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Chapter 4. 드러나는 송곳 - 1
다음날, 신영은 무척 큰 난리가 났다.
그야 간밤에 수십 개의 이레귤러 게이트가 발생해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으니 서울의 어디든 난리가 안 났겠느냐마는, 신영의 학생들은 장차 그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들과 싸우게 될 운명이니 그 소식에 보다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친 그게 전부 A급이었다고!?”
“그것도 전부 이레귤러였다는데. 사망자 엄청 나왔잖아.”
“돌았네, A급 이상 능력자는 전부 소집됐겠다.”
제아무리 인류가 새로운 세상에 적응했다고는 해도 게이트의 위험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태풍이나 홍수, 화재가 그러하듯 게이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사전에 대비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을 뿐.
그리고 어제는 그렇게 단련한 인류의 대응력을 시험받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서울에는 뇌제를 비롯해서 쟁쟁한 능력자들이 많으니까.”
“진심 뇌제가 협회에 있어서 다행이다. 대부분 대형 길드 에이스들은 전부 해외로 도는데.”
“게다가 연금술사도 아직 서울에 있나보더라. 그 덕에 어제 아예 죽은 사람은 있어도 부상자는 별로 없다던데.”
“어제 밤에 갑자기 사이렌 울리는데 식겁했잖아.”
“A급 몬스터······ 그래도 존나 궁금하다. 함 보고 싶지 않냐?”
“네 다음 E+랭크 능력자.”
교실이 전에 없이 시끄러운 가운데 강신혁은 자리에 앉아 묵묵히 에너지바를 꺼내 먹고 있었다.
지금 그는 어젯밤 섭취한 트롤 심장 칵테일에 의해 증혈이라는 버프에 걸려있는 상황.
로그인 보너스로 얻은 버프가 하루 남은 지금 모든 능력의 성장을 사흘간 증폭시켜주는 버프를 추가로 받게 된 것은 굉장히 고마운 일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딸려오는 허기가 굉장히 성가셨다.
그 귀찮음이 어느 정도냐면 어젯밤 도합 치킨 일곱 마리를 먹어놓고, 오늘 아침 일어나 식당에서 식판 하나를 통째로 밥그릇으로, 나머지 하나를 반찬그릇으로 써서 두 번 리필을 했는데도 등교 후 조회시간이 되자 다시 배가 고파지는 수준이었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진짜 다행이다.’
증혈 버프가 계속되는 사흘 중 남은 이틀은 토요일과 일요일, 즉 휴일이다. 오늘만 어떻게든 학교에서 잘 버티면 남은 이틀간은 혼자 기숙사에서 간편식을 가득 쌓아놓고 훈련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이미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다. 그는 증혈 버프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어떻게든 D+랭크에 머무르고 있는 힘을 C-랭크로 성장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D+랭크와 C-랭크는, 비록 한 단계 차이라고는 하지만 랭크의 단위가 바뀌는 만큼 그 차이도 뚜렷하다. 그의 민첩과 체력은 이미 C랭크와 C-랭크에 진입한 상황. 힘만 C-랭크로 성장한다면 모든 신체능력이 C랭크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럼 정말 어지간한 초인학교 출신 초인 수준이지. 신영에서도 신입생 사이에서라면 상위에 들 거야. 거기에 내 무기술만은 원래부터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이제 영력까지 받쳐주면 두려울 게 없어. 잘하면 이번 체육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을지도 몰라.’
신영에서 주최하는 거의 모든 행사가 그렇지만, 체육대회는 그중에서도 특히 학교축제와 더불어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 행사였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외부인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제 솜씨를 내보이고, 행사에 참여한 각종 길드의 스카우터들, 현역 초인들이 그런 학생들을 평가한다.
여기에서의 활약이 미래의 진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냥 애들 노는 대회라고 무시할 얘기가 결코 아니었다.
‘체육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학업 평가도 상승하고. 여러 면에서 내 가치를 높일 절호의 찬스야. 어쩌면 신인전에 나가보는 것도 괜찮을지 몰라.’
그렇게 꾸준히 자신의 가치를 높이면, 졸업을 하고 유망주로 인정을 받아 많은 길드의 러브콜을 받게 되고······ 그렇게만 되면 어젯밤 머물렀던 그 호텔에 다시 가는 것도 꿈은 아니다.
룸서비스로 치킨을 열 마리 부탁해놓고, 컵라면을 끓여서 면은 버리고 국물만 마시는 사치를 즐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 우웅
순식간에 에너지바를 먹어치운 강신혁이 어젯밤 먹었던 치킨을 떠올리며 괜히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스틱이 진동했다. 확인해보니 바로 그 호텔에서 강신혁에게 치킨을 사준 좋은 누나로부터 온 문자였다.
[바텐더 누나 : 생각해봤는데 일단 은아한테는 우리 만난 거 비밀로 하자]
[바텐더 누나 : 네가 지구 사람인 것도 일단은 비밀로 해]
[나 : 넵]
참고로 그녀를 바텐더 누나라고 등록한 것은, 혹시나 본명으로 등록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귀찮은 일로 번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텐더 누나라는 이름 역시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는 사실까지는, 순수한 소년 강신혁은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바텐더 누나 : 하긴 그래봤자 네 실력이면 어차피 조만간 세상에 드러나게 되겠지만······ 나한테도 들켰는데 은아가 널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겠지?]
[나 : 이제 모루로 인정해주시는 거예요?]
[바텐더 누나 : 환생은 안 믿어, 믿기 싫다고 해야 하나]
[바텐더 누나 : 그래도 네가 모루의 아이디를 얻고 모루의 기억과 능력을 계승했다는 것까지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바텐더 누나 : 하지만 은아한테 ‘할부지’ 행세하면 진짜 죽인다]
[나 : 정말 한 적 없다고요]
[나 : 그분한테 물어보셔도 그렇게 말할걸요.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다니까]
[바텐더 누나 : (이모티콘)]
강신혁의 단호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의심하는 이모티콘’과 ‘노려보는 이모티콘’이 종류별로 몇 개인가 올라왔다. 어제도 그 후로 내내 이런 느낌이었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바텐더 누나 : 암튼 간밤엔 고생했어. 나 지금 비행기 타니까 좀 있다 연락할게]
[나 : 미국 돌아가시는 거예요?]
[바텐더 누나 : 돌아가야지. 아무리 내가 프리랜서라도 계속 외국에만 있는 건 좀 그렇잖아]
[바텐더 누나 : 만날 사람도 다 만났고, 야누스한테 받은 의뢰도 망했고]
[나 : 그건 죄송하게 됐습니다······.]
야누스와는 어제 바로 대화를 마쳤다. 신살검을 강신혁이 발견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곧장 그가 ‘은아’가 사는 세상에 환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야누스였기에 얘기는 빨랐다.
왜 진즉 설명해주지 않았냐며 클레어는 엄청 화를 냈지만 야누스는 낄낄댈 뿐. 위로금 명목으로 상당한 양의 HP를 선물 받았기에 클레어도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아, 클레어의 히어로 유니버스 아이디는 ‘바텐더’였다.
[바텐더 누나 : 죄송한 줄 알면 다음에도 협력해줘]
[나 : 협력?]
[바텐더 누나 : 난 아직 내가 어떻게 영력을 다루는지도 모르니까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거든]
[나 : 저도 잘 못하는데요]
[바텐더 누나 : 그래도 나 혼자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단 너랑 같이 끙끙대는 게 더 나을 거 아냐]
[바텐더 누나 : 너한테도 나쁜 얘긴 아닐걸? 실험으로 만든 포션은 전부 너 줄 거니까]
[나 : 헐 사랑해요 누나(이모티콘)]
[나 : (이모티콘)]
나쁜 얘기가 아닌 수준이 아니라 강신혁이 일방적으로 개이득을 본다. 세계 최고의 포션 제조장인 중 한 명인 연금술사에게 포션을 받을 수 있다니.
더구나 어제 사소한 오해로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그녀처럼 좋은 사람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강신혁에게도 무척 기쁜 일이었다.
[바텐더 누나 : 미안 나 연하는 별로야]
[나 : 아 죄송해요 누나가 아니라 포션 쪽이요]
[바텐더 누나 :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정신없이 훔쳐봐놓곤]
[나 : 정말 죄송합니다 누님! 너무 매력적이셔서 실례했습니다!]
[바텐더 누나 : 좋아 솔직해서 봐줬다]
[바텐더 누나 : 나중에 치킨 사들고 갈게]
역시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치킨의 브랜드를 지정해도 좋을까, 아니 역시 그건 눈치가 너무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래도 기왕 먹는 것 맛있는 치킨을 먹고 싶은데······ 강신혁이 갈등하던 찰나.
[바텐더 누나 : 근데 너희 학교에 있잖아, 혹시 교사 중에]
[나 : 넵]
[바텐더 누나 : 아······ 아냐 됐어 이건 나중에 얘기해]
[나 : 넵]
클레어와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강신혁은 어깨를 으쓱하곤 스틱을 품에 집어넣었다.
눈앞에 백인하가 있었다.
“여자구만.”
“뭐?”
“백퍼 여자네. 시뇩이 어제 기숙사 안 들어왔었잖아.”
평소에도 여자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녀석이었지만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는 말처럼 이번엔 그게 들어맞아버리고 말았다. 강신혁은 괜히 찔끔해서 변명을 주워섬겼다.
“말했잖아 임마, 저녁거리 사러 나갔다가 바로 게이트 터지는 바람에 근처 대피소에서 존버하고 있었다니까.”
“아냐 방금 네가 짓던 그 미소는 인생 승리자의 미소였어. 난 존나 여기서 소꿉장난이나 하고 있는 니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이 깃든 미소였다니까. 누님이지! 어젯밤 성숙미가 철철 흐르는 누님을 꼬신 거지!”
이런 한심한 말을 교실에서 외치는 놈만 아니었으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을 텐데······ 강신혁은 백인하를 실로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꼬신 건 아니고 사실 어제 누님 한 명이랑 알게 되긴 했는데.”
“레알!?”
“그것도 붉은 머리 붉은 눈에 스타일 좋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이름은 클레어 보일이라고 유명한 초인이야.”
“아······ 어제 저녁 맛있었냐?”
“응, 치킨 먹었거든. 클레어 누나가 사줬어.”
“그래.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다, 참 다행이야 우리 신혁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눈을 돌린 백인하가 강신혁의 어깨를 조심스레 두들겨주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강신혁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클레어의 번호를 본명으로 저장했어도 괜찮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두 개째 에너지바의 포장을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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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후 마지막 수업은 게이트를 통해 지구에 나타나는 괴물들의 생태와 약점, 구체적인 공략방법과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괴물생태’ 시간이었다.
훌륭한 초인이 되는 데 꼭 필요한 모든 필기교과가 으레 그러하듯 무척이나 지루한 시간인데, 지금은 증혈의 부작용으로 배가 고프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루함과 허기를 참느라 무진 애를 쓰고 있던 강신혁에게 갑자기 귓속말이 날아들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힝, 할부지이.
뇌제 신은아, 즉 은아로부터 온 귓속말이었다. 사실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은아는 그가 히어로 유니버스에 가입한 이래 시간이 날 때마다 그에게 귓속말을 보내곤 했으니까.
- 왜 그래요?
- 은아 님의 귓속말 : 친구가 미국 갔엉.
순간적으로 웬 패드립이냐고 태클을 걸 뻔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늘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간 연금술사, 클레어 보일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이 혀 짧은 어린아이 같은 말투를 쓰는 여자가 뇌제라는 얘긴데······.
- 은아 님의 귓속말 : 친구랑 같이 찾던 것도 못 찾구. 힝.
- 많이 섭섭했겠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웅. 게다가 어젯밤에 나쁜 녀석들이 엄청 많이 나타나서 걔네랑 싸우느라 무지 힘들었어.
결심했다. 잘은 알 수 없지만 고아원에서 제일 어렸던 민서(6살)를 상대하던 때를 참조하기로 했다. 상대의 정신연령은 분명 그 언저리일 터였다.
- 고생했어요.
- 은아 님의 귓속말 : 잘했다구 해줘어.
- 잘했어요.
- 은아 님의 귓속말 : 잘했다구 해줘어.
- 자, 잘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웅 나 잘했지!
은아가 연달아 보내는 메시지에 마지못해 그녀가 원하는 투로 대답을 해주던 강신혁의 입 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차라리 상대가 뇌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땐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순수하게 답해줄 수 있었는데, 그 도도한 미녀가 이런 말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다······!
“강신혁 학생? 펜이 멈춰있는 걸 보니 제 수업이 그리 재미가 없나보네요.”
“읏.”
“이해는 해요. 기왕이면 안 들켰으면 좋았을 텐데 그쵸?”
그때였다. 강신혁이 은아와의 대화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에 몸부림을 치던 찰나 교사가 그를 지목한 것이다.
“어디 그럼 괴수 에비올레의 약점에 대해 한 번 설명해보세요. 제가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오면 강신혁 학생은 남은 시간 동안 자습해도 좋습니다.”
“어······.”
망했다. 평소 강신혁은 모자라는 실기 점수를 필기로 때우기 위해 면학에 힘쓰는 우수생 부류였으나, 아직 에비올레에 대해선 자세히 파악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배우지도 않은 C급 괴수였으니!
1학년생이 실기로 상대하게 되는 E급 이하의 괴수들에 대해선 진즉 달달 외웠지만 1학년 1학기인 지금 C급 괴수까지 모두 파악해두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겠는가!
“모르겠나요?”
“아니, 잠깐만요.”
하지만 여기서 모른다고 순순히 대꾸하면 필기 평가 점수가 깎인다. 학생의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이 점수 제도는 까딱 잘못하면 졸업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열심히 노력해 우수한 졸업성적을 거두기로 다짐한 바로 다음날 점수를 깎일 수는 없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할부지, 왜 그래? 지금 많이 바빠? 은아가 미안해.
- 어, 아뇨. 그건 아니고 잠깐만요. 지금 수업 시간이라 나중에.
- 은아 님의 귓속말 : 뭐 배우는데?
- 에비올레.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학생들과 교사의 시선에 침착성을 잃은 탓이리라, 강신혁은 아무 생각 없이 괴수의 이름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괴수 에비올레라면······ 은아 그거 잘 알아.
“헛.”
“강신혁 학생? 떠올리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가요?”
교사의 눈총이 보다 따가워지려는 바로 그 순간, 뇌제의 벼락이 강신혁의 망막을 가득 채웠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커다란 두 개의 날개를 갖고 있지만 실은 중형 지상괴수. 딱히 정해진 서식지가 없이 땅속을 고속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간혹 서식지가 다른 몬스터들과 같은 게이트에서 나올 때가 있어. 등급이 무척 낮은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케이스도 보고되어 있고.
“······.”
- 은아 님의 귓속말 : 날개 깃털에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나 있는데 그걸로 고운 흙 입자를 빨아들이고 뒤로 방출하는 방식으로 땅을 파. 날개를 70도 각도로 세우고 짧게 울부짖으면 바로 피해야 돼. 날개에 저장해두었던 흙에 마력을 담아 일시방출하는데 그 공격이 C+급의 마력과 물리 공격을 겸하거든.
지금 이 순간, 인류가 몬스터와 맞서 싸운 모든 역사를 축적하고 있는 협회의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직접 방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하지만 공격을 끝낸 후에는 일시적으로 틈이 생겨. 다시 흙을 빨아들이려고 하는데, 이때 C급 이상의 위력을 지닌 물 속성 마법을 날려주면 흙 대신 물을 흡수하면서 날개가 일시적으로 망가져.
- 은아 님의 귓속말 : 이 녀석들 실은 호흡도 날개로 하는데, 날개가 막히면 구강호흡을 시도하거든? 이때 다시 물을 목구멍에 쳐넣어주면 쉽게 죽일 수 있어. 수마법이 마땅치 않으면 엉덩이를 공격해서 흙 배출구를 막는 게 제일 좋아. 목은 의외로 단단해서 비추천. 날개도 잘 잘리지 않아. 대신 머리 위의 꽁지를 자르면 마력감각을 상실해서 상대하기 쉬워져.
“······에비올레는.”
그 시점에서 강신혁에게 다른 선택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음?”
“에비올레는 커다란 두 개의 날개를 갖고 있지만 실은 지상괴수의 일종입니다. 중형에 해당하고요.”
“······그 다음은요?”
“놈은 날개 깃털에 나 있는 미세한 구멍으로 흙 입자를 빨아들이는데 전투 시에는 이것을 활용한 공격을······.”
그가 입을 열자 교사가 일단 들어나 보겠다는 듯 뒤를 재촉했다. 기호지세다. 강신혁은 은아가 보내준 메시지를 그대로 읊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에 교사에게 지목을 당한 것도 이 녀석 탓이니까!
“······따라서 물 속성으로 공격할 방법이 전무하다면, 놈의 방출 공격이 끝나고 틈이 일시적으로 드러났을 때 머리 위의 꽁지를 잘라내어 놈의 마력감각을 교란시킨 후, 엉덩이를 공략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입니다. 이상입니다.”
“······.”
강신혁의 말이 끝나자 교실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강신혁은 답안지를 훔쳐본 듯한 죄책감을 감추려 애써 굳은 표정을 지었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방금 그가 한 말의 진위여부조차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직후, 교사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작게 박수를 쳤다.
“훌륭해요. 교과서적인 대답이 아니라는 점이 더더욱 훌륭하네요. 이상적인 사냥법을 파악하고 있으며, 거기서 나아가 기사학과인 학생 본인이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을 철저히 탐구했어요. 에비올레의 공략 영상을 일부러 수십 개씩 찾아보고 분석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답변이었죠. 정말 다방면으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3점 가점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대로 자습해도 좋아요. 하지만 비록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앞으로는 수업 중 지루한 티를 내지 않게 조심하도록.”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강신혁은 후우,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짝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백인하가 몰래 엄지를 세우다 걸려 교사의 다음 질문에 답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귓가로 학생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강신혁 원래 필기는 잘했지.”
“그래도 저건 좀 너무한데. 쟤 혹시 대형 길드에서 밀어주는 거 아냐? 방금 그거 최전선에서 뛰는 길드에서나 나올 법한 공략법이잖아. 공격 타이밍 같은 거 나도 처음 들어.”
“야 근데 쟤 접때 도우진 이겼잖아. 실은 실기도 쩌는 거 아냐?”
“그건 우연이라니까.”
“네~ F급 던전에서 니가 어쩌다 에비올레를 만나서 뒤져도 우연이니까 어쩔 수 없죠?”
“뭐 씨발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경악과 의심뿐이었던 것 같은데, 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도 변했다. 은근슬쩍이지만 강신혁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강신혁은 슬며시 웃었다. 마냥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방금 그건 내 실력이 아니었지만.’
설마 은아에게 이런 도움을 받게 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비록 그녀가 협회에 속한 초인이라고는 하지만 평소 워낙 어린아이같은 얘기만 해서 솔직히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녀가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능력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뿌듯함 3분의 1, 죄책감 3분의 1, 얼떨떨함 3분의 1이 버무려진 심정으로 가만히 있던 그에게 재차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 은아 님의 귓속말 : 할부지, 더 궁금한 거 있음 알려줄까?
- 아뇨, 완벽한 설명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진짜 덕분에 살았어요.
- 은아 님의 귓속말 : 헤······.
짧은 문자에서 묻어나는 뿌듯함에 강신혁도 절로 미소를 짓던 찰나.
- 은아 님의 귓속말 : 또 뭐 알려줄까!?
- 은아 님의 귓속말 : 나 S급까지면 거의 다 알아! SS급도 아는 거 많다! 할부지 궁금한 거 다 말해줄게! 할부지 메두사 알아?
- 은아 님의 귓속말 : 있지, 난 얼굴만 안 보면 석화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실은 입김에다 마력광선에다 전부 다 석화 상태이상 떡칠되어 있어가지고 정말 그거 잡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있지!
- 어······ 하나씩 천천히 부탁해도 될까요? 앞으로 시간 나실 때만이라도.
- 은아 님의 귓속말 : 언제든지!
강신혁은 그렇게 해서 자신을 할부지라고 부르는 여자를 가정교사로 확보하게 되었다. 신영의 필기평가 대책에 청신호가 켜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