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Chapter 3.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 4
- 질서에 해를 끼치는 존재를 제압했습니다. 회원등급에 보너스! 5,000HP를 얻었습니다! VIP 보너스! 보상의 50%에 해당하는 HP를 추가로 얻어, 총 7,500HP를 얻었습니다!
- 영력에 대한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영력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며 스스로의 영력의 한계를 크게 넓힙니다. 영력이 단숨에 D랭크로 성장합니다!
- 불완전하게나마 초월영역에 이른 무리(武理)를 펼쳐내어 무술의 근본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집니다. 아룡환무(S-)가 B-랭크로 성장합니다!
- B+급 몬스터와의 전투를 통해 육신이 상승의 경지를 기억했습니다. 연금술사 특제 부스트 포션의 기운이 이에 호응하여, 신체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신체능력이 한 단계 성장합니다.
적이 죽고 강신혁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일찍이 본 적 없는 메시지의 나열이 그의 망막을 빡빡하게 채웠다.
몬스터를 해치우면 히어로 유니버스에서 쓸 수 있는 HP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부분이다. 바로 능력이 성장한 것이다.
‘내가 한 거라곤 포션을 마시고 적을 물리친 것뿐인데,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 성장을 촉진시켰어.’
더구나 그의 몸에 남아있던 성장 버프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일까, 아룡환무가 한 단계, 신체능력도 각 한 단계, 영력은 무려 두 단계나 성장했다.
전투 중에 각성해 강적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것은 소년만화에나 나오는 얘기인 줄로 알았는데 설마 그것을 자신이 경험하게 되다니.
이런 말로 하면 우습지만, 목숨을 건 보람이 있었다.
강신혁은 짜릿한 성장의 쾌감에 본능적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상처가 심각합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으으어어어어어.”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굴렀다.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갈라지고, 살점이 뜯기는 고통이 동시에 덮쳐왔다.
그야 감히 넘보지도 말아야 할 영역에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몸으로 도전했으니! 전투를 마칠 때까지 버텨준 것만으로도 용했다.
“끄으으아아아아.”
- 히어로 유니버스의 거래 게시판에서 긴급외상치료약을 구매하세요! 신체의 영구적 손상을 방지하는 동시에 현장을 발견한 이들에게 의심받지 않는 수준의 외상을 남겨주는 약품입니다!
“적절한 충고 고마워요, 근데 그거 제 돈으로 살 수는 있어요······!?”
- 5,000HP에 구매가 가능합니다!
방금 B랭크 몬스터를 해치우고 7,500HP를 얻은 것을 생각하면 약이 오르는 금액이지만 지금은 구매하지 않을 수 없다. 강신혁은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빠르게 외상치료약을 구매해 그것을 삼켰다.
온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 바르는 약이 아니라 먹는 약을 살 수 있었던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 몸 상태가 호전됩니다. 하지만 수일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시 상태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약을 먹은 직후 신기하게도 고통이 조금 가라앉으며 그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신혁은 일단 위험한 수준은 벗어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말전도도 정도가 있지, 기껏 워 트롤을 이기고 성장했는데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는다면 억울해 죽어버릴 것이다.
- 회원님께서 그 다음으로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저도 알 것 같아요. 저······ 시커먼 영력을 뿜어내고 있는 도끼죠? 저건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위험할 것 같아요.”
- 회원님께 이심전심 보너스 100HP를 선물!
고통이 수그러들고 몸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강신혁은 손에 들고 있는 신살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목과 한 팔이 떨어져나간 워 트롤 변종의 사체와, 떨어져나간 팔에 쥐여져 있는 검은 도끼.
순간 그것을 보며 저 도끼도 영력으로 탐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강신혁이었으나, 난장판이 된 호텔방 한복판에서 여유롭게 영력 수련을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적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좋아, 그럼······ 먹을 수 있겠어?”
우웅. 신살검이 그렇다고 대꾸하듯이 진동했다. 워 트롤이 들고 있을 때는 놈의 기운으로 보호를 받고 있어 침투하지 못했지만, 놈이 죽은 지금은 신살검이 개방한 ‘날붙이 포식’ 능력으로 섭취할 수 있게 된 것.
‘그나저나 영력이 느껴지는 도끼라······ 아니, 아니겠지. 영력을 품은 물건을 모루만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하지만 하필이면 이놈이 날 추적해왔다는 건, 아니. 생각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망설이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 그는 일말의 주저를 날려버리듯 손에 들린 검을 과감하게 도끼를 향해 내리쳤다.
그 순간 신살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도끼를 감싸는가 싶더니, 이내 도끼가 아스팔트 도로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륵 녹아 신살검에 흡수되었다. 실로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 영력을 품고 있는 도끼를 먹어치운 신살검이 힘을 일부나마 되찾습니다. 다만 외부의 영력을 모두 정화해 흡수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회원님의 영력으로 보조하여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걸로 됐어요?”
- 워 트롤 변종의 사체도 치울 수 있겠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이상 그녀에게 뒤처리를 부탁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강신혁의 질문에 관리자가 애매하게 답했다. ‘그녀’라는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깨진 창문으로 곧 연금술사 클레어 보일이 날아든 것이다.
트롤이나 클레어나 호텔 최상층을 주택가 담 넘듯이 자연스레 넘어오는 것은 둘째 치고, 정말 얄궂은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신혁, 무사해!?”
“클레어······! 아, 무사하진 않아요. 죽다 살았어요.”
강신혁은 클레어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기적적으로 워 트롤을 해치우고 몸에 힘이 쭉 빠져있던 상황에, 혹시 다른 적이 나타나기라도 할까 긴장하던 그의 눈앞에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이 나타난 것이다. 긴장이 풀리지 않는 것이 무리였다.
“죽다 살았다니, 너······ 이거 워 트롤이잖아. 이걸 혼자서 상대해 이긴 거야?”
최우선적으로 강신혁의 안전을 확인한 클레어는 이어서 워 트롤의 사체를 발견하고는 경악성을 토해냈다.
워 트롤은 B랭크 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 중의 하나. 어지간한 현역 초인도 상대하기를 꺼리는 강적인 것이다.
그러나 깔끔하게 잘린 목과 팔의 단면, 사타구니에 남은 검격의 흔적, 마지막으로 강신혁의 손에 들려있는 칠흑의 검까지 그가 워 트롤을 토벌했음은 명백했다.
“만약 진짜라면 너, 나를 속인 거야. 도저히 그럴만한 실력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클레어가 준 포션 덕에 간신히 이긴 거예요.”
“귀한 포션이기는 했지만 마찬가지야. 그런 포션 하나 먹는다고 양성학교의 훈련생이 워 트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버티는 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아니, 잠깐만.”
클레어는 지나치게 당황한 탓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다 말고 뒤늦게 강신혁의 상태를 파악했다.
전투 중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으면 강신혁의 옷은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고, 지금도 새로운 피가 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기겁하며 그에게 다가섰다.
“다쳤으면 말을 해야 될 거 아냐? 아픈 녀석 붙들고 취조하고 있었네!”
“아니 그렇게 심각하진······.”
“당장 이리와.”
그녀는 강신혁을 잡아당겨 솜씨 좋게 그의 옷을 벗겼다. 강신혁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 옷을 빼앗겨 팬티 한 장 차림이 되고 말았다. 상처 입은 그의 몸을 본 클레어가 으으, 몸을 떨었다.
“으와아, 진짜 심하네······. 그래도 네가 어떻게 이겼는지는 알겠다. 신체능력에 비해 지니고 있는 스킬이 훨씬 뛰어난가봐? 앞뒤 생각 안 하고 일단 살려고 세게 질렀지?”
“정확해요.”
신체 스테이터스에 비해 아룡환무의 스킬 랭크가 높은 것은 사실이니 거짓말은 하지 않은 셈이다.
쓰게 웃으며 긍정하는 강신혁의 온몸을 다시 한 번 살피던 클레어는 상처로도 미처 다 가릴 수 없는 그의 단련된 육체를 보며 작게 휘파람을 불더니,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큼큼 헛기침을 하며 품에서 포션 한 병을 꺼냈다.
“일단 드러난 외상부터 치료하자. 가만히 있어.”
그녀는 포션을 냅다 제 손에 붓더니 그것을 그의 상처부위에 치덕치덕 발랐다. 상처부위로 스며든 포션이 빠르게 그의 피부와 근육, 뼈까지도 회복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먹은 외상치료약의 효과까지 더해져 눈에 보일 만큼 빠른 수복이 일어났다.
“와, 너 자연치유력 엄청 좋구나. 하긴 몸도 엄청 단련······ 아, 이거 의료행위니까 신고하면 안 된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고맙습니다.”
“일단 외상은 이걸로 오케이. 문제는 내상인데······ 마침 좋은 게 있었네.”
돌연 그녀의 품에서 은빛으로 번쩍이는 메스가 튀어나왔다. 코앞에 칼날을 둔 강신혁이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신살검을 움켜쥐었지만 클레어의 목표는 강신혁이 아니라, 그가 죽인 워 트롤이었다.
“중간에 몸 일부를 날려버린 게 아깝지만 목을 단숨에 베어낸 건 괜찮았어. 이 정도면 심장도 약효를 충분히 머금고 있을 거야.”
“네?”
“갓 채취한 트롤의 심장은 독기만 잘 제거한다면 최고의 약이 되거든. 게다가 방금 사냥한 워 트롤의 심장이라면······ 어쩌면 스테이터스의 성장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강신혁에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푹! 메스를 그대로 워 트롤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그리곤 솜씨 좋게 놈의 가죽을 도려내고, 살점을 파내······ 끝내 두 손을 뻗어 놈의 심장을 뽑아냈다.
그것을 바라보는 강신혁의 온몸이 괜히 간지러워졌다. 그는 나중에라도 그녀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안 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기다려봐, 지금부터 최고로 맛있는 한 잔을 만들어줄 테니까.”
클레어가 트롤의 심장을 살피며 환하게 웃었다. 죽은 트롤이 뿜어낸 피가 클레어의 뺨에 튀어 섬뜩해보였다. 강신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응? 그런데 이거 혹시 변종인가? 어째 내가 알고 있는 워 트롤의 심장이랑 조금 다르네. 기운도 더 넘치고.”
“그런가요?”
“······뭐 지금은 괜찮아. 고민은 나중에, 나중에.”
재료를 확보한 클레어는 곧장 ‘칵테일’의 제조에 돌입했다.
우선 트롤의 심장에 가공된 마나를 주입해 그 크기를 압축시키더니, 가방에서 꺼낸 셰이커에 다른 약초며 끈적한 액체와 함께 압축시킨 심장을 넣고 워 트롤의 사체에서 피도 조금 뽑아내어 넣었다.
“흥흥흐흥, 흐응흥흥~”
그러더니 스트레이너와 캡을 닫아 고정시킨 후, 이상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셰이커를 흔들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로 칵테일 만들듯이 포션을 만들 줄이야,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는 정말로 무척 즐거워보였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녀의 전신에서 미약한 빛이 나는가싶더니 이내 그 빛이 셰이커까지 뒤덮는 것이 보였다.
강신혁에게 저렇듯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은······.
‘영력인가?’
- 정답입니다. 10HP 보너스!
다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아예 지금 상황을 잊어버린 듯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며 셰이커를 흔드는 모습은 보고 있는 강신혁마저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샤칵샤칵,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뒤섞이던 셰이커가 곧 멈추었다.
“어라, 스킬 대성공 같아. 신혁 너 운이 진짜 좋은데.”
스스로 영력을 감지하지는 못해도 스킬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캡을 열어 미리 꺼내둔 잔에 내용물을 따라내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트롤 심장 칵테일 완성. 논알콜. 자, 차가울 때 마셔.”
“얼음도 안 넣은 것 같았는데······ 잔이 차가운 거예요, 아님 셰이커가?”
“둘 다. 자자, 어서.”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 클레어. 강신혁은 단단히 각오하고는 트롤 심장 칵테일이 든 잔을 들었다. 트롤의 심장이 완벽하게 녹아든 칵테일의 내용물은 평범한 핏빛이었다.
한 번 클레어에게 눈길을 보낸 강신혁은 그대로 그것을 들이켰고······ 의외로 달콤하게 혀에 달라붙는 그 맛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무슨 마법을 쓰면 트롤의 심장과 피가 들어간 포션이 이렇게 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그 칵테일의 효과였다.
- 회복력이 폭주합니다! 모든 상처가 즉시 회복되며 지금으로부터 만으로 3일간, ‘증혈’ 버프상태가 됩니다. 신진대사가 빨라져 모든 분야의 성장이 촉진되지만 그만큼 많은 식사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 영력으로 특수 가공된 워 트롤 변종의 정수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체력이 C-랭크로 성장합니다.
목을 타고 내려간 칵테일이 피의 순환을 증폭하는 것은 물론이고, 즉각적으로 신체에 영향을 끼쳐 그의 뼈와 육신을 보다 강건하게 진화시켰다. D랭크에서 C랭크로 진입하며 문자 그대로 신체의 격이 높아진 것이다!
그 순간 강신혁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만 클레어를 껴안을 뻔 했다. 상처치료나 버프는 둘째 치고 불과 조금 전 성장했던 체력이 다시 한 단계 성장하다니, 그 결과 무려 C랭크에 입문하게 되다니······!
“어때. 효과 좋지?”
“끝내줘요! 최고예요!”
강신혁은 기쁨과 흥분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가 드러내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클레어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았어, 정성껏 만들어준 보람이 있네. 그러면 여기서 잠시만 더 기다리고 있을래? 실은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게 아니라서. 게이트가 마구 열리는 중에 B급 몬스터 일부가 몰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는 보고를 듣고 바로 온 거거든. 그놈이 이 호텔로 향했다는 걸 알고 가슴이 철렁했어.”
그 말을 들으니 확실해졌다. 워 트롤은 처음부터 강신혁을 노리고 온 것이다. 대체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무수한 의문이 머릿속을 잠식했지만 바로 해결될 의문은 아니리라. 그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써 웃어보였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응, 이제 여긴 괜찮을 거야. 그럼 바로 다녀올게!”
“아, 클레어!”
“응?”
강신혁의 상처가 모두 치유된 것을 확인하곤 곧장 뛰어내리려는 클레어를 향해, 그는 무척 부끄러워하면서도 솔직히 말했다.
“저 정말 죄송한데 피를 많이 쏟아내느라 조금······ 배가 고파져서. 아니, 많이 바쁘시면 괜찮은데.”
“너 혹시 위장에도 구멍 뚫렸어?”
클레어는 어이가 없어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일을 모두 처리하고 치킨을 사와주겠노라 약속했다.
강신혁은 그녀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