.”
강신혁의 심드렁한 반응에 카렌이 낙담하듯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과연 서양인다운 과장된 몸동작이, 너무 시원스러워서 반대로 유쾌하게 느껴졌다.
“휴······ 아무튼 부단장님이 너랑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셔. 그리고 가능하면 비룡기사단에 입단해줬으면 좋겠다고.”
“사실 딱히 관심 없어.”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줘. 네가 비룡기사단에 입단하면 우리 부단장파에도 힘이 실릴 거야.”
부단장파라는 말에 강신혁의 귀가 쫑긋했다. 그는 디저트로 물고 있던 리에주 와플을 입에서 떼어내며 물었다.
“설마 그 코딱지만한 단체가 둘로 양분되어 있기까지 한 거냐?”
“유감스럽게도 그래. 지금 단장님은 부단장님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강하게 나올 수도 없는 게 사실 지금 우리 단장님은······.”
“아니아니, 그런 내부사정을 지금 여기서 외부인한테 늘어놓지 말아줄래.”
얘기를 듣게 되면 빠져나올 수 없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에 강신혁은 질색하며 그녀의 말을 차단했다. 카렌은 아쉽다는 듯 쩝쩝 입맛을 다시며 그에게 자신의 스틱을 내밀었다.
“친해진 기념으로, 일단 번호 교환이라도 하자.”
“문자로 그 내부사정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문자로는 말 못하는 얘기니까 안심해.”
강신혁은 결코 말로 트집을 잡아 그를 강제로 입단시키지 않겠다는 확언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스틱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밥을 먹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도착한 문자가 세 통이나 있었다.
“잠만.”
“여자친구?”
“아니라니까.”
강신혁은 문자를 확인했다. 하나는 백인하, 나머지 둘은 클레어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백인하 : 나 백인하는 배신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바텐더 누나 : 끝끝내 아니라더니 데이트하는 거 다 보이지롱]
[바텐더 누나 : 헉 은아가]
강신혁은 바로 그 순간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들로부터 5미터 즈음 떨어진 곳에, 뇌제 신은아가 서 있었다.
그녀가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