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Chapter 5. 체육대회의 다크호스 - 2
며칠 만에 찾은 공방은 변함없이 아늑하고 고요했다.
밖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언제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공방을 둘러보며 짜증나는 선배와 만나 달아올랐던 그의 머리도 아주 약간은 식는 것 같았다. 물론 완전히 가라앉힌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요.”
- 방어구가 좋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민준을 죽이느니 살리느니 떠들어대던 관리자도 강신혁의 가라앉은 마음을 눈치챘는지 담담히 그에게 말을 맞춰주었다.
그는 한쪽 구석에 쌓인 강철 주괴들로 시선을 돌렸다. 감정이 앞서고 있기 때문일까, 자연스레 영력이 뻗어나가 그 모두를 뒤덮었다.
강철 주괴들이 미약하게 뿜어내는 감정들이 그의 내부에서 솟아나던 분노들과 정면으로 부딪혀, 이내 사그라졌다.
- 우우웅
다만 그 안에서 하나 살아남아 그와 공명하는 녀석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하지만 분명한 ‘분노’를 품고 있는 녀석이었다. 주괴 더미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던 녀석.
이 공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멋진 무기로 거듭나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염없이 계속 밑에 깔려있기만 했기에 분노가 쌓이고 쌓여 끝내 겉으로 드러날 정도가 된 것이다.
‘음, 이건······.’
그런 녀석의 감정과 함께 강신혁의 뇌리로 짤막하니 흘러드는 기억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만우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가 이 공방에서 강신혁이 사용하던 망치를 쥐고 모루 위에 놓인 금속을 두들기는 모습. 그 옆에는 또 한 명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기 전 그 기억은 희미해져 증발했다.
- 회원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녀석으로 하죠.”
- 그렇지만······ 알겠습니다. 뚜렷한 감정을 품고 있는 금속은 아티팩트로 거듭날 가능성도 높으니까요.
기억은 어찌됐든 이 녀석이 뿜어내는 감정은 지금의 자신과 무척 잘 어울렸다. 설마 자신이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강신혁은 여전히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관리자의 메시지를 흘려 넘기며 주괴를 집어 화로에 집어넣었다. 발갛게 달아오르는 주괴를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방어구를 만들 거라면 주괴를 더 녹여야겠지.’
정확히 무엇을 만들지는 이걸 녹인 후에 생각해보자.
그렇게 중얼거린 주제에, 강신혁은 주괴가 적당히 녹자마자 곧장 망치질을 시작했다.
더는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 깡! 깡! 깡!
망치질 자체는 첫 시도에 비해 훨씬 완숙해져 있었지만, 거기에는 숨길 수 없을 만큼 노골적으로 거친 감정이 날뛰고 있었다.
주괴가 뿜어내는 감정이 전염된 것인지, 그의 내면의 분노가 행동으로 나온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철을 녹이는 순간부터 발현된 영력이 어느덧 그와 주괴를 함께 감싸고 있었으니까.
- 깡! 깡! 깡!
망치질이 이어질수록 천천히 길쭉하게, 보다 길쭉하게 변해가는 금속.
아무리 좋게 봐도 방어구의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았지만 관리자는 그의 작업을 멈추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이미 이렇게 되리라 예측하고 있었던 탓이다.
- 깡! 깡! 깡!
강신혁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나야 했고, 기껏 각성한 특성은 빛 좋은 개살구였던 데다, 아득바득 노력해 들어간 신영에선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그런 환경에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계속 눌러 담아야만 했다. 눌러 담는 것에 익숙해져, 밖으로 꺼내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 깡! 깡! 깡!
하지만 그런 그도 모루를 앞에 두고 계속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전생의 그가 익히고 매진한 야금술이란 쇠 한 덩어리를 상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었으니까.
자신의 감정과 공명하며 선명한 분노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주괴와 영력으로 이어져, 강신혁 역시 서서히 그의 안에 눌려 담겨져 있던 찌그러진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깡! 깡! 깡!
강신혁은 무아지경이 되어 망치를 놀렸다. 두 개의 주괴를 더 녹이면서도 그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영력이 공방 전체를 은은하게 뒤덮었다. 예전의 그였더라면 버텨내지 못했을 양이지만 수련을 거쳐 D+랭크의 영력을 확보한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랬던 적이.’
무아지경 속에서 강신혁은 문득 생각했다.
분명 야금술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어째설까,
‘또, 있었던 것 같은데.’
묘한 기시감이 드는 것은.
- 깡! 깡! 깡!
그런 생각을 한 직후, 머릿속에 망치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것과는 다른 망치질 소리.
모루의 망치질 소리였다.
@@@
그것은 거의 최초의 순간에 가까운 기억이었다.
- 깡! 깡! 깡!
처음 공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러했듯 대장장이는 하염없이 쇠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처음엔 그저 경쾌했던 그의 망치질에는 어느덧 이 세상에 대한 원념과,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과, 그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 이들에 대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마치 강신혁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쇠를 상대로는 자신의 감정을 미처 다 감추지 못했던 탓이다.
- 스윽, 스으윽······.
망아의 상태가 되어 그저 쇠를 두드리는 것에만 집중하고자 마음먹었지만······ 완성된 창의 촉을 갈아내고 또 갈아낸 끝에 그가 마주한 것은 하염없이 살기가 짙어 감히 손에 쥐기도 두려운 마병(魔兵)이었다.
“이건······ 후우,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대장장이는 그 끔찍한 무기를 눈앞에 두고 나직이 탄식했다.
그의 내부에 들끓고 있는 분노는 오직 자신만의 것이어야 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무기에게 태생부터 쉬이 벗겨낼 수 없는 굴레를 씌우고 싶지는 않았는데.
잊고자 마음먹어도, 하다못해 그 마음을 겉에 드러내지 않으려 정신을 바짝 세워도, 본능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불쑥 솟아나는 망념들이 이토록 한 번씩 날뛰어 몹쓸 꼴을 보이곤 했다.
“실패작이다. 실패작이야.”
그는 최근에 알게 된 커뮤니티, 히어로 유니버스의 거래 게시판에 정녕 이 무기를 올려도 될지 심하게 고민했다.
온갖 차원의 기재들이 모여드는 곳, 히어로 유니버스. 그들에게 자신의 무기가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은 비록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홀로 철이나 두드리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끝없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그래, 애초에 자신 같은 이가 그들 사이에 섞여 뭔가 해보려고 했던 것부터가 터무니없는 잘못이다······.
- 그렇지 않습니다, 회원님.
조우했던 순간부터 그의 모든 것을 긍정했던 관리자는 이번에도 그의 편을 들었다.
- 설령 살기를 타고난 무기라 해도 얼마든지 사람을 지키는 데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분노를 품고 있는 회원님께서 얼마든지 다른 이를 위한 무기를 만들어내고 있듯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얘기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저, 나 같은 존재가 그들과 접촉하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무슨 나쁜 영향을 줄까 저어되어······.”
- 히어로 유니버스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도 좋고 나쁜 것을 알아볼 판단력은 있습니다. 실제로 이미 회원님이 만들어 거래 게시판에 등록한 무기들 전부 구매자들이 극찬과 함께 구입해가지 않았습니까.
관리자는 그러니, 하고 말을 이었다.
- 일단 완성된 무기를 게시판에 등록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회원님께선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셨으니, 이제 그것을 실제로 쥐고 사용할 전사들에게 평가를 맡기는 것입니다.
“관리자의 말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만드는군. 하지만 그래, 맞는 말이오. 나의 역할은 무기를 만드는 것까지, 그것을 평가하고 사용하는 것은 무기를 손에 쥐는 자들의 몫이지······.”
- 용기를 내신 회원님께 10HP 선물!
비록 비루한 자신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찬란하게 빛나는 영웅들로 가득한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이들이 모인 곳이니만큼, 이 무기가 잘못된 일에 사용되는 일은 없으리라.
대장장이는 용기를 내어 그 무기를 거래 게시판에 등록했다. 그때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반응이 왔다.
- 구매 희망자로부터 메시지가 두 건 도착했습니다.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음······?”
- 회원님이 제작하신 무기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권장되는 일이기도 하니, 관리자로서도 확인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알겠소. 둘 다 확인해보겠소.”
각각 다른 사람에게서 도착한 메시지가 곧 대장장이의 눈앞에 떠올랐다.
- 야누스 님의 메시지 : 이야 이 창 재밌네! 아이디가 모루라고?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어느 세상 사람인데? 나랑 얘기 좀 하지 않을래?
- 츠쿠요 님의 메시지 : 이 무기를 만든 것은 당신인가요? 모루······ 모루라고 하는군요. 그대와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메시지를 보는 사이 창은 어느덧 팔려버렸다. 그것도 대장장이가 내놓은 가격에 더해 무려 3만 HP나 웃돈을 얹어 가져간 것이다.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였다.
- 야누스 님의 메시지 : 당신, 진짜 멋진 재능을 타고 났어. 자신의 감정을 무기에 온전히 옮겨 담을 수 있다는 건······ 아마 영력이겠지? 그건 이 히어로 유니버스에서도 결코 흔한 재능이 아니지.
- 츠쿠요 님의 메시지 : 실로, 실로 아름다운 창이었습니다. 그대의 솜씨에 반했어요. 그래요,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이런 창을 만들어낼 수 있게 했는지 저는 무척이나 알고 싶답니다.
“허······.”
대장장이는 그 회원들의 반응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기꺼이 그들에게 답장했다.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무기를 두들기던 그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은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로소 대장장이와 다른 회원들의 교류가 시작된 것이었다.
@@@
- 동기화가 가속됩니다. 동화율 2.9%
“······아.”
정신이 들고 보니 강신혁은 동아리방의 공방 안에 있었다. 이제 막 완성된 하나의 창을 눈앞에 두고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분명 처음엔 자신이 쓸 만한 방어구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 조금의 영기가 깃든 ‘독기어린’ 강철창(D)을 만들었습니다. 야금술의 숙련도가 크게 오릅니다.
- 야금술 스킬이 E+랭크로 성장합니다. 조금 더 망치를 수월히 다룰 수 있게 되며, 모든 종류의 열기에 미약한 저항을 갖게 됩니다.
“방금 그건······.”
처음으로 D랭크에 달하는 무기를 만들어내고 야금술의 랭크도 성장시켰지만 강신혁은 그것에 순순히 기뻐할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은 그 짧은 순간 떠올려낸 무수한 기억들, 그 기억들 안에 절절이 담겨있던 진한 감정들에 휘둘려 제대로 사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전 도끼의 기억을 흡수했을 때와는 또 달랐다. 그땐 어디까지나 도끼에 얽혀있던 모루의 망념을 읽어냈을 뿐이지만 지금은 강신혁 자신이 모루의 기억을 끌어냈으니까.
모루와의 일체감도, 떠올려낸 기억들의 질도, 육체에 남은 그 망치를 두드리던 감각마저도, 모두가 생생했다.
- 회원님께선 과거에도 그러한 창을 만드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행동이 동화율을 보다 많이 오르게 한 것이겠지요. 관리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업적을 달성하여 보너스로 100HP를 드립니다!
“과거에도······ 그래, 그럼 그건 역시 그때의.”
그는 가만히 자신이 만든 창을 내려다보며 머릿속에 떠오른 모루의 기억을 반추했다.
그 기억 속에서 모루는 자신 안에 들끓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누르지 못해 끝내 그것을 자신이 만든 무기에 고스란히 옮겨 담고 말았다.
그는 그것을 실패작이라 부정했고, 그것을 계기로 알게 된 친구 야누스는 그것을 재미있다 평했으며, 그것으로 인해 모루를 향한 사랑에 빠진 츠쿠요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실패작’을 만든 순간이기도 했고, 친구들과의 교류가 시작된 순간이기도 했다.
“하······.”
그렇다면 이 타이밍에 자신이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궁리할 것도 없이 답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강신혁이 유민준으로 인해 생긴 감정을 미처 컨트롤하지 못해, 방어구가 될 예정이었던 금속을 날이 선 무기로 만들어낸 것은 물론 그것에 자신의 짜증이나 분노까지 모두 때려 박았기 때문이다.
요는 자신이 전생의 잘못을 되풀이해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냥 늘상 있던 일이었는데 말이죠······. 히어로 유니버스를 알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상적이었던, 일인데.”
-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잘하셨습니다. 분노는 때로 원동력이 되곤 합니다. 실제로 지금 만들어내신 그 무기는 몬스터를 상대로 통용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기는 D랭크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실전에서 싸우는 헌터라면 최소한 D랭크 무기는 쥐어주어야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일 수 있다는 것.
실제로 그 밑의 랭크가 되면 내구도나 능력 면에서 강한 몬스터를 제대로 이겨낼 수가 없었다.
“분명 ‘도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역시 실패작이려나.”
“우습구나.”
“헛!?”
그러던 그때였다. 옆에서 누군가가 그의 말에 대꾸한 것이다. 강신혁이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그곳에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의 담당교사인 이만우가 서 있었다.
이 사람은 어째서 항상 이렇게 몰래 나타난단 말인가. 아니, 아마도 작업에 심취해있던 강신혁이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겠지만.
“선생님?”
“인챈터의 힘도 빌리지 않고, 마법적인 힘도 깃들지 않은 강철만을 가지고서 아티팩트를 만들어놓고 실패작? 평생을 망치질해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무수한 이들을 우롱하는 일이야.”
“저는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니라······. 그런데 아티팩트? 설마 이건 아티팩트인가요?”
“더더욱 우스워. 본인이 만들어놓고 알지 못하는 거냐? 그것이 담고 있는 공능을 나조차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데.”
강신혁은 그 말에 움찔하여 본능적으로 창대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마치 신살검을 만졌을 때처럼 그의 눈앞에 자그마한 정보의 일람이 나타났다.
[독기어린 강철창]
[D랭크]
[특수능력 - 독 분사]
정말이었다. 그가 만든 무기에 특수능력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흉흉한 특수능력이! 깜짝 놀라 창대를 놓아버리는 강신혁을 보며 이만우가 쓰게 웃었다.
“늦게라도 눈치를 챘으니 다행이군. ······다만 특이하구나. 그 아티팩트는 겉으로 보기엔 마력이 느껴지지 않으니.”
겉으로 보기엔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무기가 아티팩트라는 것을 이 할아버지는 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강신혁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만우가 가까이 다가오며 창대를 가볍게 쥐었다.
“어찌됐든, 잘했다. 이 정도면 어찌어찌 폐부를 막는 명분이 될 수 있겠지.”
“명분이라 하심은······.”
“7월 말,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월드 루키즈 크리에이터 아티팩트 경연대회가 있다. 거기서 입상하면 더는 이 동아리를 폐부하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거다.”
“7월 말······ 그렇습니까.”
강신혁의 입부 당시 이만우가 말했던 ‘성과’란 그 대회의 입상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강신혁이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재차 이만우가 한쪽 입꼬리만 끌어올려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했다만 설마 이렇게 빨리 이 정도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다니. 점점 더 재밌어지는구나. 게다가 네가 실패작이라고 한 이유도 알겠다. 감정을 일부러 담아낸 것이 아니라, 통제하지 못해 어설프게 쏟아낸 것이렷다?”
“······맞습니다.”
“앞으로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게끔 노력해라. 억지로 없애라는 게 아냐, 단지 조절하라는 거다. 쇠에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강력한 무기니까. 폭주하지 않고 네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만큼, 원하는 감정을 담아낼 수 있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세상에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 없겠지.”
말은 쉽지,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인가. 아득한 표정을 짓는 강신혁의 모습에 이만우가 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그 시도만으로 경지가 끊임없이 상승할 터, 군말 없이 노력해라. ······네가 하는 꼴이 마음에 든다면 내가 조금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고.”
“······알겠습니다.”
“좋다, 그럼 이건 내가 가져가지. 대회에 등록하기 위해 잠시 가져갈 뿐이니······.”
“아뇨.”
창에 손을 뻗던 이만우를 강신혁이 제지했다. 이만우가 눈을 가늘게 뜨자, 강신혁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이건 제 감정이 폭주한 부산물일 뿐입니다. 확실하게 제 의지로 빚어낸 아티팩트를 가져올 테니, 대회 등록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하. 건방지구나.”
이만우의 입가가 씰룩였다. 말과는 달리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좋다, 기다려보지. 최소한 이것보다는 덜 흉한 놈을 들고 와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강신혁은 이번에야말로 완성된 창을 거두어, 이만우에게 목례한 후 돌아섰다.
그로부터 며칠간 시간이 날 때마다 쇠를 두드렸지만, 강신혁은 방어구형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신살검은 강철창을 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