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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Chapter 4. 드러나는 송곳 - 4

그 도끼는 그리 넓지 않은 공방에서 만들어졌다. 작지만 일대 마력을 빨아들여 끊임없이 타오르는 화로, 닳지 않는 모루. 낡고 둔탁한 망치. 그리고 한 명의 늙은 대장장이가 그곳에 있었다.

‘실패작이야.’

완성된 도끼를 내려다보며 대장장이는 생각했다. 좋지 않은 망념이 너무나 많이 담겨있지 않은가.

대장장이는 언제나 무념으로 쇠를 치려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작업에 잡념이 끼어들 때가 있었다. 대개 유쾌한 생각은 아니었다.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의 기억, 가족을 잃은 때의 슬픔, 그 모든 재앙을 불러온 차원침략자들을 향한 분노.

그러한 어두운 감정들은 통제의 여지도 없이 불쑥불쑥 치솟아, 그럴 때마다 물건을 망치곤 했다. 무기의 본질이 다른 생명을 해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그러한 망념이 너무 짙게 깃든 무기는 유독 살기가 짙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단 낳은 자식을 스스로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장장이는 혀를 차면서도 그것을 히어로 유니버스의 거래 게시판에 등록했다. 부디 좋은 주인을 만나 타고난 살기를, 치우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 비공개 님께서 상품을 구매하셨습니다. 대금 176,500HP를 수령합니다!

도끼는 금방 팔렸다.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대장장이는 스스로 방금 만든 도끼를 실패작이라 평했지만, 이 히어로 유니버스라는 커뮤니티에 속한 다른 친구들은 언제나 그가 만든 물건들을 명품이라 불렀다. 하지만.

‘또 비공개인가. 같은 사람 같긴 하다만.’

유독 살기가 짙은 물건을 내놓을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나 그것을 사가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사람.

판매자에게 자신의 ID를 공개하지 않으려면 어지간히 회원권한이 높아야 하는데다 특수한 물품까지 구매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그런 사람들이 이런 물건들에 눈독을 들이는 것인지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역시 앞으로 이런 물건은 내놓지 말아야 할까.’

대장장이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제아무리 살기를 많이 타고난 물건이라 해도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물건이 될 수 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물건을 제작했을 뿐, 그 물건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잘 부탁드리오.”

대장장이는 나직이 읊조리곤 마지막 한 줄기 남은 찜찜함을 털어내려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의식이 암전하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단련실 중앙에 멍청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 동기화가 가속됩니다. 현재 동화율 1.7%······ 1.8%

동기화가 가속되었다는 메시지에 간신히 제정신이 돌아왔다.

허무감, 분노, 의문, 절망, 체념, 복수심, 그 외 무수한 감정이 메아리치다 천천히, 천천히 소멸해갔다. 이전까지의 동기화에선 그리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개중엔 지금의 강신혁이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그것을 곱씹고 있을 수만도 없다. 강신혁은 세게 고개를 저어 자신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던 늙은 대장장이의 이미지를 마저 털어냈다.

‘관리자의 말대로 정말 전생의 내가 만든 게 맞았구나.’

신살검으로 도끼를 흡수하는 순간, 도끼로부터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겠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워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신살검은 도끼를 온전히 흡수해 그 근원마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신살검은 앞으로도 다른 무기의 근원을 자기 내에 포함하며 성장을 거듭할 수 있다는 뜻! 물론 평범한 무기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와 동시에 깨닫는 것도 있었다.

‘도끼를 쥔 트롤이 미친 듯이 영력을 찾아 날뛰던 건 어쩌면 도끼에 담겼던 부정적인 기운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이걸 대체 누가 구매했고, 어떤 식으로 워 트롤의 손에 넘어간 걸까.’

강신혁 자신이 모루 본인이기 때문인지 제작 당시의 기억을 얻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그저 히어로 유니버스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할 따름이다.

관리자는 히어로 유니버스가 영웅들의 모임일 뿐 완벽한 선인들의 모임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다음이 있다면 그땐······ 아니, 지금 걱정해도 무의미한가.’

전생의 그가 만들어낸 무기를 쥐고 있는 적이 언젠가 다시 그를 노리고 나타난다 치자. 그것을 미리 알 방도는 무엇이며, 대비할 방도는 또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강신혁은 그저 매 순간순간,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 이렇게 수련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강신혁이 그런 생각과 함께 신살검을 쥐며 재차 영력을 뻗어낸 순간, 돌연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며 전신의 피가 끓어올랐다.

- 신살검에 흡수된 도끼의 근원이 당신의 핏속에 깃든 기운과 공명합니다. 영력과 특성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특수능력, 재생력을 깨워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뭔······?”

몸이 뜨거웠다. 마치 여태껏 존재도 모르고 있던 신체기관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듯한 기분이었다.

강신혁은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몸이 붕 뜨는 가운데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살피며 방금 자신에게 닥쳐온 변화를 이해하려 했다.

‘재생력?’

도끼의 근원이 핏속에 깃든 기운과 공명했다고?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증혈 버프! 지금 그의 핏속에 깃든 기운이라면 그것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 강신혁에게 적용되고 있는 증혈 버프는 워 트롤의 심장에서 비롯된 것. 그리고 신살검에 흡수된 도끼도 워 트롤이 다루던 것이다.

영력을 통해 그 둘이 공명을 일으킨 결과, 일시적인 버프에 불과했던 증혈로부터 영구적인 특수능력을 새로이 얻어낸 것이다······!

음, 결론은 알겠지만 과정은 역시 잘 알 수 없었다.

‘스킬도 아니고 특수능력이라니.’

히어로 유니버스에 접속하며 영력을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특수능력이란 마력밖에 없는 줄 알았다. 초인양성학교에서도 여기에 대해 달리 교육하지 않았고, 외부에서도 마력 외의 특수능력에 대한 탐구는 아예 없었다.

그런데 강신혁은 지금 벌써 두 개째, 마력이 아닌 다른 특수능력을 얻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일반적이진 않겠지.

세상에 강신혁 혼자만 이런 능력을 갖고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동료를 찾겠다며 광고하고 다닐 일도 결코 아니다.

‘그나저나 재생력이라······ 트롤이 지닌 회복력과 비슷한 건가? 물론 그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하겠지만.’

안 그래도 아까부터 몸에 활력이 더해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영력 덕에 깨달은 힘이라 그런지, 본능적으로 그 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생물이라면 누구나가 갖고 있는 신체재생력이 극대화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특수능력이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영력과 비교하면 지극히 단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능력이다.

[강신혁 - C-랭크]

[특수능력]

영력 - D

재생력 - F

상태창을 열어보니 과연 특수능력 란의 영력 밑에 재생력이 새로 추가되어 있었다.

F랭크의 출발점에 선 지금은 그저 신체회복이 조금 빨라지는 정도겠지만 수련이든 실전이든 늘 몸을 움직여야 하는 근접계열 초인인 강신혁에겐 이나마도 큰 축복이었다. 더구나 성장하면 그 효과도 더욱 커질 테고.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심장 칵테일 하나로 정말 어마어마한 득을 보는구나. 클레어 누나한테 이 고마움을······ 아니, 일단 그만두자.”

강신혁이 재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클레어가 칵테일을 완벽 그 이상으로 제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영력을 통해 사물의 근원을 끌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라고 재생력에 대해 강신혁보다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깊이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음,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셰이커를 흔들던 클레어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짓던 강신혁은 이내 화들짝 놀라며 제 뺨을 두드렸다.

지금 되도 않는 망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증혈 버프가 지속되는 동안 힘을 성장시키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던가!

‘재생력까지 붙었으니 조금 더 무리해도 되겠지. 좋아, 다시 시작해볼까!’

그때부터 강신혁은 정말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가뜩이나 증혈 버프로 인해 펄펄 날아다니던 몸에 재생력까지 붙었으니, 중간에 뭔가 먹기 위해 멈추는 시간을 빼면 쉬는 시간이 일절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습은 실로 기계 그 자체.

단순히 체력 스테이터스가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강철 같은 정신력과 의지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강신혁은 그 두 가지만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수십 년간 쇠를 두들겼던 모루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그렇지 못했더라면,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몸으로 세계 최고의 초인양성학교에 입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 은아 님의 귓속말 : 할부지······ 은아 쉬고 싶은데 오늘도 일해야 돼. 힝.

- 야누스 님의 귓속말 : 할배, 새로운 신살검 멀었어?

[바텐더 누나 : 신혁, 은아가 너희 체육대회 간다는데 알고 있었어!?]

[백인하 : 아아 싫소이다. 땀 흘리며 훈련하기 싫소이다.]

-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로 500HP를 얻었습니다!

밤이 새고 아침이 되어도 강신혁은 꾸준히 움직였다. 미안하지만 히어로 유니버스와 스틱으로 날아드는 연락도 모두 싸그리 무시했다.

무기를 쉴 새 없이 바꿔가며 검무를 보다 완벽히 체득하기 위해 발악하며, 동시에 죽어라 체력단련을 병행했다. 단련실 한켠에 쌓아둔 보존식과, 히어로 유니버스의 샵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던 에이렌 젤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 증혈 버프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증폭되는 혈류를 기억하여 재생력이 F+랭크로 성장합니다.

아직 힘을 올리지 못했음에도 데드라인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일요일 밤이 되어, 그의 고속성장을 보증해주던 증혈 버프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신혁은 멈추지 않았다. 증혈은 끝났지만 재생력은 남아있지 않은가. 마침 F+랭크로 성장까지 마친 참이다. 솔직히 아침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강신혁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조금만 더 하면 오를 것 같아.’

평소 그는 자신의 이런 직감을 잘 신뢰하지 않지만 지금은 영력으로 체내를 관조하는 중인지라 신체 각 부위의 미미한 변화마저 소름끼치도록 잘 느껴졌다.

분명 성장의 전조가 있었다. 그것도 힘뿐만 아니라 민첩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더해 피를 매개로 전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보다 생생한 기운을 불어넣는 재생력도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영력 단련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상태창보다도 확실한 해법이었다.

‘조금만 더.’

강신혁은 바벨에 50킬로그램짜리 강화 플레이트를 두 개나 더 끼우며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무리한 수준이었지만 재생력을 믿고 베팅해보기로 했다. 아련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역시나 어떻게든 들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무게로 아슬아슬한 한계점을 찾고 나선, 횟수를 늘려가며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정말로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거기서 한 개 더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끄으으으응······!”

강신혁은 타인에게 들려줄 수 없는 기합소리를 내며 바벨을 들어올렸다. 한계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지웠다. 남은 것은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뿐이었다.

이를 악물고, 그저 눈앞의 빌어먹을 쇳덩이를 들었다.

“흐으으으읍!”

얼마나 더 그러고 있었을까. 몇 개를 더 들었는지도 모르고, 재생력의 한계도 진즉 초월했다. 바벨을 들지도 놓지도 못하고, 손에 힘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금방이라도 팔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그때. 머릿속이 완전히 새하얗게 물든 바로 그때.

‘나아간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팔을 움직이는 순간, 기이하게도 만근같이 무겁던 바벨이 번쩍 들렸다. 한없이 영원에 가까운 한 순간 육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가 극적으로 성장했다.

강신혁은 마치 자신의 전신이 심장이 된 것처럼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방금 들려왔던 목소리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힘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 민첩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 스스로의 한계를 깨부수며, 영력이 D+랭크로 성장합니다.

강신혁의 성장을 증명하는 메시지가 눈앞에 우르르 떠올랐다. 힘뿐만이 아니라 민첩과 영력까지 한꺼번에 성장했다! 바벨이 들리는 순간 그것을 직감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게 되니 감회가 더욱 깊었다.

자신의 의지도 물론 중요했지만 만약 마지막 순간 영력이 그를 북돋아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 더욱 깊이 깨달았고, 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도우진과 싸웠을 때처럼 단박에 탈진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

됐다.

강신혁은 우선 침착하게 바벨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얼핏 아직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스틱을 꺼내 확인하니 시간은 새벽 4시.

그렇다면 괜찮으려나. 음, 아마 괜찮을 것이다.

“후.”

강신혁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그 자리에 엎어져 일어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3시간 후, 혹시나 싶어 단련실을 찾은 백인하가 아니었다면 월요일부터 지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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