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Chapter 3.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 3
- 까아아아앙!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강신혁은 벌벌 떨리는 손을 다른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지금의 육신으로 이겨낼 수 없는 충격에 살점이 뭉개지고 근육이 찢기며 뼈가 비틀렸지만, 아무튼 죽지는 않았다.
내리쳐진 도끼를 막아낸 것은 신살검이었다. 어째선지 강신혁의 손에 그것이 들려있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강신혁은 뭔가 해볼 틈도 없이 도끼에 머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신살검]
[D+랭크]
[특수능력 개방 - 날붙이 포식]
[특수능력 개방 - 회귀]
무의식중에 제 손에 들린 신살검을 훑는 순간 강신혁의 망막에 그런 메시지가 새겨졌다.
검에 영력을 흘려보내 읽어낸 신살검의 정보를, 가이아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 메시지로 출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에 따르면, 분명 처음 얻었을 때만 해도 특수능력이 없는 일반 무구 수준이었던 신살검은 지금 특수능력이 두 개나 붙은 어엿한 아티팩트가 되어 있었다!
‘날붙이 포식. 회귀.’
강신혁은 짧은 순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파악했다.
우선 방금 강신혁이 저 괴물이 휘두른 도끼를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 신살검에 붙은 회귀라는 특수능력이 적시에 발동해, 기숙사에 잠들어 있던 신살검이 그의 손으로 ‘돌아왔기’ 때문.
그 다음, 신살검이 D+랭크로 성장한 이유. 아마도 자신이 오늘 만든 E+랭크의 미약한 영기가 깃든 장검을 신살검이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날붙이 포식이라는 능력이 그 전부터 있었는지 그 후에 생겨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덕에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 키킥, 영력. 더 많은 영력이다!
“영력? 이 새끼······.”
대개의 몬스터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말을 하는 대부분의 몬스터는 위험하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강신혁은 상대의 말에 맞춰주는 척하며 머릿속으로는 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 영력, 찾아야 해. 영력! 찾아서, 먹는다!
선택지는 두 가지, 전투와 도주.
하지만 B랭크 몬스터인 워 트롤의 변종이 자신보다 느릴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니, 도주는 사실상 불가능. 놈을 어떻게든 피해 저 창문으로 뛰어내린다면······ 그래도 역시 불가능.
‘지금은 바깥도 위험한 상황이야. 애초에 놈은 정확히 나를 노리고 이 호텔에 침입했어. 그렇다는 건, 어쩌면 놈은 영력을 추적하는 능력을 지녔는지도 몰라. 지금 놈이 다루는 영력은 본인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단 저 도끼에서 비롯된 것 같긴 하지만······.’
전생의 대장장이의 기억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자신의 영력 때문일까. 놈이 쥐고 있는 도끼를 보며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놈은 영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저 저 도끼가 품고 있는 영력에 기대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상했다. 관리자는 분명 영력이 무척 희귀한 힘이라고 한 것 같은데 오늘은 유독 영력이 바겐세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혹시 이번 이레귤러 게이트의 발생에 나나 클레어의 존재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아니, 그건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추는 셈인가.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는 보탬이 되지 않으니 그 생각은 일단 접어두었다.
‘아무튼 지금은 싸워야 해.’
그러자 결국 개 같은 결론만이 남았다.
B랭크 몬스터의 변종과 싸워야 한다고? 농담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불운하게도 지금 상황은 농담이 아니었다.
강신혁은 이를 갈며 품에 손을 넣었다.
- 카르르르르학!
“지랄!”
강신혁을 수상하다 여긴 놈이 다시 도끼를 들어 올린 순간, 강신혁은 망가지고 비틀린 손에 최대한 기합을 넣어 신살검을 내던졌다.
강신혁이 익히고 있는 스킬 십팔반무예······ 아니, 이젠 S-급으로 성장하며 이름이 바뀐 아룡환무는 투석, 투창과 같은 기술도 보조하기에, 임기응변치고는 상당히 강력한 폼이 나왔다.
- 키킥!
다만 그것은 워 트롤의 힘에 비하면 말 그대로 하찮은 수준이었다. 가볍게 휘저은 도끼에 얻어맞은 신살검이 맥없이 튕겨나가 방 저편에 푹 꽂혔다.
물론 강신혁도 그것으로 트롤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트롤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묶어두기 위한 시도였을 뿐.
그는 검을 던져내자마자 그 행방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품에서 꺼낸 포션의 마개를 따, 마셨다.
- 연금술사 특제 부스트 포션(S++)을 섭취합니다.
- 중상 이하의 모든 상처가 완쾌됩니다. 포션에 포함된 영력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여 효과가 증폭되었습니다. 치명상 이하의 모든 상처가 완쾌되며, 남은 치유력이 당분간 육신에 감돌며 당신을 보호합니다!
- 일시적으로(10분) 모든 스테이터스가 두 단계 상승합니다. 포션에 포함된 영력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여 효과가 증폭되었습니다. 일시적으로(15분) 모든 스테이터스가 세 단계 증폭됩니다!
- 본인의 영력으로 포션에 담긴 영력의 한계 그 이상을 끌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포션의 모든 능력이 한 단계 더 증폭됩니다! 일시적으로(20분) 모든 스테이터스가 네 단계 증폭됩니다!
[강신혁 - D → C+랭크]
[신체능력]
힘 - D → C+
민첩 - C- → B
체력 - D → C+
[특수능력]
영력 - E- → D
극적인 변화가 강신혁을 덮쳤다. 일시적으로나마 육신이 한계를 돌파해 진화하는 순간!
그뿐만이 아니다. 영력이 듬뿍 담긴 포션은 그의 체내 영력마저 일시적으로 증폭시켜주고 있었다!
몸이 터무니없이 가벼웠다. 하려고만 하면 하늘이라도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클레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비록 일시적이라고는 하지만 스테이터스를 두 단계나 증폭시킨다니,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힘이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강신혁의 영력이 포션과 공명하며 그 효과가 두 배가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좋았다.
‘이거면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
근육이 찢기고 뼈가 비틀렸던 강신혁의 팔도 순식간에 완쾌되었다.
강신혁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아차린 트롤이 분노해 바닥을 걷어차며 달려들었지만, 그땐 이미 강신혁의 손에 '회귀' 능력으로 복귀한 신살검이 들려있었다. 빠르게 쥐어짜낸 영력과 깨어난 아룡의 권능이 검을 강화했다!
“흡!”
-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
괴성을 지르며 덤벼든 워 트롤의 도끼와 강신혁의 신살검이 맞부딪쳤다. 이번엔 상대의 움직임을 제대로 읽고 늦지 않게 반응할 수 있었다!
무술에 능한 그는 최대한 도끼에 담긴 힘을 흘려냈지만 트롤의 힘이 워낙 강력하여 그럼에도 사정없이 밀려나고 말았다.
“끄으으으읍!”
힘이 네 단계나 강화되었음에도 트롤과 정면에서 맞부딪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니! 진짜 터무니없는 괴물이다.
다만 이것으로 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대강 파악은 할 수 있었다.
- 어떻게 했냐, 영력! 영력이 커졌다! 나한테도 줘라! 안 주면 내가 받아간다!
강신혁이 도끼에 담긴 힘을 간신히 해소하고 일단 물러나려는 순간 놈의 발이 날아들었다.
그와 함께 재차 들어올려지는 도끼. 그 다음 순간 놈이 어떻게 움직이려 할지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깨어난 아룡 특성으로 인해 단련된 그의 눈이 상대의 근육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있었다.
‘둘 중 진짜는 도끼. 발은 받아내야 한다.’
강신혁이 물러나는 것을 기대하는 움직임. 그렇다면 물러나줄 수 없다. 그는 증폭된 자신의 민첩을 믿고 빠르게 돌진했다.
도끼의 궤도 너머, 사선으로 날아드는 놈의 다리를 얇게 갈아내듯 검을 세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 칵!?
약한 스테이터스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체질 탓에 자신보다 강한 이들과 싸우는 데에는 도가 튼 강신혁이다.
그는 자신을 걷어차려는 트롤의 움직임을 간발의 차로 피하며 보다 깊숙이, 그러니까 놈의 고간이 보이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자연스럽게 내질러진 신살검이 놈의 사타구니를 찢고 상처를 새겼다.
“칫, 얕아······!”
- 크학!
강신혁의 얼굴에 검은 피가 튀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적에게 유효한 데미지를 입힌 순간.
다만 트롤의 무지막지한 회복력은 베인 상처 정도는 금세 수복하는 만큼 기뻐할 시간은 없다. 실제로 불과 방금 생겨난 상처가 스멀스멀 막히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는 이거다!’
그는 적이 상처를 입고 본능적으로 주춤하는 순간을 노려 보다 강한 공격을 내질렀다. 놈의 사타구니 사이로 빠져나가며 있는 힘껏 검을 올려 그은 것이다!
놈의 육신에 깊은 상처를 새기는 바로 그 순간, 신살검에 이전보다 선명한 용의 각인이 새겨지며 빛을 발했다.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크으으으앗!”
- 크아아아아아아악!
검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너덜너덜해진 놈의 생식기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뒤로 빠져나와 다시 자세를 잡으며 강신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트롤이라 해도 저만한 상처를 바로 재생하지는 못할 터!
그런데 B급 몬스터에게 치명타를 입혔다며 기뻐하던 바로 그 순간,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모를 충격파가 강신혁을 반대쪽 벽에 내동댕이쳤다.
“크핫!?”
- 카르하아아앗!
마력도, 영력도 아닌 무언가 불쾌하고도 불가해한 끈적한 기운. 방금 강신혁을 공격한 그 충격파가 재차 정면에서 강신혁을 덮쳐왔다.
조금 전까지 트롤의 뒤를 점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지만 그런 일들을 가능케 하는 것이 특성과 스킬의 불합리함이었다.
‘지금, 또 온다······!’
무시무시한 압력을 느낀 강신혁이 다급히 몸을 굴려 그것을 피해냈지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이번엔 트롤의 도끼날이 그를 덮쳤다.
- 죽어! 죽어어!
“칵!”
B랭크에 이른 민첩으로도 그 공격에 완벽히 대응할 수 없었다. 그나마 검면을 세워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수년간 몸에 새겨온 무예 덕분이었다.
공격에 실린 압력에 순간 허공에 붕 뜬 그였으나, 추격이 들어오기 전 어떻게든 자세를 잡고 설 수 있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울컥, 솟구치는 피를 토해내며 강신혁은 검을 부여잡고 정면을 주시했다.
- 날 다치게 했어! 캬하아아아! 날 다치게 하다니!
“씁······!”
진정한 공세는 지금부터였다. 워 트롤은 자신이 사타구니로 흘린 검은 피처럼 꺼멓게 물든 눈으로 강신혁을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끔찍한 무게의 도끼, 그리고 어디서 날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충격파까지! 만약 강신혁의 감각이 극한에 가깝게 활성화되어 있지 못했더라면 진즉 충격파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을 터였다.
- 어디 더 해봐! 더 해보라고! 카르하아아아!
“끅.”
강신혁은 비틀거리면서도 용케도 놈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한 번 공격을 받아칠 때마다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막중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의 몸에는 아직 연금술사가 준 포션의 약효가 남아있었다.
끊어지고 부러질 것 같은 몸을 포션의 기운이 감싸 아슬아슬한 영역에서 보호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을 터였다. 포션의 기운은 결코 무한하지 않았다.
‘클레어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두 눈을 부릅뜨고 놈의 공격을 받아치며 강신혁은 생각했다. 답은 ‘아니오’였다.
워 트롤은 빠르고 강했으며 치밀했다. 그것뿐이라면 증폭된 스테이터스로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시시때때로 날아드는 충격파. 최대한 흘려내고 있었지만 몸에 데미지가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몸이 더 지치기 전에. 영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강신혁의 눈에 굳은 의지가 깃들었다. 신살검을 쥔 손에 힘이 더욱 세게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신살검의 검무였다.
그 검무에 담긴 미증유의 힘이라면 워 트롤의 도끼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충격파든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으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그걸 어느 정도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일시적으로나마 C+랭크에 이른 지금의 육신이라면, D랭크의 영력이 함께한다면 그 움직임을 따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따라해야만 한다.
‘신살검이 품고 있는 검무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나 자신이 재현해내야 해······ 신살검의 근원을, 영력으로 이끌어 나의 근원에 잇는다!’
강신혁이 눈을 감았다.
그에게서 뻗어난 영력이 신살검을 감싸며 그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신살검에 담긴 심상이 강신혁의 자아를 뒤덮는 것은 순간의 일이었다.
욱씬, 머리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 동시에 온몸의 근육이 죄어들었다.
- 음?
적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를 상대하던 트롤은 이놈이 미쳤나 싶어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공격하는 손길을 늦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깔끔하게 목을 잘라낼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 목을 내놔!
강신혁의 목을 향해 도끼날이 일말의 자비도 없이 짓쳐드는 그 순간.
“끄윽······!”
뿌드득, 가죽이 찢기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강신혁이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아직 공격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양다리와 양팔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지금의 능력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동작을 재현하고 있기에 뼈에, 근육에 무리가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검무’는 미완성이었지만, 워 트롤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거기서 나아가······.
- 크학!?
신살검에 새겨진 용의 각인이 찬란한 빛을 발한 그 순간, 도끼를 들고 있던 트롤의 팔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놈의 두꺼운 팔이 도끼를 붙든 채 바닥으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피를 분출했다. 인식하지도 못한 순간 벌어진 일에 트롤은 그 검은 눈을 크게 뜨며 경악했다.
- 어떻······!
트롤은 훌륭한 전사였다. 팔이 잘린 순간 닥쳐오는 격통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충격파를 쏘아내 강신혁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으니까.
만약 강신혁이 이 순간 신살검에 깃든 검무를 흉내 낼 생각을 하지 못했더라면,
만약 영력으로 자신과 신살검을 연결해 검무의 이미지를 재현해낼 생각을 하지 못했더라면,
트롤은 무사히 그의 목적을 완수할 수 있었으리라.
“흡.”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허공에 검이 미려한 궤적의 선을 수놓았다.
처음 내질러진 검격은 충격파를 파훼했고, 이어서 내질러진 검격은 트롤의 목을 그었다.
“끄으윽······.”
뿌직, 팔 근육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두통이었다.
한계를 맞이한 뇌가 심상을 강제로 끊어버리는 그 순간, 강신혁은 헉 소리가 날 만큼 끔찍한 고통을 참으며 두 눈을 떴다.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트롤의 목과 시선이 마주쳤다.
“하.”
경악에 가득 찬 검은 눈을 마주하며 강신혁은 전신이 뜯겨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맑게 웃었다.
적을 죽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