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자마자 VIP-12화 (12/345)

12화.  Chapter 3.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 2

“넓네요.”

“편한 데 앉아있어. 나 잠깐 겉옷 좀 벗게.”

“네, 넵.”

강신혁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클레어 보일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분명히 사줄 거면 치킨이 좋다고 말한 건 강신혁이었지만······.

‘그래? 그럼 내 방으로 가. 지금 머물고 있는 호텔 룸서비스로 나오는 치킨이 맛있어.’

‘치킨이 룸서비스도 돼요?’

‘원래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어.’

그래서 얼결에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끌려왔다. 그것도 도심 속에 나 홀로 30층까지 솟아있는 초고급 호텔.

기억난다. 분명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서울에서 기념비적인 제10회 세계초인회의가 열리는 것을 기념해 글로벌 기업 천월에서 세운 호텔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최상층 스위트룸까지 끌려왔는데 정말이지 장난 아니게 넓고 편안한 곳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 저 까마득한 아래에 보이는 사람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아니 잠깐만.’

현실도피를 하고 있던 강신혁은 그 순간 제정신을 찾았다. 이거 장난 아니게 위험한 상황 아닌가!? 성인 여자랑 같이 호텔 방에 들어오다니! 이거 지금 시점에서 신고해도 연금술사가 잡혀가는 수순이 아닌가!?

“그럼 이제 룸서비스 시킨다~ 너 진짜 세 마리 먹어?”

“아, 진짜 먹어요.”

강신혁은 고민을 하다 말고 들려온 치킨 소리에 냉큼 응답했다. 그 직후 자신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스스로 건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이런 바보 같으니!

“남자애들 진짜 잘 먹는구나······ 아 여기. 치킨 세 마리······ 아니 네 마리. 술도 같이. 웬 맥주, 치킨엔 소주지. 네네.”

강신혁이 자신의 위장을 저주하는 사이 클레어 보일이 전화를 마치고는 그가 앉아있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코트를 벗어 한결 가벼워진 차림이 되니 도발적인 신체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강신혁이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돌리자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아 뭐야 진짜 귀엽네.”

“귀여워서 죄송합니다. 아직 어리거든요.”

“아냐, 지금의 자신을 소중히 해. 그렇게 순진하고 귀여울 수 있는 것도 지금 이 시기뿐이니까. 좀 더 노골적이고 천박한 어른으로 진화해버리는 것도 금방일걸. 그놈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빤히 들여다본다니까.”

클레어 보일이 조금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을 보며 강신혁은 분별없이 흥분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건······ 괴로우시겠네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또 그것 나름 즐거우니까 괜찮아. 정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땐 감추면 되니까. 상대와 시간, 장소를 가리는 것. 기본이지? 아, 그런데 내가 감추려하는데도 쓸데없이 들추려는 놈들은 사정없이 아웃이야. 너도 그런 여자들은 조심해.”

그 말에 따르면 지금은 드러내고 싶다는 얘기가 되는데······ 아니, 강신혁은 거기서 생각을 멈추었다. 지금은 쓸데없이 깊이 생각하지 말자. 연금술사가 자신을 이런 곳까지 데려온 데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아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 띵동

그때 마침 벨이 울렸다. 일어나려는 강신혁을 앉혀놓고 클레어 보일이 나가서 룸서비스를 받아왔다. 가녀린 팔로 커다란 은쟁반을 두 개씩이나 아무렇지 않게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역시 초인은 초인이구나 싶었다.

“일단 먹으면서 얘기해.”

“아, 넵!”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강신혁은 정말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클레어 보일과 같은 미녀가 앞에 있는 상황에 치킨이 보이자마자 정신없이 먹는데 열중했기 때문이다.

“진짜 잘 먹네.”

“우물우물······ 배가 좀 고팠어요.”

“기사학과지? 그럴만해.”

연금술사 정도의 클래스라면 무수한 초인들과 함께 전투를 벌인 경험이 있으리라. 강신혁의 발달된 신체를 보고 그런 반응을 하는 그녀에게 강신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충설명을 했다.

“네, 근데 수련 때문이 아니라 동아리 땜에.”

“동아리?”

“네. 야금술을 좀.”

강신혁이 그 말을 하며 닭다리를 통째로 입 안에 욱여넣었다. 야금술이라는 말에 클레어 보일은 소주를 제 잔에 따르다 말고 살짝 경직되었다.

“야금술?”

“네. 쇠 두들겨서 검 만들고 그러는 거.”

“생산계열 특성이구나. 신영에 생산계열 초인도 다니나.”

“음······ 아, 뭐어. 전투능력도 없는 건 아닌데요.”

“그렇겠지. 아까 움직임을 봐서 알아.”

비록 치킨을 얻어먹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다시 볼 일도 없는 사람한테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강신혁이 그런 생각으로 대충 둘러대는데, 연금술사의 눈이 한층 깊어졌다.

“생산 계열이라, 그러면 아까 내가 느낀 건 어쩌면 생산 계열 공통의 무언가······.”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마음껏 먹어.”

마음껏 먹으라고 했으니 그 말대로 하기로 했다. 무려 두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운 강신혁은 가볍게 손과 입가를 닦은 후 세 마리째의 치킨은 좀 더 차분히 그 맛을 즐기며 먹었다. 그녀가 장담했던 대로 정말 맛있었다.

“기사학과 애들은 다들 너처럼 잘 먹어?”

“특성마다 다르긴 한데, 저처럼 몸을 많이 쓰는 특성은 아무래도.”

더구나 영력을 소모하면 허기가 진다고 하니 앞으로 먹는 양이 늘면 늘었지 줄진 않으리라. 그가 담담히 설명하며 가슴살을 찢어 입에 넣는데, 어느덧 소주 한 병을 비운 연금술사가 좋아, 하고 기합을 넣으며 손뼉을 쳤다.

“그럼 이제 슬슬 치킨 값을 해줬으면 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야?”

“······네, 초인양성학교 신영의 기사학과 1학년 강신혁입니다.”

드디어 각오하고 있던 순간이다.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기대하고 마는 소년의 마음. 애써 그것을 억누르는 이성. 강신혁은 대장장이 모루의 기억을 떠올리며 애써 자신을 진정시켰다.

“음음, 강신혁. 그래. 내 이름은 알지? 내 별명도 알고 있었고.”

“네, 연금술사님. 이름은 클레어 보일 맞으시죠.”

“맞아. 그냥 편하게 클레어라고 불러. 나도 신혁이라고 부를게.”

거리감이 단숨에 좁혀졌다. 강신혁은 보다 긴장하며 연금술사······ 클레어와 마주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말이 그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각성했거든? 세상에 넘쳐나는 무수한 것들을 서로 조합하거나 가공해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내 재주야.”

“음, 네······.”

왜 갑자기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밤 강신혁이 걱정하던, 혹은 기대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이지만 그보다 안도가 더 큰 것은 그가 아직 순진한 소년이라는 증거일까.

“마법폭탄, 간이 함정, 특수 마탄, 포션······. 난 무수히 많은 물건을 만들어내어 단숨에 유명해졌어. 뭐 그러는 과정에서 내 능력도 좀 강해지고. 난 내가 만든 물건을 보다 효율적으로 다루는 능력도 갖고 있거든.”

“굉장하네요.”

그야 굉장한 게 당연하다. 연금술사는 초인랭킹 500위 안에 드는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그것도 순수한 그녀의 무력이 부족해서 문제지, 그녀의 특성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중요도로만 따져 100위 안에 드는 것이 당연한 인재였다.

새삼스럽지만 지금 강신혁이 그녀와 이 호텔 방 안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신혁,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음······ 포션이라고 들었는데요.”

“맞아. 여러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결국 하나로 혼합된 액체로 만들어낸다는 게 좋아. 이래봬도 각성하기 전까진 바텐더가 꿈이었거든.”

클레어가 그런 말을 하며 아래 놓여있던 가방을 끌렀다. 그 안에 셰이커며 지거, 바 스푼과 머들러 같은 칵테일 도구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지금도 포션은 전부 이걸로 만들어. 같은 포션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배합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거든. 포션을 최대한 맛있게 만드는 것, 그게 내 지상목표야.”

“겁나 멋진데요.”

“역시 멋지지? 그치?”

연금술사의 감성과 남자 고등학생의 감성이 하나로 통한 순간이었다.

“큼, 흥분해서 미안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게. 내가 말이지, 요즘 포션을 만들 때 종종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단 말이지.”

“이상한 느낌?”

“응. 내게서 포션으로 뭔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 마력과는 별개의 무언가가.”

그때까지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강신혁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잠깐만, 이거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은데······.

“분명히 뭔가가 있는데 그게 뭔지 잡아낼 수가 없어. 하지만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만들어낸 포션은 확실하게 효과가 좋아. 향기도 좋아. 한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 됐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걸 해냈는지 알 수가 없어.”

강신혁은 그 시점에서 확신했다.

이 여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영력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아직 각성하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끔씩은 재료에서도 그런 걸 느낄 때가 있거든. 희귀한 재료들을 파는 네트······ 암시장이 있는데, 거기서 공수한 재료는 기묘하게 좋은 향기가 나. 마음 편안해지는 향기가. 그것들을 좀 더 많이 다룰 수 있게 되면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다 사시면 되잖아요. 아, 혹시 공급이 제한되나요?”

“아니, 돈이 부족해.”

“돈이?”

수많은 초인들이 전투를 위해 억만금을 주고 그녀의 포션을 사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강신혁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클레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달러나 원화는 별로 통하지 않는 시장이라······ 아무튼 그런 게 있어. 그래서 헤매고 있던 찰나, 신혁을 만난 거야.”

“저를······.”

“응. 너한테서 그 기묘한 향기가 나거든.”

강신혁은 제 소매를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아까 샤워를 마치고 나왔기 때문에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설마 연금술사는 정말로 영력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관리자에게 묻고 싶었지만 이 여자 앞에서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없다. 바로 그때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관리자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 영력은 온 우주를 통틀어 가장 희귀하고 독특한 능력이며, 관점에 따라 좌우되는 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느끼는 방식도, 다루는 방식도, 그 효과까지도 모두가 다릅니다.

그렇게 희귀한 기운을 다루는 사람이 지금 이 공간에 두 명 모여 있는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강신혁이 영력을 다루기에 연금술사가 그에게 이끌렸다고 할 수 있으니 마냥 이상하다고 할 일도 아니긴 했다.

- 회원님께선 영력을 뚜렷한 열이 담긴 에너지로 느끼고 있고,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쉬이 근원에 접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터무니없이 대단한 일입니다. 그녀는 아직 그 영력을 제대로 느끼지도, 다루지도 못하며 향기로밖에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설명에 강신혁은 마음속으로 관리자에게 감사했다. 요는 강신혁은 영력에 한해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재능이 뛰어나다는 얘기였다.

- 회원님께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감지한 관리자의 10HP 보너스!

이젠 그냥 아무 말도 안 해도 마구 보너스를 안겨줄 기세였다.

“그래서 널 붙잡은 거야. 실마리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어. 그러니까······ 가능하면, 말해줬으면 좋겠어. 대가는 얼마든지 치를 테니까.”

한편 강신혁과 관리자 사이에 일어난 촌극을 모르는 클레어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품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을 꺼내어 그에게로 스윽 밀었다.

강신혁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진한 영력과 마력에 감탄했다. 양성학교 학생 따위 신분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만약 이것이 연금술사가 만든 포션이 맞다면 그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터. 그녀가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작은 성의야. ······말해줄래? 넌 그 힘에 대해, 이 향기에 대해 알고 있어?”

“저는······.”

고뇌는 그리 길지 않았다. 영력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이미 반쯤 인지하여 다루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말해주든 말해주지 않든 조만간 길을 찾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 길을 찾는 것을 조금 도와주는 대가로 그녀와 끈을 만들어놓는 쪽이 압도적인 이득이다. 작은 성의라며 이만한 포션을 내놓는 사람이다.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 부르르르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그 순간 만화처럼 클레어의 폰이 울렸다. 아니, 그 직후 건물 전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이거.”

“응, 아마.”

강신혁의 바지에 꽂혀있던 스틱도 무지막지하게 울리고 있었다. 화면을 켜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이레귤러 게이트 다수 발생]이라는 긴급재난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이레귤러.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지 미리 알 수 없는 기습성 게이트. 지속성인지 단발성인지 방출형인지 흡수형인지, 어떤 등급의 몬스터가 얼마나 나타날지도 모르는 최악의 재앙 중 하나······.’

그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솔직히 이 문자는 받아봤자 의미가 없다. 언제나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발송이 되니까!

실제로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재앙이, 순식간에 전염되고 있었다.

“······젠장.”

까마득한 옛날, 게이트 대역류로 인해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 날을 떠올리며 강신혁은 본능적으로 이를 빠득 갈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날의 기억만은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그가 초인이 되고자 다짐했던 그 날. 증오와 절망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배운 그 날. 그 날 이후로 저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그 날의 풍경이 뇌리를 지배하고 그를 놔주질 않았다.

“응, 은아? 맞아, 사이렌 소리 들려. 몬스터들의 고막을 터트려서 죽이려는 시도라면 관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 전에 내 고막이 터지겠어.”

그의 옆에서 어느덧 클레어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재난문자가 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화를 받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에 강신혁의 마음도 조금, 가라앉았다. 그는 눈을 살짝 뜨고 연금술사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만큼이나 차분한 표정이었다.

“몇 개나 생긴 거야? 많기도 하네. 너는 어디로 가는데? 아, 응. 뭐 미리 예측된 거 있어? ······최소 A급 다수? 후, 알겠어. 서두르면 되잖아.”

전화는 금방 끝났다. 연금술사가 자신의 가방을 챙기더니 그것을 냅다 휘둘러 바깥 창문을 깨버렸다.

“신혁, 그렇게 돼서 나 잠깐 몬스터 좀 잡고 올 테니까 넌 이 방 안에 숨어있어. 이래봬도 여기 호텔 보안 쩔어.”

방금 네가 그 보안 시스템 중 일부를 깨부순 것 같은데, 라고 눈치 없이 태클을 걸지는 않기로 했다. 그녀는 지금 이 도시에 발생한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빠른 출동 수단을 고른 것이리라.

“다녀오면 얘기 이어서 하자. 해줄 거지?”

“네, 해드릴게요.”

강신혁은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류의 적과 맞서 싸우러 가는 전사에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말했다.

“그러니까 무사히 다녀오세요.”

“그 표정 좋네. 기운 났어. 좋아, 다녀올게.”

강신혁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클레어는 보기 좋게 눈을 기울여 웃곤 그대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거기서부터 어떻게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꽉 쥐고 있던 가방이 팽창하며 순식간에 행글라이더로 변했다.

‘내가 두 살만 어렸으면 진심 개멋지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마도 아티팩트인 것이겠지, 행글라이더는 밝은 빛을 내며 바람의 힘을 활용해 순식간에 그녀와 함께 저 멀리 사라졌다.

본업은 연금술사에 꿈은 바텐더에 도심 속 행글라이더 비행까지 하다니 남자 중학생의 로망이란 로망은 모조리 혼자서 실현하는 멋진 누나였다.

나이를 저만큼 먹었으면 부끄러워할 만도 한데 아직은 한창 청춘인 모양이었다.

“후, 그럼 나는······.”

이레귤러 게이트가 발생한 상황에 거리로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다른 능력자들처럼 거리로 나서 몬스터를 패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숨어있어야 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마음을 정한 그는 그대로 화장실에 틀어박히려다, 테이블에 놓인 채인 붉은 포션을 손에 쥐었다. 모르긴 몰라도 현금 가치로 수억은 가볍게 호가하리라. 방치해둘 수는 없다.

- 마시면 일시적으로 모든 스테이터스를 증폭시켜주는 영약입니다. 회원님께서는 영력을 능숙하게 다루시는 만큼 능력치의 추가 상승, 혹은 영구 상승까지도 노려볼 수 있습니다.

“······수억보다 더 나가겠는데요. 아냐, 가격 말씀 안 해주셔도 돼요. 절대 해주지 말아요.”

그는 그것을 품에 소중히 집어넣고 돌아섰다. 바로 그 순간.

-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바로 지근거리에서.

끔찍한 충격에 튕겨난 강신혁은 반대편 벽에 날아가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히는 와중에도 포션을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유리병의 재질은 무척 튼튼했다.

- 크하······ 키그르륵, 킥킥.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이한 짐승의 목소리, 신기하게도 그것은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강신혁은 저릿저릿한 몸을 허겁지겁 일으키며 전방을 살폈다. 아까 클레어가 깨놓은 창문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 너머로.

들어온.

- 키히······ 찾았다, 찾았다아.

말을 하는 검은 괴물이.

- 다른 냄새. 특별한 냄새. ······영력의 냄새!

- 어서 포션을 드세요! B급 몬스터 워 트롤의 변종입니다, 이대로는 상대할 수 없습니다!

강신혁을 노려보며, 손에 든 도끼를 내리쳤다.

영력이 담긴 도끼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