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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Chapter 3.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 1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 이만우는 사실 처음부터 강신혁에게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는 바가 있었다.

‘여태껏 이 동아리에 들어오려고 한 놈들은 모두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많은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강신혁은 어떤가. 그는 부실에 들어온 순간 바로 공방을 찾아내곤 환희했다.

그 노골적인 표정을 못 알아볼 리가 만무하여, 이만우는 처음부터 그를 테스트해볼 요량으로 자리를 비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설마 이런 결과가 될 줄은.’

끽해봐야 작업 도구를 대하는 자세, 나아가 야금술의 기본 정도를 판단할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싹수가 있어 보이면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연결시켜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볍게 벌점이나 먹이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 자리에서 검을 하나 뚝딱 만들어낼 줄이야.

그것은 숙련된 대장장이들도 그리 쉬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완성된 검이 품고 있는 기운은 분명한 ‘스킬’에서 비롯된 것.

‘야금술의 보유자다.’

물론 야금술 스킬이 없다고 해서 검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이아 시스템이 없던 시절에도 대장장이들은 무기나 방어구를 잘만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으론 몬스터를 대적할 수 없다. 오직 스킬 야금술, 혹은 그에 버금가는 생산 스킬을 지닌 자들이 만들어낸 무구만이 몬스터에게 유효한 타격을 가하거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몬스터 드롭, 혹은 게이트 공략으로 얻는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강신혁이 만들어낸 이 검은 완벽한 ‘몬스터 대적 무기’였다.

그것도 아직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하나 이만우조차 쉬이 짐작하기 힘든 고유의 기술로 제작된······!

‘어쩌면 이 녀석은. 아니, 이른 기대는 금물이다. 기대하면 언제나 배신당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만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노인의 머릿속에서 떠돌던 무수한 상상이 깨끗이 사라지고, 이내 ‘보류’라는 한 단어만이 남았다.

‘하지만, 당분간 지켜보는 정도라면 괜찮겠지.’

반면 강신혁은 그런 그의 의중을 알 도리가 없어 그를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작업하는 중에는 주위가 보이지도 않았나보군.”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니아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야. 잘못이 아니지. ······멋대로 공방을 이용한 것은 잘못이지만.”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하지만 선생님, 전 정말로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습니다.”

재차 엄격해지는 이만우의 표정. 강신혁은 그에 굴하지 않고 똑바로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망치를 잡아보기 전이었다면 몰라도, 망치를 붙잡고 하나의 검을 만들어낸 지금은 결코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쇠를 두드리며 느꼈던 일체감과 충족감, 그것은 강신혁이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는 감각이었다. 능력의 강화도 강화고, 동화율을 높이는 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야금술이 너무 즐거워서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허······.”

노인은 여전히 심중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이미 말했을 터다. 이 동아리는 폐부가 확정되어 있다고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폐부가 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보는 방향으로······.”

“쇠를 두드리는 실력이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것과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오늘은 첫 시도라 좀 미숙해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점점 성장할 겁니다.”

심드렁한 척 연기하며 강신혁과 대치하던 이만우는 그의 말을 믿지 못해 무심코 반문하고 말았다.

“첫 시도라고?”

“예.”

“그럴 리가. 생초짜가 그렇게 안정적으로 쇠를 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직접 망치를 잡은 적은 없다 해도 도제로 족히 3년은 굴렀을 텐데?”

“도제 경험도······ 없습니다.”

강신혁은 그의 소름끼치는 표현에 솔직히 경악했다.

확실히 스스로 한 것은 아니되 타인이라고도 볼 수 없는 모루의 기억을 계승한 지금의 강신혁은 도제로서 경험을 쌓았다 해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다만 환생이나 히어로 유니버스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으므로 당장은 그의 말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뭐냐, 어제오늘 각성이라도 했다는 건가?”

“각성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야금술 스킬을 얻었습니다.”

“아니아니······ 야금술 스킬이 있다는 것은 그 검에 깃든 기운만 봐도 알 수 있지. 내가 말하는 것은 스킬이 아닌 경험의 영역이다. 후······ 잠시 검을 줘보겠나?”

“검도 볼 줄 아세요?”

강신혁의 하찮은 질문에는 대꾸하지 않고 검을 받아든 이만우가 자루부터 검신, 검극에 이르기까지 검의 모든 부분을 샅샅이 살폈다.

단춧구멍처럼 작은 노인의 두 눈이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어, 강신혁은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이 읽히는 듯한 공포마저 느꼈다.

“하······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재밌구나. 이건 초보가 빚어낸 명검이라 해야 할지, 신이 발로 만든 이쑤시개라 해야 할지.”

얼마나 오랜 시간 검을 살피고 있었을까, 그것을 다시 강신혁에게 내밀며 이만우가 킥킥 웃었다.

“그렇지. 섬세함과 난폭함, 조급함에 애정, 분노까지 한데 섞여 있으니, 마치 명인이 우주복을 입고 검을 벼려낸 꼴이 아니냐.”

“큭!?”

강신혁이 전율했다. 그야말로 강신혁의 지금 상황을 완벽하게 꿰뚫어보는 말이었다.

강신혁의 전생에 대해 알 리도 없을 텐데 고작 검을 살핀 것만으로 이런 말을 하다니,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좋아, 생각이 바뀌었다.”

강신혁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던 때, 문득 이만우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조금은 지켜봐주지. 입부를 허가해주겠다는 말이다.”

그가 사실은 쇠를 두드리는 강신혁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에게 이 제안을 하려고 했다는 것을, 강신혁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검을 살펴본 직후 그가 강신혁에게 더한 기대감을 갖게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나는 이만우다. 보충학과 교사 이만우.”

“보충학과······?”

신영에는 기사학과와 마법학과만이 존재할 터. 그런데 보충학과라니 대체 무슨 얘기지?

고개를 갸웃하는 강신혁에게 이만우는 그저 그런 게 있다고 말할 뿐이었다. 보충학과의 존재도,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강신혁의 모습에 내심 씁쓸함을 느꼈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기뻐할 필요 없다. 네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면’, 이 동아리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확실하게 문을 닫게 될 테니까.”

“성과······.”

“거기에 대해선 나중에 알려주지. 오늘은 이만 가봐라. 그래······ 그렇지, 부실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언제든 쇠가 두드리고 싶을 때 와서 두드려도 좋다. 철괴는 마음껏 써라.”

“선생님!”

강신혁은 감격하여 이만우에게 악수라도 요청하려 했으나 그는 매정하게 강신혁의 손을 쳐냈다.

강신혁은 혹시 이만우가 말로만 듣던 츤데레가 아닌가 생각했으나 그는 단지 머릿속이 복잡해 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만 가라니까.”

“넵,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었으니 지금은 이만 물러갈 때!

그런데 그가 문을 닫으려고 뒤돌아섰을 때, 여전히 열려있는 공방 문 너머로 이만우가 한 켠에 쌓여있던 주괴 하나를 집는 것이 보였다.

‘음······.’

그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만우의 모습에 문득 처량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째서일까.

순간 노인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강신혁은 그것을 눌러 참고는 얌전히 부실 문을 닫았다.

‘이것 참······ 오늘은 뜻하지 않게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됐군.’

홀로 남은 이만우는 그러고도 한동안, 우두커니 공방 안에 서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첫 시도로 무려 옵션을 품고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어낸 소년에 대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한 바로 이 날 자신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한, 실로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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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관을 나온 강신혁은 작업을 하며 붉게 달아오른 뺨을 기분 좋게 식혀주는 밤바람에 미소를 지으며 기숙사로 향했으나, 서글프게도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은 끝나 있었다.

“여덟 시까지는 왔어야지.”

“어떻게 안 되나요, 아주머니?”

“내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려도 없는 건 없어, 학생.”

강신혁은 식당 아주머니에게 애원했으나 버스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몇 시간동안 대장일을 했으니 배가 너무 고파 뭔가를 먹긴 해야겠는데 그렇다고 에이렌 젤리를 먹을 수도 없고.

답은 하나 뿐, 바로 학교 밖에서 저녁거리를 사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장검을 방에 놓고 샤워를 한 후, 체육복 차림에 지갑만 들고 밖에 나왔다.

기숙사에서 학교 외부로 나가는 정문까지는 길고 긴 언덕길이 이어졌다. 아까까진 분명 밤바람에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덥고 습하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내리막이라 다행이다.

‘젠장, 이럼 품위유지비를 까야 되잖아.’

품위유지비는 최대한 쓰지 않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일로 까게 될 줄이야. 강신혁은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야금술을 수련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가벼운 대가입니다.

“그건 그렇지만요······ 앞으로는 저녁을 먹고 부실에 가야겠어요. 비룡관 폐문 시간을 미리 알아둬야겠는데.”

관리자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드디어 학교를 빠져나와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려는데, 마침 편의점에서 나오던 여자와 부딪쳤다.

“앗.”

“죄송합니다.”

너무 배고픈 나머지 눈앞이 안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강신혁이 잽싸게 사과하며 얌전히 물러서는데, 그와 부딪힌 여자가 문에서 나오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기?”

“하.”

아니, 이상한 감탄사 내지 말고 비키라고. 강신혁은 그런 생각과 함께 여자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연금술사! 백인하가 보여준 사진에 찍혀있던 연금술사 클레어 보일이었다!

아니, 이 여자가 왜 여기에? 혹시 뇌제는 근처에 없나? 이 빨간 머리랑 눈은 혹시 천연인가? 순간 무수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진짜 겁나 예쁘네.’

그는 클레어 보일의 미모에 빨려들 것만 같은 정신을 다잡으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실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미모를 지닌 그녀에게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 사람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백자처럼 새하얀 피부, 화려한 적발에 전체적으로 나른한 인상을 주는 미모가 어울려 퇴폐적인 매력이 물씬 풍겨났다. 글래머러스한 몸매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강신혁이 이런 초근거리에서 연금술사와 마주쳤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백인하는 크게 분노하고 부러워하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웃고 말았다.

‘오늘 비룡관에서 마주쳤던 선배를 보고 어른스러운 미녀라고 생각했는데 수정해야겠다. 진정한 어른의 매력이 이곳에 있었다니······!’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넋이 나간 채 이대로 멍하니 서있는 것도 바보 같으니, 강신혁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자신을 다잡고는 그녀를 지나쳐 편의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강신혁의 어깨 위에 연금술사가 손을 뻗어······ 그는 그것을 감지한 순간 빠르게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작게 회전해 그녀와 마주보고 대치했다.

생각보다 몸이 빠르게 반응해 그도 놀랐다. 새삼스레 자신의 스테이터스와 스킬들이 성장했음을 실감했다.

“무······ 무슨 용무시죠?”

“오, 제법 빠르다 너.”

연금술사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말로 말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 비슷한 경우를 이미 겪었기에 동요는 크지 않았다.

“연금술사 님께 감히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닙니다만 저도 일단 초인양성학교 학생이라서요.”

“나 알고 있구나. 얘기가 빨라서 좋네.”

연금술사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아찔한 미소였다.

“그러고 보니 그 체육복······ 신영이지? 널 해치려던 건 아냐. 나 어차피 근접 전투력은 너보다 덜할걸.”

“실례했습니다. 그냥 뒤에서 누가 접근하는 데 민감해요.”

“신영이 최고의 초인양성학교인 줄은 알고 있지만 킬러의 교육방식을 고수하는 줄은 몰랐는걸. 아, 그런데······.”

기껏 거리를 벌렸는데 연금술사가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그녀의 붉은 두 눈이 강신혁의 시야에 가득 담겼다. 은은한 향수 냄새가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너, 잠깐 시간 있어?”

“······네?”

혹시 나 지금 헌팅 당하고 있나? 강신혁은 경악했다. 얼굴이 그리 모나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지만 그렇다고 연금술사 정도 되는 사람이 한눈에 반할 정도는 결코 아닐 텐데!?

“아, 아니······ 수상한 의도는 아니고 그냥 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서 그래.”

흠칫! 강신혁은 본능적으로 제 몸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는 더더욱 당황하며 덧붙여 말했다.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연금술사가 외쳤다. 지금까지 한 말 중에 가장 수상한 말이었지만, 그 순간 신기하게도 강신혁의 떨림이 멎었다.

“감사합니다.”

“어······ 어? 진짜 괜찮아? 요즘 애들 이런 걸로 낚여?”

“그런데 사주시는 거면 치킨이 좋아요. 저 세 마리까지 가능한데······.”

그는 아직 미녀보다는 먹을 것에 약한 성장기 청소년이었다.

더불어 지갑사정에 약한 청소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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