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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Chapter 3.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 5

클레어가 나간 후에야 자신이 아직까지 팬티차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신혁은 피에 젖은 팬티를 마저 벗어던지고, 워 트롤의 난동으로부터 멀쩡하게 살아남은 호화로운 욕실에서 정성들여 깔끔하게 목욕을 했다. 그가 언제 이런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씻어보겠는가.

‘아니지, 영력을 순조롭게 성장시켜 신영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졸업하면 혹시······.’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소시민 마인드가 탑재되어 있던 강신혁이지만 이젠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는가.

당장 오늘 하루 성장한 스테이터스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하루 만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신혁의 원래 스테이터스가 낮았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물론 그 대가가 결코 가볍진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무리를 강제로 뇌에 때려 넣느라 겪은 고통은 둘째 치고 신살검의 검무를 안 되는 몸으로 따라가려고 발악한 결과 전신의 근육이 꼬이고 찢어지고, 뼈가 비틀리는 등 결코 유쾌하지 않은 고통을 겪었으니까.

솔직히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야금술과 영력 수련으로 인해 형성된 집중력이 아니었으면, 워 트롤의 목을 베어버리기 전 이쪽이 먼저 주저앉았을 터다.

······정말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관리자님, 그놈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 예상치 못한 사태였습니다.

관리자가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즉시 답했다.

- 영력이 지극히 희귀한 기운이라는 것은 설명 드렸을 터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존재는 영력을 감지하지 못하며, 그렇기에 물론 추적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놈은······.”

- 그 트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트롤이 들고 있던 무기입니다.

관리자는 지체 없이 결론을 내뱉었다.

- 그것은 전생의 회원님이 만든 무기입니다. 그것이 괴물의 손에 들려있었기에, 놈은 회원님을 추적해 찾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하필이면.”

어쩐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설마 그것이 진짜였을 줄은. 나직이 탄식하는 강신혁에게 관리자가 이어서 설명했다.

- 회원님은 전생에 무척 많은 물건들을 만드셨고, 그 많은 물건들은 무수한 차원으로 퍼졌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물건들에는 대부분 주인이 있고, 설령 그것을 취한 적이 있다고 해도 그 적이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넘어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니까요.

그리고 이번엔 그 희박한 확률에 당첨되었다는 것인가. 솔직히······ 솔직히, 강신혁은 그 너머에 감춰진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관리자는 그것을 모르고 있든가 아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관리자를 믿지 않고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기에, 강신혁은 관리자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겠죠?”

- 확신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결국 그에게 남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여유가 있을 때 빨리 강해져야겠네요.”

- 그 마음가짐이면 충분합니다. 관리자의 10HP 보너스!

노력해도 결코 손이 닿지 않던 영역에 이제는 손이 닿는다.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렇다면 그저 불철주야 노력해, 강해질 뿐이다.

마나도 없이 그저 죽어라 단련했던 과거의 나날들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조건이 좋은가! 노력하면 어디까지고 강해질 수 있다. 그것은 모든 몬스터를 베어 죽이는 초인을 꿈꾸는 강신혁에게 무엇보다도 더한 축복이었다.

‘어디, 스테이터스.’

[강신혁 - C-랭크]

[특성]

깨어난 아룡(兒龍)(A+) -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대신 모든 종류의 무술을 무척 빠르게 숙련한다. 스스로 익힌 무술의 효과를 크게 증폭하고, 손에 쥔 무기의 성능을 강화한다.

[신체능력]

힘 - D+

민첩 - C

체력 - C-

[특수능력]

영력 - D

[스킬]

아룡환무(S-) - B-

야금술 - E

“······좋았어.”

능력자 랭크가 성장한 게 언제라고 그새 또 C-랭크로 성장했다.

그뿐인가, D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빌빌거리던 신체능력이 전체적으로 크게 성장해 이젠 1학년 중에서라면 상위권을 노려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불과 며칠 만에!

영력의 빠른 성장은 굳이 입 아프게 말할 것도 없다. D랭크라면, 마력을 지니고 있는 신영 소속의 다른 학생들과 순수하게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이다.

‘에이렌 젤리를 다 먹을 즈음엔 당초 예상보다 더 성장할 수도 있겠어.’

스테이터스뿐만이 아니라 스킬의 성장도 뚜렷했다. 영력의 보다 심화적인 운용에 대해 깨달은 것도 성과였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아룡환무의 성장이 기뻤다.

아룡환무(S-)는 그가 하나의 특성과 스킬만을 갖고 있었던 지난 5년간 아득바득 노력해 키워낸 지극히 실전적인 종합무술 스킬 십팔반무예(A)가 발전해 탄생한 스킬. 그것이 벌써 숙련도 B-랭크로까지 성장한 것이다.

‘트롤과 목숨 걸고 싸웠기에 가능한 성취겠지.’

물론 신살검의 이미지로부터 얻은 검무의 영향이 컸지만, 그래도 각성 초기부터 함께했던 스킬이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는 데 느끼는 감회는 무척 깊었다.

‘더 성장하고 싶어.’

그는 자신의 상태창을 씹어 먹을 기세로 바라보며 강하게 중얼거렸다. 급격한 성장의 기쁨에 취한 것도 잠시, 그는 이미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만족해 주저앉기에는 굶주린 세월 쌓인 허기가 너무나 컸다.

“아······ 배고프다.”

정신적인 공복이 신체적인 공복에 밀려나는 것도 순간이었다.

“룸서비스 맘대로 부르면 안 되겠지? 아니, 그러고 보니 이 난리통이 났는데 호텔 직원이 안 올라오는 게 정상인가?”

분명 아까 그에게 붙은 증혈 버프 때문이리라. 무척 좋은 버프였지만 지금은 그저 배가 고플 따름이었다.

강신혁은 후다닥 비누거품을 씻어내곤, 급한 대로 수건을 몸에 두르다가 옷장에 비치된 나이트가운을 발견하곤 그것을 입었다. 역시 고급 호텔쯤 되면 뭐가 달라도 달랐다.

“나 왔어~”

가운을 걸친 강신혁이 미니바를 지그시 노려보며 이 안의 안주용 과자를 먹어도 될까 고민하던 찰나 뻥 뚫린 창문을 통해 클레어가 날아들었다. 여전히 화려한 등장이었다.

“완전히 상황종료됐으니까 이제 안심해도 돼. 어, 씻었어? 안 그래도 씻으라고 하려 했는데 잘했네. 상처는?”

“씻으면서 봤는데 이제 완전히 멀쩡해요. 그런데······.”

상황종료라면 정상적인 루트로 와도 됐을 텐데. 하지만 그런 냉정한 태클은 그녀의 손에 들린 치킨이 가득 담긴 봉투를 보고 쏙 들어갔다.

“지금부터 누나라고 불러도 될까요?”

“너 진짜 쉽다. 하지만 그런 거 싫지 않아.”

강신혁은 클레어로부터 치킨이 가득 담긴 봉투를 받으며 그녀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강신혁이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확고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치킨을 사주면 무조건 좋은 사람이었다. 이 법칙은 틀린 적이 없었다.

감사와 감격이 설렘과 흥분을 압도한 탓에, 찬란한 미모 탓에 그녀를 직시하기도 힘들어했던 강신혁은 더는 이 자리에 없었다. 클레어는 불과 수 시간 전 자신을 어려워했던 강신혁이 조금 그리워졌다.

“기다려봐. 일단 정리부터 하게.”

클레어는 봉투를 강신혁이 들고 있게 한 후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알아보기 힘든 마법문자가 가득 적혀있는 종이였다.

그런데 그녀가 워 트롤의 난동으로 이것저것 부서지고 무너지고 엉망진창이 된 폐허의 한복판에 그 종이를 붙이자, 놀랍게도 그 모든 것들이 원래 자리를 찾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갈기갈기 찢어졌던 커튼이 조각조각 짜맞추어지고, 깨졌던 유리창이 원래대로 수복되고, 속이 터진 소파도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감기라도 하듯 내용물을 집어삼키곤 마지막으로 가죽 커버까지 깔끔하게 고쳐졌다.

“이게 무슨······.”

“배상해주는 쪽이 단가가 더 쌀지도 모르지만 이러는 쪽이 깔끔하니까. 그리고 이 오밤중에 다른 방 찾아서 나가기도 싫고.”

클레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소파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리곤 다른 한쪽에 쌓아두었던 봉투를 강신혁에게 내밀었다.

“옷 사왔어, 입어.”

“이런 것까지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누나.”

“아니, 따지고 보면 네가 습격당한 건 내 잘못이잖아. 학교에 있었으면 무사했을 텐데 내가 여기로 데려오는 바람에 봉변을 겪은 거니 당연히 내가 신경을 써야지.”

첫인상은 그저 놀기 좋아할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의 미인이었는데, 만나고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녀에 대한 인상이 상당히 바뀌었다.

바텐더를 동경하는 것도 그렇고, 그를 이렇게 꼼꼼하게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치킨을 사주는 것도 그렇고!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법이라고 강신혁은 새삼스레 생각했다.

“일단, 네가 오늘 일로 귀찮아지지는 않을 거야.”

강신혁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클레어는 치킨 봉투를 풀며 담담히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밤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여기 있는 트롤 시체 하나 정도 몰래 치우는 건 일도 아니고. 아, 보상금은 확실히 책정해서 줄게. 제일 중요한 심장이 빠지긴 했지만 워 트롤 변종 사체면 용돈 정도는 나올 거야.”

강신혁은 잽싸게 치킨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물면서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지금은 뼈까지 통째로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은 몬스터가 호텔에 침입했다는 걸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거든. 물론 너랑 워 트롤이랑 싸우면서 좀 시끄러운 소리가 나긴 했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도시 전체를 메웠던 사이렌 소리와 진동이 사라진 것은 불과 조금 전의 일.

워 트롤의 침입을 감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 대피소로 피난한 상황이기도 했고.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 입장이고, 네가 이 사실을 공표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도와줄 수는 있어. 학생의 신분으로 B급 몬스터를 잡았다는 건, 너도 알겠지만 굉장한 일이거든. 학교에서 너를 평가하는 데 플러스 요인이 될지도 몰라.”

“으음······ 아뇨.”

“아냐?”

“네.”

강신혁은 그녀가 슬며시 던진 제안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진지했지만 입에는 치킨을 물고 있어 별로 멋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워 트롤을 죽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누나가 준 포션 덕분이거든요. 제 실력도 아닌 우연으로 평가를 받아봤자 나중에 곤란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전 진짜 실력을 키워 정당하게 평가를 받을게요.”

“글쎄 나도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 포션을 먹었다고 해도 네가 대단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제가 포션의 효과를 좀 세게 받았어요. 아니, 애초에 그게 저한테 잘 맞는 포션이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요.”

“뭐······?”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어질 논쟁의 뿌리를 강신혁은 단호히 끊어버렸다.

그의 말을 알아듣고 두 눈을 크게 뜨는 붉은 머리의 미녀에게, 그는 세 조각 째의 치킨을 집으며 정직하게 고했다.

“저는 얼마 전 영력이라는 힘을 각성했어요. 그리고 누나가 만든 포션에 바로 그 영력이 담겨 있었어요. 참고로 아까 만들어주신 트롤 심장 칵테일에도. 그래서 제가 그 효과를 강하게 받은 거예요.”

“영력?”

그녀는 강신혁의 말에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아예 모르는 것 같진 않았지만, 설마 그게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녀석들이 떠드는 걸 얼핏 듣긴 했는데 설마 내가 그걸······?”

“분명히 영력이었어요.”

그 녀석들이라는 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강신혁은 일단 설명을 잇기로 했다.

“영력은 마력과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작용하는 힘이에요. 영혼의 힘이라는데 저도 그걸 제대로 다루게 된지 얼마 안 되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사람마다 그걸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는 건 누나 덕에 알게 됐어요.”

“느끼는 방식······ 아, 너는 향기로 맡는 게 아닌가보네?”

“네.”

역시 원래 영력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라 그런지 이해가 무척 빨랐다. 강신혁이 그 말에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어가 제 뺨을 긁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기쁨과 곤혹이 반쯤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놀라워라······ 네게 기대를 하긴 했는데 설마 정말 당첨이었을 줄은 몰랐어. 이렇게 허무하게 정답을 알게 되니까 얼떨떨할 정도야. 순순히 얘기해준 것도 의외고.”

“전 누나가 영력을 부여한 포션 덕에 살아남았고 강해졌으니까요. 숨겨봤자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제게 맞는 포션을 만들어내는 누나한테 적극적으로 부탁해야 할 처지잖아요?”

“솔직해서 좋네. 아, 난 다리 안 먹어도 되니까 네가 다 먹어.”

“헐 진심 고마워요······.”

그 순간 강신혁의 뇌 내에서 클레어의 착한 사람 정도가 한 단계 더 상승했다.

다른 사람에게 닭다리를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선인이거나 속에 구렁이를 백 마리쯤 감추고 있는 악인, 반드시 둘 중 하나였다!

“영력, 영력이라 이거지······. 신혁, 어떻게 해야 그걸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까?”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까 누나가 셰이커를 흔들 때 누나한테서 영력이 솟아나는 게 보였어요. 아마 그게 계기가 된 것 아닐까요?”

“정말!?”

“네.”

강신혁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어의 두 눈동자 가득 기쁨이 차올랐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반응을 하는지는 강신혁도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그녀가 폭탄선언을 했다.

“좋아, 정했어. 나 바텐더가 되겠어.”

“······네?”

“원래 고민하고 있었지만 네 덕에 결심이 섰어. 고마워, 신혁.”

“아니 잠깐만요, 네? 바텐더? 연금술사 그만두고?”

클레어가 닭가슴살 하나를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당당한 모습에 반할 뻔했다.

“역시 내가 가려는 길이 옳았어. 바텐더로 활약하며 영력을 키워서, 연금술 연구는 안 하고 무슨 바보짓을 하냐던 윗대가리 놈들 아가리에 닭뼈를 쳐넣어주겠어! 그렇게 되면 은아 고년도 나한테 안······ 잠깐.”

“음?”

순간 클레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하고 입안으로 중얼거리던 그녀가 강신혁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모루?”

“······음?”

“히어로 유니버스.”

“······예, 예에?”

“설마 했는데 알고 있구나.”

강신혁은 예기치 못한 순간 듣게 된, 그렇지만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단어의 연속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그 반응을 보며 클레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영력을 각성했고, 야금술을 수련하는데다, 히어로 유니버스를 알고 있는 ‘17살’······ 거기에 지금 보니 그 검.”

신살검은 지금 소파 곁에 기대어놓은 상태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클레어였으나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확실했다.

“그거 야누스가 찾아달라고 의뢰했던 검인데. 모루가 빚어낸, 신살검.”

“어, 야누스가 그런 의뢰도 냈었구나. 저보고는 그냥 쓰라던데.”

이쯤 되면 강신혁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클레어는 아마도 히어로 유니버스의 회원이었다!

설마 현실에서 다른 회원과 만나게 될 줄은 몰라 무척 당황하기는 했지만 반갑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누나도 회원인 줄은 몰랐네요. 반가워요, 전 실제로 다른 회원을 만나는 건 처음······ 왜 그래요?”

“너구나, 스스로 환생한 모루라고 주장하는 놈이 너지! 우리 순진한 은아를 속여먹은 사기꾼이!”

클레어가 닭기름이 묻은 손가락으로 강신혁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라, 반가움은 그만의 것이었던 걸까? 애초에 그는 어째서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지······ 잠깐? 은아라고?

“설마 뇌제 신은아가 그 ‘은아’였어요!? 그 정신 나간······ 아니, 말투가 조금 어린애 같은 그 사람이!?”

“그래, 이 사칭범아! 널 진짜 모루라고 믿고 있는 그 덜떨어진 년이 내 친구다!”

이럴 수가, 지금 들어보니 이름이 완전히 똑같은데도 이미지가 너무 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설마 무수한 세상을 잇는다는 히어로 유니버스의 지인이 같은 세상 사람일 줄 알았겠는가! 이전 관리자가 은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던 것도 이래서였던가······!

“아니 그런데 잠깐만요, 누나! 전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로 모루의 환생······.”

“설마 같은 세상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 이 사칭범!”

“글쎄 아니라니까요! 사칭한 적도 없어요!”

클레어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몰랐다. 하긴 자신 같아도 소중한 친구가 갑자기 ‘할부지가 살아났어!’ 같은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니면 화가 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관리자한테 물어보시면 알잖아요, 저 진짜 사기꾼 아니거든요! 진짜 모루라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진즉 그렇게 했지, 관리자랑 사적인 대화를 어떻게 나누냐!”

결국 클레어는 강신혁의 부탁을 받은 관리자가 그녀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주고 나서야 자신의 오해를 풀게 되었다.

강신혁은 그 날, 관리자가 모든 회원에게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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