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Chapter 2. 성장의 방정식 - 3
다음날 새벽, 일찍 눈을 뜬 강신혁을 제법 특별한 메시지가 반겨주었다.
- 오늘의 로그인 보너스로 성장 속도 버프가 주어집니다! 만으로 이틀간, 스테이터스와 스킬의 성장 속도가 30% 향상됩니다!
“이런 것도 있었어요!?”
물론 VIP에게 로그인 보너스가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다만 어제까지는 500HP를 받을 뿐이었는데 오늘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보너스가 그를 찾아온 것이다!
실제로 온몸에 불가사의한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사흘째는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어제 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특별할 줄이야!
스테이터스와 스킬의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니, 그런 건 게이트 안에서 극히 드물게 발견되는 비약을 마셔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 VIP 회원님께만 제공되는 히어로 유니버스의 로그인 보너스는 특별합니다. 이치를 벗어난 힘으로, 지금의 회원님께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죠. 동화율을 높이면 더욱 다양한, 수준 높은 로그인 보너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즉 말해주지!”
강신혁은 벌떡 일어서서 수련장으로 향했다. 무려 만으로 두 시간 동안 실컷 무기술과 영력을 수련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진정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스킬 성장 속도도 빨라진다는 건 야금술도 포함되겠구나. 좋아, 반드시 오늘 안에 망치를 잡는다!’
그렇다면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수련 후 샤워를 마친 강신혁은 아침식사를 하고 에이렌 젤리 하나를 깨물어먹으며 기숙사를 나와, 신영 기사학과 체육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비룡관으로 향했다.
“처음 와봤는데······ 진짜 크네. 어지간한 학교 부지 하나 들어가겠어.”
비룡관은 신영의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자기계발활동을 지원하며 편의를 도모하는 시설로, 쉽게 말하면 학생회를 비롯해 학회와 봉사단체를 시작으로 하는 온갖 동아리 부실이 들어차 있는 건물이었다.
초인학교의 명문으로 꼽히는 신영 쯤 되면 동아리에도 굉장한 힘이 있어서, 유명한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학생의 권위가 한 단계 상승하기도 했다.
그중에도 학생회와 비룡기사단, 신영마도학회, 이 세 가지 단체가 지닌 권위는 압도적이었다. 단적으로 말해 이 셋 중 하나에 소속된다면 미래의 진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난 셋 다 흥미 없지만.’
학생회는 학교축제와 수학여행, 자매학교 교류회 등등의 굵직한 행사를 지휘하며 평소에도 학생들을 관리하는 영광스러운 역할을 맡는데, 대개 능력자 명문가의 자제들이 독점하고 있어 일단 일반 학생들은 애초에 들어갈 꿈도 꾸지 않는 단체였다.
권력에 재력, 무력까지 삼박자를 갖춘 금수저들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학생회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를 벌이는 살벌한 전장.
백인하는 그것을 두고 핏물 젖은 걸레 냄새가 난다며 혹평했지만, 그 비범한 말 한 마디로 이미 놈의 금수저 수준을 측정할 수 있었다.
‘비룡기사단은 기사학과의 최상위 엘리트계층이 들어가는 집단이고, 신영마도학회는 비룡기사단의 마법학과 버전. 만약 둘 중에 내가 들어간다고 하면 비룡기사단이긴 한데······.’
그 특권의식에 절은 집단이 마력이 없는 강신혁을 받아줄 리 만무할 뿐더러 설령 받아준대도 이젠 강신혁 쪽에서 사절이었다.
물론 입학했을 땐 그들을 살짝 동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야금술. 야금술을 다룰 만한 동아리는 없나?’
그는 비룡관 입구에 놓인 동아리 안내 팜플렛을 훑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 야금술을 수련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 냉정히 생각해보니 야금술이라는 게 기숙사에서 수련할 만한 기술은 도저히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내의 대장간을 빌리는 건 에바고.’
자신이 빌리기에 딱 좋은 조건의 공방이 인근에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매일 학교 밖을 들락날락하는 것도 힘들고, 결정적으로 돈이 없었다. HP라면 많았지만 이건 환금도 못할 뿐더러 회원 권한이 막혀있어 자유롭게 쓸 수도 없다.
‘그래서 동아리라는 결론이 나온 건데······.’
신영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엘리트로 키워내기 위해서 돈을 얼마든지 쓸 준비가 되어있는 기관이었다. 그 일환으로 기백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동아리를 만들고 관리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쓰읍.”
아무리 봐도 야금술과 관련된 동아리는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긴 그도 그렇다. 설령 야금술과 관련된 특성을 각성하는 능력자가 있다 해도, 그런 녀석은 신영이 아닌 다른 학교로 빠졌을 테니까.
동아리 중 상당수가 이름만 달리하는 교류회였고, 기사학과 동아리는 체육계열(을 빙자한 대련 실습), 마법학과 동아리는 문화계열(을 빙자한 연구회)이 태반이었다.
간혹 신영의 혹독한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주관하는 진정한 문화계열이나 체육계열이 보이기도 했지만 물론 그 중에 야금술을 배울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강신혁은 최후의 수단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새로 동아리를 만드는 것. 이미 백여 개의 동아리가 넘쳐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동아리를 만드는 데 그리 복잡한 자격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필요한 것이 세 가지 있었으니 바로 인원, 성적, 마지막으로 담당 교사였다. 세 가지 전부 지금 강신혁에겐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입학 성적은 실기 때문에 바닥이었으니까······ 중간고사도 마찬가지였고. 백인하한테 부탁하는 수밖에 없나?’
백인하를 내세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무려 S급의 특성을 지닌 엘리트가 동아리를 만들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와 어떻게든 친분을 다져보려고 학생들이 몰려들 것이고, 압도적인 실기 성적이 있으니 설립도 문제가 없고, 담당 교사도 한 다스는 구해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강신혁이 내키지 않았다.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도 한도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정 안 되면 그 녀석을 쓰는 수밖에 없어. 씁, 자꾸 빚만 지네.”
“거기 비켜.”
“흐어!”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여자 목소리에 강신혁은 기겁하며 돌아섰다.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뻗었으나 지금의 그는 비무장 상태다.
다행히도 상대는 그를 적대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살짝 짜증기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그에게 옆으로 비켜나라며 손짓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비룡관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응.”
그의 사과에 상대는 애초에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는 듯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 상대가 선배라는 것은 넥타이를 보고 알았다.
‘마법학과 교복인데다, 넥타이가 파란색이니까 2학년.’
신영은 학년 당 기사학과 8개, 마법학과 2개 도합 10개의 반을 운영한다. 한 반에 서른 명 정도가 속하니 한 학년에 약 300명, 총 900명의 학생이 속해있는 셈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모아놓은 신영의 총 학생수는 일반적인 고교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이제 입학한지 두 달 된 강신혁이 상대를 구분하기는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학과와 학년을 구분할 방법이 있었다. 바로 교복 디자인과 넥타이였다.
기사학과의 교복은 보다 활동적인 디자인을, 마법학과의 교복은 보다 학구적인 디자인을 취하고 있었으며, 1학년의 넥타이는 빨강, 2학년은 파랑, 3학년은 검정으로 구분했다.
‘그런데······ 유학생인가? 엄청 예쁜데, 아무리 학과가 다르다지만 여태 1학년에 소문이 안 퍼진 게 이상할 정도야.’
사실 교복보다도 먼저 강신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보기 좋게 그을린 그녀의 갈색 피부였다.
순간 남국의 해변에라도 다녀왔나 생각했지만 높은 콧대며 깊은 눈을 비롯해 이국적인 그녀의 외모가 그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쭉 뻗은 다리하며 훤칠한 키, 풍만한 가슴까지 무척 서구적인 몸매. 거기에 굳이 말을 더하자면, 목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는 은발과 어둡게 타오르는 붉은 눈이 인상적이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모발과 홍채의 색은 물론 각성의 영향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무척 강렬한 느낌을 주는 미녀였다.
“유학생 아냐. 아빠가 한국인.”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때 강신혁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선수를 치는 선배에게 강신혁은 재차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다들 한 번씩은 물어보니까 괜찮아. 그럼.”
그녀는 강신혁을 지나쳐 비룡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강신혁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동아리 목록에 시선을 돌리려던 때, 계단참에 이른 선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빚은 최대한 일찍 갚는 게 좋아. ······아예 지지 않는 게 제일이고.”
“아, 넵.”
순간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로 깨달았다. 그녀는 강신혁의 혼잣말을 들은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었는지 그녀는 금세 계단을 올라 모습을 감췄다.
보기보다 착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강신혁도 그 자리에서 돌아섰다. 그런데 그때, 운명처럼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흠?”
바닥에 떨어진 프린트 한 장.
‘다음 학기 폐부 예정 동아리 목록’이라는 살벌한 문구가 제목으로 적혀 있었는데, 그 밑으로 줄줄이 언급된 몇 개인가의 동아리 이름 중 하나에 강신혁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
“이거 혹시······.”
가슴이 두근, 뛰었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보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다음 학기에 폐부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인데······ 지금부터 그걸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
방과 후에 바로 가보자.
강신혁은 눈을 빛내며 비룡관을 나왔다.
@@@
조금이라도 빨리 야금술을 수련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득해, 그 날 수업 시간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어제 있었던 대련 이후로 학생들이 그를 의식하고 있는지, 오늘 내내 신기할 정도로 그 누구도 강신혁을 건드리지 않았다. 이따금씩 도우진에게서 살기가 날아들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젠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동아리? 이제 와서?”
“응, 그니까 먼저 간다.”
종례는 금방 끝났다. 곧장 그의 자리로 다가온 백인하가 어제 초인상가로 놀러갔던 얘기를 한창 늘어놓으려던 찰나 강신혁이 선수를 쳤다. 백인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 시뇩이 혹시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엉.”
“어제 대련을 그렇게 쉽게 이긴 것도 그렇고······ 어? 숨기는 거 있다고?”
“엉. 나중에 말해줄게.”
“이건 여자의 냄새······ 시뇩, 그 동아리에 여자가 있구나!”
절망적인 오답이었다. 강신혁은 자신을 추궁하듯 성큼성큼 다가오는 백인하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곤 비룡관으로 향했다.
3층에 올라와서도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야 복도 구석에 있는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 부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실을 이런 구석에 배정받다니, 원래부터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오오오.”
강신혁은 문이 열리고 드러나는 내부 풍경에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혔다.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부실은 굉장히 넓었다! 과연 학생들을 위한 시설에 돈을 펑펑 쏟아 붓는 신영다웠다.
하지만 늘어선 책장이나 책상 위에 펼쳐진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 세공 따위에 쓰일 것 같은 소도구들에는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있다! 정말 있네!”
부실의 절반을 가로막고 있는 방음벽. 그 반투명한 벽 너머로 야금술을 위해 갖춰진 설비가 보였던 것이다!
설마 부실 안에 대장장이 공방을 만들어놓을 줄이야, 이것이 국내 최고 초인 양성 학교의 퀄리티!
“음? 누구냐.”
그러나 공방의 존재를 확인하고 희희낙락하며 부실 안에 한 발짝 들여놓는 순간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움찔하여 멈춰선 강신혁은 그제야 부실 벽에 바싹 붙어 앉은 사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조각상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를 돌아보며 눈을 살짝 크게 뜨는 모습은 분명한 인간의 것이었다.
‘······할아버지?’
그것도 족히 일흔 이상은 되어 보이는 새하얀 백발의 노인. 강신혁은 당황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선생님이신가요?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 담당 선생님?”
“맞다.”
“안녕하세요! 전 기사학과 1학년 C클래스 강신혁입니다.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에 입부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일없다.”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신영 프레쉬맨을 연기하는 강신혁에게 노인, 아니 교사는 단호히 대답하며 손을 휘저었다.
“아티팩트 제작 동아리는 오늘부로 끝이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 명을 오늘 내보낸 참이지. 그러니 다른 데 알아봐라.”
“하지만 저는 쇠를 쳐야 하는데요.”
강신혁의 시선은 노골적으로 공방에 꽂혀있었다. 그 반응이 의외롭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뜨면서도, 교사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폐부가 확정된 동아리에 신입을 받을 수는 없지. 부원 한 명만으로 동아리를 유지할 수도 없고. 그러니 돌아가라.”
“하지만 선생님······.”
“쯧.”
강신혁이 다시 뭐라 말하려던 찰나 교사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강신혁이 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나가겠다는 듯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가지 않으면 벌점을 받을 줄 알아라.”
“아······!”
교사는 강신혁을 지나치며 한 번 부실을 돌아보더니, 공방에 지그시 시선을 주었다.
그리곤 어깨를 으쓱이며 정말로 나가버렸다. 넓은 부실 안에 오직 강신혁 혼자만이 남은 것이다.
어째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강신혁의 눈에 자신과 같은 꼴로 우두커니 남겨진 공방이 들어왔다.
“기껏 찾은 곳인데······.”
- 회원님, 달구어진 금속은 제때 두드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격렬한 충동이,
확고한 욕구가,
거센 기원이,
망설이는 그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 관리자의 이심전심 보너스 10HP!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강신혁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모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